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 (God’s Heart)
“하나님의 마음”
(God’s Heart)
11-2-25
본문말씀: 에스겔 (Ezekiel) 33:11
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Say to them, ‘As surely as I live, declares the Sovereign Lord, I tak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the wicked, but rather that they turn from their ways and live. Turn! Turn from your evil ways! Why will you die, O house of Israel?’)
[설교 요약]
저는 <에스겔 33장>의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v.11)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인간은 각자가 택한 방식을 따라 다양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 중심에 ‘자유의지’ (Free will)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먼저, 인간의 ‘자유의지’은 큰 그림에서 ‘첫 인간 부부의 타락사건’의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창. 3장). 그럼으로 저는 이 <타락사건>에서 3가지 질문과 대답을 해 봅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줄 모르셨나요?”: 전지하신 하나님은 분명 아셨을 것입니다 (단. 2:29)
둘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줄 아셨다면, 왜 주셨나요?”: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을 닮은’ (창. 1:26) 존재를 가지기 원하셨기 때문에, 잘못사용 할 줄 아시면서도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셋째,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어떤 계획을 마련해 놓으셨나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엡. 1:4) 구원할 완벽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놀라운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밝혔는데, 그분은 ‘인간이 창조되기전, 아니 천지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깊고 놀라운 뜻이요, 우리를 향하신 긍휼과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v.11)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은 ‘마음씨 좋은 하나님’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죄악을 헤매는 우리를 건져 내시는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롬. 8:32)의 마음을 날마다 깨닫음으로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 약속하신 자녀의 영광을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지난 주일 예배 후 친교시간에 오랜만에 성도 여러분과 함께 <큐티말씀>을 나누며 의미있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역대하 33장>말씀을 통해 함께 말씀을 묵상했는데, 서로 나누는 가운데 여러분들의 말씀에 대한 다양하고 참신한 시각과 깨닫음 그리고 의문점에 대해 나누면서, 저도 그 말씀들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되었고, 그 깨닫은 점을 중심으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 곧 ‘악인이 심판 받아 멸망당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요, 반대로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그분의 넓은 품에 안겨 영원토록 살아가도록 복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 인간을 향한 선하신 뜻과 구원의 비밀을 한걸음 더 구체적으로 이해함’을 통해 깨닫고 그 좋으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복된 시간되길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지난 주일 <큐티나눔>했던 ‘역대하 33장’은 남유다 왕국에서 대표적인 믿음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왕의 아들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에 있을 때의 기록입니다. 이들을 총평하자면, 먼저 므낫세왕은 예루살렘에서 통치한 기간이 무려 55년이나 되는데 이것은 유다왕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우상숭배를 행하는 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로 공격을 받아 바벨론에 쇠사슬로 결박된 채 끌려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는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그제서야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제단을 보수하여 그분께만 제사를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므낫세는 악한 삶으로 인생을 출발했지만, 고난가운데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뉘우쳐 하나님께로 되돌아옴으로 인생후반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들 ‘아몬’은 한마디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2년간 다스렸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모든 우상숭배를 행하고,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죄악 가운데 큰 고통을 받다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돌아옴을 보고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더욱 범죄함으로 결국 신하들의 반역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처럼 악한 삶으로 출발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 므낫세가 늦게나마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데 비해서 그는 끝끝내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그 악에서 뉘우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말미암아 결국 신하들의 배신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참한 종말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왕, ‘므낫세’와 ‘아몬’왕의 삶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두신 뜻과 그분의 원하심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대하서>에서 기록된 여러 유다왕들 뿐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 한명 한명에게 두신 하나님의 신실한 마음은 무엇인지를 잘 밝 혀주시는 말씀의 하나가 바로 오늘 <에스겔서>의 말씀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반대로 악인이 그 길에서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켜 오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v. 11) 라고 말입니다.
