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 2026

“율법의 정신” (The Spirit of The Law)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2:13~15
Service Type:

“율법의 정신”

(The Spirit of The Law)

3-22-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2:13~15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2장>을 내용을 함께 이해해 나가고자 합니다. <2장>의 중심내용은 ‘율법’입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요, 또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가 <2장>을 시작하면서 ‘남의 죄는 판단하면서, 자신도 동일한 죄를 범하는 자’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v.3)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언젠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선악간에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심판하실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도는 이점을 2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율법>이라고 ‘의로운 잣대’로 판단하심을 밝힙니다 (v.3~16).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율법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리’인 율법은 ‘<십계명>을 시작으로, 모든 구약의 말씀’입니다. <‘율법의 기준(원칙)’은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않는 자는 심판을 받게> (신. 27:26)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의 기능>입니다: 그 무엇보다 그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해 “죄를 깨닫게”하는 것 (시.14:3, 롬.3:20)입니다

셋째) <율법의 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그림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이후 1,400년이 지난 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롬.2:4).

한편,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양심>을 주셔서 ‘율법의 역할’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14~15절>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마음에 심어 주신 ‘양심’이 동일하게 ‘율법의 기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우리가 결코 다 행할수 없는 율법의 요구(원칙)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그의 영 성령을 통해 사랑함으로써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서로 <사랑함으로 율법을 완성> (롬.13:10)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가 지난시간 <로마서2장>을 시작하면서 함께 묵상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에 속한 죄에 대해서 자신은 마치 무관한 것처럼 사도의 말에 맞장구치며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모순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남을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v.1)고 남을 비판하는 자들의 모순을 날카롭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2장>을 통해 사도가 그의 치밀한 영적 논리를 통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무엇이 율법의 정신인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율법이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요,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율법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영적이해”는 사도 바울 당시의 성도들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성과 믿음의 근거가 됨을 저는 믿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도는 ‘남은 판단하면서도, 자신은 동일한 죄를 범하는 사람’의 모순을 지적함으로 <2장>을 시작했는데, 큰 그림에서 볼 때 이런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판단’은 무엇인가를 밝혀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판단’은 어떻게 임하는지를 짐작케 하는 첫 문장이 <3절>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v.3)라고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5절>에서도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v.5)라고 하나님의 ‘진노의 날’ 즉 ‘그의 아들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실 날’에 고집과 회개치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엄중한 진노를 받게 될 자들의 운명에 대해 사도는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로마서 2장>의 주제를 이해하자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서 ‘2장’의 핵심은 ‘무엇이 율법의 정신인가?’이라고 말했는데, 이처럼 2장의 주제와 핵심내용을 함께 연결해 보면, 좀더 뚜렷한 ‘2장’의 중심 메세지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어떻게 임하는 것인지를 살펴볼 때, 그분의 진리되신 율법을 따라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2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의 기준인 <율법>이 모든 민족, 곧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임하는 것인지?’를 철저하게 영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율법’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임하게 되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는지?”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여러분과 잠깐 생각해보기 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율법이 주어졌는가?’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언제 처음 주어졌는가 입니다. 제가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문화된 그분의 계명을 처음으로 주신 것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출애굽 시키실 때,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새겨주신 ‘십계명’>일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모든 구약의 말씀들이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율법이 직접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밝혀주는 말씀이 <신명기 27장>의 말씀인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찌니라” (신. 27:26)고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율법에 기록된 온갖 것을 모두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율법의 기준은 하나님의 비정함과 까다로움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어떤 인간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 비정한 하나님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몇주전에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온 인간의 모든 불의한 죄의 목록을 사도가 나열한 것을 살펴보면서, 함께 나누었던 것은, ‘죄는 우리 인간 기준에서 볼 때 큰 죄 작은 죄가 있지만, 하나님편에서는 모든 죄는 동일하게 사형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 죄는 모두 우리를 하나님과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 죄는 그 무엇이 되었건 결국 우리 인간을 죽이는 <영적 암세포>이기에,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 어떤 우리 인간의 죄도 허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매우 까다롭고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고 택한 자녀에게 약속하신 영생의 구원을 주시는 선한 하나님이시기에 그 어떤 죄도 허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죄 있는 상태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수 없고 영생을 누릴 수 없기 떄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 인간의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우리는 직시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 인간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은 우리 모든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구약의 하나님께서 택하신 신실한 성도들이라 할찌라도 그분의 진리이신 ‘율법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일차적으로 ‘율법과 우리 인간의 관계’요, ‘선한 율법에 대한 인간의 딜레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구속역사의 큰 그림에서 볼 때 모세가 죽고 대략 1,400여년이 지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인 율법을 받은 이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이 땅에 오시기까지 1,400년이란 오랜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통해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민족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 율법을 통해 그들에게 기대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행위로 스스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시편14편>에서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3)라는 다윗의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원하신 것은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해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영적 상태, 곧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는 겸손하고 진실하게 율법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의 죄성을 깨닫음의 고백을 행하길> 원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고 1,400여년이 지난 후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특별히 유대종교지도자들은 그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리를 깨닫아 가고, 그 진리의 요구를 온전히 행할 수 없는 자신의 영적 무능과 죄성’을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그 율법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을 도구로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유대인 서로 간에도 ‘내가 더 율법을 잘 지킨다’는 식의 경쟁의식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것은 한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또 한명의 세리와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기도하는 내용이 ‘죄에 대한 고백과 겸손한 마음’이 아니라 ‘비교의식과 자신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지를 자랑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영적인 맹인과 같은 상태인지를 주님은 도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행위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존재임에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민족에게 율법이 주어진 1,400여년동안 그들은 그 진리의 율법을 통해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죄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고 남을 비판하는 영적 맹인과 같은 교만의 죄를 추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지금 <2장>을 진행해 나가면서 도전하고 고발하는 유대인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오시기까지 긴 기간동안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의 죄를 참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로 말입니다. 이것이 <4절>의 말씀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2:4)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 <2장>을 시작하면서 살펴본 ‘남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동일한 죄를 범하는’ <이 사람>의 모순인데, 이 사람은 첫째는 <유대인>이요, 둘째는 <도덕적인 이방인들>이라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전까지 <율법과 유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것처럼, ‘율법을 가졌지만 그것을 행할 수 없는 유대인의 한계’에 대해서 여기까지 말하다 보면, 이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음을 사도는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도덕적인 이방인’으로써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그동안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율법이 없었기에 죄도 알수 없었고, 따라서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 책임이 아니에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렇게 율법을 몰라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역시 자신이 지은 죄를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경건과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을 향해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했을 때, 사도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첫번째 이유를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으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9~20)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에서 볼 때, ‘성경’을 통한 <특별한 계시>가 아니라, 그분의 지으신 자연만물을 통해 자신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내신 <일반 계시>임을 우리가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심성 가운데 그분을 알만한 영적 능력 (영성)을 주셔서 자연만물에 충만한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보여주시는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이방인’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오늘 본문의 <14~15절>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v.14~15) 무슨 말입니까? 비록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속에 심어 주신 양심’으로 인하여 죄를 분별하고 이길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자신의 양심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대신하여, 때로 그 악한 생각을 고발하기도하고 변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릴 수도 있고, 그 진리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이 율법이 됨으로써 말입니다.

