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3, 2019

“아침마다 새로우니” (New Every Moring)

Preacher:
Passage: 예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3:22~23
Service Type:

“아침마다 새로우니”

(New Every Moring)

10-13-19

본문말씀: 예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3:22~23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설교 요약]

            어떻게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동족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겪고 있는 이 말할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새로운 소망을 누릴수 있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고백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즉 무엇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라는 뜻인지?” (What is the meaning of ‘they are new every morning’?)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were cleansed from sin through the blood of Jesus):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 ~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 (요.13:10)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할때 우리의 죄가 씻음받고 구원 얻는다는 뜻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이 가장 쉽게 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구원의 확신과 감사 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을 잊지 않을때 새로운 소망을 누릴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었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are new every morning through the fulfilled with the Holy Spirit):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그분께 정직히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에게 주의 구원의 기쁨을 다시 주셔서 기꺼이 주께 순종하게 하소서” (시.51:11,12)라고 허락하신 성령의 충만하심을 거두어 가지 말것을 간구 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아침마다 주 앞에서 새롭게 되어져가는 삶을 누릴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으로만 가능한 것 입니다.

셋째, ‘믿음으로 죄와 육신과 싸워 이긴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are able to win against our sins & flesh desires by the faith):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놀라운 신분을 소유한 자인가를 밝혀 줄뿐 아니라, 또한 동시에 삶속에서 행함을 통해 그 신분에 걸맞는 성숙된 삶을 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뜻은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감으로 모든 불법과 맞써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의 친 백성들이 되게 하시고자 함 입니다 (딛.2:14). 이런 인격적 결단을 통해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갈때 하나님의 아침마다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비밀과 은혜에 대해 점점더 깊은 영적 깨닫음이 있기를 소원 합니다. 그리하여인격적인 결단과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으로 죄와 싸워 이기고 승리하는 날로 새로와지는 소망의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설교 본문]

            성도 여러분은 최근 한달, 혹은 한주동안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눈을 뜨셨습니까? 더 좋은 하루를 기대함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셨습니까? 아니면 어저께 잘못 행한 일들에 대한 좌절과 오늘 펼쳐질 무거운 일들에 대한 긴장으로 눈을 뜨셨습니까?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 가운데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시는 용서를 통한 진정한 소망과 회복의 즐거움을 누려 나가시길 기대 합니다. 그로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누리는 권세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육신과 세상을 이기고 날마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예레미야 애가서’의 히브리어 원어의 책명은 에카인데 이것은 어찌하여 라는 뜻이며, 애도와 슬픔의 형식을 나타내는 표현 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통해서도 가장 비참하고 암담한 상황 속에서 살았던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의 하나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이런 하나님의 준엄한 형벌을 겪어야 할 그런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도리어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위협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과감없이 전하다가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기까지 했던 사람 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나는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아무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혼자 따로 피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타락한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을 끝까지 함께 감당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우신 심판을 알리는 파숫군으로 그를 삼으신 결과로 겪어야만 했는 세상으로 부터의 미움과 핍박 때문일 것 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영혼 깊은 곳에서 부터 움터오는 질문은 ‘왜 나는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고, 참으로 가치있는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생각하면 할수록 샘솟드시 그 답을 얻게 된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허무와 무의미의 덫으로 부터 의미로운 인생을 펼쳐 나갈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은 ‘나를 창조하실뿐 아니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심히 사랑하시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리고 나를 심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무궁하시기 때문이요, 그의 성실하심이 심히 크시기 때문 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퍼 목사는 “Desiring God, Meditation of a Christian Hedonist” 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진정한 크리스챤은 ‘희락주의자’ (hedonist)가 될수 밖에 없는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신적 행복은 우리 크리스챤이 마시고 또한 더욱 더 마시기를 간구해야 하는 원천이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 희락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지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서 즐거워하는 것 입니다”라고 존 파이프 목사는 말 합니다. 이렇게 크리스챤이 마셔야 할 진정한 생명의 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우리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7:37,38)라고.

오늘 제가 성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신학적으로 까다롭고 이해하기 힘든 성경구절이나 중요한 성경구절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말씀이 우리 성도들의 삶에 매우 의미있는 가르침을 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는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반드시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깨우쳐주고 계심을 제가 이해하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즐거움과 평화’ 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즐거움과 평화에서 비롯된 ‘우리 성도들의 위로와 소망의 즐거움’ 입니다. 제가 오늘 성도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말씀을 통해 각자 돌아보기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가?하는것 입니다.

