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30, 2025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Do Not Afraid of Them)

Preacher:
Series:
Passage: 느헤미야 (Nehemiah) 4:14
Service Type: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Do Not Be Afraid of Them)

11-30-25

본문말씀: 느헤미야 (Nehemiah) 4:14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After I looked things over, I stood up and said to the nobles, the officials and the rest of the people. “Do not be afraid of them. Remember the Lord, who is great and awesome, and fight for your brothers,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your wives and your homes.”)

 

[설교 요약]

오늘 ‘느헤미야서’ 본문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이 다시 귀환하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할 때, 지도자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그들을 둘러싼 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느헤미야서’의 저자인 <느헤미야>는 그 ‘이름’의 의미가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 때에 전쟁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의 후손으로써 <3차 포로귀환>시기인 BC 445년에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함으로써 영적으로 무너졌던 <여호와 중심신앙>을 다시 세워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느헤미야는 민족과 함께 영적 부흥을 이룰수 있었을까요?그것은

첫째,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드렸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백성들은 능욕을 당한다는 참담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조상과 민족의 죄악을 가슴에 안고 “주여 ~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느. 1:5-6)라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둘째,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만 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자신과 동족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성벽재건을 추진할 것인지? 를 치밀하게 검토하여 왕에게 요청했던 것입니다 (느. 2장).

셋째, “적들을 담대하게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에는 그것을 방해하는 악한 자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느. 4:14)고 도전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저희보다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넷째,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느헤미야서>의 주제는 단순히 ‘무너진 성벽재건’ (느. 1~6장)만이 아니라, ‘무너진 야훼신앙의 재건’ (느. 7~13장)입니다. 이를 위해, 유다 백성들은 함께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닫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영혼의 안식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느. 8장).

이처럼 느헤미야와 유다 민족들이 영적 대각성을 통해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그 율법을 따라 그분의 백성답게 살고자 결단함으로 영적부흥을 누렸듯이, 함께 말씀의 진리를 깨닫아 죄를 자복함으로 ‘영적 부흥’의 은혜를 누려 나가는 믿음의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은 어느날 삶의 무기력과 공허감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그 중심에 영적 문제가 있음을 이해하십니까? 세상의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도 때로 이런 어두운 터널과 같은 고통의 시간을 지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서’ 본문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백성들이 다시 귀환하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할 때, 지도자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과 권세를 통해 이렇게 그들을 향해 촉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동일하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수많은 적들과 악한 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영 성령과 더불어 싸워 이기라는 하나님의 도전과 격려의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우리 교회에서 함께하는 <매일성경 큐티말씀>인 ‘느헤미야서’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큰 도전과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주 제가 말씀묵상 가운데 깨닫고 누린 은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하는데, 오늘 말씀의 ‘중심주제’ (키워드)는 ‘어떻게 영적부흥을 이루어 갈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저는 잡고 싶습니다.

