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의 기도” (Prayer Of Worship)
“경배의 기도”
(Prayer Of Worship)
5-18-25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에 이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주님의 가르쳐 주신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9절>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v.9) 그리고 <10절>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9-10)라고 경배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핵심은 단순한 ‘문구’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자세와 깨닫음’이라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깨닫고, 합당한 경배를 올려 드릴 때, 우리의 삶은 아버지의 진리와 은혜 안으로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경배의 기도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무엇이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경배의 기도’일까요?” 그것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은 기도의 ‘첫번째’ (first)요, ‘우선순위’ (priority)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랑’ (막.12:30)하는 것이요, ‘인간의 근본목적’ (the chief end of men)입니다.
둘째,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길’ 원한다면,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나라가 임하길’ 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이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핵심입니다.
셋째,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는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어떻게 임할 것인지?’의 내용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그분의 나라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이미 도래하였고, 주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찬양과 경배가 날마다 넘쳐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담대히 나아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주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첫 부분을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v.9)라는 가르침을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 얼마나 놀랍게도 그분의 자녀된 우리 크리스챤의 기도의 자세와 내용을 결정하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지난시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어떤 성도들은 아예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필요만을 아뢰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드리기는 하면서도 지극히 형식적으로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기도의 보화를 놓치는 어리석은 기도인지를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깨우쳐 계심을 저는 믿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주님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향한 기도가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9-10)라고. 점점 더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올바른 깨닫음을 통한 우리의 진정한 경배와 그 경배가 가져올 합당한 결과는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기도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이런 복된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점점 더 온전히 나아갈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계속해서 <주기도문>을 살펴 나감에 있어서 먼저 제가 한가지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기도문’을 마치 염불 외우듯 뜻 없이 반복하여 읊조리는 성도들이 있는데, 이렇게 ‘주기도문’을 단순히 암송하는 것이 전혀 무가치 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찌라도, 적어도 주께서 지금 가르쳐 주시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이런 기도문은 하나의 ‘기도의 골격/핵심요소’를 말씀하는 것이지, 이 기도문 자체를 영혼 없이 무한반복해서 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먼저 분명히 하고 계속해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억을 하시겠지만, 우리는 지난 시간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구신지를 아는만큼’ 그분을 영화롭고 거룩하게 해 드릴 수 있으며, 둘째 ‘아버지를 경외할 때’ 아버지는 그 이름에 합당한 높임을 받으시며, 셋째 ‘아버지의 거룩을 좇아 우리 또한 거룩을 행하는 만큼’ 그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결론 부분에서 우리가 이해했던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좇아 거룩을 행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는 우리의 노력이나 영적 열심 이전에 우리의 신분이 <거룩한 존재가 이미 되었기 때문> (히. 10:10-14)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그냥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처럼 거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서는 되돌아서면 없던 것처럼 살아가는 그런 외식적인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죄 씻음 받고, 그분의 대속제물 (=화목제물)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입양됨 (받아 들여짐)으로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음으로써, 우리 성도의 남은 삶의 목표는 이제 ‘거룩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확신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자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실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라고 로마교회 성도를 향해 도전한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런 엄청난 신분에 걸맞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사도는 성도들을 향해 도전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존재가 무엇이며, 우리의 남은 평생의 삶 동안 추구할 ‘거룩한 산제사의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며,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합당하게 경배 드리게 될 때, 우리는 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가 언제나 ‘첫째’가 되며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신지, 그분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이 얼마나 광대하고 위대하신지를 깨닫고 이해하는 만큼,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고, 이런 기도를 올려 드리는 만큼 계속되는 나 자신의 필요를 위한 <간구의 기도>도 더욱 권세 있고 합당하게 올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9-10)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을 향한 첫번째 ‘경배의 기도’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제 이어지는 <10절>말씀과 얼마나 깊은 영적 관계성 속에서 연결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거룩하심을 진실로 깨닫고, 그 거룩에 합당한 영광과 경배를 올려 드릴 때, 자연스럽게 그 거룩하심을 위하여 이제 어떻게 간구하고, 또한 어떻게 그 영광이 빛을 발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이어지는 경배의 기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10)고 말입니다. 그러면, 큰그림에서 주꼐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는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경배의 기도’일까요?” 그것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미 앞시간에 살펴볼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추구하고 힘쓰는 것은 단지 기도의 핵심일 뿐 아니라, 성도의 삶의 핵심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성경의 말씀을 모두 요약하고 간추리면,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신지를 이렇게 묻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막. 12:28) 라고. 그때 예수님이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주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29-31)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한편 이 사랑의 명령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진실은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첫번째 사랑’이 ‘자기 자신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언제나 결정짓는 근거가 되고, 기초가 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못한다면, 결코 여러분 자신을 올바로 사랑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서 이웃을 여러분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하고 온전한 사랑이 그 밖의 다른 모든 사랑을 포함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모든 성경 가운데 가장 우선되고 첫째가는 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나의 인생을 결정함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의 첫번째 질문과 대답이 나오는데, 그 첫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What is the chief end of men?) 이고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Me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거룩하고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기도와 삶 전체의 목적이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존재’ (창. 1:26) 곧 ‘하나님을 빼닮은 존재’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을 자신의 아들과 딸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거룩한 자녀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고전. 1:2). 그럼으로 여러분과 저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그 선한 계획을 세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엡. 1:4)를 깨닫으면 깨닫을수록 아버지의 그 선하심과 거룩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v. 9) 라고 말입니다.
