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1, 2026

“그리스도의 종” (A Servant of Christ)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1:1~2
Service Type:

“그리스도의 종”

(A Servant of Christ)

1-11-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Paul, a 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to be an apostle and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로마서>의 서론에 이어, 오늘은 <1장1절>에서 로마서 '저자',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사도는, 젊은 날에는 '할례받은 이스라엘민족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래새인이요, 심지어 교회를 핍박하던 삶을 살았음’을 자랑했지만 (빌. 3:5~6),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함을 고백했고,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갈. 6:14).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바울의 의미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서의 원어인 ‘헬라어’로 ‘종’은 '둘로스' (δοῦλος) 로써, ‘노예’ (slave)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바 된 존재’이기에, 자신의 모든 생사여탈권이 오로지 그리스도께 있는 그분의 소유된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둘째,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 (요.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법적으로는 그의 소유된 ‘종/노예’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분께서 ‘친구삼아 주신 복된 존재’ 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께 속한 친구로써 그분과 함께 영광을 나누는 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 1)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구원하시고 (엡. 1:4~5),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종된 사도로 부름 받음에 언제나 감사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풍성한 영적 열매를 거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하신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자 ‘참된 친구’되어 충만한 생명의 열매 거두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로마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로마서를 전체적인 그림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로마서의 <저자>와 <수신자>, <작성연대>와 <주제>, 그리고 <기록목적>이 무엇인지를 개괄적인 내용으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질 (존재)를 확인해 나가고자 합니다. 먼저 사도는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1)라고 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위대한 복음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자기 자신을 누구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제가 한가지 질문하는 것은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처음보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합니까? 물론 우리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사실 (내심) 남들이 나를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하고, 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드러내고 싶은 방식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도 바울의 옛모습과 현재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지난주 ‘서론’시간에 잠깐 언급했지만, 사도 바울의 청년시절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과거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에서 과거 <청년 사울>이 추구했던 삶의 방식, 곧 그가 자랑스러워하고 남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는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점을 이렇게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빌. 3:5~6)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청년 사울이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고,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요! 그는 8일만에 할례 받은 이스라엘민족이요, 더욱이 ‘유다 지파’와 함께 이스라엘을 지킨 ‘베냐민 지파’에 속했으며, 율법준수를 생명처럼 지키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음을 자랑했습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하나님을 믿는 열심’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그가 나중에 고백했듯이, ‘하나님을 믿는 잘못된 열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회 공동체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인 줄 알고, 스스로 율법준수에 흠이 없는 의로운 자라고 자랑했던 그였습니다.

그러든 그가 다메섹 언덕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만나고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정말이지 기독교역사에서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극적으로 변화된 사람도 결코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는 이어지는 빌립보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내용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 3:7~8)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무엇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쉽게 말해서 ‘이제 내가 자랑하고 추구하는 것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가 그토록 자랑하고 가치있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제는 도리어 해롭게 여기고, 전혀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나사렛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됨’으로 과거에 그가 자랑했고 가치롭게 여겼던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지난 날의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 곧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이요 영적인 모든 것은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가 추구하고 가치롭게 여겼던 모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삶이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그가 다메섹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언제나 그분만이 자신이 추구할 참된 보물처럼 여김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갈. 6:14).

이제 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고백하고 소개하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바울의 의미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을 때, 이 단어는 영어로 ‘a servant of Jesus Christ’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원어인 헬라어로는 '둘로스'(δοῦλος)로써, 헬라어에서 볼 때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옛날에 신분이 낮은 사람인 ‘하인/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단어입니다. 여기서 ‘둘로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그 정확한 의미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있어서 그가 섬기는 주인의 소유, 곧 주인에 예속되어 그의 소유가 된 존재’로서 ‘노예’ (slave)가 오늘 본문에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둘루스’의 정확한 의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묘사한 의미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 곧 ‘그분의 노예’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생사여탈권이 온전히 주인되신 그리스도께 있음>을 바울이 고백한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둘로스’라고 여기는 자들의 구체적인 <3가지 권리포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는 <주인의식포기>요, 둘째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유권포기>이며, 셋째 “나는 내 마음데로 살수없다”는 <생존권포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종입니까? 저는 이 질문이 우리 모든 구언받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는 결코 영적 성숙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구속받은 성도가 되었다면, 주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첫째는 법적으로 <예수님의 소유된 관계>요, 둘째 영적으로는 <예수님께 속한 관계>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법적으로 예수님의 소유’요, ‘영적으로 그분께 속한 존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른 두번째 의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도가 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그 핵심은 ‘사도는 그 당시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와 같이 완전히 그리스도의 소유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법적 신분상태’라면, 이제 그의 ‘영적 신분상태’가 어떠한지를 또한 우리는 분명히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는 영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말이나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말이나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영적으로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성숙된 신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영적 개념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요, 그 관계는 곧 ‘그리스도께 속한 관계’라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좀더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도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곧 그분의 노예인 <둘로스>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한가지 성도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사도 바울은 왜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선언했는가?’하는 점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자신이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도 커서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어 ‘종’이요, 극단적으로 자신을 심지어 ‘노예’라고 비하했다고 여기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영적 진리는 사도 바울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소유인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 위에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는 그 보혈을 힘입어 죄씻음 받고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대시대에 주인이 돈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신의 소유로 삼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배로운 피 곧 그분의 생명을 우리를 대신해서 바치심으로 그 죄 없는 완전한 생명 값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속하셨다’ (redeem)>는 정확한 영적 의미입니다.

