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1, 2025

“임마누엘” (Emmanuel)

Preacher:
Series: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1:23
Service Type:

“임마누엘”

(Emmanuel)

12-21-25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1:23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which means, “God with us.”)

 

[설교 요약]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하려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 드리고, 그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성탄절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마태복음 1장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은 예언의 성취’라고 알려줍니다. 바로 오늘 말씀인데, 선지자 이사야가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말씀 (사. 7:14)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메시아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을 선언한지 700여년 후에 주의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구세주가 나실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뻐하며, 우리 성도들이 놓치지 않고 깨닫아야 할 성탄의 의미, 곧 무엇이 성탄절의 의미인지? 살펴봅니다. 그것은

첫째, “메시야 탄생의 성취”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대략 300여번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는데, 그 중에서 그분의 혈통 (아브라함, 유다, 다윗의 후손), 탄생장소 (베들레헴)와 탄생관련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예언된 ‘메시아 탄생의 성취된 사건’임을 증명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고 선포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 사역의 중심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탄생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그리고 주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뜻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주의 천사는 선언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v. 23)라고. 동정녀에서 태어난 아기는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는 바로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성부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를 살리려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엎드려 경배 드리며, 주께서 머릿돌 되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함께 완성해 나가는 주의 몸된 공동체 되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심을 기뻐하고 기리는 ‘성탄주일’입니다. 이번주 목요일에 주님 나신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저는 또 한번의 연례행사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좀 더 분명히 깨닫는 시간되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올해 크리스마스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 드리고, 우리를 살리려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성탄절 되기를 원합니다.

신약성경의 첫번째 책이자, ‘사복음서’의 시작인 <마태복음>은 그 <1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v. 1)라고. 여기서 저자 마태는 1장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족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v. 2)라고, <2절>에서 출발하여 <16절>에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집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v. 16)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을 포함하여 <1장>의 후반부가 <18~25절>까지 이어지는데, 그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1장의 후반부 말씀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 나시기 전에 벌어진 상황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건을 마태는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장>에서도 그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저자 마태는 그 당시 유대인들 사회의 관습에 따라 젊은 남녀가 정식으로 결혼하여 살기 전에, 먼저 어린 나이에 부모들에 의해 ‘정혼’ (=약혼)시켜 부부로서 관계를 맺는 풍습이 있었던 사실을 통해 정혼한 요셉과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사람이 정혼한 상태였는데,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요셉이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유대 율법으로 판단해보자면, ‘아직 정식 부부로서 육체적 관계를 가지기 전에 임신하게 된 것’이기에 돌에 맞아 죽게 되는 형벌의 위기가 마리아에게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가만히 파혼코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약혼자 마리아에게 수치와 생명의 위기를 주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셉이 그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이렇게 명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v. 20~21)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주의 천사는 요셉에게 그와 정혼한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가까이한 일이 없는 동정녀로서,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아들을 잉태하였다는 사실과,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할 것을 명했는데, 그것은 ‘그가 장차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예수’ 혹은 ‘여호수아’라고 발음되는 이 이름의 뜻은 <야훼는 구원자시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는 요셉에게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을 통해 한 아들이 태어나게 될 것인데,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를 것을 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장차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곧 ‘구원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천사는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이런 일이 이뤄지게 된 것은 선지자들로 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인용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였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v. 23)라고. 천사가 인용한 이 글은 <선지자 이사야>의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여년전에 활동한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메시아에 대한 놀라운 예언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은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이제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1장>의 전체 내용인데, 특별히 <후반부>의 주제인 ‘예수님의 나심’에서 볼 때, 하나님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와 천사를 통해 오실 메시아의 2가지 이름을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지상에서 우리들처럼 고유한 이름으로 불렸던 실제 이름이라면, 두번째,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본질’ 혹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 이름의 뜻 안에 상징적으로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남은 시간, 우리 주님의 복된 성탄을 기뻐하며,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코자 이 땅에 오신 주님 탄생의 의미’ 곧 ‘성탄절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의미를 한마디로 하자면 <예언의 성취>일 것입니다. 바로 구약에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오실 메시야/구원자’에 대한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성탄절을 통해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뜻일까요? 다시 말해, 무엇이 성탄절의 의미일까요? 그것은

첫째, “메시야 탄생의 성취”입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구약성경에는 대략 300여번 정도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 예언의 말씀들 속에는 메시아의 탄생에 관련한 것과 그가 어떤 존재이며, 또한 어떤 일을 행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메시아의 출생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의 혈통’과 ‘태어난 장소’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묘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에서 출발하여 (창. 12장), 야곱의 12아들중 한명이던 유다의 후손 가운데 올 것이며 (창. 49장), 그리고 이새의 아들인 다윗왕의 후손으로 출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이사야 9장> 말씀인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 9:6~7)고 예언합니다. 또한 예레미야도 이렇게 다윗의 자손 중에서 날 구원자를 예언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렘. 23:5)라고.

그런가 하면, 메시아의 태어날 장소에 대해서는 성도 여러분도 잘 기억하시겠지만, <마태복음>에 기록된 동방박사가 찾아와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고자 했을 때 그 왕이 태어날 장소에 대해서 정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 경배하고자 <유대인의 왕>을 나신 곳을 물었을 때,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헤롯은 유대인학자들을 소집하여 다급히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물었고, 그들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는 <미가서> 말씀을 인용하며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임을 헤롯에게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출생에 관련한 예언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 언급했듯이 헤롯왕이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기뻐하고 그 왕에게 가서 경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자기의 정치적인 <정적>이 될 그 아기를 죽이고자 그 당시 베들레헴과 그 주변지역에 태어난 그 당시 두살부터 그 아래의 아이들을 모두 잔인하게 학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는 이것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포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임을 언급합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 2:18/렘. 31:15)라고 말입니다.

