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 2026

“아들에 관한 약속” (The Promise Concerning His Son)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1:2~4
Service Type:

“아들에 관한 약속”

(The Promise Concerning His Son)

2-1-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2~4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복음’을 주제로 한 첫째 시간으로 ‘복음의 사전적 의미’와 사도 바울이 정의한 복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2)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구약성경에 선지자를 통해 그의 아들에 대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지난시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복음’의 주제로한 두번째 시간으로, 복음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인지를 말씀을 통해 묵상하겠습니다.

이제 사도는 오늘본문 <2~4절>에서 ‘무엇이 복음인지?’를 로마서편지를 시작하면서 핵심적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먼저 <2절>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면, <3~4절>은 ‘오신 메시아’ 곧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말씀>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무엇이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된 그리스도 되심”입니다: 사도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2)고 ‘복음’을 정의합니다. 이 말은 ‘구약말씀’에 대한 더 깊은 묵상과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랄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입니다: 이제 구약에서 예언하는데로 (렘.23:5, 사.9:7),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v.3)고 사도는 증언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1:1)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밝히는 주의 제자 마태의 기록처럼,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셋째,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심”입니다: 주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는 가하면, ‘영으로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로 인정되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가 참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입증)된 것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v.4)라고.

바라기는 복음의 주인공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나감으로,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고 힘써 알리는 증인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복음이 무엇인지?’에 있어서 본질적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복음의 사전적 의미요, 또한 바울이 이 로마서편지를 쓸 당시에 통용된 시사적인 의미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는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드러난 ‘복음’ 곧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2절>에서 이렇게 잘 정의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2)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고 사도 바울은 짧고도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 구약에 기록된 그 아들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대략적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라는 주제의 첫번째 말씀이었고, 오늘은 계속해서 복음을 주제로한 두번째 시간으로써, ‘복음의 주인공’이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의 말씀> 곧 아들에 관한 ‘약속과 성취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본 것처럼, 사도 바울은 <로마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의 <유앙겔리온> 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아 ‘사도’로서 택정함을 입었다고 자랑스럽고도 확신 가운데 자기 스스로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복음>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놀랍게 정의 내렸던 것입니다. 바로 ‘복음은 하나님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이처럼 사도는 복음을 영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할 뿐 아니라, 이제 한걸음 더 깊이 그 의미를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의 한명으로서 사도 바울의 이 치밀하고 매우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제를 전개하고, 그의 논점을 점진적으로 치밀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볼 때, 사도의 구약의 말씀을 대한 깊은 이해와, 그의 탁월한 지적 능력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다른 모든 성경을 집필한 저자들의 경우와 동일하게 ‘성령께서 이 로마서를 사도가 집필하는 가운데 그분의 영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말미암은 결과’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가 ‘복음이 무엇인지?’를 <2절>에서 정의하고 요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이어지는 <3~4절>에서 그 복음의 본질과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주인공’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분이신지?’ 하는 것을 사도는 또 한번 간결하게 핵심적으로 한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경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v.3~4)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앞의 <2절>에서 소개한 하나님의 아들을 이어지는 <3~4절>에서 다시한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반복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을 내용적으로 볼 때, <2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예언으로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메시아인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존재’이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나실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 하실지?’를 미리 밝히신 <약속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지난 시간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3~4절>은 한마디로, ‘오신 메시아’에 대한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약속하신 그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그 아들이 마침내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가 메시아 (그리스도) 로서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성취된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오신 메시아> 곧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에 속한 모든 구원의 사역을 온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고,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서 세상의 질고를 우리처럼 겪었고, 마지막 3년반의 공생애를 통해 자신의 그리스도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남김없이 그 권능의 표적들과 권세 있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넉넉히 구원하는 대속의 사역을 남김없이 성취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오늘 말씀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원하는 것은 ‘사도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2~4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2~4절>말씀은, 한마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를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한 말씀이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인가?’를 구체적이면서도 간결하게 밝힌 말씀이 오늘 본문의 바울의 메시지라고 저는 믿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복음의 주인공 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무엇이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된 그리스도 되심”입니다: 우리는 이점에 대해 지난 시간 비교적 소상하게 이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v.2)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우리 크리스챤들 가운데서는 ‘구약성경’의 말씀에 대해서는 웬지 ‘신약성경’말씀에 비해 가치와 중요성을 별로 두지 않는 분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시키셨음으로 구약은 ‘몽학선생’처럼 이제는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한 법조문과 같이 별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의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가 ‘구약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통독’할 때도 대부분 ‘신약성경’만 읽고, 구약은 고작해야 기도와 묵상시간에 <시편말씀>이나 지혜서에 해당하는 <잠언서>와 <전도서>정도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은 매우 구약성경에 대한 매우 잘못된 편견이요,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태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모든 신약성경의 말씀은 그 근거와 권위가 구약성경에서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한 예로써, 신약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실 때 항상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시거나 근거하여 말씀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이렇게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18)고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율법’ 곧 ‘모든 구약말씀’의 절대적인 가치와 불변성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약 없는 신약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각해볼 때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말씀, 한마디로 ‘구약성경’을 전체적으로 점점 더 깨닫지 못하면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고 우리에게 격려하시는데, 이 말씀은 그분의 제자된 우리 성도는 지혜로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어서 그 풍성한 말씀의 곳간 (=창고)에서 언제나 옛구약의 말씀과 새신약의 말씀을 차별 없이 골고루 백성들의 필요를 따라 가져와 먹일수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옛것과 새것’을 함께 말입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들이 ‘성경통독’하거나 ‘큐티’ ‘성경공부’할 때 반드시 <구약성경말씀>을 <신약성경말씀>과 함께 읽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과 구약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의 뜻과 가치를 상호보완하고 지지히며, 신구약은 유기적으로 서로 완벽하게 연결되고, 