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II) (The Faith of Abraham)
“아브라함의 믿음” (II)
(The Faith of Abraham)
5-24-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4:19~22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설교 요약]
지난 시간에 이어 두번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묵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시간 ‘왜 사도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본으로 삼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첫째, ‘아브라함은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때문이며, 둘째 ‘그러나 그는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요’, 셋째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4장>을 통해 설명하면서, 먼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행위’가 아니며 (4:1~8), 또한 ‘할례’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롬. 4:11).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믿음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7)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을 주관하는) 권능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출발은 이처럼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근거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8) 또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셋째, “믿음이 견고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입니다: 끝으로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되,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에 약해지지 않고, 도리어 견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롬. 4:19~21). 바로 이런 믿음을 하나님은 그의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약속을 신뢰하며 믿음에 견고하여짐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으로 성장해 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두번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바울이 ‘왜 아브라함을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본보기로 소개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첫째, 유대인들이 모두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두번째인데, 아브라함은 행위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셋째,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사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하며, 우리 성도가 어떻게 진정한 믿음,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본보기로 아브라함을 소개한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하심을 받은 그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묵상하고, 배워나가는 시간되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이 사도는 <4장>을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선언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 4:2~3)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도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나서, 또 한 명의 ‘믿음의 조상’인 <다윗>의 글 (시. 32편)을 인용하면서 ‘일한 것이 없는 자가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의 행위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과 정죄치 않으시는 은혜를 통하여 누리게 되는 행복입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7~8)라고. 겸손과 통회하는 마음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의롭다고 불러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맛보도록 허락하시고,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고 다윗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는 첫째,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또한 둘째, <할례를 행함>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4:9~12>까지 사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처음으로 할례를 행한 아브라함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할례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할례>를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진실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지난 시간 살펴본 것과 같이 <롬. 4:3>에서 사도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3)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전체에서도 ‘믿음에 대한 중대한 정의’인데, 이 말씀은 사도가 구약의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창세기 15장6절>말씀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이 <창세기 15장6절>말씀은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뭇별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뭇별과 같이 수없이 많은 후손을 보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을 때 (창. 15:5), 그가 그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순전히 믿었고, 이때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율법의 가장 핵심적인 명령이라고 여기고,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믿는 이 ‘할례’를 아브라함이 받은 것은, 이처럼 이미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후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기록된 말씀이 <창세기 17장>의 말씀인데,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와 같이 <창. 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건’과 <창. 17장>에서 그가 99세때에 ‘할례를 받게 된 사건’ 사이에는 14년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14년이 지나서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의롭게 됨’과 ‘할례 받음’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지금 사도가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요점입니다. 그는 <11절>에서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과 ‘할례’와의 관계를 정의합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1)고 말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것, 곧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14년 전 ‘할례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여 주신 것을 확정하여 주신 것’이 <할례 받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비유하자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또한 <침례> 받는 이유는, 이 침례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통하여 받은 구원을 이 침례를 통해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선언)하고, 받은 구원을 확정하는 것이 침례식의 의미인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이처럼 ‘첫 할례자’였던 조상 아브라함도 이 할례로 구원받고 의로와진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순종함으로써 의롭게 된 것을 확인한 것임을 사도는 힘써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행히도 유대민족은 이와 같은 ‘할례의 의미’를 오해함으로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의롭게 되는 것’으로 여기고, 할례를 통해 육신의 자랑거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주신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서 <2장>을 마무리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육신에 행하는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며, 오직 마음에 행하는 할례가 <참된 할례>라고 사도는 유대인들을 향해 도전하고 주장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롬. 2:29~29). 왜냐하면, 할례의 정신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삶의 결단과 세상과 분리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결단)은 놓쳐버리고, 단지 육체의 가죽을 베어 내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사도가 <4장>을 통해 조상, 아브라함이 가진 진정한 믿음을 설명하면서, 먼저 ‘무엇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가 아닌 것인가?’를 밝힌 내용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로마서 4장13절>에서부터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끝절 <25절>까지의 내용인 것입니다. 먼저 그의 믿음을 한마디로 한다면,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과연 “무엇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믿음인지?”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제 사도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렇게 그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7)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도가 묘사하듯이, 아브라함이 믿는 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성/성품>에 대한 중대한 요점이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v. 17b)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데,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라고. 하나님은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곧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v. 17a)라고. 그런데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음으로써 살아 있는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라고.
