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5, 2024

“죽은 자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24:14,15,21
Service Type:

“죽은 자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8-25-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24:14,15,21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설교 요약]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변사 ‘더둘로’를 앞세워 총독 벨릭스에게 사도 바울을 거짓되게 고소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더둘로의 그런 거짓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지를 통해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중심 진리는 ‘부활신앙’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자의 부활이요,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기초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이 주장하는 <부활신앙>일까요? 그것은

  • 신실한 유대 조상들의 정통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백세되어 나은 아들 이삭을 드리고자 했는지를, 히브리서기자는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줄로” (히. 11:19) 그가 믿었다고 해석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욥’ (욥.19:25-26)과 ‘다니엘’ (단.12:2)과 신실한 성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진정한 근거는 나사렛 예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 마지막 날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셨듯이 우리 모두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 (요. 5:29)로 마지막 날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실한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헛된 유혹과 악한 영과 맞서 싸워 이기고, 마침내 마지막 날 생명의 면류관을 의로운 심판자 되신 우리 주님께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만약 누군가가 성도 여러분에게 ‘당신이 믿는 믿음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사도행전 24장>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 지난 주에 이어서 사도 바울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고소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며, 진술한 자기고백 (=신앙고백) 속에서 사도 바울 자신 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무엇을 믿어야 될 것인가의 핵심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일 것입니다. 또한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 성도에게 적용될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 각자가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고, 어떤 믿음을 추구하는지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믿음의 닻을 견고히 내려서, 어떤 세상의 유혹과 공격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승리하고 마지막 날 주님께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복된 제자들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변사 ‘더둘로’를 앞세워 총독 벨릭스에게 사도 바울을 거짓말과 헛된 주장을 근거로 고소했습니다. 우리는 그 잘못된 고소내용과 그 내용 속에 있는 역설적인 진실이 무엇인지를 지난 시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사도 바울이 더둘로의 그런 거짓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지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고 나서, 이번엔 총독이 바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는 내용이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 하나이다” (v.10)라고. 사도는 더둘로처럼 거짓된 아부성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의 사건을 벨릭스 총독이 맡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벨릭스는 여러 해 (???) 동안 유대지역을 다스렸을 뿐 아니라, 그의 아내 드루실라가 유대인으로써 (v.24) 여러가지 점에서 그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v.22).

그리고 나서, 바울은 이어지는 <11~21절>에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자신에 대한 모함과 법적 소송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난 <21장>에서 이미 살펴본데로 사도는 <3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오순절에 맞춰서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여러 해 만에 자기민족을 구제할 것과 헌물을 가지고 와서 성전에 가서 율법의 요구대로 결례를 행하고, 오순절의 정한 기간동안 결례를 다 치루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성전에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가 성전을 더럽혔다고 고소한 사건에 대한 사도는 지금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v.17~20). 그리고 저도 여러 번 이 사건에 대해 설명 드린바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 고소사건을 언급하면서 오순절기간, 7일간은 율법의 결례 (요구)를 다 행함으로 공중 앞에서 모든 시간을 다 사용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유대인들이 고소한 사건이 벌이지고는 그날로는 로마군인들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가 곧 바로 이곳 ‘가이사랴’에 와서 ‘헤롯궁’에 오늘까지 총 5일간 구류되어 있었던 것을 합쳐서 총 12일간이 지난 것이 고작 전부인데, ‘제가 어떻게 무리를 소요시키고, 그들을 선동했다는 것입니까?’라고 바울은 총독과 자신을 고발한 유대지도자들 앞에서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못 되었고,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소송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v11~13)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이어지는 그의 진술에서 진실하고도 정확하게 자신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거짓 없이 이렇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는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v.14-15) 여기서 사도가 진술하는 방법은 흥미로운데, 그는 지금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자신과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나사렛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너희가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나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가 도리어 신실한 이스라엘 조상들이 믿어왔던 온전한 하나님을 향한 <정통신앙>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는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어(왔다!!)”라고 말입니다. 과연 ‘누가 이단이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계승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모두 믿고 지키는 신앙에 있어서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아왔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동일한 신앙을 지켜 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지도자들은 이런 자신과 공동체를 향해 ‘이단’이라고 폄하하니 과연 누가 이단이냐 라고 사도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유대지도자들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도 바울과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이 왜 이스라엘 신실한 조상들의 신앙을 올바로 계승한 것이요, 참된 이스라엘의 <정통신앙>인지를 주장하는 사도 바울의 오늘 변론의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골자는 <부활>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자의 부활이요,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근거는 이미 앞서 말씀 드린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기초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유대인들이 자신을 포함한 예수 믿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고소하는데 대해서, 그것이 아님을 변호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부활에 대한 믿음(사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이 바울이 주장하는 <부활신앙>일까요? 그것은 첫째, 부활사상이 곧 진실한 유대인성도들의 정통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실제적인 조상으로 인정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를 들어 부활신앙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런 ‘부활사상’을 믿는 것이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핵심이요, 또 모든 구약의 성도의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골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아브라함은 어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데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는 것인데, 그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삭을 바칠 수 있었는지 하는 그의 믿음의 핵심이자, 그 순종의 근거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아브라함)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19)라고. 아브라함은 만약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아들 이삭을 죽여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왜냐하면,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허락하여 주신 약속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고,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선하신 하나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만약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를 반드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조상 아브라함의 이런 부활신앙 뿐 아니라, 모든 신실한 구약의 성도들이 믿었던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부활신앙’이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잠자는 모든 성도들이 마지막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시 맞이하게 될 ‘의인과 악인의 부활’신앙임을 사도는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그리스도의 날 곧 ‘주의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던 성도들 뿐 아니라 악한 자들이 함께 일어나 의인과 악인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단지 기독교의 핵심적 가르침일 뿐 아니라,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중심 되는 가르침이요, 진실한 유대인 성도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소망하던 바라고 바울은 역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을 관통하는 올바른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어떤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있는지? 한두가지만 본다면, <욥>은 먼 훗날 맞이하게 될 부활을 이렇게 소망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5-26)라고. 또한 <다니엘>은 그의 예언을 마무리하면서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신앙은 신실한 유대인성도들의 ‘정통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 총독은 여기서 이런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부활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았기 때문에, 천부장이 내려오면 재판을 판결할 것이라고 구실을 대며 판결을 지연하는 것입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벨릭스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들의)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행. 23:29)라고 보고했듯이, 바울에게서 그 어떤 로마에 대한 불법행위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대법을 잘 아는 벨릭스로서는 바울이 정통적인 유대인의 종교적 기준에서도 그 어떤 율법을 범한 일이 없음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의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고 천부장 루시아가 올때까지 기다린다는 구실로 판결을 미루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대로 재판하면 명백히 바울을 무죄로 석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평상시 자신에게 뇌물을 바친)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될 것이 뻔하기에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은근슬쩍 바울의 재판을 피해 넘어 갔던 것입니다.