먼저 우리는 함께 좀더 큰 그림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죄>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큐티나눔을 하면서 므낫세와 아몬왕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통해 살아간 삶의 결과들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함께 나눈 바 있습니다. 이 점을 좀더 정확히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저는 <창세기3장>에서 <‘첫 인간부부’의 타락사건>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대부분도 이 타락의 스토리를 아시겠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 1:26)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을 처음 만드실 때 ‘아담과 하와’는 우리처럼 죄의 유전으로 인해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단 한가지 명령,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는 단 하나의 <계명/금지사항>조차도 지키지 못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첫 인간부부의 타락에 있어서 그 타락을 가능케 한 핵심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저는 이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왜 하나님을 반역했는지?!) 그리고 이 자유의지는 어쩌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선하신 형상과 모양’을 닮은 가장 중심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많은 신학자들이 수많은 창조물 중 ‘우리 인간과 하늘의 천사들’만이 이 자유의지가 주어졌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저도 동물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자유의지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고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우리 인간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벧후. 1:4)가 되어 이 완전한 성화와 거룩을 향한 영광스러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축복된 자유의지가 도리어 인간을 ‘죄짓게 하고, 타락으로 몰아가는 도구’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류역사 최대의 비극인 <첫 인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 타락사건을 통해 제가 먼저 질문하게 되는 것은 (A)“하나님은 비록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지만, 결국 그들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타락할 것을 모르셨는가?”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론 하나님은 아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아시는 ‘전지’ (全知/omniscience)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미래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은 (B)“만약 하나님이 인간부부가 이렇게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타락할 줄 아셨다면, 왜 그것을 인간에게 주셨는가?”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자신과 가장 닮은 존재’ 곧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모양을 빼 닮은 존재’로 만드시길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닮은 자녀를 가지길 원하듯이, 하나님도 자신을 빼 닮은 그분의 창조물을 갖기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깃들여 있고, 특별히 살아 있는 생명체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숨쉬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우리 인간을 ‘창조의 면류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자유의지’가 없다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욱 더 알아 나가며 인격적 결단을 통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신분의 자유와 축복된 은혜를 누리는 그분의 자녀가 결코 될 수 없음을 하나님은 잘 아셨기에, 그 타락을 아시면서도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리스크> (the risk of God)이라고 저는 표현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고 개나 고양이처럼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빼 닮은 창조물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리스크’ (위험성/위기)를 감소하시면서도 우리 인간을 자유의지를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세번째 질문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C)“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 대한 어떤 계획이 있으셨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타락할 것도 아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그 어떤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알고 계셨고 또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실지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미리 세워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계획은 무엇이며, 언제 세워 두셨을까요? 먼저 하나님은 그 계획을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도 전에, 아니 천지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어디 있느냐구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엡. 1:4,5)라고 성령의 충만하신 영감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할 선한 계획을 우리를 만드시기도 전에 가지신 이유는 우리의 존재를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표현과 같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머리터럭까지도 다 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케 하는 축복된 것이지만, 문제는 이것을 잘못 사용함으로 범죄하고, 타락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하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간부부가 비록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 되었지만, 이것이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듯이 언젠가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실 뿐 아니라, 중요한 것은 타락 이후에 벌어질 모든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분의 선하신 뜻을 따라 구원하실 놀라운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구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엡. 1:4)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크리스토스>로써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장차 오셔서 우리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메시아>’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라는 의미는 ‘2천여년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나님은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는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우리 대부분은 이것을 잘 압니다. 단지 제가 한마디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으심은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죄를 대신 갚아 주기에 넉넉한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번 죽으심은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하여 넉넉히 갚아 주시는 피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그분의 죽으심 이후에 속한 성도뿐 만 아니라, 그 이전에 살았던 모든 성도들의 죄까지도 갚아 주시는 놀라운 능력의 ‘대속죽음’이라고 지난번 <히브리서>설교말씀에서 함께 나눈 바 있습니다. 주님의 생명의 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어떤 우리 인간의 죄도 넉넉히 덮을 만큼 크고 값진 보혈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저는 무엇이 과연 하나님의 마음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v.11)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셨는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지 ‘하나님은 이처럼 마음씨 좋은 하나님’이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팍하고 포학한 신이 아니다’는 것이 요점이 아니라, 악인이 돌이켜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는 회개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축복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큰 그림에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첫 인간부부의 타락사건에서 시작하여 ‘자유의지’가 가져올 축복과 저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하면서도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마음’임을 자세히 설명 드린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뻐하지만, 그 죄인을 살릴 수는 없는 나약하고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를 위해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감히 더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실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 그 어떤 추가적인 하나님의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여러분 중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그 아들의 선하신 생명이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추가적으로 행하실 것은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이제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성도 여러분과 정리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듯이, 지난 주일 함께 ‘큐티 나눔’ 했던 유다의 두 왕 <므낫세>와 <아몬> 뿐 아니라, 유다의 모든 왕들의 대를 이어 계속하는 삶의 궤적을 통해 끊임없는 신앙의 등락을 보면서, 이것을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지난주 한 형제의 말처럼, ‘한번은 악한 왕, 그리고 또 한번은 신앙 좋은 왕’으로 이어지는 이런 무한반복의 신앙의 굴곡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와 같은 유다 왕들의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우리 인간의 눈에는 <무한반복>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이 모든 ‘죄와 사망에 갇히고 장악된 인간의 허물과 절망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힘차게 선언한 것처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는 것입니다.
바로 구약의 선지자였던 호세아는 이스라엘백성을 향해 하나님께로 되돌아 갈 것을 이렇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그 길까지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선언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라고 말입니다. 저는 청년시절, 잘못된 ‘기독교 교리’로 인해 신앙의 많은 갈등과 현실적인 부적응을 겪으며 상당시간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저의 누나와 주위 환경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오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동신교회 대학부에서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되돌아와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깨닫은 진리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을 믿어 구원받을 수 있는 오직 유일한 열쇠를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교회로 돌아와서 성경공부하기 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요, 구원자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지식적으로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된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있는가 하고 많은 시간을 방황하고 헤매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 사실을 깨닫고 그 당시 여러분과 같은 학생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감사와 감격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치루신 희생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하게 깨닫고, 더 크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확히 이 깨닫음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깨닫은 우리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한량없으신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라고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소중한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과 저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그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면, 그 밖의 무엇인들 못주시겠느냐?!’ ‘만약 그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다면, 그 밖의 무엇인들 아깝다고 주시지 않으시며, 그 아들과 함께 유업으로 주시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권세자들이나 생명이나 악한 영들이나 세상 주관자들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이유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분의 아들과 딸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선하시고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더 알아 나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고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그리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인지를 <요한복음>에서 너무도 잘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는 세상을 심판하고자 하심이 아니요, 구원코자 그 아들을 보내셨으며, 그 아들을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기를 기뻐하시는 선한 하늘 아버지십니다. 오늘 이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다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즐거움을 삼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열매를 거두고, 자유의지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자녀의 장성한 인격에 이르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