이처럼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주관자 되셔서, 그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아메바’와 같이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 미국 서부에 서식하는 키가 ‘100m’가 넘는 거대한 레드우드 (red wood)와 같은 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보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권능과 영광을 우리가 깨닫을 수 있도록 하나님 자신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이사야 45장’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손수 하늘을 펴고, 그 모든 별에게 명령을 내렸노라” (사. 45:5~12)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이해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어떤 분인지를 정확히 인식함을 통해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올바른 성경교리와 건전한 신학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나님의 권능 하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의 ‘창조자의 권능’ 곧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권능’ 곧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롭고 권능의 하나님이신 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단지 나의 소원 성취를 시켜줄 존재인가에만 관심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신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신은 거짓된 존재지만,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고, 그 권능과 지혜가 끝이 없는 참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모든 생명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오직 유일하신 권능의 창조주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바로 그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신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서 출발한 그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올바르고 본질적인 지식에서 출발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첫번쨰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객관적인 믿음>, 곧 ‘그분의 전능하심’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 믿음이라면, 이제 두번째 ‘약속을 믿는 믿음’은 <주관적인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사람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아브라함 한사람>을 향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이어지는 <18절>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8)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를 수 없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요,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창세기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 곧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음’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그 권능하신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장래에 수없이 많은 후손을 통한 축복된 미래를 약속하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그에게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그가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장>이라고 불리어지는 <히브리서 11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라는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능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이제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심히 놀랍고 가슴 벅찬 소망의 약속을 신실하게 행하실 하나님임을 그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어떻게 자신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진실되게 신뢰할 수 있었을까?’라고 만약 여러분이 궁금해하신다면, 거기에 대한 대답이 마지막 세번째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것은
셋째, “믿음이 견고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가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의 믿음을 살펴 나가볼 때, 그의 믿음을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의 조상답게 그의 삶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앞서도 말씀을 시작하면서 밝혔듯이, 유대인들이 오해하듯 ‘아브라함은 어떤 인간보다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서, 그리고 행위로 완전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그를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행위로 의로와진 것도, 할례 받음으로 의로와진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의 순전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이제 우리가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빠트려서는 안되는데, 그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이어지는 본문말씀인 것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19~21)라고 말입니다. 제가 이해할 때 사도는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최종적으로 요약하여 정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은 바로 ‘이제 그의 나이가 100세나 되고, 아내 사라의 나이도 90세가 되었지만, 더욱이 사라는 젊어서부터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불임증’을 가진 여인이었기에,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보자면 두 부부를 통해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의 몸에서 아기를 가지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기대’일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기를 약속하셨기에 믿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토록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v.17)인 것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결론인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도 우리 각자의 삶에서 보듯이 부족함과 아쉬운 부분도 많을지라도, 끝까지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그 어떤 상황과 여건에도 한번 약속하신 선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말씀하신 바를 어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인 것을 아브라함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마침내 약속의 땅에 도작할 수 있었고, 또한 약속의 땅에서 자기 몸의 족은 것 같음과 아내 사라의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에 약하여지지 않고 도리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림으로 마침내 약속의 아들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 곧 모든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위주시는 축복된 은혜를 누리게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 4:22)라고. 이처럼 그가 이 땅을 떠난지 4,000년이 이미 지나가고 있지만,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수 없이 많은 후손에 대한 약속은 놀랍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와 이번 주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사도 바울의 영적 가르침을 통해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도, 할례 받았기 때문도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곧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그가 믿었고,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서 주신 가슴 벅찬 비젼의 약속’을 그가 신뢰했기에, 그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각자에게 있어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격려가 되고, 도전을 줍니까?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그를 자세히 기록하심은 한 명의 영웅을 만들고자 하심이 아니요,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시고자 하심임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더욱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이해해 나가고, 주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약속의 비젼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더 구체적으로 깨닫아 나가는 감격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현실은 자주 자주 우리를 낙심시키고 주저앉게 만들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에서 흔들리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침내 ‘약속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