먼저 ‘느헤미야서’의 자자인 <느헤미야>는 그 ‘이름’의 의미가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잠시 살펴본다면,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서 유다왕국이 패망하게 되었고, 유다 백성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것처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지 70년만에 다시 본토로 귀환하게 되는 감격적인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건국자인 ‘고레스왕’ (=키루스 2세)을 감동시키셔서 사로잡혔던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 본토로 귀환을 허락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유다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축함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자제들을 부족함 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림으로 유대백성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된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 백성들의 포로귀환은 고레스왕 때 시작하여 크게 세차례에 걸쳐 진행되는데, 느헤미야가 중심이 되어 백성들과 본토귀환한 시기는 그 중에서도 세번째 마지막 귀환에 해당하는 주전 445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왕 1세 20년)인데, 이때부터 약 12년간인 주전 432년까지 이루어진 유다왕국 재건 역사에 관한 기록이 ‘느헤미야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다왕국 재건>의 그 중심에는 상징적 (=외형적)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더불어 ‘성벽 재건’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벽재건은 단순한 무너진 담을 다시 쌓아 올린다는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서, ‘유다 민족의 하나님을 향한 내면적인 영적 부흥을 가져오는 통로가 되었음을 저자 느헤미야는 강력하게 우리들에게 말씀 가운데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느헤미야는 자기민족과 함께 영적 부흥을 이룰수 있었을까요?라고 질문하고, 여기에 대해서 말씀 가운데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첫째,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드렸습니다: 먼저 저자 ‘느헤미야서’는 그 첫장 <1장>을 시작하면서, 바벨론 포로의 후손으로써 페르시아왕 ‘아닥사스다’왕궁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의 형제인 ‘하나니’가 본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와서 비통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형제 ‘하나니’는 느헤미야에게 고하기를,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유다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을 불탔다는 것입니다 (느. 1:1-3).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고 여러날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전쟁포로의 후손으로 살아가던 그 당시의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들의 죄라기 보다는 조상들의 죄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왕국을 향해 수없이 많은 그분의 종들을 보내셔서 그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악한 육신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끝끝내 죄를 뉘우치지 않음으로 바벨론을 통해 나라가 망하는 참혹한 심판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바벨론 전쟁포로의 한명이었던 느헤미야도 ‘조상 잘못만난 타령’을 하며 인생을 비관하며 절망하는 삶을 살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자신의 것으로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간절히 회개하며 죄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를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주여 간구하나이다 ~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느. 1:5-6)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느헤미야는 옛적에 하나님께서 <신명기30장1~5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선포하신 약속을 근거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9)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최선의 기도는 겸손하고 정직한 기도임과 동시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근거로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느혜미야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신실한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또 이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땅에 돌아올 수 있도록 간구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함께 나누었듯이, 느헤미야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에게 응답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은 느헤미야만이 아니라, 진실로 회개하고 구하는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은혜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 베푸셔서 왕의 술 담는 관원장이 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백성들과 돌아가 성벽재건을 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 내용이 <느헤미야 2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느헤미야가 근심 중에 있을 때 왕이 그 이유를 묻었고, 그는 ‘자기 조국의 성읍이 훼파 되고 성문이 불타서 방치되었기 때문’임을 왕께 고했을 때, 아닥사스다왕은 파격적인 선처를 함으로써 그와 그의 백성들을 본토로 갈 수 있도록 조치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 베푸셔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이런 선한 조치를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미 수십년 전에 고레스왕을 감동시켜서 유다 백성들을 본토로 돌려보내셨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이 그에게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느. 2:4)라고 그에게 질문했을 때, 그는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며 “한번 생각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분명하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왕에게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치게 될 여러 지역 총독들에게 왕이 조서를 내려 안전하게 자신과 동족들이 지나가도록 조처해 주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과 같이 세계평화와 상호간의 국제법 준수를 통한 인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겠지만, 느헤미야가 살았던 구약의 고대사회에서는 여러 나라를 거쳐 지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자 신변의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일차적으로 정확한 숫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느헤미야를 포함해서 천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차귀환자들(1차: 49,897명, 2차: 1,754명)이 안전하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왕권을 통해 보호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 재건공사를 시작했을 때 필요한 재료, 곧 재목들을 잘 공급받을 수 있도록 또한 왕에게 청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그에게 물었을 때 갑자기 즉흥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해 왔고, 그러기에 철저하게 어떻게 본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넓은 예루살렘을 둘러쌀 성벽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 를 그동안 철저하게 검토하고, 계획하고,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왕이 질문했을 때 그는 잠시 하나님께 마음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는 이렇게 잘 준비된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 그리고 우리 믿음의 공동체의 영적 부흥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도 가운데 철저하게 준비해 오고 있습니까?

