June 9, 2019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2:26,27
Service Type: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6-9-19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2:26,27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 교회라고 밝히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교회는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교회’ (Church) 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불러내다’ ‘따로 세우다’ ‘모으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모인 공동체’이다> 라고 ‘웨스터민스터신학사전’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 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이고, 따라서 ‘주님을 머리로한 그의 몸’이라고 정의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본문을 포함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낸 첫번째편지를 통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비록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이자 많은 은사를 행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였지만, 동시에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된 교회임을 지적하면서 영적으로 훈계하는 것 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영적 미성숙을 책망하면서, 무엇이 교회의 본질이고 바른 모습인지를 자세히 성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각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들’ (the gifts of the Spirit)을 주셨음을 주지시키고, 그 성령의 은사들이 옳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성령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을 주장하는 것 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v.26) 라고 본문에서 바울이 주장하듯, 교회공동체는 성령의 은사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결될수 있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통해서만 주님을 머리로한 그의 모든 지체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함께 자라날수 있기 때문 입니다.

 

[설교 전문]

            교회는 과연 무엇일까요? 교회가 단순히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은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 입니다.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 교회라고 밝히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특권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그의 몸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오늘본문에서 등장하는 고린도교회는 그 당시 대표적인 초대교회중에 하나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많은 성도들이 모인교회였고, 또한 갖가지 은사가 행해졌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린도교회는 동시에 많은 문제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된 교회였습니다. 그로말미암아, 이들은 어떤 다른 교회보다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책망받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였던 것 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첫번째 고린도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공동체의 영적 분열을 강하게 책망하고, 교회의 본질과 참된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부모와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있는 것 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고전. 12장>은 ‘성령의 은사’라는 소제목에서 알수 있드시 교회공동체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교회성도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은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유익을 주고자 (v.7) 함이라고 사도바울은 설명하고 있는데, 이 유익은 그 은사를 받은 개개인 성도의 유익이라기 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임을 우리는 잘 알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님은, 그의 영 성령을 통해 그 몸의 지체된 각 성도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온몸이 유익하도록 하신다는 것 입니다. 어떤 이에겐 지혜의 말씀, 어떤이에겐 병고침을, 혹은 예언을,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함 등등을 주셨다는 것 입니다. 이것들이 성령의 은사들이요, 그 목적은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인 것 입니다.

따라서, 한 교회 안에서 은사는 다양하나 그 은사들은 교회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으로 이 모든것을 통해 필연적으로 교회는 하나로 연결되어야 하고 서로를 섬김으로 열매 맺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성령을 통해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연결된 몸의 지체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오늘 말씀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v.27) 고 표현한 정확한 이유인 것 입니다.

저는 먼저 ‘교회’ (Church) 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성경사전을 통해 살펴 보았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학사전에서는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불러내다’ ‘따로 세우다’ ‘모으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모인 공동체’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단어의 헬라어 (에클레시아)의 의미는 ‘불러내다/따로 세우다’ 혹은 ‘모으다’는 것 입니다. 이 정의에서 이해할수 있는 것은 교회는 ‘따로 불러낸 공동체’라는 것 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할찌라도 세상에 동화되고 흡수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과 본질적으로 구별되게 따로 불러모아 세우심을 입은 공동체라는 것 입니다. 이 교회에 대한 정의가 어저께 묵상한 히브리서 큐티말씀에 잘 나타난다고 저는 믿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우리 크리스챤들을 “이는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사람들 ~” (히. 6:18a) 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설교 ‘순전한 믿음’에서 살펴봤드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참된 실체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눈에는 볼수 있음으로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은혜로 주신 것 입니다. 이런 소망을 함께 소유한 자들이 교회라는 것 입니다.

