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6, 2025

“우리의 싸움” (For Our Wrestle)

Preacher:
Series: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6:12
Service Type:

“우리의 싸움”

(For Our Wrestle)

10-26-25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6:12

12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설교 요약]

하나님은 그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에게 ‘평화하고 사랑으로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2:18).  그러나 또한 오늘 말씀처럼 분명히 ‘맞서 싸워라’고 도전하십니다.

만약 우리 믿는 자가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할 존재’가 있다면, 그는 누구이며 왜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그 존재는 오늘 본문의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모든 악의 세력을 주관하는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결론부분에 속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가장 위대하고 엄위롭게 밝힌 책>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시는 복음의 비밀을 밝힙니다. 바로 ‘창세전에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를 택하심으로 (엡. 1:4),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의 몸된 교회공동체로 자라나게 하시고, 장차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통일되게 하시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엡. 1:10).

이것이 에베소서의 주제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아들과 딸로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요, 그럼으로 사도가 ‘왜 성도들은 영적 전쟁에서 주와 함께 승리해야 하는지?’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첫째, “왜 싸워야 할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께서 사단이 지배하는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구원하여 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골. 1:13). 그럼으로 첫 범죄자요 거짓의 아비인 사단 마귀와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결국 마귀를 자신의 주인이요, 아비로 삼게 되는 것임을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요. 8:41~44).

둘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자신들을 죽이고자 뒤좇아오는 바로의 군대로 인해 두려워 아우성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 14:13)고 선포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 (삼상. 17:47)이기에 하나님은 친히 그분의 능력으로 싸우는 그의 자녀를 승리로 이끄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진리의 허리띠>, <정의의 가슴막이>,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완전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적 무기로 완전무장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로 ~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주의 용사로 부름 받은 서로를 위해 기도함’ (엡. 6:18)으로서 하나되어 대장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신구약 성경 대부분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에게 ‘만나는 사람들과 평화하고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라’고 격려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성도들에게 촉구한 말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8)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우리 성도가 분명히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고 오늘 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에 속한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이라고 사도는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할 때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피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누가 적군인지, 누가 아군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세상 전쟁이든 영적 전쟁이든 관계없이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진정한 그리스도의 충성되고 강한 군사가 되어, ‘누가 연합해야 할 아군이요, 그리고 누가 싸워 무찔러야 할 적군인지’를 분별함으로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주와 함께 싸워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에베소서>말씀에 대해서 수년간 강해설교를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눈 바 있습니다. 흔히 많은 신학자들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총평하며, 그의 <로마서>가 ‘복음을 가장 순전하고 명백하게 진술한 책’이라고 평가했는가 하면, <에베소서>는 ‘복음을 가장 위대하고 엄위롭게 표현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길지 않은 편지를 통해 에베소교회의 주된 구성원인 ‘유대인’과 ‘이방인’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의 몸으로 서로 연결되고 하나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사랑과 진리가운데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택하사 그의 몸으로 하나되게 하실 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가는 교회로 자라남으로 장차 모든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고자 함 (엡. 1:9~10)>이라고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부르시고 자녀 삼으신 구원의 비밀을 이 편지를 통해 영광스럽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주님으로 인해 하나로 연결된 우리 성도들의 권세와 영광이 얼마나 복되고 탁월한 것인지를 영적 진리로써 밝히고 나서, 이제 오늘 본문말씀에서 마지막 도전과 당부의 말씀을 남기고 편지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대부분의 서신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그는 결론부분에 가서 성도들에게 ‘분명한 결단과 행동’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도 마지막 ‘6장’에서 오늘 말씀을 포함하여 <10절에서 24절>끝절까지의 결론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이 성도를 향한 격려와 도전을 마지막 결론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지를 저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먼저 그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합리성 있게 설명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자신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를 영적으로 충분히 밝히고 나서 마지막 결론에서 도전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앞서도 잠시 에베소서의 주제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사도 바울은 먼저 전반부 <1~3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곧,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에베소교회에서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매우 이질적인 두 그룹, 곧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 사이를 갈라 놓았던 장벽을 무너트리고 주님을 머리로 하나로 연결되고 함께 하나님의 성전된 교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후반부 <4~6장>에서는 <성도의 ‘합당한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인데,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따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서로 연결되고 사랑으로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다. 또한 <’빛의 자녀’로서 행하라>는 것인데, 이는 ‘지혜 있는 자 같이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 가족관계 (부부간 & 부모 자식 간에), 종과 상전 (직장/사회생활)에서의 관계에서 피차 복종함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말씀에서 보듯이, 편지를 마무리하며 ‘우리 성도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은 마귀요, 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반드시 입어야 한다’고 사도는 성도를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할 수만 있으면 평화하라’고 했던 사도가 이제 ‘에베소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며, 적극적으로 ‘상대와 맞서 싸우라’고 매우 전투적인 용어로 도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의 논점이 한번은 ‘평화’를 외치고, 또 한번은 ‘전투’를 외치는 서로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도가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말과 주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까? 물론 그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사도는 이 편지뿐 아니라, 편지들 곧 서신서들에서 일관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하나로 맺어진 성도들과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이웃과도 평화와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관계를 이웃과 더욱 더 깊이 맺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이 적과 싸워 이겨 나감으로써’ 진정한 평화는 가능하다고 사도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도의 논점을 뒷받침하는 한가지 좋은 예가 ‘스위스’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구 중립국’ 스위스는 어느 나라와도 정치적 군사적인 동맹을 맺지 않고 모든 나라와 평화의 관계를 갖겠다고 선언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스위스’가 이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 어떤 세계 강대국 못지 않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고대 로마제국의 격언과 같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지혜로운 조언을 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약육강식’이라는 비정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스위스는 지속적인 평화를 원했기에, 그 평화를 위협하는 그 어떤 미래의 적들을 무찌르고자 ‘평화 가운데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라면, 바로 이 논리가 사도가 오늘 말씀에서 성도들을 향해 주장하는 영적 논리와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늘 깨어 전쟁을 준비하고, 또한 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저는 성도 여러분이 이와 같이 영적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기 원한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왜 싸워야 할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약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리고 싸워야 할 동기와 목적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결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왜 우리는 이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가?’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짧지만 핵심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시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의 보혈의 피로써 실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셔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백성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어 그분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음을 확신한다면, 사단 마귀는 우리의 적이요, 분명히 싸워 나가야 할 대상인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이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단 마귀를 고발하시면서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떄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고 밝히십니다.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첫 반역자요, 모든 거짓의 아비요,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 몰아가는 원흉이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단은 지금도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로써 C.S 루이스의 표현데로 한다면 ‘하나님나라의 총사령관’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분께 속한 모든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가 경계하듯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9)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지금 교회의 몇몇 지도자나 복음선교의 최일선에서 싸우는 몇 명의 선교자들에게 이런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입니다. 이 악한 사단 마귀는 심지어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실 때 조차 찾아와서 우리 주님을 세번씩 유혹한 것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여러분과 저야 오죽 하겠습니까?! 지금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의 군대와 사단 마귀에 속한 군대는 치열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살아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고통이나 전쟁은 없고 평화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은 적이 누군지를 깨닫지 못하고 안일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혀서,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있는 위험한 영적상태라고 저는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지금은 치열한 전투현장 한가운데 여러분과 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할 적은 ‘사단 마귀’라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가 분명히 밝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v. 12)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피와 살을 가진 우리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처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실수와 연약함은 주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용서하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울 대상은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상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악한 영들이요, 결국 이 모든 악한 영들을 조정하고 장악하는 우두머리인 <사단 마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둘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사단 마귀임을 이제 분명히 알았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이 전쟁은 우리 개인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싸우시는 전쟁’임을 우리가 깨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애굽의 바로 왕의 손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백만명에 달하는 수많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며 홍해 바다 앞 가까이 왔을 때, 바로 왕은 하나님의 열가지 재앙 때문에 할 수 없이 억지로 그 백성들을 놓아주었지만, 또 다시 마음을 강팍케 하고 그 백성들을 죽이고자 자신의 정예군대를 이끌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이 상황이 <출애굽기 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창과 칼을 들고 기마병을 앞세워 달려오고 있고, 앞은 깊은 ‘홍해’바다가 놓여 있음으로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가운데서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하고 아우성치며 이제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출. 14:11)라고 말입니다. 이때 모세는 이런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고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행하시는 크신 구원의 능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셔서 수많은 이스라엘백성을 모두 건너가도록 구원하시고, 쫓아오는 바울의 정예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키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의 모든 영적 전쟁의 주인 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이 홍해물이 갈라지는 사건 뿐 아니라, 이보다 더 광대하고 더 절망적인 순간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워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들이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두려움과 나약한 마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7~8)고 그를 권면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 버리고, 담대함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도전하고 격려합니다.

