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5, 2026

“복음” (The Gospel)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1:2~4
Service Type:

“복음”

(The Gospel)

1-25-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2~4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먼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자기인식과 확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1)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은 모든 성도의 존재인식이요, 기쁨과 자랑이 되어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2주동안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복음이 약속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은 이어지는 <2절>에서 선언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 2)라고. 여기서 사도는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인지를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한편 사전적 의미에서 ‘복음’(福音)은 ‘복된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을 뜻하는 ‘헬라어’의 <유앙겔리온> (εαγγέλιον)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바울이 활동하던 로마제국 당시 ‘황제를 이을 황태자’가 태어났거나, ‘큰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선포된 시사적인 단어였습니다. 바로 ‘기쁜 소식’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가 정의했듯이 <하나님의 복음> 곧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 (메시아/구원자)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간략하게만 살펴본다면,

  • 창세기에서 ‘장차 뱀 (사단)을 멸할 자가 ‘하와의 후손’가운데 나올 것 (창세기3:15)
  • 모세를 통해 “나와 같은 선지자” 곧 ‘아들’를 약속 (신명기18:15)
  • 그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오심 (예레미야23:5/이사야9:7)
  • 그는 <동정녀의 몸>에서 나심 (이사야7:14)
  • ‘아들’이 <올 시기>를 예언 (다니엘9:24)
  • 그가 <태어날 장소>는 ‘베들레헴’임 (미가5:2)
  • 아들은 <십자가의 고난/죽음>을 받음 (이사야53:3~5/시편22:18)
  •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아나심> (시편16:10)
  • 아들은 장차 <이방을 비취는 빛>이 될 것임 (이사야42:1/49:6)

이것이 대략적인 ‘복음’의 뜻 (정의)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선지자들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과연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인가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복음이 여러분의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분명 아직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성령을 통하여 복음의 비밀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닫고 풍성하게 누려 나가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를 통해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깨닫고, 복음을 자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먼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의 자기소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2주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바울의 자기인식과 확신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것은 사도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은 모든 성도의 존재인식이요, 기쁨과 자랑이 되어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우리 모든 성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요, <사역의 역할에 관계없이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이요, 사명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인식을 통해 ‘이 부르심의 소망과 은혜가 얼마나 큰 특권이요, 기쁨인지를 우리는 깨닫고 누리고 있는지를 지난 시간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1)라고.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시간과 다음시간을 통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인지를 근본적 (기초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이 복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복음이 약속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시간을 통하여 점점 더 이 ‘하나님의 복음’에 빚진 자가 되어,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증거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사도가 <1절>에 이어지는 <2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 2) 여기서 오늘의 주제가 되는 <복음>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제일 먼저 정의하는 ‘복음’ 곧 ‘하나님의 복음’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원합니다. 그는 정의하기를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주인공 되신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미리 기록한 것, 곧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의 복음에 대한 정의를 마음에 간직하고, 계속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사전(원론)적으로 <복음>이라는 단어의 뜻과 성경적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복음’ (福音)은 ‘복된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을 뜻하는 ‘헬라어’의 <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좋은’ ‘기쁜’이라는 뜻의 ‘유’ (εὖ)와 ‘소식, 메신저, 전령’이라는 뜻의 ‘앙겔리아 (ἀγγελία)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기쁜 소식/복된 소식’이란 의미의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은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인 <고대 로마제국시대>에서는 ‘황제의 대를 이을 황태자의 탄생’이나 ‘큰 전쟁에서의 승리’와 같은 큰 기쁜 소식을 전할 때 사용했던 선포적인 단어였습니다.