저는 지금 성도 여러분과 ‘무엇이 교회인가?’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인간 스스로 좋은 생각과 훌륭한 인격으로 인해 뜻을 같이 한 사람들끼리 스스로 조직한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 시작이 하나님에게서 출발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때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심으로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를 죄와 죽음 가운데서 불러 내신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를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양떼들 등… 이 모든 표현이 모두 성경적이고 적절한 설명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 제목인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정체성과 기능’을 영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오늘 말씀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 드렸드시,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고전.12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장 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모든 성도들에게 각각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는 것 입니다. 이유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요,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함이 될것 입니다. 이런 유익과 영광을 위해 훌륭한 지휘자가 탁월한 오케스트라 단원 전체를 통솔하고 통제해 나가드시, 성령님은 은사를 준 각 지체를 통치하고 다스려 나가는 것 입니다. 이런 성령의 통제 가운데 이 다양한 은사를 받은 모든 자들은 그 받은 은사로 인해 자만하고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되고 한 성령안에서 아름답게 자라날수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말하다가 성령의 은사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이유 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12)고 바울은 주장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또한 그분께 순종할때 동일한 성령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고, 우리 모두는 그 몸에 연결된 각 지체인 것 입니다. 손과 발과 눈과 귀, 모든 지체가 서로 연결되는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오늘 메세지의 중요한 이슈는 ‘교회는 하나로 연결되 있는가?’ 하는것 입니다. 2000년전의 고린도교회 뿐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우리 ‘아포슬교회’는 연결되 있는가?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 각자에게 매우 영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 있는 기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이라고 저는 이해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v.26) 라고. 무슨 말 입니까? ‘만약 우리 가운데 한 지체가 지금 힘들어 한다면 고통 받고 있다면, 나도 힘들어하고 고통 받고 있느냐?’는 것 입니다. 아니면, 내일 아니니까 관심도 없고 신경 쓰지도 않고 있습니까? 혹은 우리 지체 가운데 누가 영광을 얻고 감사한 일이 생겼을때, 그와 함께 즐거워하고 내 자신의 일처럼 그 기쁨을 나눕니까? 아니면 은근히 시기하고 배아파 합니까? 바울의 오늘 선언에서 우리가 깨닫을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은 그리 선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선하지 못하고, 지체를 사랑과 헌신과 겸손으로 섬길 마음과 힘이 없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 겸손과 섬김과 사랑이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행할수 았다는 것 입니다. 내 육신은 행할수 없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자매와 함께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v.27)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 본문에 이어 계속 <고전. 12장> 나머지 부분을 읽어보면, 사도바울은 다시한번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성령께서 허락하신 다양한 은사, 즉 사도와 선지자, 교사, 능력, 병고침, 돕는 것과 다스림과 각종 방언과 통역의 은사를 사모할것을 격려하고 나서, 마지막 <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선언함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욱 큰 은사’일까요? 이것을 가지고, 이어지는 <고전. 13장> 에서 너무도 잘 아는 <사랑장>을 선언하는 것을 보고 어떤 분들은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이다’라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가장 원문에 가까운 ‘King James Version’에서 보면, ‘더욱 큰 은사’를 ‘가장 좋은 선물들’ (earnestly the best gifts)이라고 번역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단수가 아니라, 사도바울이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은사들인 것 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은사 자체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각자에게 허락하신 다양한 은사들이 잘 사용될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이 은사가 가장 잘 사용될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사랑 가운데 행함으로서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3:2) 아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사랑이 무엇인지를 선포하고 사랑의 우월함과 위대함을 선언하는 이유인 것 입니다.

교회공동체를 하나로 맺어주시고 서로를 유익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은사 자체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통해 가능하게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 5:22,23) 라고 바울은 성도 개개인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 성령의 열매의 절대적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우리 각자의 은사가 옳바른 열매를 맺게하고, 성령을 통해 모든 지체가 하나로 연결되게 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 입니다. 교회성도 여러분, 과연 교회는 무엇일까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자들의 공동체라면,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우리는 모두 그 머리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우리 아포슬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아포슬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어떤 성령의 은사를 받으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고린도교회 뿐 아니라, 오늘날의 수많은 교회도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얼마나 많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은사가 잘 사용되고 있느냐가 문제일 것 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젖만 먹는 영적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점점 더 장성하게 자라나는 크리스챤이 되기 원한다면,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구별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 몸의 지체가 된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자랑스러운지를 점점 더 깨닫아 가게 될것 입니다. 바라기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함께 자라가는 우리 공동체 모두 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하나로 연결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건강한 몸으로 함께 연결되고 함께 자라가는 우리 교회 공동체 되기를 간구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