이것이 <13절>의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v. 13)라고. 지금 바울이 핵심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는 단순히 ‘율법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그 율법을 듣고 행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는 전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도구가 되었다면, 이방인들에게는 ‘양심’(본성)이 율법의 역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의롭다’고 간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인지를 사도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2장>의 ‘주제말씀’인 <12절>의 정확한 뜻입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롬. 2:12)라고.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기 원합니다. ‘왜 하나님의 율법은 주어진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로움인지를 깨닫게 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행함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차적인 <율법의 기준>이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기준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선한 율법을 주셨고, 그리고 나서 1,400년이 지난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왜 오셨을까요? 만약 우리 인간이 완벽하게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는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도 범죄하는 우리 인간을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으로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다리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년이 넘는 긴 시간을 참고 기다려 주심으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지 않고는 우리 스스로 결코 율법의 요구를 행할 수 없음을,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죄성과 율법을 행할 수 없는 영적 무능을 모두 고발하고 난 뒤에 이렇게 <롬. 3장20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음이니라” (3:20)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가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셨다고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이 율법을 거울로 해서 철저하게 자신을 바라보아라!’는 것이요, ‘이 율법만이 우리 인간의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성과 영적 무능을 그대로 벌거벗겨 드러내고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라면, <율법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만약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고,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아니라면, 우리와 율법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율법의 기능’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진리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도록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율법’을 통해 우리는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진리와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우리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가정교사 (몽학선생)의 역할이 율법의 기능임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가정교사)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23,24)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과 율법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볼 때, 율법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진리 앞으로 데려가고, 그럼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게’하며, ‘우리를 진리와 구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정교사’의 관계를 맺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론적으로 ‘무엇이 율법의 정신인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이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의 진리 앞에 우리 각자 단독자로 세우는 것’이요, 그러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고, 구원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생명 가운데 육신으로 이룰수 없는 율법의 선한 요구를 성령을 통해 사랑을 실천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율법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행함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인정받고, 자랑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율법의 목록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 어떤 여러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는 놀라운 사도 바울의 믿음의 선언과 같이 말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일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분의 생명으로 변화 받아 주의 영 성령과 함께 사랑을 실천함으로 율법을 완성해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