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6, 2024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8:9~10
Service Type: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6-16-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8:9~10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 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attack and harm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설교 요약]

            오늘 본문을 포함한 <사도행전 18장>은 사도 바울이 <행. 15장>에서 시작하여 <제 2차 선교여행>을 이제 마무리하는 장입니다.

먼저 <사도행전18장>은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행. 18:1-2). 이렇게 사도는 장차 평생의 신실한 동역자가 될 뿐 아니라, 또한 생업 (천막제작)이 서로 같음으로 이들 부부와 대부분의 시간을 복음사역과 텐트 만드는 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힘과 위로를 받았으리라 짐작됩니다.

한편, ‘고린도’는 지정학적으로 볼때, 지중해의 동서를,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기에 활발한 교역으로 많은 부를 누렸고, 종교적으로는 ‘아프로디테’ (=비너스) 여신을 숭배하는 명목으로 신전에 소속된 천여명의 여인들이 매춘행위를 행하는 심히 타락한 도성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도와 동역자들의 고린도 사역이 계속되는데, 주께 어느날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v.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이 잠잠하지 말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바울의 내면이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있기 때문” 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전. 2:3)라고 그가 고백함을 봅니다. 주님은 그의 수 없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지치고 낙심된 심령을 아시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성중에 주의 백성이 많기 때문” 입니다: 또한 사도가 잠잠하지 말고, 입을 열어 말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린도 성중에 주께서 택하신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v.10b)

