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의 기도” (1) (Prayer of Supplication)
“간구의 기도” (1)
(Prayer of Supplication)
5-25-25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6:11-13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설교 요약]
우리는 계속해서 주기도문의 ‘후반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번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경배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번주와 다음주에는 하늘 아버지께 드리는 ‘간구의 기도’는 무엇인지를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이해하고자 합니다. 먼저 <간구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첫번째) “공급하심” (provision)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v.11) 여기서 ‘일용할 양식’ (daily bread)는 단순하게 ‘매일 먹는 빵/음식’만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필요 불가결한 의식주를 위시한 모든 삶의 기본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걸림이 될 만큼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일용할 양식’입니다 (잠. 30:8-9).
두번째) “용서하심” (pardon)입니다: 주님은 이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v.12)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말씀은 존 맥아더 목사의 설명과 같이, ‘죄용서’는 1) ‘법적 용서’ (judicial forgiveness)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원죄에 대해 법적인 용서를 받는 (=구원받는) 것’과, 2) ‘부모의 용서’ (parental forgiveness)로써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관계에서 용서를 받는 것’ 가운데 ‘부모의 용서’에 해당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선하신 아버지께 용서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세번째) “보호하심” (protection)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v.13)라는 가르침인데 다음시간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바라기는 긍휼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으로 경배 드리고 또한 여러분의 모든 간구의 기도제목을 숨김없이 아룀으로 아버지의 선한 뜻을 따라 응답을 받는 복된 삶 사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주님의 가르쳐 주신 ‘기도의 후반부’를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번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곧 ‘경배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고, 이렇게 하나님이 거룩히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궁극적으로 기도를 드려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주기도문의 후반부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평소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했습니까? 아버지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죄 용서하심의 은혜와 악한 유혹에서 지켜 주시는 주의 손길을 갈망하셨습니까? 그러할찐대, 오늘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이 간결하면서도 놀랍게 선포하시는 ‘간구의 기도’의 진리를 더욱 더 깨닫고 적용함으로 성도 여러분의 남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향기나는 예물과 같이 합당한 기도를 쉼 없이 올려 드리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에 이어서 ‘우리 자신의 필요를 따라 드리는 <간구의 기도>’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11절>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v.11)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영어로 “our daily bread”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우리의 매일의 빵/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의 기도’에 이어서 우리 자신의 ‘간구의 기도’를 드림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살아갈 때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육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꼭 먹는 빵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일용할 양식’은 <우리 성도가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의식주와 같은 모든 기초적이고 당연히 요구되어지는 생활의 필요사항을 모두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 주님은 진실로 순결하고 신령하실 뿐 아니라, 또한 현실적이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주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절박한 필요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아시고 몸소 체험하셨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양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는 ‘뜸들이지 말고, 억누르지 말고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나 아빠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끝까지 인내하며 참고 기다렸다가 마지막 순간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숨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요구하듯이 ‘우리의 필요한 양식’은 언제나 하늘 아버지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는 자녀가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줄 그런 잘못된 아버지가 결코 아니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v.11)라는 간구의 또 한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서 ‘일용할 양식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에서 여러분이 어느정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런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결코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기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설명 드리면, ‘무엇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지혜로운 기도인지?’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성경말씀의 하나가 <아굴의 잠언 시>라고 불리는 <잠언서 30장>의 말씀입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잠. 30:8-9)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아굴’이 구한 것은 ‘일확천금’이나 ‘지나친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땀 흘리지 않고 얻게 되는 불로소득이나 지나친 물질적 풍요는 자칫 타락에 빠지고 결국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가장 불행한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그는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아굴은 기도하기를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지혜롭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은 이처럼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된 우리가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뻐하심을 지금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오직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우리의 필요를 따라 양식 주시기를 감사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하늘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이렇게 또 우리가 구해야 할 바를 두번째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v.12)라고. 