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를 믿으라” (Believe In The Lord Jesus)
“주 예수를 믿으라”
(Believe In The Lord Jesus)
5-26-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6:30~32
30 저희를 데리고 가서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He then brought them out and aske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Then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and to all the others in his house.)
[설교 요약]
지난 시간 <사도행전 16장>에서 사도 바울일행은 ‘빌립보’에서 전도사역을 시작하면서 믿음의 여인 루디아에게 구원을 전했고, 귀신들린 한 여종을 자유케 했던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악령이 쫓겨남으로 더 이상 점괘로 많은 돈을 벌수 없게 된 여종의 주인들이 분노에 차서 바울과 실라를 장터로 끌로 가서, 관리들에게 거짓되게 고발하여 그들은 죄도 정치 않고 두사람을 심하게 매질하고 깊은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v.19~24)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기쁨의 찬양을 했고, 그 소리를 모든 죄수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들을 감옥으로 보내신 이유일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더니,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였던 쇠고랑이 벗겨졌던 것입니다 (v.26). 그리고 소리에 놀라 깬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할 줄 알고’ 자결하려 했으나, 바울이 그를 만류했으며, 그는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 꿇고 이렇게 구했던 것입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v.30)라고. 그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v.31)고 이들은 복음의 핵심을 전했습니다. 이리하여 간수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뀌게 된 간수의 삶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와 그의 집이 구원 받았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주의 말씀을 그와 그 집에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v.32), 그 말씀을 듣고 믿었고, 침례로 순종함 (v.33)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긍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밤 그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v.33)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돌봐 주는 긍휼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셋째, “구원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제 간수는 그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을 믿게 됨으로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v.34). 이 기쁨은 바로 예수께서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통해 주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 (요.4:14)이요, ‘넘치는 생수의 강’ (요.7:38)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이 구원을 누리고,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약속하신 성령충만의 기쁨과 자족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만약 누군가가 ‘성경의 말씀 중에 어떻게 우리 인간이 구원받게 되는지를 짧고 분명하게 밝히는 말씀’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그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고 싶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가두었던 가두었던 감옥의 간수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v.30)라고 소리쳐 묻었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v.31)라고 그들은 대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말은 기독교 2천년 선교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주님의 제자들의 핵심되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요, 그러할 때,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복음의 진리로 인해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함을 받고, 이 진리와 권능의 복음을 듣고 나가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시간 함께 살펴본대로 <사도행전 16장>을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일행은 ‘마게도냐’지역의 으뜸가는 성의 하나였던 ‘빌립보’에서 본격적인 전도사역을 하고자 하던 차에 믿음의 여인 루디아에게 구원의 복음으로 자유케 할 뿐 아니라,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났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따라다니며 여러날 소리치며 사도 바울을 심히 괴롭혔는데, 사도는 악한 영을 쫓아냄으로 그녀를 자유케 했던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행. 16:16~18). 그러나 여종에게서 귀신 곧 ‘악령이 쫓겨남으로 더 이상 점으로 많은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깨닫은 주인들이 분노하여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시장터에 있는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그들을 모함하고 고소하여 옷을 찢고 매질하여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v.19~23).
이렇게 하여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히게 되었고, 상관들이 간수에게 명하여 이들을 깊은 감옥에 가두고, 그 발을 쇠고랑에 채워 든든히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6장24절>에서 시작하여 오늘 본문을 포함한 <40절>끝절까지 이어지는 ‘바울과 실라의 투옥사건’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옥에서 먼저 벌어진 바울과 실라의 놀라운 모습을 저자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v.25) 여기서 제가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바울과 실라의 감옥에서의 엄청난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무엇일까요?
이들이 오늘 하루 도데체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오늘 하루동안 ‘길 가다가 돈을 주었습니까?’ ‘복권이 당첨되었습니까?’ 아니면 ‘하던 일이 잘 풀리고, 만사형통하는 기쁘고 즐거운 하루였습니까?’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울은 악한 영에 사로잡혀 비참하게 살아가던 한 여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해 줬지만, 돌아온 것은 칭찬과 감사가 아니라, 그녀로 인해 더 이상 돈벌이 할 수 없게 된 악한 주인들로부터 분노에 찬 모함과 그로 인해 끌려가 옷이 찢기고, 매질당하는 억울하고 참기 힘든 고통의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기뻐 찬양하게 만든 것일까요? 무엇이 잘못한 것도 없이 억울하게 매질당하고 옥에 갇히는 험한 하루를 지나오면서, 오히려 바울과 실라를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올려 드리게 했던 것일까요?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다윗왕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노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황급하게 피신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 유다 광야를 헤매며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시편 63편>입니다. 그는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 하나이다” (시. 63:1)고 시편을 시작합니다. 그는 이 시편에서 자신의 손으로 키운 자식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서글프고 절망적인 상황을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갈라진 땅’으로 비유하며 그 고통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의 평생에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또한 영원히 함께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렇게 기쁨에 겨워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 63:3,4)라고. 다윗은 자신의 지난 평생의 삶 가운데 신실한 그분의 날개그늘 아래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환난날에 오히려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고난 가운데 다윗의 역설적인 모습이 정확히 바울과 실라가 이 핍박의 절정인 한 밤중에 오히려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한 이유라고 믿습니다. 그 어떤 상황과 형편에도 동행하실 뿐 아니라, 힘주시며 마침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이들은 신뢰했기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하심을 통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찬양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아름답고 우렁찬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소리가 어둡고 침울한 감옥 안에 올려 퍼졌을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26절>내용입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이진지라” (v.26)라고. 