통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더 깊은 신앙성숙과 올바른 말씀의 깨닫음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약과 구약에 대해 동등한 가치를 두고 가까이하고, 더 깊이 묵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입니다: 사도는 <2절>에서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이라고 정의하고 나서, 곧바로 <3절>에서 이렇게 그 아들이 어떻게 그 약속을 성취하는지를 이렇게 밝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v.3)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지난주에 ‘오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오실 것’이라는 예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말씀 중에는, <예레미야 23장>에서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 23:5)라고 다윗에게서 의로운 한 가지가 날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또한 <이사야 9장>에서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 9:7)고 다윗왕의 후손 가운데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가 되는 몇가지 조건가운데 성경에서 가장 많이 예언된 말씀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오실 메시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주님의 제자 ‘마태’는 <마태복음>을 시작하며 예수님의 족보로써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1:1~2)고 시작하고 나서, 이어지는 족보에 관한 마지막 말씀인 <16절>에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1:16)라고 야곱의 아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것까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오신 분임을 마태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메시아의 자격으로써 ‘다윗의 후손’은 절대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데, 그 중요한 메시아의 기준이 ‘다윗의 혈통’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역사적 사건에서 볼 때,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성전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유다왕국을 초토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족보책도 상실해버렸습니다. 이 말은 이제 그 어떤 유대인들도 자신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약속한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기록된 ‘족보’나 ‘유전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족보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하게 ‘다윗의 혈통 가운데 오셨음’을 우리는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v.3)라고 했을 때,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나셨다’는 것은 우리 인간처럼 ‘그 태어날 때 부터가 우리 존재의 시작’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는 말씀은 ‘영문성경’(NIV)으로는 “who as to His earthly life was a descendant of David”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분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삶은 다윗의 후손으로 시작하셨지만, 이미 그 이전에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언제부터 존재하신 것일까요? 그 대답은 ‘그분은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고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고 증언합니다. 결국 로마서 <1장3절>에서 ‘육신으로 다윗의 후손 가손 가운데 태어나셨다’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의 존재의 시작이 아니라,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는 시작이지만, 그분은 이미 영원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의 하나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본질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영원전부터 존재하신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곧 ‘성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우리는 <3절>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v.3)라고. 그럼으로, ‘하나님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영원전부터 자신과 동거했던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 가운데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셋째,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심”입니다: 이제 바울은 ‘복음의 주인공’되신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신지에 대한 마지막 진술을 합니다. 그것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v.4)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4절>의 바울의 진술에서 우리는 몇가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가 지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의 아들’이 마침내 약속의 성취로 이땅에 오셨는데, 그것을 그는 <대조(상반)되는 형태>로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앞 절 <3절>에서는 “육신으로는” (according to the flesh)것과 <4절>의 “성결의 영으로는”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이라는 상반되는 상태를 서로 대조적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육신으로는’이라는 것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낮아지심으로 육신의 옷을 입으셨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성결의 영으로는 ~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성결의 영’을 ‘성령’ (the Holy Spirit)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이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 (the Spirit of holiness)이라고 이해해야 함을 <로이드 존스>목사는 주석합니다. 왜냐하면, ‘성결의 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로써 지금 사도는 “육신으로는”이라는 것과 “성결의 영으로는”이라는 것을 대조적으로 배치한 것이 사도가 주장하는 핵심이라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으로서 <디모데전서 3장>에서 “~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딤전. 3:16)고 주님을 ‘육신’과 ‘영’의 상태로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결의 영’은 ‘예수님의 영이 거룩한 영’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이 되어 우리 같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영으로는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거룩한 영, 곧 <성결의 영>’으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의 아들’에 대해서 <4절>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진리는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결정적 근거는 ‘부활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사도의 진술을 잘못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이 부활하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은 원래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는데 ‘부활’을 통해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의 부활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인정되다/선포되다’ (declared to)는 것은 그 뜻이 ‘무엇이 되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 것이 증명/확인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중요한 사역의 절정(클라이막스)을 이루는 것이 <부활사건>인데, 사도의 진술과 같이 “~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v.4)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의 아들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장차 그분을 따라 부활하게 될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확증되었다고 바울은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중요하며, 이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증명’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이 누누히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주장했는데, 그 주장이 완벽한 진실함을 이 주님의 부활사건이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주님은 여러 차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 (막. 8:31)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가리키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요한은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21)고 주석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의 뜻을 제자들이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 2:22).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의 말을 완벽히 입증시켰을 뿐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부활’을 그 아들에게 능력으로 행하심으로 자신의 그리스도 되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독교의 사활을 결정하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가 그와 같이 장차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부활하게 됨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영으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완벽하게 메시아의 사역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인정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사렛 예수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며, 왜 그는 우리의 참된 구원의 주님이신지?’를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며 짧고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이 진실로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요, 진정한 ‘자랑과 영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입니까?’ ‘여러분은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점점 자라나고 있습니까?’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그분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 못한다면, 안따깝게도 결코 하나님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도 ‘자랑’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 나감으로 그분 안에 감추인 그 풍성한 보화를 발견하며,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분 안에서 참된 평화와 만족을 누리시길 기대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영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날마다 그 속에서 솟아 나는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