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병기” (An Instrument of Righteousness)
“의의 병기”
(An Instrument of Righteousness)
8-16-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6:13~14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다’ (롬. 6:10-11)는 의미를 묵상해 보았는데, 이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성도가 누릴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임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v.13)는 사도의 권면은, 이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제시하는 실천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자녀>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죄에게 드려 <불의의 병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반대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 <의의 병기>’로 쓰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사용하는 두 단어들을 정의해보자면,
- ‘의의 병기’ (the instrument of righteousness):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몸이 도구 (무기)로 쓰여지는 상태’
- ‘불의의 병기’ (the instrument of unrighteousness): ‘죄와 욕심에 인간의 몸이 지배당해 악한 도구 (무기)로 쓰여지는 상태’
그럼으로 이와 같이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리스를 믿음으로 ‘변화된 성도의 영광스런 존재’인지?>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첫째, ‘아담 안에 속해 있던 <옛사람>은 죽었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그러나 우리의 <몸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의 영적 딜레마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영적으로 정교하게 밝혀주는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방식’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이렇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v.13)라고.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함으로, 축복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 가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그동안 <로마서>를 함께 묵상하며 그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풍성하게 깨닫아 왔습니다. 특별히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사도가 <로마서1장>에서 선포하고 나서, 그 복음의 말할 수 없는 권능과 은혜를 계속 논리적으로 진리의 빛을 통해 밝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축복되고 영광된 삶이 무엇인지를 사도는 그동안 <로마서5장>을 시작하며 밝혀 나왔고, 이 논리가 오늘말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시간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다’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10~11절>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서, 교리적으로 우리 성도의 변화된 신분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11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v.6:11b)는 성도를 향한 도전은 이제 사도가 로마서를 통해 실제적인 첫 믿음의 적용(실천)을 제시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v.13)는 오늘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며, 복음 안에 드러난 구원받은 성도의 심히 풍성하고 강력한 존재양식을 이해하고, 성도의 죄에 대한 관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묵상해 가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먼저 지난 주 살펴본 <10~11절>과 오늘 본문 <13~14절>의 관계를 잠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하여 나눠본 것처럼,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다’는 것은 먼저 우리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부와 성자가 누리는 영원한 살아 있음의 관계’가 우리에게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고,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었다고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이것이 ‘전가되었다’는 의미의 핵심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가 그동안 우리가 함께 <6장3~5절>에서 <침례>의 의미를 통해 살펴본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다시 살아난다>는 ‘성령침례’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나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새 사람이 되었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값이 대신 치루어졌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들의 권세가 우리 성도들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아 의롭게 되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함을 누리는 <하나님을 영광롭게 하며 그분을 즐거워하는> 복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 있는 우리 성도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로마서5장>을 시작하면서 지난 주 <6장11절>까지 진행하며, 이런 살아 있는 관계가 우리 성도의 변화된 존재의 가장 영광스럽고 권세로운 상태라고 결론적으로 밝혔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는 말씀을 진행하면서, 영광스런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변화된 존재의 특권을 논리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밝혀 나왔고, 지난주 <로마서6장11절>에서 나누었듯이, 실제적으로 첫번째 ‘믿음의 적용’이라 할 수 있는 실천적 삶을 권면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v.11)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이어지는 말씀이 <12절>인데,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v.12)라고. 이 말씀은 <13절>로 연결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v.13)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것은, 사도는 <12~13절>에서 새로운 ‘주제’나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6장 1~11절>의 내용을 통해 ‘우리 성도의 변화된 존재’가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그리고 본질적으로 밝힌 것을 기초로 하여, 이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를 성도들을 향해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의 ‘건물세우는 공사’로 비유해 본다면, <6장1~11절>까지의 ‘전반부’는 <성도의 변화된 존재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고, 이어지는 <6장12~23절>까지의 ‘후반부’는 <그 변화된 존재를 인식함을 통해, 이제 어떻게 그 존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적용해 나가는 단계로써, 그 기초 위에 세워지는 ‘건축공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가 강조하는 주제인 <성도가 죄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도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도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역설적 도전입니다. 앞 절 <11절>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우리 존재가 이제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가 되었다면, 다시 말해 ‘우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살게 되었다’면, 이제 더 이상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고 왕 노릇하는 비참한 성도의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미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옛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우리 몸에서 왕 노릇’하는 이와 같은 비참한 영적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면, 사도는 이런 상태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준 상태>로 묘사합니다. 거기에 비해, 예수님 믿고 의롭게 된 새사람 답게 ‘은혜가 왕 노릇’하는 상태를 사도는 <오직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라고 대조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병기’는 영어로는 ‘instrument’로써 ‘도구’ 혹은 ‘무기’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의의 병기’ (the instrument of righteousness)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몸(=몸의 지체)이 도구 (혹은 영적 전쟁에서의 ‘무기’)로 쓰여지는 상태’라는 뜻으로써 <의(순종)의 종/the servant of righteousness> (롬.6:16,18)이라고도 사도는 다양하게 부릅니다. 거기에 비해 ‘불의의 병기’ (the instrument of unrighteousness)는 ‘의의 병기’와 반대적인 개념으로 ‘죄와 욕심에 인간의 몸이 지배당해 악한 도구 (무기)로 쓰여지는 상태’를 의미하며, <죄의 종/the servant of sin> (롬.6:16)이라고 사도는 대조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난 다음, 이제 본격적으로 이런 <교리> 곧 ‘영적 진리/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가 <6장>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존재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존 맥아더목사>는 “성도가 죄를 다스리는 3가지 방법?”