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7, 2021

“하나님의 뜻으로” (By The Will Of God)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1:1~2
Service Type:

“하나님의 뜻으로”

(By The Will Of God)

11-7-21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1:1~2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to the saints in Ephesus, the faithful in Christ Jesus:)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설교 요약]

            오늘부터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에베소서>를 강해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울의 <에베소서>는 ‘영광스럽고 영적 충만한 말씀’이요, ‘바울신학의 면류관이요 절정이다’라고 지적합니다.

바울의 대표적인 서신서, 로마서가 ‘복음을 가장 순전하고 명백하게 진술한 책’이라면, 에베소서는 ‘복음을 가장 위대하고 엄위롭게 표현한 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의 위대함과 영광스러움을 힘있게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 강해설교> 첫 시간은 ‘에베소서’를 큰 그림에서 살펴보는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썼는지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서론’

  • 기록연대: AD 62년
  • 기록목적: 에베소 교회의 구성원인 유대인과 이방인 크리스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의 몸으로 하나되는 교회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 주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해 통일된 만물

먼저 사도는 이 위대한 서신서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엡. 1:1)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도의 인생을 돌아볼 때 그 말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열심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핍박했던 자 (빌. 3:5~6)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울은 예수 믿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다고 사도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아포슬교회 속한 성도 한사람 한사람도 동일하게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의 지체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주 안에서 한 몸으로 연결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부터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에베소서>를 강해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사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에서 <6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울의 서신서들 가운데서도 <에베소서>는 가장 영광스럽고 영적 충만의 절정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에베소서는 어떤 신학자의 표현과 같이 “바울신학의 면류관이요 절정이다”라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 메시지의 진수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완벽한 개요”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점에 대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 얼마나 놀라운 말 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 라고 에베소서의 위대성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신학자나 뛰어난 성경학자가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보다 내 스스로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가치를 발견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비유로 <밭에 감추인 보화>, 즉 ‘생명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느냐를 도전하신 것같이 ‘수많은 농부가 밭을 경작하지만, 그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는 자’ (마. 13:44)는 극히 소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만약 그가 그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발견했다면, 그는 필경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에베소서>강해 말씀을 통해 그 밭에 감춰진 보화, 즉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바로 복음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온전히 발견해 나감으로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하늘과 땅에 충만한 그분의 유업을 깨닫고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에베소서>를 “바울신학의 면류관이요 절정이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혹시 여러분 중에 “목사님, 바울신학의 면류관은 로마서가 아닌가요!? 로마서를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고 부르지 않나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제가 <에베소서>를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요, 복음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로마서만큼 ‘복음을 순전하고 명백하게 진술한 책’은 없다는 데는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성도들이 동의하듯이 저 또한 공감합니다. 거기에 비해, 에베소서<복음을 가장 위대하고 엄위롭게 표현한 서신서>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의 정의와 핵심’을 가장 명료하게 밝혔다면, 이제 에베소에 와서는 그 복음의 위대함과 영광스러움을 힘있게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서신서 보다 더 ‘숭엄’한 것은 성경전체에서 더 없다 라고 많은 성경학자는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에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시작하고자 계획했던 시기는 <올해 초>나 늦어도 <가을 학기>를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런 계획이 연기되었습니다. 되돌아 볼 때 그 가장 큰 이유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분량이 얼마 안되는 짧은 서신서의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 봤을 때 이 말씀을 보면 볼수록 그 깊이와 넓이를 알수 없는 <말씀의 비밀과 영광스러움>에 제가 압도 되었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제 스스로 이 위대한 말씀을 과연 잘 깨닫고 또한 얼마나 잘 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이 성령충만한 계시의 말씀을 감동과 은혜 가운데 성도들과 나눌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강해설교를 시작하기를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에 맡기고 시작합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실 때 어두운 저의 눈을 열어 주셔서 말씀의 비밀을 깨닫아 담대히 전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실 때 듣는 자들의 마음과 귀를 열어 주셔서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각자의 마음 판에 깊이 새겨지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깨닫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참된 결단과 삶의 놀라운 변화가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소망합니다.

오늘 <에베소서 강해설교> 첫 시간에는 먼저 <총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베소서를 큰 그림에서 살펴보는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썼는지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주제’는 무엇이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는 이 위대한 서신서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 1:1~2)라고. 사도는 성도들에게 인사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나) 바울은” (v.1a)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표현은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그의 인생을 조금만 찬찬히 되돌아본다면 ‘과연 그렇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가 다메섹 언덕을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아니했다면,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부활하신 주께서 그를 특별한 은혜로 찾아와 주시지 않으셨다면, 바울은 어쩌면 가장 예수 믿기 힘든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성장배경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유대인으로서 난지 8일만에 할례받고, 더욱이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고 배척했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것입니다 (빌.3:5~6). 바로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날도 예수 믿는 자를 일망타진하고자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 갔던 것입니다. 바울은 과거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열심’ ()으로 똘똘 뭉쳐진 유대 종교지도자의 한사람으로써 지독하게 ‘나사렛 예수’와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얼마나 미워하고 핍박했던 지를 나중에 고백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요, 그분을 향한 올바른 열심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그분의 충성된 제자로 드라마틱하게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사도는 지금 그 이유를 이렇게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나) 바울은”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으로’ 밖에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나타나심으로 인함이 아니고서는 바울의 회심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골수 바리새인에서 골수 예수쟁이로 그 급격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가 그의 대부분의 서신서를 시작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과 택하심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었음을 그는 성도들에게 밝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의 시작이요 구원의 시작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의 시작임을 사도는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 고백의 의미는 사도 바울 한사람 뿐 만이 아니라, 이 땅에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교회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게 시작과 끝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예배에 참석한 아포슬교회 성도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사도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에베소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것을 우리 각자는 가슴에 담고, 이제 에베소서를 요약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2년동안 감금생활 할 당시 (61~63년)에서 <AD 62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기록목적>은 에베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크리스챤이 하나되기를 바랬던 사도의 심정에서 기인되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연합’을 이루어 가야한다고 사도는 격려하면서, 이 연합을 이루기 위해선 각자의 과거 얼마나 죄악 가운데 소망없는 존재였는지를 영적으로 깨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없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시고 서로의 가로막힌 담을 허셔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깨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영적 성숙됨을 통해 육신과 악한 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함께 하나되어 승리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성도의 성화와 믿음의 열매는 성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있겠지만, 사도는 특히 <에베소서>에서 교회 공동체의 차원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에베소서의 기록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함께 연결된 그분의 몸된 존재가 우리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 관계없이 서로의 막힌 담을 헐고 주안에서 하나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가족관계, 즉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적용되고, 더 나아가서 그 당시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 그리고 요즘과 같은 사회에서는 직장이나 비즈니스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에베소서의 <주제>를 살펴보고, 이 서신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통일되어진 만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의 몸으로 하나로 연결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적인 비밀로서 세상 뿐만 아니라 구약성도들에게 까지도 감추어졌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더욱 빛나고 생명으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학교와 직장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를 주로 믿는 거듭난 성도들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한 몸으로 자라나고 거룩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사도가 에베소성도들에게 도전하고 격려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엡. 2장>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그분의 몸된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축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라고. 바라기는 이 에베소 말씀을 묵상하고 함께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감추어졌던 그 복음의 비밀을 더욱 온전히 깨닫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로 연결된 한몸이 되어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나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는 성도 됨과 동시에 아포슬 교회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