한편 이것을 유대인들의 경우인 <구약성경>에서 살펴본다면, ‘히브리어’인 <베소라> (בְּשׂוֹרָה)에 해당되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강대국 애굽의 압제 아래 비참한 노예살이 하거나,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끌려가 참혹한 전쟁포로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선지자 (메신저)들로부터 노예와 전쟁포로부터 자유케 되는 해방의 은혜가 선포될 때의 그 큰 기쁨의 소식이 바로 <베소라>요,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성도들에게 선포된 ‘복음’의 의미였는데, 이런 관점을 생각하며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내용을 점검해 보면 그 복음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성탄절 메시지로 자주 사용되는 <누가복음2장>에서, 성도 여러분도 잘 기억하시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 왜 천군천사가 베들레헴 들에서 양들을 치던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그분의 탄생을 선포하고, 그 탄생을 기쁨으로 찬양했는지?’를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2장>에 보면 천사가 영광가운데 나타남으로 무서워하는 목동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라고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하신 황태자요, 택하신 모든 자, 곧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되시기에 천군천사는 온 백성에 미칠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힘차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히 로마제국을 이을 황태자의 탄생정도가 아니요, 온 우주만물의 주인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탄생이요, 우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이기에 진실로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구약의 여러 곳에서 바로 ‘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것이 <2절>에서 사도가 무엇이 복음인지를 이렇게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 2)고 말입니다. 먼저 구약에서 기록된 복음 곧 ‘복음의 주인공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된 말씀을 살펴볼 때 가장 첫 말씀을 많은 신학자들은 <창세기 3장>말씀을 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뱀은 장차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그분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뱀 곧 사단 마귀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마치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주님은 다시 살아나심으로 ‘주님의 뒷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에 불과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부활은 권능으로 역사하심으로 결국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그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이끌어내었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그의 마지막 고별설교라고 일컬어지는 <신명기서>에서 이런 매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 18:15) 모세는 이런 신비로운 예언 가운데 단순히 여러 하나님의 선지자들 중의 한 명이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과 만민을 구원할 선지자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에 따르면,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3역할로 오심) 곧 구원자요 메시아인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9장>에서 그가 올 시기를 예언하고 있으며,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때도 함께 나누었듯이 <예레미야 23장5절>과 <이사야 9장7절>에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오실 구원자를 미리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7장14절>에서는 ‘그 구원자는 동정녀의 몸에서 나실 것’을, <미가서 5장2절>에서는 그의 태어날 장소인 ‘베들레헴’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는 <이사야 53장>에서 ‘멸시를 받는 고난의 종’으로, <시편 22편>에서 ‘주께서 못박히실 때 군병이 옷을 제비 뽑아 감’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되었고, <시편 16편 & 22편>에서는 ‘주님의 부활’ 그리고 <이사야 42,49장>에서는 주께서 장차 ‘이방을 비취는 빛’이 되실 것을 잘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까지가 대략적으로 구약성경에서 선지자의 글에 미리 약속된 구원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된 대표적인 말씀들인 것입니다. 이제 제가 오늘 말씀의 주제인 ‘복음’을 정리해 가면서 생각하기 원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된 말씀’이 ‘복음’이라면 ‘왜 이 복음이 기쁜 소식인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쁜 소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태어나신 것은 참으로 기쁘고 복된 소식을 실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복음이 진실로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그의 영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아직까지 성도 여러분에게 있어서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부 성자 성령 곧 ‘성삼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복음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복음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아직까지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를 통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 중에서 제가 오늘 설교에서 무척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사실 저는 오늘 설교의 주제인 ‘복음’은 무엇인가를 정의하면서, ‘정말 이 복음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고 있는가?’를 우리 각자가 스스로 되돌아보고, 점검해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복음적 설교’의 대표적 명설교자인 ‘마르틴 로이드 존스’목사는 <구약에서 찾은 복음>이라는 그의 책에서 무엇이 성도들에게 미치는 복음의 본질적인 능력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독교가 하는 일, 복음 설교의 목적은 우리가 처한 곤경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곤경들을 단번에 영원히 제거해 버리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매주 교회에 와서 이제부터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왔다면, 그런데도 여전히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복음의 능력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자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 곧 ‘그분의 모든 믿는 자를 살리는 구원의 능력’인 ‘복음’은 우리를 설득하거나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어지고 ‘권능으로 역사’하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복음은 성도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의 의도를 결코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결코 성도 여러분에게 ‘없는 감정을 있는 것처럼’ 강요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감정조절은 자칫 위선적인 것이 될 수 있고, 많은 기독교 이단의 특징의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도록 강요를 받는 가운데, 손뼉 치고 노래하며 마음에서도 없는 기쁨이라는 감정을 짜내며 거짓된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불행한 성도들의 일시적 현실도피식의 기쁨은 결코 우리가 진정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그런 강요된 기쁨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영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누려 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리고 심지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함 받았다’는 그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복음’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피로 죄 용서함 받고,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내 영적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성령께서 성도 여러분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주심’으로 가능함>을 저는 믿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었을 때의 첫 사랑과 감격을 잃어버렸습니까? 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영적 매너리즘과 무감각에 빠져 권태롭고 짜증스러운 신앙생활 자주 자주 빠지는 것입니까? 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적이요 감정적인 자아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고 탄식하는 힘없는 신앙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까? 그것은 아마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자발적인 하나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부어 주시는 풍성한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배 참석한 성도 여러분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머리로 이해할 뿐 아니라, 이제 이 복음이 진실로 여러분에게 있어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고 선포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또한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도 여러분의 보화요, 진정한 자랑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 가운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죄 용서하실 뿐 아니라 독생하신 그의 아들과 함께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유업을 허락하시고, 영광스러운 그의 아들과 딸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더욱 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 나감으로,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 날마다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하고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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