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의 은혜” (The Grace of Gilgal)
“길갈의 은혜”
(The Grace of Gilgal)
12-29-24
본문말씀: 여호수아 (Joshua) 5:8~9
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And after the whole nation had been circumcised, they remained where they were in camp until they were healed.)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Today I have rolled away the reproach of Egypt from you.” So the place has been called Gilgal to this day.)
[설교 요약]
오늘로써 이번 해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여러분과 저의 수치를 그리고 아픔과 후회를 굴러가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들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가 40년 기간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고, 이제 2세대 이스라엘민족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의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길갈의 은혜’는 무엇인지? 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 은혜는
- ‘새 기회를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12돌을 취하여 길갈에서 쌓게 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강하신 손’을 늘 기억하고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수.4:21-24)하려 하심 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 주실때, 그것을 기념함으로 주신 은혜를 잃지 않게 하십니다.
- ‘영적 부흥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전에 영적 부흥을 주십니다. 오랜 광야생활동안 지키지 못한 ‘유월절’의 구원의 은혜를 지키고 (수. 5:10), 또 여호와의 성결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할례’를 행하게 (수. 5:2-8)하셨습니다.
- ‘모든 상처와 수치를 흘려 보내는 은혜’입니다: 본문의 ‘길갈’은 “굴러 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길갈의 12돌무더기와 함께, 요단강 바닥에 (강을 가르시고, 그들을 지나게 하실때) 또 12돌무더기를 쌓게 하셔서 다시 강의 강한 물살로 그 돌을 흘려 보내는 ‘퍼포먼서’를 보여주셨습니다 (수. 4:9). 이들 돌들처럼 지난 날 ‘애굽의 수치를 흘려 보내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과거의 ‘수치와 아픔’를 흘려 보내지 않으면, ‘미래의 회복과 희망’은 누릴 수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우리를 얽매었던 모든 상처와 육신에 속한 것들을 흘려 보내고, 소망 가운데 새해를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로써 이번 해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3일후면 새로운 2025년 한 해가 밝아옵니다. 성도 여러분은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습니까? 후회와 한숨과 원망 가운데 맞이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기쁨과 소망과 감사 가운데 맞이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수치를 흘러가게 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여러분과 저의 수치를 그리고 아픔과 후회를 흘러가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새롭게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며, 여러분을 그동안 얽매고 억눌렀던 모든 무거운 것과 상처를 이제 과거와 함께 흘려보내시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망으로 시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가 400년간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출애굽해서, 40년간의 광야생활 기간동안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들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죽고 마지막 모세까지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모압 땅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제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민족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믿음으로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자 하는 변화와 은혜의 새 역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여호수아서>가 시작되고 오늘 <5장>의 본문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언하신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v.8)고 선언하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먼저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선언하시는 변화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공간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한 그 길목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가나안 입성을 위한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이 깊어서 그냥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명하셔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발을 담그게 하셨을 때, 강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뚝과 같이 싸임으로 강바닥이 마른 땅처럼 되어 모든 백성들이 건넜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출애굽 당시에 모세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권능으로써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기적을 행했지만,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요단 강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은 심히 놀라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홍해를 가르심으로 출애굽의 시작을 알리신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심으로 출애굽을 끝내셨음과 동시에 약속의 땅의 입성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시고자 함이라는 뜻 같습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볼 때, 오늘 본문 다음절 <10절>의 기록을 보면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 유월절을 지켰으며” (v.10)라고 유월절을 바로 앞둔 시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종살이하던 유대인들을 구원케 하심을 기념한 절기입니다. 끝까지 강팍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애굽왕 바로에게 내리는 10번째 재앙, 즉 ‘바로와 그에 속한 모든 애굽 가정의 장자를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로 치시는 사건’을 내리셔서 자기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명절이 <유월절>입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민족은 유월절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한 해의 시작으로 지켜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유대인들은 지금 새로운 장소뿐 아니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민족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미지의 땅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는 시기가 바로 새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키며 자신들을 ‘죄와 절망’의 땅, 애굽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경배를 드렸고, 또한 약속하신 새 땅을 바라보며 소망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대략적인 배경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길갈>의 은혜인지?”