한편, 예수님 편에서 본다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나아와 경배 드리고 간 후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피해 있을 것을 지시했고, 그 부모들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그 지시를 따라 애굽으로 가서 헤롯이 몇 해 후에 충이 먹어 죽게 될 때까지 그곳에 피해 있다가, 천사가 그들을 다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호세아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사건인데, 즉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호. 11:1)는 말씀을 이룬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께서 나사렛동네에서 성장하여 사셨던 것을 언급하며,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 2:23)라고 언급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과 출생에 관련한 말씀들만 보더라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상세하게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실하게 과연 나사렛 예수님이 구원자 그리스도가 맞는지를 살펴보기 원한다면, 구약성경은 이처럼 부인할 수 없이 많은 그 예언의 증거들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2천여년 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메시아 탄생에 관한 예언의 성취’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사건인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이 꾼 놀랍고도 신비로운 꿈을 해석합니다. 먼저 느브갓네살왕이 꿈에 본 거대한 신상을 어떤 다듬지 않은 돌이 나타나 쳐서 완전히 가루로 만드는 꿈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단. 2장). 이처럼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을 마치 자신이 꾼 것처럼 묘사하고 나서, 이 꿈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 2:44)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600여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은 지상의 사역을 행하시며 이런 의미심장한 선언을 하십니다.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눅. 20:17~18) 지금 주님은 600년 전에 다니엘이 예언한 ‘그 다듬지 않은 돌’은 자신이요, 주께서 세상 나라들과 위정자들을 치심으로 모든 권세와 나라를 멸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주님은 자신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시고, 도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진정한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 받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됨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개를 통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주께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이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질문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히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나라’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 둘의 관계를 가장 영적으로 잘 표현한 것이 이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여년전에 이 땅에 처음 오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지만,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아직 그 나라의 완성은 미래에 남아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미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아직 미완성으로 진행되는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며 <현재진행형의 영적 긴장>상태에 살아가는 삶이라고 신학자는 표현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두 그분의 몸으로 함께 연결되어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신약에서 사도 바울과 여러 저자들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상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요,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된 <교회공동체>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셔서 완성시키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가까운 ‘영적 모형’이요, ‘영적 상징’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구체적으로 우리 아포슬 교회에 속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머리로 하나됨으로,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마찬가지로 주님을 머릿돌로 계속해서 함께 연결됨으로 거대한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날까지 여러분과 제가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일구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격려하고 도전하는 핵심임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7)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과 감사로 누려 나가고, 주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당부하신 충성된 ‘주의 제자’의 삶을 오직 성령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의와 평화와 즐거움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섬겨 나가며, 오직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건설해 나가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탄절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자 마태는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v. 20)고 명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이렇게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v. 23)고 말입니다. 마태는 지금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를 인용하면서 ‘왜 나사렛 예수는 그리스도인가?’를 영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인간의 눈으로는 얼마나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사실인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이사야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한 문장>의 예언 가운데 엄청난 <그리스도의 신비와 기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번째 신비’는 <출생의 신비>입니다. 바로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3대 거짓말이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과,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고, ‘처녀가 아이 뱄다’는 말이 있음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이처럼 ‘남자를 가까이 한일이 없는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거짓말 중에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처녀의 몸에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만약 메시아가 성령을 통해 동정녀의 몸에서 잉태되지 않고, 육체적으로 남자를 통해 아담의 죄를 유전 받아 태어나게 된다면,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없다’고 이 말씀은 암시적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장차 거룩하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만이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할 영적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신비는 <존재의 신비>입니다. 오실 메시아는 어떤 존재입니까?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그 아이는 세상 죄를 지고 갈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어린 양’일뿐 아니라, 그 이름이 <임마누엘>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이 무슨 뜻이라구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v. 23)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장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는 ‘본질상 하나님’이라는 뜻이요, 또한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는 <이사야 9장>에서 또 한번 장차 태어날 아기의 놀라운 본질을 선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꺠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고 말입니다. 그 태어날 아기는 ‘통치자’요, ‘놀라운 조언자’요, ‘평화의 왕’일뿐 아니라, 본질상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신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어둡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참된 생명의 빛이 되실 뿐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죄가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 낮고 낮은 땅에 여러분과 저를 살리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거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원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성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분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분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요? 이것이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미워한 이유일 것입니다. 2천여년 전에 대다수 유대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더 나아가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대인 대부분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고,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를 하늘을 쳐다보고 목놓아 기다린다는 사실은 저를 심히 놀랍고 헷갈리게 만듭니다. 어떻게 먼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먼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받은 민족이 이토록 영적인 무지와 어둠으로 그들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거부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여러가지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 중심에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들의 영적 교만과 무지 때문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용하셔서 모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 하심>이요, 이 수가 다 찼을 때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심히 깊고도 측량치 못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이 있기 때문임을 저는 믿습니다 (롬. 11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올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진정 우리를 살리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 다해 경배 드리고, 기쁨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성탄절 되기 원합니까? 비록 여러분과 저가 동방박사 세사람처럼 값비싼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준비하지는 못한다 할찌라도, 만약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의미, 곧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되신 주님을 머리로 함께 연합함으로 선하신 아버지의 뜻을 기쁨으로 추구해 나가고자 한다면, 이것이 주님께서 가장 귀하게 받으시는 성탄의 예물임을 저는 믿습니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를 온마음을 다해 추구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나라’를 함께 완성시켜 나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