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6, 2026

“법에서 자유케” (To Release From The Law)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7:1,4
Service Type:

“법에서 자유케”

(To Release From The Law)

9-6-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7:1,4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설교 요약]

          오늘부터 우리는 <로마서7장>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먼저 <로마서7장>의 주제는 ‘우리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 입니다.

그리고 큰 그림에서 볼 때, ‘6장’과 ‘7장’은 하나의 ‘삽입장’ (inserting chapter) 역할을 합니다. 삽입이라는 의미는, 내용적으로 볼 때 <5장>에서 <8장>으로 연결되지만, 그 사이에 ‘6~7장’이 ‘첨가되는 내용’형태로 사도가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 사도가 <5장>을 마무리하면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5:20)라고 엄청난 선언을 하기 때문입니다.
  • 사도는 자신의 이런 선언(5:20)을 듣고 ‘그래 맞아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니, 우리도 죄를 더 지어 은혜가 넘치도록 합시다!’라는 엉터리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 그럼으로 사도는 <6장>을 통해 ‘왜 성도는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지!’를 밝힙니다
  • 그 뿐 아니라, <7장>으로 이어지면서 사도는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죄를 이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마서 7장>은 ‘사도가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데, 그만큼 7장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사도가 <7장>에서 ‘내’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 상태인지, 혹은 구원받은 후인지, 아니면 ‘인류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도는 7장을 시작하면서, 본문을 포함한 <1~4절>에서 7장의 주제인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영적으로 잘 밝혀줍니다. 그것은

첫째, ‘율법은 우리 인간이 살아 있을 동안만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7:1)

둘째, 여기서 ‘율법으로 지배된다’는 것을 <결혼 관계>를 통해 설명합니다 (7:2~3)

셋째,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 곧 ‘결혼’하게 될 때 ‘율법에서 죽게 된다’ (=자유케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한 사도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Bearing fruit for God)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과 생명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부터 우리는 <로마서7장>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을 로마서 말씀 가운데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가 함께 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나누어 갈수록 점점 더 그 진리를 분명히 깨닫아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로마서7장>을 통하여 ‘율법과 우리 성도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이해해 나가고, 여전히 우리 성도가 놓치는 복음의 진리는 무엇인지를 깨닫아 나감으로, 우리 각자의 삶과 믿음에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먼저 큰 그림에서 <로마서7장>의 주제와 다른 장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6장>을 시작하면서 잠시 언급했듯이, 로마서 전체 구조에서 볼 때 로마서 <6장>과 <7장>은 하나의 ‘삽입장’ (inserting chapter)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여기서 ‘6~7장’이 삽입장이라는 의미는 사도가 ‘5장’을 마무리하고 나서, 실제 내용의 흐름상 연결되는 본문은 ‘8장’인데, 그 중간에 <6장과~7장>을 추가로 넣은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사도가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된 자녀’로 변화된 우리 성도의 신분을 한단계 한단계 더욱 영적으로 밝혀 나가고 나서, 5장을 마무리하며 <5장20절>에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5:20)라고 엄청난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더욱 왕 노릇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도의 놀라운 선언은 ‘복음의 핵심’이요,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능력의 근거’임과 동시에, 율법에 근거하여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음을 사도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가 이어지는 <6장>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자신이 5장을 마무리하며,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5:20)라고 선언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좋아요, 이제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고자, 죄를 더욱 지읍시다!’라는 헛된 주장을 할 수 없게 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은혜를 더하게 하고자, 죄를 더욱 많이 짓자’라는 이런 어리석은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는 죄에서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죄에 대해 죽었습니까? 그것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나누었듯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 침례>를 받게 될 때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라는 것이 ‘아담 안에 속해 있던 (=아담에게서 유전 받았던)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이요, 이제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내 (우리 성도)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사도가 주장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우리가 그동안 몇 주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6장>을 진술해 나가며, 이렇게 ‘새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게 된 우리 성도의 변화된 존재는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런 변화된 존재에 합당한 삶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그의 치밀한 영적 논리와 성령충만한 논증을 통해 밝혀 나갔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우리 성도의 변화된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의 핵심은 <6장11절>의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롬.6:11)라는 말씀 속에 있다고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6장’에서 사도의 결론은 이렇게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그분의 영광스런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이런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사도는 도전합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이 되어’ (6:13), 그리고 더 나아가 ‘<의의 종>이 되어’ (6:19,22)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6장>의 중심내용이요, ‘왜 사도가 6장을 쓰게 되었는가?’ 하는 주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7장>의 주제는 무엇이며, <6장>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잠깐 언급했듯이 ‘6장’의 <주제>는 “우리 인간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 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6장’에서만 ‘우리 성도의 변화된 존재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7장’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율법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 성도의 존재방식을 더욱 구체적이고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큰 그림에서 보았을 때, ‘6장’과 ‘7장’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6~7장>에서 사도가 주장하고자 하는 골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변화된 우리 성도의 존재양식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6장’에서는 ‘성도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이런 영광스럽게 변화된 존재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인가?’를 사도가 밝혀 나갔다면, ‘7장’에서는 어쩌면 ‘6장의 결론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욱 다져 나가며,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복잡미묘한 존재양식을 ‘율법과의 관계성’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밝혀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5장>의 결론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8장>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6~7장>이 큰 그림에서 볼 때 하나의 <삽입장>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5장>을 마무리하면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20~21)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하나의 ‘괄호형식’으로 6~7장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장에서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7장에서는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대충 넘어가지 않고, ‘사도 바울’답게 철저하게 그 영적 의미를 파헤쳐 나감으로써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8장>으로 넘어가서 사도가 <5장>을 마무리하며 선언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우리 성도의 권세와 특권을 승전가를 부르듯이 힘있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게 볼 때 <7장>이 로마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의미 (역할)요, 연결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7장’을 살펴 나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첫째, ‘죄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로마서를 살펴 나가며, 죄의 그토록 흉측함과 죄는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든 인간을 그 ‘죄의 노예’로 가두었음을 확인했는데, 이 죄의 강력한 힘과 권세는 과연 어떻게 우리 인간에게 역사하는지를 사도는 최종적으로 여기 <7장>을 통해 ‘율법과의 관계’로써 밝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점들을 ‘7장’을 살펴 가는 가운데 함께 다루어 나가고자 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오늘 본문말씀을 포함하여 <7장 1~4절>을 묵상하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7장을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v. 1)라고. 지금 사도가 7장을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좀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율법을 아는 사람에게 말을 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v.1/‘표준새번역’) 이제 사도는 ‘우리 인간과 율법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이 관계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as long as a person lives)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만 지배함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의미를 한 예를 들어 사도가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2~3절>입니다.

