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2, 2018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로마서 (Romans) 12:4~8
Service Type: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4-22-18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2:4~8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것이니라

<서 론>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떻게 삶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함께 모인 우리가 그분의 몸이라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깨끗하게 되어졌을뿐 아니라, 그분을 머리로 여러분과 제가 그분의 몸으로써 함께 연결되고 함께 자라난다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몸으로 함께 부르심을 받고, 한 건물로 연결되어 지어져 가는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인 것을 깨닫고, 참된 주님의 몸으로 서로를 책임지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되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먼저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무엇이 교회인가?’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잘 알드시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닐것’ 입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은 이렇게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약속 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따라서, 교회는 그 어떤 것 보다도 바로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가 교회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인 교회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아포슬교회’ 는 얼마나 그 부르심에 합당한 공동체로 성장해 가고 있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 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떻게 삶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공동체를 형성' 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또한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해서 그 위에 함께 지어져 가는 건물로 설명 했습니다; <에베소 2:19~22> 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모퉁이돌 (the chif cornerstone) 되시고, 여러분과 저가,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그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완성 되어지는 건물, 즉 '성전' (an holy temple) 이 되게 하신다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는 ‘주님의 몸’ 그리고 ‘주의 영,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이라고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 혹은 ‘성전’ 으로 표현된 ‘교회’ 의 정체성에 있어서 한가지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것은 이것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몸이 성장해 나가는 것’ 그리고 ‘성전이 지어져 나가는 것’ 으로 이 ‘교회 공동체는 계속 성장해 가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가 교회라고 사도바울은 강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 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신 우리 모든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 하는 점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의 몸된 믿음의 공동체일까요?” (What is a real faith community of the body of Christ?)

첫째,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 (It is a community to work together for His ministry) 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억 하듯이,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나서, <롬. 12장> 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 로 그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고 말 입니다. 여기에서 사도바울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요?‘그러므로, 로마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진술한 ‘그리스도의 복음’ 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축복된 것인지?를 여러분이 이해했다면, 이제 여러분의 몸을 이 좋으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 입니다’ 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산제사’ 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 (롬. 12:2) 임을 우리는 몇주전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의 경우에서 보면 <롬. 12:1,2> 에 대해선 묵상하고 은혜 받지만, 바로 이어지는 <롬. 12:3~21> 에서 구체적으로 과연 어떻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것인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행할것인지? 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우리를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관심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그 영적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수 있을 것 입니다.아무튼, 오늘 본문 <롬. 12:4~8> 에서 사도바울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더불어 자신이 가진 ‘은사들’ (gifts) 를 통해 어떻게 서로를 섬기고 함께 성장할수 (=지어져 갈수)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롬. 12:1,2> 을 통해서 여러분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기 원한다면, 우리는 <롬. 12:4~8> 의 오늘 본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의 논리는 갑자기 새로운 주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본문의 ‘만약 성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머리가 되시는 그분의 몸에 속한 한 지체라면, 그리하여 팔과 다리, 혹은 손에 해당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주신 ‘은사’ 되로 부지런함과 즐거움으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는 것 입니다. 이것이 막연하게 ‘산제사’ 를 드린다고 말만 할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 안에서 섬김으로서 ‘함께 사역하는 삶’ 을 통해 내 믿음이 드러나고 열매 맺는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몸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주신 은사로 섬기고 있습니까?그것이 예언 (말씀 선포)이나, 섬기는 일이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나, 남을 구제 하는 일이나, 자선을 베푸는 일이나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주께서 주신 ‘은사’ (=선물)를 성실함과 부지럼함과 즐거움 가운데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마음껏 사용하라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교회의 행정적인 의무사항을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그분의 몸의 지체로 부름받고 연결되었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에게 주신 은사데로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쁨가운데 그 역할을 감당 한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주신 은사로 섬기고 있습니까?

