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3, 2024

“안식에 들어 가기를” (To Enter the Rest)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4:9~11
Service Type:

“안식에 들어 가기를”

(To Enter the Rest)

11-3-24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4:9~11

9 그런 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함이라

[설교 요약]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안식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안식’은 <히브리 원어>로 “샤바트” (Sabbat)인데 그 의미는 ‘그치다/ 그만두다/ 끝내다/ 중지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이 있습니다.

  • 먼저 <하나님의 안식>은 1) ‘창조의 사역을 완성하심’ (창.2:2) 2) ‘그 지으신 것으로 인해 만족하심’ (창.1:31) 3) ‘그 지으신 만물을 축복하심’ (창.2:3)이요
  • <인간의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안으로 들어 감’ (v.10)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참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복음서에 보면, 주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막.3:4)고 주께서 도전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 “안식일 준수는 <날짜의 문제가 아님>을 이해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2:16)고 말합니다. 사도는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포함한 구약의 의문에 속한 것에 얽매여 ‘그리스도와 누리는 새 생명의 삶’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도전합니다.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이해함으로써”: 성경에는 크게 3가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민족을 약속의 땅에 정착’시킴 2) ‘장차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누릴 안식’ 그리고 3) ‘<오늘> (=현재)을 놓치지 않음으로 누리는 안식’입니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기자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믿음으로 ‘주의 음성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v.7).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감으로 진정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v.14-1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고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함으로, 그분께 나아가 쉼을 얻고 성령 안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는 안식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더욱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에 탐익하고 게임과 같은 중독적인 행위들에 빠지게 되는 그 대표적인 원인의 하나로서 생활의 불안과 초조, 긴장과 같은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결과가 자극적인 음식이나 게임과 같은 중독적이고 단기적 쾌감에 무의식적으로 몰입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스트레스와 긴장이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 평화롭게 살아 갑니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흔들림 없이 살아갑니까? 아니면, 세상의 근심의 파도에 힘없이 흔들리고, 염려의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까?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안식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하며 각자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4장>말씀에서 성도들에게 촉구하는 “그런 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 가기를 힘쓸지니” (v.9-11)라는 말씀의 의미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에서 나타난 ‘안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이해해 나감으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 삶에 허락하신 이 안식의 은혜 (축복)을 누려 나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안식’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안식’은 <히브리 원어>로 “샤바트”인데 그 의미는 ‘그치다/ 그만두다/ 끝내다/ 중지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안식’을 크게 두가지로 말씀함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 그리고 <인간의 안식>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의 출발은 당연하겠지만, ‘하나님의 안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 등장하는 말씀이 <창. 2장>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22)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학자들은 이것을 첫째는 ‘창조의 사역을 모두 완성하셨다’는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진술하듯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안식하시니라” (창.2:2) 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또한 이 안식은 창조를 마칠 뿐 아니라, ‘그 지으신 것으로 인해 만족하셨다’는 뜻입니다. 마치 위대한 미술가가 자신이 완성한 걸작품을 앞에 두고 그윽히 바라보며, 흡족해하며 즐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자연만물을 그렇게 바라보시고 흡족해 하시며 만족해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안식’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만족하신 하나님은 ‘그 지으신 만물을 축복하셨다’는 뜻이 ‘하나님의 안식’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2:3)고 창세기 2장에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다 완성하셨을 뿐 아니라, 그 만드신 만물을 보고 심히 기뻐하셨고, 또한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을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안식’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첫번째 명령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주신 10계명 중 <제 4계명>으로 주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20:8)는 명령입니다. 사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후로 그동안 진정한 안식이 한번도 없었는가?’라는 점을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 대답은 ‘그 안식은 확실하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였을까요? 그 때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일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가 시작되어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만드시고 행복의 동산 ‘에덴동산’에서 이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을 누렸던 기간일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당시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고 사랑의 고백을 했고, 또한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2:25)고 성경은 두사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도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죄와 죽음이 그들 뿐 아니라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류 위에 왕노릇 (지배)함으로 더 이상 참된 안식은 인간이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안식일 준수 명령>과 방금 말씀드린 <첫 인간부부가 누렸던 안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을 짧게 말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첫 인간 부부가 누렸던 안식 안식은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안식일의 그 개념과 가치 그리고 그 적용을 다 이해하자면 수천년 동안 유대인들이 지켜 왔던 <안식일 규례>와 더불어, 오늘날 여러 기독교 교단별로 이 안식일에 대한 교리적 해석을 다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이 시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수 있을 것인가?’