사도는 ‘율법과 사람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 인간의 <결혼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 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v.2,3)라고. 사도는 지금 ‘율법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마치 <결혼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정확히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 인간사회에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이라는 신성한 법을 통하여 하나된 부부로 맺어지게 될 때, 그 두 부부가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고 신뢰함으로 결코 서로를 갈라지게 할 수 없다 할찌라도, 그들의 그 친밀한 관계가 완전히 끝이나는 가장 확실한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배후자 중에서 그 누군가가 죽게 된다면, 이 부부관계는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중 그 누군가가 만약 죽게 되었다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부부관계는 완전히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살아 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간음한 남편이나 아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함으로써 두 사람 서로를 묶어둔 법, 곧 ‘결혼한 남편과 아내로써 서로를 위하여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법’이 이제 그 배후자의 죽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어지고 사라지게 (무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어지는 오늘 본문 ‘4절’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v. 4)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영적으로 볼 때, <‘우리 모든 인간은 과거 율법이라는 [남편/아내]와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될 때, 이제 나는 예수님을 [남편/배우자]로 모시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옛 남편이었던 ‘율법’이,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 죽게 됨으로 이제 예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요, 이것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요, 매우 자연스럽고 정당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 우리를 지배했던 율법은 이제 완전히 죽었고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따르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고자 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v.4)고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사도가 <5장>후반절에서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담 안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아담의 영향권에서 옮겨져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존재가 되었다’ (롬. 5:12~19)는 의미인 것입니다. 물론 <로마서7장>의 서론에 해당하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제가 성도 여러분과 분명히 확인하고자 하는 한가지는, 그렇다면 ‘율법이 죄인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이것이 사도가 “율법이 죄냐” (v.7a)는 동일한 질문을 하고나서, 이렇게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v.7b)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왜 우리 성도가 죄에 대해 죽은 것처럼,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치 ‘율법이 죄인 것 같은 착각 (오해)를 우리에게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로마서7장>에서 사도가 밝히는 놀라운 성도의 존재방식인 것입니다. 바로 7장을 통해 사도가 ‘과거 우리 인간과 율법과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영적 메커니즘을 통해 정교하게 밝혀 나가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제는 율법에서 자유케 됨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우리는 7장을 묵상하는 동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사도는 7장을 시작하며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는 죽음을 당하고, 이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살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에 대해 죽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결과가 무엇인가?’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v. 4b)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가 구원받은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다시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된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히게 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지금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혹시 주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죄가 거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기지 못하고 죄의 열매를 맺어 나가는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라기는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그분의 생명과 사랑의 법을 따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맺어 나가는 복된 주의 자녀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