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The Advent Of The Holy Spirit)
“성령강림”
(The Advent Of The Holy Spirit)
10-1-23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설교 요약]
오늘 본문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불의 혀 같은 강림사건이 <오순절> (Pentecost)날에 임했는데, 이 ‘오순절’은 “50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유래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애굽에서 해방하신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첫 안식일 다음날인, <초실절>에서부터 50일째되는 날이 <오순절> (=칠칠절)입니다. 한편, 초실절이 지나고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과 홍해를 건너 40일을 광야에 머물렀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 돌판을 받게 됩니다 (출. 24:12-18). 이것을 기념한 날이 오순절, 곧 칠칠절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유대인의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역사에 정확하게 일치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를 살리려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은지 3일만에 (초실절) 다시 살아나셔서 ‘초실절’ (Feast of First-fruits)의 의미와 같이 “잠자는 자는 첫 열매” (고전. 15:20)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50일째 ‘십계명 돌판’을 받던 날, 곧 ‘오순절’에 불의 혀 같은 ‘성령 임재’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유대명절 속에 감쳐진 정확한 구원의 청사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강림의 의미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판에 율법을 새겨주심”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았지만,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그의 영 성령을 통해 ‘돌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판’에 그의 율법을 새겨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 31:33). 이것이 ‘오순절’날 일어난 사건입니다.
둘째) “성령의 충만으로서 증인을 세우심”입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오순절사건을 영적으로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고. 성령의 충만한 권능을 입어 주의 증인으로 세우심 입니다 (행. 1:8).
셋째)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예수그리스도” 되십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은 사도행전 2장에서만 <유일하게 임한 사건>이라는 견해와 <계속해서 반복되는 사건>이라는 등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침례를 베푸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제자들이 이 성령의 충만을 받음으로 권능을 받아 그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의 증인으로 함께 성장해 가는 우리 아포슬 지체 모두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본문말씀은 성도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입니다. 누군가가 사도행전에서 그 전과 후를 구분하는 사건을 한가지만 들라고 한다면, 저는 바로 사도행전 2장, 오늘 본문의 <성령강림사건>을 들 것입니다. 바로 주께서 약속하셨듯이 몇 날이 못되어 주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구원과 복음의 능력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이 사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항공기지 발사대에서 창공을 향해 쏘아 올린 우주선이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대기권을 뚫고 통과해야만 비로소 우주 공간의 정상궤도에 진입하여 우주여행을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듯이, 오늘 이 ‘성령강림사건’은 기독교회와 선교사역의 장엄한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개기로 하여 이후에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독교회 2천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땅끝까지 이르러 증거하고자 성령의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권능이 계속적으로 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v.1)라고 시작됩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명절의 하나로 지켜져 왔는데, 50일이라는 의미의 ‘오순절’ 혹은 ‘7일, 한주가 7번 돌아온 그 다음날이란 의미의 ‘칠칠절’로도 불리어졌습니다. 이 오순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출애굽 할때 처음으로 지킨 초실절 (=무교절 다음날)에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첫번째 오순절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의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가 하나의 명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사역을 드러냄으로 그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유월절 제물로 우리를 살리시고자 실제로 그 유월절 명절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신 날이 <초실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이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행. 1:5)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이들은 주께서 부활하시고 10일만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의 유래가 성도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리신 10가지 재앙에서 그 마지막 10번째 재앙의 결과로 인하여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코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 내시고자 그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강팍한 마음으로 고집을 부리던 바로에게 하나님은 마지막 열번째 재앙, 곧 ‘하나님의 죽음의 사자가 바로의 장자와 그에 속한 모든 애굽 백성의 장자 그리고 심지어 짐승의 첫 숫컷 새끼까지 치는 재앙을 내리셨지만,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집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린양의 피를 집문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가게 되는 ‘유월’ (pass over)의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서야 바로는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어쩔 수 없이 내어 보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통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시고,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서 죽음에서 넘어가게 하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케 하고자 영원토록 ‘유월절’을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사건이 있고나서, 맞이하는 ‘초실절’ 곧 ‘유월절기간의 안식일 다음날’이요, 오늘날로 말한다면 주께서 부활하신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칠칠절’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손으로 두 돌 판에 새겨 주신 십계명, 곧 율법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어린 양의 피로서 죽음에서 건져 내시고 50일째 되는 날, 곧 ‘오순절’에 지도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돌판에 직접 그 손으로 새겨 주신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내 실 뿐 아니라, 그의 선하신 율법을 돌 판에 새겨 주심으로 영원토록 그의 백성이 자신의 거룩한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 나가길 명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살아나갈 때만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이 율법을 지킬 것임을 맹세케 함으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1,500여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흘러갔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악한 삶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그리스도 (=메시야)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승천하신 10일 후인 <오순절>날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명하심을 좇아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던 주의 사도들과 100여명의 성도들에게 