주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어떻게 구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보면, 먼저 첫번째 ‘일용할 양식’의 기도가 <현재> (present)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공급하심” (provision)에 대한 간구라면, 여기 두번째 기도는 <과거> (past)의 잘못에 대한 “용서하심” (pardon)에 대한 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한가지 이해하게 되는 것은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현재 우리의 필요를 따라 그분의 선하신 은혜로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의 육신의 양식 뿐 아니라, 살아감에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지른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원하시는 긍휼에 넘치시는 자비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실까요? 그 이유는 물론 ‘하나님 아비지는 우리를 사랑하심 때문이요, 죄로 인하여 그의 자녀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범할 때마다 그분께 나아와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모든 죄와 허물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좋으신 하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녀된 우리 성도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는 삶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행동이요, 아버지의 거룩을 좇아 거룩을 행해 나가고자 하는 철든 자녀의 삶의 중심되는 모습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영적으로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 사도 요한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라고 말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가 우리 거듭난 성도의 삶에서 얼마나 영적으로 중요한지를 성도 여러분 대부분은 잘 이해를 하시겠지만, 한편 이런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죄 용서>’와 ‘내가 처음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죄 용서함’ 받게 되었을 때의 <죄 용서> 받는 것을 헷갈려 하는 성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v.12)라는 ‘죄용서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어떤 성도들은 이 기도가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불필요한 기도가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고 모든 죄가 용서함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 용서’의 기도는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 용서함 받음’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그동안 저도 몇 번에 걸쳐 설명 드린 적이 있는데, 그 핵심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될 때의 <죄 용서>’와 ‘구원받고 난 이후,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의 <죄 용서>’의 차이를 교리적 (영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존 맥아더 목사’가 오늘 본문을 강해설교 하면서, ‘2가지의 용서’로써 영적으로 잘 설명한바 있습니다. 여기서 ‘2가지 용서’는 첫째 <법적 용서>(judicial forgiveness) 그리고 둘째 <부모의 용서>(parental forgiveness) 입니다. 이 설명의 요지는 먼저 ‘법적 용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유전 받은 <원죄>(the original sin)으로부터 용서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대신 갚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가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깨끗케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죄’는 바로 ‘원죄’로써, 그 누구도 스스로의 행위와 공로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원죄’인 것입니다. 이 원죄는 오직 죄가 조금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의 피, 곧 그분의 생명의 피를 통해서만 대신 갚을 수 있는 죄이기에 하나님께서 오직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죄 용서함>’을 맥아더 목사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생명을 통해 그를 믿는 우리를 법적으로 용서해 주셨다는 의미로 <법적 용서>(judicial forgiveness)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 ‘법적 용서’는 우리 믿는 자가 구원받는 순간에 오직 한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자는 두 번 다시 이런 ‘법적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용서>(parental forgiveness)는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평생동안 계속적으로 아버지의 은혜로 계속적으로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죄’는 교리 (신학)적으로 ‘자범죄’ (actual sin)라고 불리며,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영생)을 받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죄가 거하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에, 살아가면서 실수하고 범하는 죄’가 <자범죄>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맥아더목사는 오늘 주께서 우리 거듭난 성도에게 가르쳐 주시는 ‘죄 용서’에 대한 간구의 기도는 첫번째 ‘법적 용서’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우리의 부모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죄 용서’ 즉 두번째 ‘부모의 용서’에 대해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v.12b)라고. 이 기도는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된 거듭난 성도에게 있어서는 남은 평생동안 간구하고 풍성히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죄 용서’인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사도 요한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를 향해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이렇게 격려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위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라고 말입니다.
이점을 우리 주님도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겨 주시면서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라’고 명하셨는데 그때 베드로가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요.13:9)라고 말했고,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요. 13: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용서함 받음으로 깨끗하게 될 것은 더 이상 ‘법적 용서’가 아닌 ‘부모의 용서’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간구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과 죄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에 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시간은 <주기도문>의 마지막시간으로 ‘간구의 기도’의 두번째 ‘죄 용서를 위한 간구’의 뒷부분과 세번째 ‘보호하심’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함께 깨닫고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선하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덧없는 존재임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망 가운데 거할 때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셔서 그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과 딸로 삼으신 하나님, 그리하여 우리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가 영광스러운 자녀의 신분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셔서 구원을 완성해 나가시는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좋으신 우리의 아버지께 참 사랑과 믿음으로 나아가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언젠가 우리 주님은 중동의 한 낮에 뜨거운 뙤약볕을 맞으며, 깊은 인생의 갈증으로 우물물을 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라고.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인생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안고 긍휼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지고 나아가, 그분께 진정으로 경배 드리고 여러분의 모든 간구의 기도제목을 숨김없이 아룀으로 아버지의 선한 뜻을 따라 응답을 받는 복된 삶 사시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약속하신 ‘그 속에서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는 축복된 자녀의 삶 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