셋째, “주께서 바울과 함께하시기 때문” 입니다: 또한 바울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님 자신이 언제나 그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v.10a) 이 사실은 모든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되는 말씀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곳 아틀란타,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의 백성, 곧 수없이 많은 청년들과 한인들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복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구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본문을 포함한 <사도행전 18장>은 사도 바울이 <행. 15장>에서 시작한 <제 2차 선교여행>을 이제 마무리하는 장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 방문한 선교지역에서 거둔 놀라운 복음의 성과를 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났고, 죽었던 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고린도’에서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v.9)라고. 혹시 우리는 주님의 복음 전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주의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마냥 잠잠하고 복음전하길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 가운데,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의 영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잠잠하지 않고, 주의 생명이 복음을 입을 열어 담대하게 증거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의 제자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동안 사도 바울과 일행들이 행했던 <2차선교여행>의 경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모교회인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보냄을 받아 출발하여 ‘길리기아’와 ‘더베’를 지나 ‘루스드라’에 도착해서 그의 영적 아들이라 불리는 디모데를 팀에 합류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드로아’ (??)에서 배타고 마게도니아의 으뜸가는 성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 ‘귀신 들렸던 여종’ 그리고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만나 그들을 자유케 하고, 다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지난 주에 살펴본데로 사도는 혼자 배타고 이성과 학문의 도시 ‘아테네’에 가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이것까지가 <사도행전 15~17장>끝까지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을 포함한 <행.18장>은 바울의 남은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사역인데, 그것은 <고린도>에서 행한 전도 사역으로서, 18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 18:1-2)라고. 우리가 지난 주 시간에 살펴본데로, 사도는 에덴의 중심되는 광장인 <아레오바고>에 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힘있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정하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증거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 ‘고린도’시에 당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시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고린도사람처럼 놀지마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그 당시 고린도인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먼저 <고린도>는 그리스 중남부의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위치하며,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0km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기원전 3,000년 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신약성경이 쓰여질 로마가 지배할 당시는 대략 60만명의 많은 인구가 살았고, 부와 방탕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한편, 고린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서 상업과 물질적 풍요를 누린 도시였음으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고, 특히 종교적으로 ‘여신, 아프로디테 (=비너스)를 숭배하였고, 그 여신을 모신 신전에는 천여명의 여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종교의 명목으로 ‘매춘행위’를 행하는 심한 타락을 행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린도는 앞에서 ‘빌립보’나 ‘아테네’처럼 많은 인구들이 모여 사는 큰 도시이자, 물질적 풍요함을 누린 도시임과 동시에, 그 어느 곳보다도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타락한 대표적인 도시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아굴라’ 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본도지역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원래 로마에서 살았는데 이곳 고린도로 이주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2절>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로마제국의 ‘글라우디오 황제’가 칙령을 내려 ‘모든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경학자들이 주목하는 몇가지 사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주님은 얼마나 신실하게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며 그를 위로하시고 힘주시는지를 ‘아굴라’부부를 그곳에서 만나게 하신 사건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도>를 행하면서 ‘매우 두려워하고 떨었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고전. 2:3).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보다 먼저 한발 앞서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이라는 사건을 사용하셔서 신실한 ‘아굴라’부부를 그곳에 먼저 보내셔서 사역을 준비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3절>에 보면, 이들 부부와 사도는 모두 생업이 같았는데, 곧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갔던 사람들’ (tent makers)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는 믿음만 좋은 부부일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바울과 같은 생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음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공동으로 전도사역을 하든지 혹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행하며 서로를 위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말 그대로의 공동체를 이루는 귀한 삶을 나누었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들 아굴라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게되는 그야말로 ‘주께서 미리 맺어 주신 복된 만남’을 누리게 되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마게도냐지역 ‘베뢰아’교회에 남아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와서 함께 합류하게 되는데, 이부분을 <5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v.5)라고. 여기서 저자 누가는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 부터 오고 나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성경책, ‘개역한글’번역본에는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고, <표준새번역>에는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표준새번역>에서 “~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라고 번역하는 이유는, 실라와 디모데 두사람이 마게도냐로부터 올 때, 그곳 성도들로부터 선교헌금을 함께 가져왔음으로, 바울이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여 전도에 힘을 쓸 수 있었다’는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바울이 복음전도에 전념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있게 밝혔을 때, 항상 그래왔듯이 유대인들이 그를 대적하고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v.6)고 선언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에 거하면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사람과 수많은 고린도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침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 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v.9)라고.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신앙 생활하며 때로 지치고 낙심된다 할찌라도 왜 자포자기하고 실패해서는 안되는 것인지를 주님은 밝혀 주셨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왜 바울이 잠잠하지 말고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바울의 내면이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있기 때문” 입니다: 제가 바울의 ‘아굴라’부부와의 만남에서 주님의 예비하신 은혜가 얼마나 깊고 사려 깊은 것인지를 말씀드리면서, 그 주님의 베푸신 은혜는 사도가 ‘고린도 사역’당시 그의 내면상태가 두려움이 있었고, 영적으로 낙심 가운데 약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울이 고린도성도들에게 첫번째 편지를 시작하며 이렇게 고백했던 말씀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전. 2:3)라고. 사실 바울의 <2차전도여행>의 마지막지역에 해당하는 ‘고린도지역’은 사도가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선택한 지역이지만, 그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복음을 들고 나가기 힘들고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본데로, 고린도는 육체적으로 타락되었고, 영적으로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있는 세상주관자 악한 영에 강력하게 사로잡힌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만큼 어쩌면 사도는 그는 인간적으로 자신의 연약과 무기력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주님은 그에게 사랑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v.9b)라고. 주님은 그의 충성된 제자의 두려움과 낙심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고, 그를 둘러싼 거대한 고린도 도성의 강력한 파우워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신실한 아굴라 부부를 미리 준비시켜 주실 뿐 아니라, 때를 따라 돕는 손길을 통하여 그의 충성된 제자가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넘어지지 않도록 그의 선하신 손길로 든든하게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중에 주의 백성이 많기 때문” 입니다: (v.10b) 또한 사도가 잠잠하지 말고, 입을 열어 말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린도 성중에 주께서 택하신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v.10b) 주님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고린도성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관자의 눈으로 이 성을 바라보시기에 전혀 다른 마음으로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은 놀랍게도 주님의 택하신 수많은 그의 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의인 10명’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성처럼, 이 고린도 도성도 복음이 씨도 먹히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치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는 ‘이미 추수할 때가 다된 수많은 영혼, 희어져 추수를 기다리는 구원받을 영혼’이 수없이 구원의 복음에 목말라 한다고 주님은 바울의 어두운 영을 일깨워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영적 금광맥과도 같은 고린도를 포기해서는 안되고, 눈에 보이는 악한 세력에 기죽어서도 안되며 오직 복음의 능력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과 열심으로 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라고 격려하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주께서 그분의 생명책에 기록하신 택하신 영혼을 향한 주의 사랑과 열심 가운데 생명의 복음을 담대히 입을 열어 전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주께서 바울과 함께하시기 때문” 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주께서 바울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 자신이 언제나 그의 사랑하는 제자, 바울과 동행할 것임을 신실하게 약속하신다는 점일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v.10a)라고. 이 사실은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함께 하심이 정확히 다윗이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깊은 신뢰와 사랑 가운데 그분의 양으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릴수 있었던 핵심이라 믿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다윗의 이와 같이 사망의 음침한 모든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 떨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주님의 제자들이 두려워 떨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하게 입을 열어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임을 확신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이순간, 그리고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 가운데 동행하시고, 반드시 승리케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니까?  그리하여 그분과 함께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신 말씀은 바로 여러분과 저를 향한 사랑과 위로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또한 확신과 능력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라고. 날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높은 학문과 세상의 강력한 힘과 거대한 도성 앞에 두려움에  떨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떨지 말고 두려워 말고, 맞서 싸우며 담대히 말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왜냐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며, 또한 우리가 있는 이 도성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한 주님의 백성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다운타운 미드타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청년들과 한인들, 곧 주님의 택한 백성들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