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 2018

“하나님 나라는” (For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14:17
Service Type:

“하나님의 나라는”

(For the kingdom of God is)

5-20-18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4:17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 입니다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서 론>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는’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의 시간 가지길 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글 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짧게 나마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어떤 곳인지?’ 하는 것과 ‘과연 나는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를 돌아볼수 있는 훌륭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 뿐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오늘부터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고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본 론>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배경말씀이 되는 <롬.14장>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롬. 14장>은 그 당시 로마교회 안에서 팽배해 있었던 ‘음식문제로 인한 갈등’을 사도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 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서라는 로마서를 이제 마무리해가는 시점에서 바울이 교마교회 안의 음식으로 인한 갈등요인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된것이 무엇인지를 로마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이해했다면 이제 여러분의 교회 안에 있는 문제를 그 믿음의 원리를 적용해서 해결해 보세요!?> 라고 사도바울이 격려하고 도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먼저, 로마교회의 음식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당시 로마제국의 신전에서 우상숭배때 사용했던 짐승의 고기들이 블랙마켓을 통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로마교회 성도들간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 먹을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이슈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크게 2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한그룹은 ‘그 고기중에 우상숭배로 바쳐졌던 고기가 섞여 있다면 우리는 신앙양심상 도저히 그것을 먹어선 않된다’ 고 주장했고, 또 다른 그룹은 ‘그 고기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단지 음식이다. 이 음식을 먹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믿음으로 살면 되는것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두가지 주장이 팽팽하게 서로 대립되어 로마교회에 심각한 갈등을 빗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런 로마교회의 갈등에 대해서 듣게된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먼저 복음의 진리와 길을 제시한 다음,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공동체의 문제점을 그 복음의 원리를 통해 이제 한번 해결해 보라고 격려하고 도전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롬. 14:17>이 쓰여지게 된 로마서 14장 전체의 배경설명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 음식문제를 지혜롭게 돕기 위해서 오늘 본문 바로 앞절에서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 합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v.15,16) 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로마교회처럼 음식의 문제가 되었건, 혹은 물질의 문제, 정직성의 문제나 인간 관계의 문제나 그 어떤 문제가 되었건간에 그것으로 인하여 그 형제를 근심케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이유라고 바울은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그 형제를 내가 비난하는 그 문제로 망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기억하라!’ 고 도전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바로 파악 했다면, 오늘 말씀에서 ‘왜 사도바울이 음식문제에서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고 있는지?’ 를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 곧 음식문제에 죽고 사는 그런 곳> 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짧게 정의 하기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 입니다 (For the kingdom of God is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언급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삶’ 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입니다. 영원무궁토록 그분의 주권과 능력으로 통치하시고, 다시리시는 나라인 것 입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출. 15:18) 라고 묘사했고, 다윗왕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 103:19) 라고 그의 나라를 찬양 했습니다.

두번째, <약속의 씨, 메시야가 오심으로 시작되는 나라> 입니다: 구약에서는 그분의 나라는 <약속의 씨, 곧 메시야가 오심으로 시작되는 나라>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다’ 는 뜻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서 처음 시작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듯이 첫인간부부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어짐을 통하여 다시 새롭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의로우신 통치의 시작’ 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바로 그동안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끊어졌던 그분의 온전하신 통치하심의 역사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 회복된다는 뜻 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 (=시작) 라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인류를 위해 약속하신 구원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실현된다고 여러 선지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한 것 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 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미가 5:2,4)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그분을 예비하기 위해 먼저 태어난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3:2) 고 외쳤고, 더디어 주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을때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고 선포 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시간적인 개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문 앞까지 이러렀다고 선언 합니다. 바로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려나갈 메시야가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의 조건을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 임’을 지적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되고자 원한다면,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고 촉구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믿는다는 것’ 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 (막. 1:14/ 롬. 1:1) 의 핵심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게 하신다’ (요. 3:16)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내가 아직도 ‘내죄를 진실로 회개하고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구원 받지 못했으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아님’ 을 우리는 이런 성경의 주장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아야 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약속의 영, 성령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나라>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겠습니까?” (눅. 17:20a) 라고 주께 묻었을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b,21) 고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 볼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적인 개념>으로 질문 했을때 주님은 그것을 <현재적인 개념> 으로 대답 하셨다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다’ 는 것 입니다. 미래의 언젠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의 나라는 임했고 시작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나라를 <장소적인 개념> 으로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것 입니다. 무슨 말 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으로 지구를 떠나서 우주 겔럭시 너머 까마득히 멀고 먼 어느곳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 안에 존재한다’ 는 것 입니다. 주님의 몸되신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주께서 약속하신 영,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던진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라는 중요한 주제를 이해하는 기초가 될것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는 그분의 나라인데, 그 나라는 그의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 된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약속하신 성령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점점 더 확장되고 완성되어 가는 나라 (마. 13장)> 인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자라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적용해 볼 차례 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 입니다” (17) 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 이라고 정의하고 있을까요? 그 대표적인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면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고 앞에서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영적 생명을 허락하실뿐 아니라 (요. 3: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절대적인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신분으로 성장하게 하신다는 것 입니다. 바로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게’ 하시고,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여 주시는 분이 오직 성령님이기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이 8장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우리는 여러차례 살펴 보았습니다.