이 ‘초실절’후 50일째 되는 <오순절>날 불의 혀 같은 성령강림의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적 구조’를 이해하십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대로, 유대인의 주요 명절인 유월절, 초실절 그리고 오순절 (=칠칠절)이 단순히 수천년을 내려온 하나의 명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절기의 순서와 시기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 날짜와 정확하게 일치 (overlap)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명절의 날짜와 순서 안에 감추어진 실로 놀라운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의 청사진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무엇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강림의 의미인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첫째)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판에 율법을 새겨주심”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돌판에 새겨주신 거룩한 십계명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 오경에 나오는 십계명 뿐 아니라 여러 율법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 주셨을까요? 물론 그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이 선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스라엘민족은 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토로하고 있듯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은 ‘선은 원하지만,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9,23) 이것이 비록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을찌라도, 죄라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악을 행하는 죄의 유전을 받은 인간존재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몇번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여러 선지자를 통해 ‘성령강림’을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이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 가운데 거하는 죄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돌이나 나무에 새기거나 종이에 쓰지 않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서 우리의 마음판에 그 선하신 율법을 새겨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율법을 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고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형제와 이웃에게 “너는 여호와를 알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그들은 이미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판에 그의 율법을 새겨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오랜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충만으로서 증인을 세우심”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도행전 1장>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승천하시면서 그들에게 가장 첫번째 ‘미션’을 주셨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뭔가 굉장한 선교사업을 하거나, “내가 부활한 사실을 방방곡곡 알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먼저 기다리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무얼 기다릴까요?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v.4) 곧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의 침례를 (받게)” (v.5)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 그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v.8)고 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구약의 시대에도 성령님의 임재하심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임재는 특정한 소수에게 한정된 시기에 임하심 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경우였습니다. 구약에서 한번도 일어난 일이 없는 모인 모든 만민들에게 일시에 차별 (구별)없이 임하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된 시기에만 주시는 성령의 충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모든 만민에게 차별없이 제한없이 부어 주시는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 요엘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오순절사건을 영적으로 이렇게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 가운데 성령을 불의 혀같이 부어 주셔서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비젼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의 권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 말씀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말세에 보어주신 그의 영,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시고자 하심입니다.
셋째)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예수그리스도” 되십니다: 제가 지난번 “성령으로 침례를”이란 제목으로 <행. 1:5>말씀의 ‘성령 침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먼저 ‘성령침례’ 혹은 ‘성령세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오늘날 교단이나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으로 신학적 (=교리적)으로 지금 현재도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성령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논쟁의 중심되는 주제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성령세례’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받는 순간에 받는 것>이라는 견해인데,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늘 “오순절 성령세례”사건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이 이외에는 두번 다시 역사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성령세례’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더욱 풍성하고 특별하게 임하는 충만>이라는 견해인데,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세례”사건은 2천년전 마가의 다락방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안에서도, 이 성령세례는 내 마음데로 받을 수 있다는 견해와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견해로 나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기 원하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제 개인적인 신학관과 교리적 관점에서는 ‘오늘날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침례를, 오순절날의 불의 혀 같은 권능의 성령을 부어 주시는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영적 진리를 교단과 신학을 초월하여 대부분의 건전한 신학을 지지하는 성도들이라면, 우리 또한 성령 침례의 주인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불의 혀 같은 성령충만한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내릴 결론인 것입니다. 단순히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1회성이냐? 혹은 반복 가능하냐? 라는 신학적 논쟁을 너머서서 주께서 주실 불의 혀 같은 충만한 성령충만을 우리 모두는 사모하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의 증거와 같이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주는 자 인줄 알라” (요. 1:26,33)는 진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도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고 누려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성령충만이 없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할 수도,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이 없이는 주님의 충성된 증인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함께 사랑 가운데 성장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성령강림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 각자의 삶 가운데, 그리고 우리 아포슬 공동체 위에 권능으로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