여기서 사도가 도전하는 그 핵심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권세와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으라는 것>입니다. 왜요? 그것은 ‘이 땅에서 디모데와 우리 모든 성도가 치룰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요, 하나님의 전쟁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권능으로 싸워 승리하시는 전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이렇게 영적 아들, 디모데를 이렇게 사랑으로 힘있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네가 복음을 위하여 싸우는 이 싸움, 곧 영적 전쟁은 너 개인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요,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이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시는 전쟁인 것이다. 그럼으로 너는 복음 때문에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자랑스러워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복음과 함께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과 제가 만약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요, 하나님께서 그의 영 성령과 더불어 나보다 먼저 앞서 가셔서 싸우시고 반드시 승리할 전쟁임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적들의 많음과 상황의 불리함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고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담대하게 주와 함께 싸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 입기를 구하지만, 안타깝게도 삶 속에서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떤 한 병사가 총한자루 없이 그리고 철모 그리고 방탄복 없이 맨몸으로 치열한 전투에 나가서 승리하겠다는 것과 꼭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에베소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감하며 ‘우리 성도가 어떻게 이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소상하게 밝히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 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0~11)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일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 <13절>이후에 이어지는 <14절>에서 <2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바로 <진리의 허리띠>와 <정의의 가슴막이>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늘 깨어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인 서로를 위한 기도와 간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진리와 정의와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성령의 능력’으로 싸우지 않고는 결코 막강하고 교활한 사단 마귀의 힘과 계략을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씀을 정리하며 우리 주님의 용맹한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한가지 우리가 놓치지 않고자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연합’입니다. 저는 오늘말씀을 시작하면서 ‘세상 전쟁이든, 영적 전쟁이든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피아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가 무찔러야 할 적인지, 누가 함께 연합해야 할 아군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난주 함께 나누었듯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당하시기 전날 밤 주와 선생이 되셔서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겨 주시고, 또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고 서로의 실수와 연약을 품어주고 용납해 주라고 명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대적할 상대가 아니요, 함께 품어주고 세워주고, 함께 연합하여 우리의 적 사단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할 주님의 한 지체요 운명공동체인 주님의 몸된 군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함께 연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우리가 함께 연합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성도 사이를 이간질하고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갈라지게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무기는 기도와 간구와 성령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원수와 싸우되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고 성도들에게 기도와 간구와 연합을 당부하며 사도는 편지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적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적은 여러분에 대해 공순하지 못한 그 버르장머리 없는 어떤 후배나, 언제나 까칠하게 대하는 그 선배나 상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품어주고 세워줄 대상입니다. 그 적은 바로 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몸으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과 더불어 이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담대하게 승리하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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