둘째,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It is a community to love one another)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잡히시기 전날밤,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4,35)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 는 명령을 ‘새 계명’ (a new commandment) 이라고 표현 하신 것 일까요? 과연 이것이 새로운 명령 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주께서 한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세의 율법과 모든 구약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 이라고 말씀 하신 것으로도 잘 알수 있습니다. ‘사랑하라’ 는 이 계명은 처음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첫 계명이자, 십계명을 포함한 모세의 율법과 구약의 모든 말씀에서 가장 핵심적인 계명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질문은 <왜 우리 주님은 ‘새 계명을 준다’ 고 말씀하신 것 일까요?> 그 이유는 그의 제자들이 구약의 모든 말씀의 핵심이 바로 ‘사랑하라’ 는 명령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지만 그 사랑을 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께서 아셨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실천할 능력이 없는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그 사랑을 행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as I have loved you) (v.13) 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입니까?’ 그것은 ‘우리 각자가 믿음의 열심데로, 자신이 가진 의지와 능력데로 소신껏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라’ 는 뜻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는 뜻은 단순히 제자들이 열심을 다해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고 따라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뜻 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의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왜 주께서 ‘새 계명을 준다’고 말씀하신 이유인지를 설명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요. 15장> 의 ‘포도나무와 가지’ 의 비유에서 “ ~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remain in my love) (요. 15:9) 라고 하신 말씀과 동일한 가르침 임을 알수 있습니다.

구약은 우리에게 그 사랑을 명령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마서 7장’ 의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사랑하지 못할때 우리 모든 인간은 마음은 원이로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곤고한)’ (롬. 7:19) 존재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우리의 의지나 능력에 근거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도록 허락 하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선함을 행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치 않토록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 입니다. 사랑의 사도, 사도요한은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서로 사랑하기를 격려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7,8,11,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할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다고 사도요한은 주장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서로 사랑 하십니까? 사랑하는 자는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십니다. 내가 스스로 힘쓰고 노력하기 전에, 그 보배로운 피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의 힘으로 서로 사랑 합시다!

셋째,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 (It is a community to lay down our lives gladly for each other) 입니다: 사실 이 마지막 3번째 특징은 다소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처럼 느껴질수 있음을 저도 잘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서 ‘서로 사랑하라’ 는 그의 명하심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까지는 이해 하겠는데, 서로 ‘생명’ 즉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라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고 비현실적이 아니냐?고 혹시 성도 여러분은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과연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자들로 모인 사람들, 즉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것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그것은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 임을 지나칠수가 없는 것 입니다. 사도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고 우리에게 도전함을 봅니다.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 몇몇 성도들 뿐만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예수 믿고 거듭난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진리를 선포하고, 또한 도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 ~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v.16b) 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형제를 위해 나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 (=당연) 한 것인가요?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 입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양들인 택한 주의 백성 모두를 살리시고자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나에게는 ‘이제 나는 주의 피로 살아 났으니, 나혼자 잘 살다가 천국가면 그만이다!!’ 라고 말할수 있는 권리가 내게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은 “형제들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함’ 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형제, 자매를 위해 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운명 공통체의 삶>을 행할 권한만이 놓여 있는 것 입니다. 제가 너무 확대해석 한 것 입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이것이 사도요한 뿐 아니라 모든 성경저자들과 주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주님의 몸된 성도들이 살아야 할 진정한 특권이자 의무라고 힘써 주장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형제를 위해서 죽는 것 입니까? 이것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도요한은 <요일. 3:16> 바로 다음절에서 무엇을 말합니까? 형제의 궁핍함을 못 본체 해선 않된다는 것 입니다. 그의 아픔과 고통을 남의 일로 돌려서는 않된다는 것 (요일. 3:17) 입니다. 서로 책임 지라는 것 입니다. 형제를 미워해서는 않된다는 것 (요일. 4:20) 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품어주지 못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 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하는 나의 육신에 속한 마음을 죽이는 것이 마땅 하다는 것 입니다. 형제를 위해 나의 육신적인 생명을 날마다 십자가에 목밖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형제 자매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희 아포슬교회가 이곳 미드타운에 세워지고 사역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일곱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청년들과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의 제자가 되도록 섬기고 그들을 파송하기 위해 주께서 영광스럽게도 여러분과 저를 세우셨습니다. 이 시간, 이 소망되고 가슴 벅찬 주의 비젼이 우리 아포슬 교회를 통해 성령의 충만하신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 날이 갈수록 더욱 열매 맺기를 소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가 몇명이 되든지, 그리고 여러분이 언제 때가 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든지 관계없이 한명도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가 없이, 모두 함께 바로 오늘부터 이 아름다운 주님의 몸으로서 함께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수 있는 일에 하나되는 주님의 몸된 교회 되기를 소망 합니다. 주께서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성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저희 교회를 사단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되기 축원 합니다. 오직 성령의 권세가 충만함으로 주의 위로 하심과 새롭게 하심과 하나님의 비젼으로 청년들이 꿈을 꾸며 주의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수없이 많은 사망에 거하는 심령들을 주께서 인도하는 충성된 주의 제자로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