둘째,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도’의 첫번째로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 <원인>이 된다면, 그 논리로 말미암아 <결과>로 연결되는 것이 이제 두번째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v.10a)라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만약 여러분과 제가 드리는 기도의 중심이, 그리고 기도의 우선순위가 언제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아버지의 온전한 통치와 다스림을 간절히 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바로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왕국’ (The Kingdom of God)입니다. 이곳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한 왕이 되셔서 그분에 속한 백성들을 공의와 자비로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어떤 곳인지는 구약성경의 여러 선지자들로부터 묘사되고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주제가 되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며 처음으로 외치신 말씀도 ‘천국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4:17)라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한마디로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온전히 회복하고 견고하게 건설하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소망하는 그분의 자녀들이라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분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그분의 온전하신 다스림이 이 땅에서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너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추구한다면, 이제 이렇게 기도해야만 한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경배하는 기도는 ‘그분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주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은 곧 앞에서 ‘첫째와 둘째기도’는 그 관계가 <원인>과 <결과>라고 한다면, ‘셋째기도’는 ‘둘째기도’가 어떤 내용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 10b)는 세번째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v.10a)라는 두번째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그분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지를 잘 이해하여 구체적으로 구하는 기도가 이 세번째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버지의 뜻입니까?’ 그것은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택한 자녀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회복하고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성경에서 밝히신 ‘아버지의 뜻’입니다.
또한 이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밤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시는 가운데 이렇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여 떄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주기로 예정된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고, 또한 아들에게 권세를 주셔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수많은 구원받은 천국시민들을 다스리게 하신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v.10)는 뜻입니다. 사실 이 <한절>속에는 성경속에서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하늘에서 벌어졌던 긴 이야기 (long story)가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바로 ‘하늘에서 악한 영 사단 마귀와 그에게 동조한 많은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군대 천사장 미가엘과 그에 속한 천군천사들 간에 큰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전쟁은 이미 하나님의 군대의 승리로 끝이 났고, 사단 마귀와 그 졸개들은 패배하여 하늘에서 좇겨 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에서는 그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땅은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데로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가 이 땅에서 왕 노릇하며 이 땅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구약의 수천년의 긴 시간을 통해 수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실 ‘구원자/메시아’를, 그 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C.S 루이스는 그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매우 흥미롭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루이스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적국과의 전쟁상황에서 우리 아군의 총사령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적군, 곧 사단 마귀와 그 졸개들에 의해 점령된 이 땅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서 적군 깊숙히 심장부로 혼자 잠입하여 들어가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단 마귀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하셨음을 흥미롭게 묘사하였습니다.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 아군의 총사령관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께 관련된 모든 내용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고 우리를 대속해 죽으심으로 마침내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도 힘 있게 도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들의 표현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but not yet’!!)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언젠가 예수께서 의로운 생명과 심판의 주가 되셔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이 땅은 진실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승패는 끝이 났고, 악한 영 사단 마귀는 이제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앎으로 (계. 12:12) 두루 돌아다니며 자신과 함께 멸망할 삼킬자를 찾는 것입니다 (벧전. 5:8).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속히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늘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며,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우는 사자같이 함께 멸망하고자 삼킬 자를 찾는 사단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9)는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예수님께서 오늘 가르쳐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가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 전체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은 ‘겟세마네 동산’의 마지막 기도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뜻(계획)을 내려 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삶은 언제나 아버지의 거룩과 영광 받으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셨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시고자 철저하게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결론은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아름다운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 하늘 아버지를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과 딸로서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은 언제나 ‘하늘 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경배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찬양과 경배가 날마다 넘쳐나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