으로 사도의 메시지를 요약합니다. 그것은 첫째)‘깨닫는다’ (know)는 것입니다. 곧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변화된 존재/실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5장>을 시작하면서 <6장11절>에 이르기까지 사도가 밝혀온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새사람 되어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 있는 존재’가 우리 거듭난 성도의 변화된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변화된 존재를 인식했다면, 둘째 ‘여긴다’ (reckon)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살아 있는 존재임을 깨닫았다면, 이제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드리다’ (yield)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리다’는 개념은 ‘두번째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적용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대해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 드릴 것인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몸의 사욕 (=죄)에게 순종하여 <불의의 병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의의 병기>’가 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남은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교리’와 ‘행함’은 언제나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앞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서 중요한 ‘진리의 가르침’ 곧 <교리>를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면, 그 진리는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은 제가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 대부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럼으로 로마서에 정통한 여러 성경학자들은 ‘만약 로마서 5,6장을 통해 우리 성도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또 6장후반부의 사도의 권면을 듣고도 ‘믿음의 성장’이 없다면, 그것은 ‘교리 (가르침)를 잘못 이해했거나, 이해만 하고 삶의 적용이 없거나 잘못 적용한 것이다’라고 도전합니다. 우리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 진정한 우리 개인의 회개와 헌신과 교회와 민족적인 참된 영적 부흥의 역사는 언제나 올바른 말씀의 진리가 선포되고, 또한 그 말씀 앞에 빈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의 결단과 변화를 통해서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v.13)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리와 행함’이 함께 가기 위해서는, 앞서도 나누었듯이 먼저 교리를 바로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교리’의 핵심이 되는 ‘성도의 변화된 존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우리 성도의 변화된 실존일까요?’ 그것은 첫째, ‘아담 안에 속해 있던 <옛사람>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이미 죽었고, 이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에 대해 살아 있는 영광스러운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 (지체)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즉시 우리를 천사가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에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깊은 경륜이 있겠지만, 아무튼 이처럼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성도의 영적 딜레마요, 로마서를 통해 사도가 매우 정교하게 밝혀주는 우리 ‘성도의 살아가는 존재 양식’입니다. 따라서, ‘죄가 거하는 몸’ (=죄의 몸/썩어질 몸)을 어떻게 다스리고, 죄를 죽일 수 있을 것인지가 우리 성도의 남은 평생의 미션이요,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한마디로 ‘성화의 과정’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6장에서 우리가 이해할 것은, 사도가 지금 성도의 <성화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동기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도가 본격적으로 ‘성화의 내용’에 대해 다루고 것은 <12장>부터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도의 변화된 존재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을 주는 핵심 이유’는 <비경험적 사건으로 인한 변화>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비경험적 사건’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몸으로 경험함을 통해 이해되어지는 사건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령의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되는 구원의 사건은 <신적 권능에 의한 본질적인 변화>이지만, 그 누구도 그 변화를 느끼거나 신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구원과 새로 거듭남>에 대해 여전히 오해하거나 ‘자신과 죄의 관계’를 올바로 설정하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그 예를 들자면, 사도는 6장을 시작하며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6:2)라고 말하는가 하면, 오늘 말씀에서는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6:13)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사도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살았다고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헷갈리고, 이 말씀들을 잘못 오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이단들이 이런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존재양식’ 곧 ‘죄와의 관계’를 거짓되게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함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와 죄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자칫 오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거짓 가르침 가운데는 ‘바울의 로마서6장에서 밝힌 것같이,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죄에서 죽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죄짓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는 죄 짓지 않는다’는 주장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주장의 핵심은 ‘구원받은 자는 천사처럼 완전히 변화되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해도 죄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은 ‘구원받은 자는 그 어떤 악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죄로 여기지 않고 봐주신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주장이 얼마나 거짓되며, 심각하게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하는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단사상은 최근 들어서만 퍼진 것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때부터 <영지주의> 이단사상 곧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 고로 육체로 범죄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비성경적인 이단사상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 속하였으니 율법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는 <율법폐지론자> 혹은 <무율법주의자>들의 거짓된 주장들이 서로 뒤섞여서, 복음에서 밝히는 ‘우리 성도들의 변화된 신분의 복된 존재 양식’을 오해하게 하고, 이로 인해 ‘죄에 대해 무방비로 장악당하고, 불신자들처럼 죄가 왕 노릇하는 불행한 삶’을 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진리를 왜곡하고 거짓된 가르침을 행하는 자들 배후에는 악한 영 사단 마귀의 간교한 유혹과 영적 공격이 그 핵심을 이룸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우리를 향해 이렇게 깨어 있기를 촉구하는 이유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8,9)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결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가 너희 몸을 다스리고,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의 존재 (영혼)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의 축복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육의 몸을 입고 살아가기에, 우리는 지금도 죄의 강력한 유혹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실존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고, 오해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죄와 온 힘을 다해 피 흘리기까지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말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한가지 중요한 죄의 아비 마귀를 무찌를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라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마귀는 꼬리를 감추고 우리를 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병기가 되어, 마귀와 맞설 때 마귀는 물러가고 죄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처럼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육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의 영광과 의를 드러내는 일에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축복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 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