둘째로, ‘나사렛 예수’는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그가 메시야임을 알 수 있느냐구요? 사도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은지 3일만의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분이 메시야임을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나사렛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감사하게도 신약성경의 첫번째 4가지 복음서가 그 사실을 너무도 우리에게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장사한지 사흘만에 그가 어떻게 잠 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셔서 돌무덤을 여시고 살아나셨는 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 여러분들이 잘 아는데로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죽은 시신을 장례를 치루기까지 요셉의 돌무덤에 보관하였는데, 안식 후 첫날, 곧 장사한지 3일째 되는 날, 아직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주님을 장사하고자 무덤에 왔을 때, 그 돌문은 열려 있었고, 부활하신 주께서 그녀들 앞에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마. 28:10)라고. 이처럼 주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주의 사도들과 심지어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고(고전. 15:6),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행. 1:9). 물론 이런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것인가는 우리 각자가 몫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사도행전 2장>을 살펴보았을 때, 사도 베드로가 ‘다윗’의 시편을 인용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 임이니라” (시. 16:8~10) 여기서 베드로는 ‘다윗이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했고, 그가 음부에 버림을 당치 않고, 육체의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을 예언했다고 영적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나사렛 예수님은 유대종교의 그 수많은 거짓 메시야의 한명으로써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이단 교주가 아니라, 성경에서 다윗과 여러 선지자가 오시리라 예언한 거룩하신 자로서 썩음을 당치 아니하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한편 이런 부활사상에 대해 사도가 강조하는 세번째는, 마지막 날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그를 믿지 않고 악을 행했던 자들 또한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모두 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인 것입니다. 이 부활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를 마무리해 가면서, 이렇게 마지막날 우리가 맞이하게 될 놀라운 현상을 예언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라고.

마지막 날 우리 성도들에게서 일어날 부활사건에 대한 이런 바울의 예언은 이미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첫번째 편지 <6장>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전. 6:14)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그의 성도들 또한 그의 권능의 손으로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아니, 주를 믿는 성도들 뿐 아니라 믿지 않던 불신자들까지 모두 마지막 날 나팔 소리와 함께 모두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예수님께서 자신이 장차 이 땅에 심판에 주로 다시 오실 때 벌어질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과 일치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주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우리 성도를 권면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라고. 따라서 우리 앞에서는 반드시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주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기에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온 힘을 다해 오늘 하루를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믿음오로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의로우신 주님 앞에서 ‘의인과 악인의 심판’을 여러분은 진정 기다리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10:28)라고.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실한 믿음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세상의 모든 헛된 유혹과 악한 영의 세력과 용맹하게 맞서 싸워 이기고, 지금 이 시간에서부터 성령의 능력과 충만한 기쁨을 소유하여 마침내 마지막 날 생명의 면류관을 의로운 심판자 되신 우리 주님께로 부터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