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 2025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He Has Risen)

Preacher:
Series: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28:5~6
Service Type:

“그가 살아 나셨느니라”

(He Has Risen)

11-20-25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28:5~6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The angel said to the women, “Do not be afraid, for I know that you are looking for Jesus, who was crucified.)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He is not here; He has risen, just as He said. Come and see the place where He lay.”)

[설교 요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입니다. 저는 오늘 <마태복음 28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함께 묵상하며 소망과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무덤에 왔던 두 여인 곧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v. 5~6)고 말입니다.

사실 두 여인이 ‘안식 후 첫날’에 무덤에 찾아온 것 (마. 28:1)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죽은지 삼일째 되는 날에 장례’를 준비하고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봤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굴러 나가 있고, 거기 있던 천사가 두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v. 5-6).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무엇이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임이로다” (시. 16:10절)라고 장차 올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서 ‘거룩한 자로써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사건은 구약에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님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상징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v. 6)고 천사는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4~17)라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성도의 구원의 근거가 됨을 밝힙니다. 바로 주님은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고전. 15:20).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라고 <부활장>을 마무리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부활’의 실체성이 그분을 믿는 우리 성도의 진정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주의 영 성령을 통해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전문]

          “주께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입니다. 저는 오늘 이 기쁘고 승리에 가득찬 부활절 아침에 성도 여러분과 함께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함께 묵상하며 소망과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왔던 여인들에게 천사들은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v. 5~6)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부활사건에 담긴 참된 진리와 승리의 의미를 깨닫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태복음>의 마지막장, <28장>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주님의 시신이 안치된 돌 무덤에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죽으시고 난 후, 그의 시신을 유대 공회원이었던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요청하여 자신이 파놓은 새 무덤에 안치했고, 로마군인들이 큰 돌로 무덤을 막아 두고 지켰는데, 주께서 죽으신지 3일째 되는 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고자 무덤에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시신에 향신료를 몸에 발라 장례식을 예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 <2-4절>에서 ‘큰 지진이 나서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고, 그 형상은 마치 빛과 같이 빛났으며,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은 천사를 보고 무서워 떨며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는 첫번째 ‘생명의 부활사건’이 바로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이 무덤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실 때 그 큰 권능으로 땅이 심하게 흔들렸고, 하늘에서 빛같이 광채나는 천사가 내려와 무거운 돌을 굴렸기에, 무덤을 지켰던 경비병이 너무도 놀라 죽은 자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이해해야 할 것은, 먼저 <1절>에서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고 기록하고 나서, 앞서 설명 드린데로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무덤의 돌을 옮기는 사건’ 즉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벌어진 사건이 기록됨으로, 마치 시간 순서상으로 여인들이 무덤에 오고나서 이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볼 때는 <2~4절>의 큰 지진과 천사가 큰 돌을 굴리는 내용을 포함한 ‘예수님의 부활’이 먼저 발생하고 나서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1절>의 두 여인이 무덤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에서 시작하듯이 천사가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이후에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매튜헨리>와 여러 주석가들은 오늘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한 천사에 의해 무덤의 돌이 옮겨진 사건>이 있고나서, ‘그 천사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무덤에 않아서 그녀들을 기다렸고, “무서워 말라”고 그들을 안심시키고, 더욱이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v.6)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부활사건이 일어난 이후 천사들은 그녀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으로 그녀들을 삼고 주님이 다시 살아나신 그 기쁨의 놀라운 소식을 알리고, 주님의 시신이 누여졌던 돌무덤 안을 “와서 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는 사건을 묵상하며 예수의 부활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일까요?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시편 16편>말씀에서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임이로다” (시. 16:10절)라고 말입니다. 이 시편말씀을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있던 날, 불의 혀같이 임한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인 것을 밝히면서, 주께서 약속대로 성령충만한 역사를 허락하신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방금 읽은 <시편 16편>을 베드로는 언급하면서 ‘이 본문은 비록 다윗이 지었지만, 그 내용이 다윗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는 자)”는 다윗이 될 수 없다고 베드로는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당시 그들의 조상 다윗은 이미 죽어서 그의 무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데, “썩음을 당치 않는다”는 말이 다윗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시편 16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윗이 영에 충만하여 미리 예언한 것이요, 그럼으로 주께서 부활하셨음으로 그의 육체가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 2:29-31).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다가 3일만에 밖으로 나오는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예언하셨는데 (마. 12:39-31; 16:4)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았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구약의 예언들이 이와 같은 주님의 부활로써 그분이 진정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강력하게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상징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보듯이 천사는 주님의 시신을 염하고자 했던 여인들을 안심시키며,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v. 6)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천사는 지금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사건임을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잠시 나누었듯이 <독일 자유신학>의 거두라고 하는 ‘불트만’은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가 주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아리송하면서도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을 하지만, 그는 결국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성 (=역사성)을 부인하거나 ‘몸과 영의 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단지 ‘영으로 부활’했다는 등의 이단적 가르침이 기독교회사를 통해 무수히 나왔는데, 이런 잘못된 사상과 이단을 구분하는 가장 첫번째 기준은 ‘예수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자, 온전한 사람’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같은 상태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의 부활이 ‘상징이나 비유’도 아니요, 단지 ‘영으로만의 부활’이라는 그릇된 주장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함께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 가르침과 주장을 분별하는 매우 핵심적인 조건인 것입니다 (눅. 34:36~43/요일. 4:2).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장’이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4~17)라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성도에게 주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을 근거로 그를 믿는 우리 모든 성도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의 가져온 결과가 무엇이지를 ‘열매’로 결론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라고. 여기서 ‘예수님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주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가 그와 함께 부활, 곧 구원을 이루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주님의 부활이 가져오는 중요성은,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부활장 15장의 끝 절 <58절>에서 이렇게 주님의 부활사건을 자세하게 밝히는 그 ‘동기’를 밝히며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라고 말입니다. 이런 주의 부활이 얼마나 견고하고, 얼마나 능력과 권세를 가진 것인지를 알기에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기를 도전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핍박, 심지어 순교까지도 그들을 두려움과 염려로 몰아가거나 절망과 좌절에 빠트릴 수 없으며, 오로지 주님의 참된 부활의 능력과 권세를 통해 우리도 죄와 사망과 사단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부활절’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의 기독교의 명절입니까? 아니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주님의 부활사건은 어떤 의미입니까? 바라기는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와 능력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의 영, 성령과 함께 나의 한계와 절망과 좌절을 이기고 주와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