를 묵상함으로써, 우리 성도들이 소망하는 진정한 안식을 이뤄 나갈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참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가다 보면, 주께서 유독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부딪힌 한가지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범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주님은 안식일에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병자들 고치셨고,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셨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안식일을 범했다’고 고소 (송사)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이런 유대인들의 질책을 잘 아시면서도 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어가는 자들을 살려주신 것일까요? 주님은 자신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막.3:4)라고 질문 (도전)하셨고, 그들은 한 마디로 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질문을 통해 ‘왜 자신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쳐주시는 지?’를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명하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뜻이요,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안식일에도 그 생명사역을 행하심으로 주님 자신도 일한다고 밝히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이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의 근본정신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안식일 준수는 “날짜의 문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첫번째로 말씀드린 왜‘예수님의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행위’를 통해 주님은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님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례에서 보듯이, 이들은 <멜라카>라 불리는 ‘39개 항목’의 ‘안식일에 금하는 조항을 규정’하여 지극히 행위자체를 강력하게 제한하였지만, 그것이 안식의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안식일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날이며,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거룩으로 살아가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앞서 말씀드린데로 단순하게 ‘행위’를 제한하는 날이 아니듯이, 또한 날짜를 제한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지켰던 안식일, 즉 ‘금요일 해 지면서부터 토요일 해 질때까지’를 안식일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날짜 (요일)적인 개념에서 안식일을 이해하는 그 중심엔 단순히 어느 한날만을 주장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이 아님을 사도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2:16)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구약의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절기 (연례행사), 월삭 (월례행사), 그리고 안식일 (주간행사)로 인하여 사람들이 그들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새 생명의 삶’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새 생명의 삶은 더 이상 옛 율법에 구속을 받지 않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적지 않은 유대인 거짓교사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이 있다’고 거짓되게 율법준수를 구원의 조건인 양 가르쳤듯이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느냐 아니냐로 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는 ‘날짜를 지키라 말라’가 핵심이 아니라, 그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안식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제 칠일이라는 날짜에 얽매여서 더욱 중요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이라는 중심이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세번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크게 3가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민족을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정착시킴으로 안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두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v.3)고 하나님은 준엄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출애굽 2세대도 약속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바로 앞 절인 <8절>에서 출애굽 2세대를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지도자 여호수아가 정착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v.8)라고. 왜일까요? 이들도 조상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두번째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릴 안식일 것입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끝부분, ‘21~22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가 누리게 될 참된 안식과 은혜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감동적으로 예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계.21:3-4)라고. 마지막 주의 나라에서 누릴 안식인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세번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저는 결론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안식임을 믿습니다. 바로 ‘오늘’ 현재에 믿음을 통하여 누리는 안식입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4장에서 히브리서기자는 우리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순종함을 통하여’라고 그는 <4-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자는 매우 중요한 단어 하나를 우리 성도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입니다.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하였으니” (v.7)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 말씀의 핵심은 ‘믿음이 역사하는 것은 ‘어제’(과거)도 아니요 ‘내일’ (미래)도 아니요 오직 ‘오늘’(현재)을 통해 작동하고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여러분이 어떻게 될지, 혹은 제가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도 보장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확히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고 우리를 은혜로 부르시고 안식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때임을 믿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을 놓치지 않고 믿음을 통해 순종으로 나아가는 그의 자녀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 안식의 평화와 만족을 성령을 통해 물 붓듯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는 안식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지치고 피곤한 여러분과 저를 향해, 그리고 모든 그분의 무거운 짐진 양들을 향해 이렇게 복된 평화와 안식의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라고.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 성령을 통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참된 영혼의 쉼을 얻고 얻게 됨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날마다 나아가 그의 가벼운 짐을 지고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을 배워 나감으로써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줄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주님만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