셋째, “적들을 담대하게 대적”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페르시아 아닥사스다왕의 파격적인 후원을 입고 조국땅을 향한 감격적인 귀환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와 그의 백성들은 이들이 마음 먹은데로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 일을 아무런 난관 없이 순풍에 돛단듯이 일사천리로 진행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들이 다시 성벽을 세우고자 하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모셔져 있는 예루살렘’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여 거룩하게 세우신 예루살렘’도성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런 하나님의 도성을 지키는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역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방해하고 중단시키려는 악한 세력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헤미야서>를 좀더 구체적으로 읽고 묵상해 볼 때, 이런 성벽의 대역사를 방해하는 악한 적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첫째, ‘외부의 적’이요, 둘째는 ‘내부의 적’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외부의 적”은 느헤미야가 여러 번 언급하듯이, <호론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 등>입니다. 이들은 유다 민족과 섞여 살면서도 이들이 잘 되는 것을 바라거나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고 시기했습니다. 암몬사람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느. 4:3)고 유다 백성들과 성벽의 건축상태를 조롱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건축역사를 집요하게 방해했으며, 방해공작이 마음 먹은데로 잘 먹히지 않자 급기야는 지도자 느헤미야를 암살하고자 하는 교활하고도 극악한 방법도 스스럼없이 행하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두번쨰로 유다 백성들의 성벽건축을 방해하는 “내부의 적”도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 내부의 적은 그 무엇보다도 ‘유다 백성들이 하나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기 민족들 안의 적’인 것입니다. 이 내용이 <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5장>은 시작하면서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느. 5:1~5)라고 가난한 백성들이 귀족들과 관리들을 크게 원망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진 자들이 가난한 동족을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고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제때에 갚지 않으면 그들의 땅을 압수하고 심지어 그들을 종으로 파는 비정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지도자 느헤미야는 이렇게 속에서 살이 곯듯이 동족을 갈라지게 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몇몇 가진 자들을 모두 모아 크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돈과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겠다고 했을 때 그는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께 맹세케 함으로써 그 맹세를 변개치 못하게 못을 박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다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적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적들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성전이 모셔 있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성 성벽공사를 완성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호시 탐탐 성벽공사를 방해하려는 악한 이방인들의 공격을 막고자 백성의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전투태세에 돌입하고, 그 나머지 절반은 벽돌과 삽을 들고 성벽공사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느헤미야는 오늘 본문말씀과 같이 적들과 싸우고 또한 일하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담대하게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느. 4:14)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느헤미야는 악한 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도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소망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한발 먼저 그들과 싸우시기 때문이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성령으로 싸워 승리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민. 14:9)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예루살렘 성벽재건’공사는 눈에 보이는 ‘건축공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역사하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너진 하나님중심의 신앙을 다시 세우는 부흥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이기에, 결코 방해하는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와 함께 싸워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 중에서 ‘느헤미야서’를 자세히 읽고 묵상하신 분은 이해하시겠지만, <느헤미야서>의 주제는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벽을 다시 세우는 건축과정의 기록’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을 <느헤미야서>의 구성에서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예루살렘 성벽공사’에 대한 내용은 <6장>에서 그 성벽이 완공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3장>까지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7장>에서부터 <13장>까지 이르는 ‘느헤미야서’후반부에서 그가 말씀을 마무리해가면서 정말 주장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무너졌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첫째) “율법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8장>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학자 에스라가 낭독하는 하나님의 율법책의 말씀을 들었고, 또한 여러 레위인들이 그들 가운데 돌아다니며 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을 때, 그들이 말씀으로 인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부끄러움과 뉘우침으로 회개의 눈물을 모두 흘렸던 것입니다 (느. 8:8~9). 그러나 에스라와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느. 8:9)고 타일렀고, 느헤미야는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0)고 말했을 때, 백성들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영혼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모든 이스라엘백성의 민족적인 대각성 (=회개)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9장>에서부터 <13장>끝장까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깨닫고, 그 말씀을 깨닫은 만큼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전민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금식하며 눈물로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공사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려 드린 것에서 시작하였음을 말씀드렸는데, 이제 느헤미야서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그 회개가 느헤미야 한사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 민족으로 확산되고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회개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나의 더러운 죄와 얼룩진 정욕을 모두 하나님께 내어 놓고 용서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저질렀던 죄악 곧, ‘우상숭배와 육신의 정욕, 이방인과 통혼, 안식일을 어기는 모든 죄들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고, 이런 악한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바로 전 <민족적인 영적 대각성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으로 ‘느헤미야서는 <무너진 성벽재건>으로 시작하여 <무너진 하나님 중심신앙 재건>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영적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삶의 무기력감과 좌절과 절망적인 순간을 경험하지는 않습니까? 그 근본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중심에 ‘영적 문제’가 있음을 이해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적들을 봅니다. 그 적들은 외부의 적들 뿐 아니라, 내부의 적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적들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그들보다 강하시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적들과 싸워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느헤미야가 백성들과 하나되어 ‘하나님중심의 영적 부흥’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고 우리 아포슬 공동체가 함께 더욱 말씀을 깊이 공부함으로, 그 진리의 말씀을 통해 나의 죄를 깨닫고 참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을 모시고 영적 성벽을 함께 쌓아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며 충만한 영적 부흥의 은혜를 누려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Top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