갑작스런 큰 지진과 함께 감옥의 터가 진동하고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였던 모든 쇠고랑이 벗겨지는 기적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큰 지진으로 인하여 잠자던 간수가 잠에서 깨어 황급히 감옥에 뛰어가 봤을 때, 굳게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자 합니다. “간수가 ~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v.27)이라고.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서는 죄수가 탈옥하게 될 때 그를 지키지 못한 벌로써 지키던 자가 사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었음으로 간수는 순간 죄수들이 도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아예 사형당하기 전에 먼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그를 향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v.28)고 소리쳤고, 이 말을 들은 간수가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뛰어들어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이들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v.30)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간수가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이 ‘어떻게 이런 기적이 벌어졌느냐?’ ‘누가 이 기적을 일으켰느냐?’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곧 바로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는 이런 기적은 결코 어쩌다 우연히 된 것도 아니요, 그 어떤 인간 (피조물)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오직 ‘신적 존재’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요, 이 신은 바로 바울과 실라가 믿는 신이요, 그 신이 옥문을 열고 그들의 발의 쇠고랑을 벗겼음을 본능적으로 확신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때 바울과 실라는 주저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v.31)라고. 구원은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약에서 약속한 구원의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바울과 실라는 이 간수 뿐 아니라, 그 집에 있는 모든 가족과 권속들에게도 이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주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를 이 간수의 변화되는 모습 속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확인해 나가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뀌게 된 간수의 삶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와 그의 집이 구원 받았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v.31)라고 했을 때, 뜸 들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즉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 행동한 바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그가 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v.32) 사도 바울과 실라가 주의 말씀을 전했을 때, 간수와 그의 온 집이 함께 그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간수는 진정으로 구원받기 원했고, 더 나아가 자신 뿐 아니라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받기 원했기에 그들을 함께 모아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는 것입니다. 간수와 그 집안 모든 사람은 함께 주의 말씀을 들었고,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함께 침례 받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확증했습니다 (v.33). 그리하여 이방인으로서 첫 구원받은 로마군대 백부장 고넬료와 마찬가지로 간수도,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가족까지도 구원으로 인도한 진정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둘째, “긍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간수는 또한 바울과 실라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난 이후에 긍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밤 그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v.33)라고 <33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간수는 이처럼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사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귀신들렸던 여종의 주인들이 빌립보의 로마 관리들에게 바울과 실라를 거짓되게 고발했을 때, 그들은 죄도 정하지 않고 많이 매질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경우는, 매질을 할 때 최고가 ‘40에 하나 감한 매’ 곧 ‘39대’를 때렸는데, 왜냐하면 그 이상으로 매질한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기에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그 매의 숫자까지도 제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법에서는 매질이 무제한으로 허용된 것입니다. <23절>에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라고 한 것으로 볼 때, 40대보다 훨씬 더욱 많은 매를 맞은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마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와 살이 뒤엉킨 참혹한 상태의 죄수들이 감옥의 벽에 피곤한 몸을 기댈 수도 없도록 두 발을 쇠고랑에 채워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킨 것이 그 당시 로마 감옥에서 죄수를 다루는 잔인한 방식이었습니다. 불과 몇시간 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피투성이가 된 바울과 실라를 당연하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았던 간수는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되자 양심이 살아나고 자신과 로마 당국의 죄수를 다루는 잔인성에 대해 눈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갈 때, 긍휼과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셋째, “구원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신앙생활 오래한 성도들 중에서 ‘요즘 삶이 재미가 없어요’ ‘사는게 무의미하고 공허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저는 이런 말을 듣게 될 때 마음에 깊은 우려를 품게 됩니다. 저의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24시간, 365일’ 언제나 마음먹은 데로 늘 만사형통한 날만 있어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삶’은 주께서 도전하신 것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요, ‘댓가지불’ 해야 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이 말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찌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됨으로서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감내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크리스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결코 ‘꽃길’도 ‘운수대통’의 삶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의 힘듦이 결코 성도를 낙심케 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음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신 것은 ‘기쁨과 만족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명절 끝날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요.7:38)고 선언하셨고, 수가성 여인에게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4:14a)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주님의 기쁨’ (요.15:11) 곧 <주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 부어 주시는 참된 기쁨>을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구원받은 간수는 기쁨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v.34)라고.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특권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수도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과 일행은 <사도행전 16장>에서 ‘제2차 선교여행지’의 하나인 빌립보성에서 3명의 이방인들에게 주의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주장사 루디아>와 <귀신 들렸던 여종> 그리고 오늘 본문의 <간수>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위치도 매우 달랐고, 성별과 나이와 삶의 조건이 너무도 달랐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될 때, 이들의 삶이 뿌리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지금까지 가두었던 세상의 가치와 헛된 가르침, 그리고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의 권세에서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자유케 했던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복음중의 복음의 말씀으로 인하여,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온 가족이 구원함을 받고, 더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복되게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