정리해 볼때,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결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치지 않고 구원 얻을 다른 길을 허락지 않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영, 성령을 거치지 않고는 그 어떤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특권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면 할수록 분명하게 깨닫을수 있는 진리라는 것 입니다. 이점을 이해할때, 왜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면서 이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17) 라고 설명했는지 더욱 이해가 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성령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특권’ 입니다. 그렇다면, 그 특권이 무엇이라는 말 입니까? 그것을 바울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 이라고 설명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 즉,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존재하는 주님의 교회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라는 것 입니다. 물론, 이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은 성령 안에서 우리 각자가 누리가 되고, 우리가 함께 모였을때 공동체를 통해서 또한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이런 영적 축복을 누려나가고 있는가?’ 를 물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먼저, 각자가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말 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 관계성 속에서 성령의 역할> 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증거를 누리고 있다면, 또한 공동체 관계성 속에서도 동일한 증거와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 열매는 무엇 입니까?’ 바로 ‘의로움’ (righteousness) ‘평화’ (peace) ‘기쁨’ (joy) 입니다. 이 3단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이 도전하는 것은 ‘과연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형제들을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의 관계로 맺어 나갈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서로 생각이 비슷하고, 자라온 환경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할때 동질감을 갖고 쉽게 친해지고 서로를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로마교회의 문제점에서 보듯이 ‘음식문제’ 로 인해 서로가 갈등을 겪게 되었을때, 과연 어떻게 나의 확신과 주장을 접고 상대의 의견을 고려하고 수용할수 있을것인가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임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음식의 문제이든, 성격의 문제이든, 혹은 가치관의 문제이든 이것이 발생했을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안타깝게도 로마교회처럼 서로를 ‘정죄’하거나, ‘비난 하고 왕따’시키거나, 아니면 ‘서로 무관심하고 무시하면서’ 갈라지고 찢어진 공동체가 된다는 것 입니다. 성령 안에서 그의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가 되기를 서로 거부하며, 주의 성령을 통하여 하나되는 몸되기를 거부한다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왜 이런 아름답지 못한 교회의 모습이 초대교회 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존재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 이유를 사도바울은 “ ~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v.15) 고 날까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먹는 문제이든, 마시는 문제이든, 성격이나 가치관, 그리고 어떤 이유이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교회가 갈등을 겪고 하나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행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바로 주님의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는 명령을 지키지 않았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할수록 저는 왜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사랑하라’ 는 명령을 지키지 않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라 할찌라도 성령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그의 능력을 입지 않으면,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결코 실천할수 없다는 것이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성도에게 강조하고 도전하는 중심 메세지이기 때문 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주님의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 할수도 없고, 우리 안에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이라는 축복된 열매을 맺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우리는 이런 복된 열매를,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켜 갈수 있는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포슬 교회는 지금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주님의 몸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성경은 “ ~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말할수 없다” (고전. 12:3) 라고 말씀 합니다. 또한 “오직 성령이 임하실때 우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될것이다” (행. 1:8) 고 선언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뿐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이 진정한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유일한 근거 (the Source) 가 되십니다. 내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판단과 무관심은 어쩌면 여러분과 제가 아직도 성령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분께 순종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 성령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함을 통하여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으로 하나되는 복된 아포슬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