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첫째, ‘새 기회를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v.8)고 이스라엘민족에게 선언하시는 말씀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또 하나의 명령을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앞장 <4장>에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한 명씩 12명을 택하여 그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이 서 있던 발 앞에서 각각 돌 한 개씩, 총 열 둘을 취하여 그들이 그날 밤 머물게 될 ‘길갈’에 쌓아두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에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선 강바닥에 열 두개의 돌무더기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한 무더기, 곧 ‘12돌’무더기는 가지고 나와 ‘길갈’에 쌓아두게 하시고, 또 한 무더기 12돌은 요단강 바닥에 쌓아두게 하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신 것일까요? 첫째, 요단강 바닥에 쌓아둔 돌무더기는 유대민족과 제사장들까지 강을 건너는 순간 강물이 다시 쏫아져 내려오게 되어, 그 강한 물살로 인해 굴러 내려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길갈에 쌓아둔 돌 무더기는 하나의 기념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하심이라 하라” (수. 4:21~24)고 백성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요,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승리를 베푸실 때, 먼저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방식임을 믿습니다. 과거의 모든 얽매이고 우리를 짓눌렀던 상처와 수치와 열등감을 흘러 보내게 하시고, 이제부터는 이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영원토록 찬양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흘려보내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자, 길갈의 돌무더기로써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부흥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리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시는 것을 유대종교지도자들,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고는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눅. 5:33)라고 주님을 힐문합니다. 그때 주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손님들이 금식할 수 없지만,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니, 그때 금식하게 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눅. 5:38)라고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그 영적으로 낡고 굳어져버린 종교행위로는,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도저히 담을 수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헤어지고 약해지고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유대종교의식으로는 생명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담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신.구약 말씀은 그 어느 것 하나 사라지거나 폐지되는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은 결코 구약에서 선포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온전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한가지 예로서 제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길갈에서 새로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먼저 그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로 살아가던 그들을 어린 양의 피를 집 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가게 함으로 그들이 구원 받았음을 상징하는 <유월절>을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같은 <5장> 앞절에서 그동안 광야 40년 기간동안 태어난 출애굽 2세들이 할례 받지 못했음으로, 이제 할례를 행하게 하셔서 그들에게 이 율례를 통해 ‘성결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정체성’을 그들 스스로 확인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 ‘유월절’의 정신을 ‘부활절’로 승화시키셨습니다. 또한, 신체에 행하는 ‘할례’를 참된 영적 할례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 3:2~3)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 모든 그분의 제자들도 율법에 나타난 진정한 하나님의 뜻과 명령하심을 깨닫고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만약 성도 여러분이 진정한 변화를 희망한다면, 먼저 영적 부흥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과 제가 구원 얻고 자유케 되었음을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몸에 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진정한 ‘참된 할례’ 곧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한 찬양과 예배를 올려드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와 참된 할례로 살아가는 삶 가운데 놀라운 영적 부흥은 성큼 다가올 것이고, 이때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는 하나님의 길갈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 ‘모든 상처와 수치를 흘려 보내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길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둥근 돌” (circle of stones)이고, 그 성경적 의미는 “굴러 갔다” 혹은 “애굽의 수치가 물러갔다”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새 시대를 시작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해 선언하시는 말씀의 뜻입니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v.8)고 말입니다. 여기서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12개의 돌들’은 그럼으로 이스라엘민족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각 지파별로 돌 한 개씩을 취하여 ‘길갈’에 쌓아 둠으로 장차 태어날 자손들에게 영원한 교훈을 주실 뿐 아니라, 또 한 무더기의 돌무더기를 강에 놔 둠으로써 이 돌들이 강물에 휩쓸려 가게 하심으로 시각적이고 사실적으로 그 돌들이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임을 영적으로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요단강의 12돌로써 과거의 상처와 수치를 흘려 보내게 하셨다면, 이제 길갈의 12돌로써 그 강하신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선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신감과 담대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은혜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왜 하나님은 이런 12돌의 교훈으로 이스라엘을 깨우치시고자 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중심이유는 ‘과거의 수치와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흘려보내지 않으면, ‘미래의 회복과 희망 그리고 약속’은 결코 온전하게 누릴 수 없음을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시고자 함이 아닐까요? 지난 주 살펴보았듯이,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사람’의 권세와 능력을 입을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을, 집을, 창고를 가득 채운 해 묽고, 더러운 짐들과 잡동사니 쓰레기들을 정돈하지 않은 채, ‘내 마음만은’ 깔끔히 정돈되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짐이나 물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인 그리고 영적인 해묵은 습관들, 굳어져 버린 가치관들, 우리의 상처와 아픔과 수치와 후회스러운 기억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과 저의 모든 과거의 수치를 흘려 버리게 하시고, 이제 새로운 영적 부흥의 은혜로 우리 각자에게 그 기회를 허락하셨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며칠 후면 역사 속으로 ‘2024년’을 보내고, 새로운 대망의 ‘2025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한 해가 ‘축복된 시간의 시작’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후회와 권태로운 시간의 시작’이 될 것인지는 이제 우리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바라기는 새로운 한 해, 새로운 약속의 땅에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길갈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음으로, 그 수치를 떠나 보내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승리하는 새로운 미래의 복을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