이점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셨음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는 그분의 소유임을 그 무엇보다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더 깊고 넓게 발전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과의 관계가 깊고 넓게 성숙되는 것을 한마디로 ‘그리스도께 속한 관계’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라는 뜻일까요?’ 주님은 어느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고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주께서 더 이상 주의 제자들을 단순히 ‘법적 관계’인 ‘주인과 종’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친구라 하겠다’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요, 사랑의 관계로 맺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의 비밀한 뜻을 알지 못하지만, 참된 친구는 서로의 생각과 깊은 비밀을 숨김없이 나누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자신의 뜻, 곧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모든 뜻과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밀을 알려 주실 뿐 아니라, 그 친구 삼으신 우리를 위해 주님은 그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사랑임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데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요. 15:13~14)라고. 이처럼 주님은 여러분과 저를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구속(救贖)된 자로 그의 소유로 삼으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인격적인 진정한 친구로 삼아 주셔서 자신의 모든 생각과 비밀을 숨김없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우리를 더 이상 그분의 종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존중받는 참된 친구로서 여러분과 저를 대하여 주시고, 이 복된 친구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그분의 소유된 종의 자격이 아니라, 그분과 생명과 사랑을 주고받는 친구의 자격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그토록 자랑하고 만족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7)고 고백했듯이, 주께서 그의 영 성령으로 더불어 거하시는 성도의 삶은 진정한 자유자의 축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들과 같이 인간을 억압하고 죄와 사망 아래 노예처럼 비참하게 가두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은 참된 주인이자 진정한 친구되셔서 그의 생명의 말씀과 그의 영 성령을 통해 약속하신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기쁨과 만족된 자유자의 복된 삶’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그토록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랑하고 기뻐하는 이유임을 저는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도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선언한 이유는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계획과 노력이 아니라,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요, 그분으로부터 택함 받았기 때문임’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 1) 사도는 자신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택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지금 ‘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는지?’를 짧고 강렬하게 주장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을 위한 그릇’ (행. 9:15)으로 주님께서 그를 택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것’에 대한 영적 의미와 은혜는 다음시간에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만, 오늘은 <택함 받음>의 근원적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언제 그를 택하셨을까요? 물론 그를 실제적으로 만나신 것은 ‘다메섹 언덕’ 에서였지만, 그를 택하신 것은 이미 그 이전, 그가 엄마 배속에서 태어나기도 전이라고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갈. 1:15~17)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깨닫게 된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밝히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종’이지만, 주께서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삼아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택하셔서 이방민족에 하나님의 복음을 기쁨과 확신으로 전하는 주님의 택한 그릇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 여러분과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소유요, 그분의 속한 존재가 된 것은, 주께서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그를 택하시고 은혜로 그를 부르심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가지 영적 적용은 이런 사도가 선포한 자신의 상태는 우리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모두 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사도가 택함 받은 때는 ‘어머니의 뱃속’인 듯이 그가 표현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모태에서 형성되기도 전에, 아니 천지만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는 동일하게 ‘세상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영적 진리를 밝혀주는 대표적인 말씀이 <에베소1장>에서 사도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라고.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그 기쁘신 뜻안에서 부르셔서 영광된 아들과 딸의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허락하심을 성령의 지혜와 충만으로 깨닫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지금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은 자신의 힘과 노력이전에, 이미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택하심으로써,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하신 은혜와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으로 허락하신 특권으로 인하여 가능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사도의 크나큰 은혜요 영광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여러분은 더 이상 여러분의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몸’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영적으로 이해하십니까? 이처럼 먼저 우리 성도가 언제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내가 주인인 것처럼 내 마음데로 주장해서는 안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을 따라 행해야 하는 그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원래관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이상 우리를 ‘종’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포도나무가지가 원 둥치에 붙어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 (요. 15:5)과 같이, 우리는 포도나무 원 둥치 되신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다시 말해 그분께 속해 있음으로 참된 인격과 사랑과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사도 바울이 그토록 풍성한 영적 열매를 거두었듯이 말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종’으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신실한 친구’가 되어 그분 안에서 아름답고 충만한 성령의 열매를 거두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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