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부르심” (Called To Be An Apostle)
“사도의 부르심”
(Called To Be An Apostle)
1-18-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1~2, 5~6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설교 요약]
지난 시간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는데, 그 의미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 고백 속에는, 첫째 ‘그리스도의 소유’요, 둘째, ‘그분께 속해 있는 존재’요, 셋째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라는 뜻임을 우리는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는 세번째 의미 곧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도’로 부르심에 대해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1:1a)라고 말씀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사도’ (apostle)라는 헬라어 원어는 ‘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로써, “보내심을 받은 자” “전도자” “사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뿐 아니라, 여러 서신서에서 자신의 사도됨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사도>로 불리어졌던 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12제자들>이었지만, 바울은 ‘다메섹 언덕에서 주님께서 직접 이방의 사도로 삼아 주셨기에’ (행. 9:15; 26:16~18)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은 ‘로마서’가 한 인간의 사사로운 편지가 아니라, 주께서 그의 영 성령을 통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을 계시하는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사도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도됨’의 확신이라면,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 진리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 (v.1)라고 소개하고 나서,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v.6)고 선언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역할에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1)라고 우리 각자의 역할(사명)이 다름을 밝힙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역할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셋째, ‘우리는 과연 이 부르심 받은 은혜와 특권을 깨닫는가?’하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왜 자신이 이 복음의 메시지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히 전하고자 했을까요?’ (1:15) 그것은 자신처럼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와 특권>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를 그들도 깨닫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선한 뜻대로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 삼으시고,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신 은혜와 특권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깨닫음으로, 감사와 기쁨 가운데 주의 증인의 삶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는데, 그 의미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도의 이와 같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는 고백속에는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요, 또한 포도나무 원둥치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이 ‘그분께 속해 있는 존재’요, 그리고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라는 뜻임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오늘 사도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택함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고백,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세번째 자신을 소개한 내용을 중심으로, 그 부르심의 은혜와 권세가 얼마나 크며, ‘부름 받은 자’의 삶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더욱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 각자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도는 로마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1)라고. 제가 지난 시간 설교 메세지를 정리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 속에 담긴 3가지 본질적인 의미를 우리는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은 <주님과의 법적 관계>를 밝힌 것이라면, 둘째 ‘그리스도에 속한 존재’라는 것은 <주님과의 영적 관계>요, 세번째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명하신 <’뜻/소명’을 감당할 사명자>라는 의미가 그 속에 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사명과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로마서를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 1장1절>말씀에서 바울이 자기자신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확신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종으로써 어떻게 주인을 충성되게 섬겨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기인식’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사도>라는 단어의 뜻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적으로 <사도> (Apostle)는 헬라어 원어로는 ‘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로써, “보내심을 받은 자” “전도자” “사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가장 가까운 예로써 바로 우리 교회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포슬교회’ (Apostles Church)가 아닙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제자로써 세상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 교회 이름 안에 포함된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상당수가 알고 있듯이, 초대교회 당시에 실제로 ‘사도’라고 불리어졌던 사람들은 모든 성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라고 불리어진 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택하신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12제자들에게 국한되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의 조건으로 다시 정리해본다면, “예수그리스도와 공생애를 함께 했고, 그분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으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아 파송된 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사도’라는 이름에 대해 가능한 정확하게 정의함으로 우리가 함께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바울’ 자신이 주님의 사도임을 그처럼 강조하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로마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신서를 시작하면서 이점을 언제나 강조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후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고전. 1:1)라고 시작했고, 또한 <갈라디아서>에서도 “~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갈. 1:1)라고 편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에서도 예외 없이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천명함으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정체성을 이처럼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도권을 옹호하고자 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사도의 정의>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본적으로 초대교회당시 ‘사도’라고 했을 때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지칭 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개종하여 전도사역에 합류한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 당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추측컨대, 사도가 과거 청년시절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심하게 핍박했던 사실로 인해 그가 개종한 이후에도 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관을 버리지 않은 일부 교인들이 여전히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자 한 것이 그가 사도권을 강조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의 사도권”을 의식하면서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메섹 언덕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직접 만나 주심으로 그의 삶을 극적이요 본질적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다메섹 언덕에서 청년 사울은 찬란히 빛나는 주님의 광채로 인하여 땅에 엎드러지고 눈이 멀게 되었을 때, 주님은 다메섹에 살고 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명하셔서 사울을 찾아가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나니아’는 주께 ‘이 사울이라는 자는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하는 자임을 주님이 너무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는 식으로 반문했는데, 그때 주님은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 (a chosen vessel unto me)이라” (행. 9:15)고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 26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유대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이 다메섹 언덕에서 주님을 만난 순간을 증언하며, 자신을 주께서 직접 구별하여 부르심으로 세운 사도임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 26:16~18) 이런 증언을 통해 사도 바울은 <자신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신을 찾아오셔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한 그릇’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도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직접 택하심으로 사도권을 허락하신 그의 제자’임을 주장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자신이 다른 성도들과 달리 특별히 영적 특권과 권세를 주님으로 부여받아, 그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가 이런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정반대입니다. 