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부어진 하나님 사랑” (Pouring God’s Love Into Our Hearts)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 사랑”
(Pouring God’s Love Into Our Hearts)
6-28-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5:5~8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설교 요약]
이제 사도는 성도의 ‘소망’은 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심히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 (v.5)고 사도는 놀랍게 선언합니다.
순간 순간 흔들리는 우리 마음과 연약한 믿음에 우리 구원이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 곧 거룩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심으로, 우리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 ‘우리 마음’ (our hearts)은: ‘우리의 인격과 됨됨이’를 뜻하며,
- ‘부은 바 되었다’(pour out)는: ‘흘러 넘치다’ (shed abroad)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수처럼 부어 주시는 사건’은 바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시작된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요엘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행. 2:17)라고 예언한 성령충만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도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한량없이 부어 주심으로 우리의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구원을 성취시켜 가신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v.8)라고.
저는 아직까지도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온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 성령을 통해 저의 마음에, 그리고 성도 여러분 마음에 부어진 바 됨으로 우리 구원이 마침내 완성됨을 믿습니다 (빌. 1:6; 롬. 8:16).
이런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환난 가운데서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부끄럽지 않는 성령의 충만한 복된 삶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가 <로마서5장>을 점점 더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동안 <5장>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으로 변화된 우리 성도의 신분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곧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하는 존재’가 되었고, 이로써 ‘믿음으로 서 있는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존재’이며, ‘장차 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구원받은 성도는 또한 알고 삶으로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성도의 ‘소망’은 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심히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 (v.5)고 사도는 놀랍게 선언합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바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런 엄청난 사랑을 받은 바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함께 묵상해 나가며, 그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좀더 깨닫고 누려 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먼저 이해할 것은 사도가 <5장>을 진술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제가 앞서 밝힌 것처럼, 사도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3가지 특권>을 먼저 <1~2절>에서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3가지 구원의 안전성> (The three securities of salvation)입니다. 여기서 ‘안정성’ (security)라는 의미는 ‘상실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한번 받은 구원의 은혜와 특권은 취소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첫째 <과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 곧 ‘하나님과 평화하게 된 신분의 안정성’이요, 둘째 <현재> ‘믿음으로 서 있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안전성’이요, 셋째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의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난 시간에 <3~4절>에서 묵상한 것처럼,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v.3~4)라고 사도는 계속해서 우리의 존재를 밝혀 나갑니다.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분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3~4절>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실제 삶의 어려운 난제, 곧 ‘환난과 고통’의 삶 때문에 도리어 즐거워하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은 ‘환난이 닥쳐올 때 회피하거나 주저 앉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환난과 맞서 인내함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임’을 증명하는 연단을 낳고, 그 연단은 앞서 살펴본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소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변화된 신분은 신분 자체의 변화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가장 큰 장애물인 ‘환난’이 왔을 때 인내함을 통해, 연단으로 구원받은 믿음을 증명하면서 영광의 소망을 더욱 확고히 다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걸맞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살아 있고 승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왜 로마서가 이토록 수많은 성도들에게 깊은 영감과 도전을 주는 진리의 복음서인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제가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5장>을 시작하면서, <1~2절>에서 ‘성도의 변화된 신분’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누리게 된 특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3~4절>에서 ‘그 뿐 아니라, 그 자녀된 신분에 걸맞게 환난 때문에 즐거워함으로 인내하고, 연단으로 나아가며 구원받은 믿음을 증명함으로 소망’을 이루었다고 사도는 진술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사도는 <5장>의 <1~4절>로 이어지는 말씀의 긴 호흡을 통해 자신이 정말 강조하고자 하는 진리를 이어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v.5)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사도가 오늘 본문 바로 앞 절 <4절>에서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v.4)라고 밝히고 나서, <5절>을 이렇게 이어갑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v.5)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더 이해하기 쉽게 두절을 연결해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우리는 앎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넘치도록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도가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사도는 <5장>을 시작하면서 선언한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변화된 신분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가 주장하듯이 그 ‘의롭다 함’을 입은 신분의 안전성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이제 결론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우리가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이 영광의 소망이 결코 헛된 것처럼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사도는 주장합니다. 순간 순간 흔들리는 우리 마음과 연약한 믿음에 우리 구원이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 곧 거룩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심으로, 우리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주전 설교에서 함께 나누었듯이,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시작하며, 우리 구원의 확실성을 이렇게 분명히 밝혔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라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친히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심을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통해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5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했을 때, ‘우리 마음’ (our hearts)은 어떤 마음일까요? 여기서 ‘마음’은 단순한 우리의 ‘생각’이나 ‘이해력이나 지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의 ‘됨됨이’이자 ‘인격’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받게 되었다면, 이제 하나님의 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성도의 마음, 곧 ‘인격과 존재’ 전체에 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했을 때, ‘붓다’ (pour out)는 말은 그 의미상 ‘흘러 넘치다’ (shed abroad)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물을 양동이에 붓는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부은 물이 양동이에 가득 차 흘러 넘치는 정도’가 여기서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흘러 넘친다는 것은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님의 폭포수 같은 부어 주심을 통해 불과 같은 환난과 시련의 순간을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환난 가운데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령님의 넘치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 첫번째 사건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주의 제자들이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합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했을 때, 불의 혀 같은 성령강림의 역사를 그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행. 2:1~14). 제자들은 성령 충만하여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시작했고, 이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와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새 술을 먹었다’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베드로 사도가 일어나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한 강림사건’의 성취된 사건이라고 선언합니다.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글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행. 2:17)라고 성령의 충만한 부어 주심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충만한 ‘새 언약’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놓치지 않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모호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림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우리 성도의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열쇠가 된다고 저는 믿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저를 포함한 오늘날 우리 프로테스탄트 성도들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은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랑’을 논리적 추론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지적 추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중심에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는 성령에 의해 경험하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이드죤스>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슬프게도 20세기에 있어서 이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처럼 무시당하는 진리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저도 여러분도 ‘성령을 통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프지만, 풍성히 누리지 못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직접적인 성령의 역사’ 대신에 ‘잘못된 성령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비성경적인 ‘성령운동’과 소위 ‘믿음주의’ (believism)이라 불리는 신앙운동을 통해 “믿음으로 그것을 가지라(소유하라)”는 식의 모호하 주장을 하는 크리스챤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8)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반동안 동고동락한 수제자 베드로뿐 만 아니라, 예수님을 한번도 보지 못한 성도들도 동일하게 그분을 사랑하고 깊은 인격적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베드로는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단순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을 추측하고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 이들 한사람 한사람이 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과 사귐을 경험하고 누림에서 오는 확신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선언하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성경적 지식을 통해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한가지 사실을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과 나누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5장>을 통해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우리 존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사도는 선언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저를, 그리고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그 영광과 권능이 무궁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그 아들의 피로 인하여 우리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그의 아들과 딸로 삼아 주실만큼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어떤 뭉클한 감정과 빚진 마음을 갖고자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그 사랑과 마음을 우리는 좀 더 믿음으로 이해해 가고, 누려 가고 있는지를 우리 각자는 겸손히 돌아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v.8)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5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성도의 ‘영광된 신분’을 오늘 말씀에 이르기까지 놀랍게 선언하고 나서 이제 <11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하느니라” (v. 11)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과 화목된 존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넘치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아버지와 실제적인 평화를 누리고, 그분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바리기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안식을 누리고, 헛된 육신과 악한 영과 싸워 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