어떻게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동족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겪고 있는 이 말할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조차도, 오늘 또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아침에 그가 누렸던 이 평화와 위로는 가능한 것일까요? 그 참혹한 환경조차도 빼앗을수 없는 소망의 감격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저의 질문은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누리고 있는가요?’하는 것 입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어떤 복잡하고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누리십니까?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누리신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그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 하십시요. 더욱 겸손하고 진실하게 그의 영광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중에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무거운 짐 가운데서 힘겹워함으로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화와 위로의 삶을 누리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권세를 내가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요, 따라서 자녀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모습이 내게서 맺혀나가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없이 불안 가운데 세상의 염려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열매맺는 삶을 기대할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고백한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즉 무엇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라는 뜻인지?” (What is the meaning of ‘they are new every morning’?)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were cleansed from sin through the blood of Jesus): 우리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밤에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먼지묻은 발을 씻어 주셨던 것을 기억 합니다. 그때 주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시려 하자, 그는 너무 황송했던지 “주여 제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요.13:8a)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13:8b)라고 말 입니다. 주님의 이런 발씻기시는 행위속에 뭔가 영적인 중대한 의미가 숨어 있음을 간파한 베드로는 이제 한술 더떠서 이렇게 요구 합니다.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요.13:9). 이에 대해 주님은 “ ~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 (요.13:10)라고.

우리 크리스챤의 가장 첫째가는 확신과 기쁨은 우리의 온 몸이, 온 존재가 깨끗하여졌다는 이 놀라운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될 것 입니다. 우리의 주홍같은 죄도 흰눈과 같이 깨끗하게 용서함 받았다는 사실 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그때 뿐 아니라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 죽음의 죄에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완전히 자유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것 입니다. 내가 아침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수 있는 것은 내 의지가 굳고 성실하고 남과 비교해서 자랑스럽게 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피의 능력이 내 죄를 사하여 주셔서 그의 생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그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음에 대한 확신과 은혜를 누려 나가고 있습니까?

둘째,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었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are new every morning through the fulfilled with the Holy Spirit):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 곧 ‘내 마음에 쏙드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던 다윗에게도 죄로 인하여 깊은 좌절과 고통의 순간을 맛보아야만 했던 때가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자신의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할 뿐 아니라 그 충신 우리아를 전쟁이 가장 치열한 한 가운데로 몰아 넣음으로서 죽게한 간접살인 소위 ‘교살행위’를 저질렀던 것 입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서 그 죄를 폭로하게 하시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선언 하셨습니다. 제가 몇번 이 사건에 대해 말씀드린적이 있지만, 다윗으로 부터 우리 크리스챤이 놓치지 말고 본받아야 점 중에 하나가 그의 진정한 참회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물론 다윗이 소년시절에 보여준 거인 골리앗을 용맹으로 물리친 점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세운 그의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대단하겠지만, <시.51편>에서 그가 보여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회개와 자신이 행한 죄에서 떠나고자 분명히 결단하는 용기는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는 모습이라 저는 믿기 때문 입니다. “ ~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51:1,2)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드리는 것 입니다. 그는 이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범죄함으로 거두어 가신 주의 영, 성령의 충만하신 회복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에게 주의 구원의 기쁨을 다시 주셔서 기꺼이 주께 순종하게 하소서” (시.51:11,12)라고.

우리 성도가 날마다 아침마다 주 앞에서 새롭게 되어져가는 삶을 누릴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를 누릴때만 가능한 것 입니다.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나감으로서 그분께 점점더 순종해 나갈때 가능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 여러분은 성령을 좇아 행하십니까? 육체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그분의 충만하신 은혜와 통치하심 아래서 살아 가십니까? 읂

셋째, ‘믿음으로 죄와 육신과 싸워 이긴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we are able to win against our sins & flesh desires by the faith): 앞에서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사건의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 봤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온몸을 씻는 것과 같이 중대한 사건임을 알수 있는 것 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씻음 받고, 생명으로 구원받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분명히 지적 하셨드시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고 해서 우리가 두번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다거나 죄 짓더라도 죄 없는 것으로 해주겠다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비록 전신을 목욕했더라도 살아갈때 더러운 땅을 딛고 다니기에 순간 순간 발이 더러워진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발을 씻으라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와 연약함으로 죄를 범할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날마다 더러워진 발을 씻으라는 것 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라는 것 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4)고.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서로 품어주고 씻어주라는 것 입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놀라운 신분을 소유한 자인가를 밝혀 줄뿐 아니라, 또한 동시에 삶속에서 행함을 통해 그 신분에 걸맞는 성숙된 삶을 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자녀 디도에게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를 그 피로서 구원하신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2:14)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뜻은 천국가기 전에 이 땅에서 적당히 세상도 즐기고 육신의 요구를 따라 살다가 오라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모든 불법, 곧 죄와 육신과 악한 영들의 유혹과 공격을 인식하고 영적으로 날마다 성장하여 이 악과 맞써 열심히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의 친 백성들이 되게 하시고자 함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님의 뜻을 쫓아서, 죄악을 미워함으로 선한 싸움을 힘껏 싸워 나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새 소망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누릴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통해 허락사신 구원의 비밀과 은혜에 대해 점점더 영적 깨닫음이 깊어짐으로 가능할 것 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심이 무궁하심에 대해 영의 눈을 떠야 할것 입니다. 이것은 당연하지도 우연스럽지도 않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약속하신 열매를 거두고,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육신과 열심을 다해 싸워 맞서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이를 통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나는 인생의 아침을 날마다 맛보는 복된 인생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