그는 이 ‘사도권’은 전적으로 이 ‘로마서’ 뿐 아니라 13편에 이르는 그의 모든 서신서들이 단지 자신의 생각과 의견으로 쓰여진 한 개인의 편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 성령을 통하여 놀랍게 계시하시고 밝히심으로 그 깊은 구원의 비밀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복음, 곧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임을 모든 성도들이 분명히 깨닫고 확신하기 원했기에, 자신의 ‘사도권’은 중요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자신을 따라 세워 사도로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주의 종과 증인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며 밝히고 있듯이,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갈. 1:1)이라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그분께 받은 말씀의 절대적 권위와 진리를 그가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도로 부르셔서,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게 하셨음을 사도는 자랑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은 그 어떤 육신의 유익과 혜택을 위해 주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사도의 사명으로 인해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고난과 만물 가운데 찌꺼기처럼 짓밟히는 수모를 겪을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편만하게 증거하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주님의 택한 그릇임을 기뻐하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이처럼 확신할 뿐 아니라, 또한 오늘 말씀에서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제자로써 부르심을 입은 ‘로마교회성도들’, 아니 우리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자랑가운데 도전하고 격려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v. 2,5~6)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힘있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성도가 깨닫고 놓치지 말아야 할 영적 진리가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대해 신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3중적으로 자신을 묘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첫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Being a servant of Jesus Christ)이고, 두번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Called to be an Apostle)는 것이요, 마지막 세번째)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함을 입었다’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유의해 볼 점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영적 정체성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의 종인 나 바울은 주의 사도로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v.1)라고. 그런데, 여기서 “택함을 입었으니”는 ‘영어번역’은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NIV)입니다. 그렇다면, ‘set apart’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따로 떼어 놓다, 따로 보관하다,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의미와 매우 유사한 것이 과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젊은 시절 그토록 자랑했던 ‘바리새인’이라는 신분이었는데, 이 ‘바리새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되는 ‘바리새’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파라쉬'(Parash/פרש)인데, 그 유래가 ‘분리된 자’ 혹은 ‘구별된 자’로서 영어로는 ‘separated one’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원래 <세상의 죄와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고 분리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속한 자로 살고자 순전히 결심하고 열심한 자들>이 그 단어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가장 많은 꾸지람과 책망을 받은 자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문제는 ‘바리새인들’이 영적으로 세상과의 구별된 ‘나실인’과 같은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형위로만 ‘구별된 척’ ‘거룩한 척’했기에 실제적으로 전혀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도리어 세상과 짝하는 저주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진정으로 ‘택함을 입을까요?’ 다시 말해, 거짓된 세상과 구별된 성결한 자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진정한 성결과 구별된 삶을 잘 가르쳐주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말씀은 <할례>에 관련한 말씀인데, 사도는 그 당시 초대교회에서 유대교 전통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크리스챤 리더들이 ‘유대인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을 일삼는 자들을 고발하면서 “겉모양으로 유대사람이라고 해서 유대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이 유대 사람인 사람이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따라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롬. 2:28~29)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의 참된 모습인지를 선명히 보게 됩니다.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마음에 행하는 할례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빌. 3:3).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받을 자들을 모두 부르심으로 구별하여 세우시고 사명자로 우리를 세상 가운데 보내는 것입니다.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행하는 할례를 통하여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몇몇 사도들이나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을 구별하여 성결한 자녀되게 하심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자>로 넉넉히 살아갈 수 있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역할에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고 주께서 우리를 각각 서로 다른 역할의 사명자로 부르신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비록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확신하고 그 사도권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분명히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다른 사명자들 곧 ‘선지자’와 ‘목사’와 ‘교사’와 ‘봉사자’를 폄하하거나 낮게 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을 다해 감당해 나갈 때, 주님은 ‘그 맡은 역할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중심>을 보시고 온전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시고,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하나된 지체로 연결되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함으로, 사랑 안에서 온 몸이 서로 연결되고 함께 세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무엇을 맡기셨느냐가 아니라, 그 맡기신 일에 있어서 온 정성과 충성을 다해 다윗처럼 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마음의 성실함’ (the integrity of heart)과 손의 공교함’ (the skillfulness of hand)으로써 말입니다 (시. 78:72). 이제 마지막으로
셋째, ‘우리는 과연 이 부르심 받은 은혜와 특권을 깨닫는가?’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종이요,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v. 5~6)고 말입니다. 제가 이해할 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진실로 강조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것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적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축복된 것임을 나는 로마교회 성도 여러분이 단 한사람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곧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로써 의롭게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과 화평 (평강/안식)을 누림으로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최상의 영적 확신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핵심이요, 축복된 신분의 특권이라면, 어떻게 이 축복된 삶의 은혜를 소리 높여 찬양하고, 그 영광스런 복음의 비밀을 자랑함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아니 모든 이방민족과 열방에게 증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수 밖에 없었던 핵심적인 이유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건져 주시고, 그 아들의 생명과 사랑의 나라로 옮겨 주신 하나님을 향한 참된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비밀을 세상에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격과 빚진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빛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과 소망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이제 앞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말씀>을 묵상해 나갈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풍성한 말씀의 은혜 가운데 단 한사람도 ‘거져왔다 거져가는 안따까운 심령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8~30) 저는 이 시간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겸손하고 진실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생명의 복음인 ‘로마서 말씀’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간절히 묵상함으로 더 깊은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부르심에 합당한 영광된 주의 증인의 삶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의롭게 된 자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따라 앞서간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소명의 삶을 넉넉히 감당하고 간 수많은 성도들과 같이 주의 영, 성령과 함께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