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2, 2021

“마음의 눈을 밝히사” (Enlightening The Eyes Of Your Heart)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1:17~19
Service Type:

“마음의 눈을 밝히사”

(Enlightening The Eyes Of Your Heart)

12-12-21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I pray also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the saints,)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like the working of His mighty strength)

[설교 요약]

            저는 가끔씩 ‘불행한 크리스챤’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불행한 크리스챤’이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여전히 영적 어두움과 무지 속에서 헤매는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의 은혜로 어두운 영적 눈을 밝히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한 크리스챤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에베소 성도를 향한 깊은 사랑과 영적 축복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v.17)라고. 바울이 성도를 위한 간구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for knowing God)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사도는 이렇게 구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may give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라고.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 성령을 보내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더 알아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지혜와 계시는 무엇입니까?

  • 무엇이 ‘지혜’입니까?: 잠언서 기자는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고. ‘하나님 경외’ (Fear the Lord)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도를 인도합니다 (고전.2:10).
  • 무엇이 ‘계시’입니까?: 사도는 앞 절에서 ‘복음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1) 그 아들의 피로서 우리를 죄 씻어 주심 (2) ‘지혜와 총명’으로 계속해서 부어주심 (3)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든 것이 교회 안에서 통일되게 하심 (v.7~10) 이라고. 이 복음의 비밀이 성령의 계시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성령의 계시는 신구약의 저자들 뿐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하심>으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눈’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빛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깊은 사귐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가끔씩 ‘불행한 크리스챤’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불행한 크리스챤’이란 말은 왠지 어색하고 우리 크리스챤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주위를 돌아본다면, <불행한 크리스챤이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고백합니다. 이 말은 ‘행복한 크리스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평화 가운데 살아가는 크리스챤’이 결코 많지 않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를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행하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 가운데 우리는 “왜 오늘날 이토록 불행한 크리스챤들이 많은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구원받은 성도가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 성도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중심엔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오늘 말씀에서 우리 마음의 눈을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아직도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영적 어두움과 무지 속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약속의 성령님을 더욱 신뢰함으로 어두운 눈을 밝히고, 허락하신 은혜를 통해 참된 빛 가운데 행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난 3주동안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를 위하여 예비하신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위하여 성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합력하심으로 일하시고 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도는 앞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모든 성도를 위한 축복된 예정하심을 선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성도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있습니다. 사도는 무엇을 기도합니까? 먼저, 사도는 오늘 본문 앞 <16절>에서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v.16)라고 고백합니다. 에베소 성도를 생각하며 기도할 적 마다, 사도는 그들로 인한 감사가 먼저 넘쳐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그 성도들로 부터 들려오는 기쁜 소식들로 인해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린 것이라 믿습니다. 마치 장성한 자녀가 부모와 떨어져서 여러 해를 지나다가 그 자녀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게 성장했음을 그 부모가 듣고서 기쁨과 감격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영적으로 더욱 잘 지켜 주시기를 감사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도는 감사하고 나서 축복된 기도를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v.17)라고. 사도는 그의 영적 자녀인 에베소 성도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시작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잘 기억하는 대로 ‘<인간의 근본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번째 질문에서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놀라운 영적 통찰력으로 신실한 성도들은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참된 삶의 목적임을 우리가 깨닫고 인정한다면, 그 다음 질문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한 그분을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인가’ 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우선되는 삶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도리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또한 즐거워할 수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누누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가 그의 사랑하는 영적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 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라고 우리가 다시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렇게 우리 크리스챤이 ‘하나님을 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구원받았다’ 혹은 ‘진리를 깨닫았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하시겠지만, 문제는 세상사람들이 사용하는 ‘구원’이나 ‘진리’라는 개념은 그 개인이나 집단 혹은 종교집단의 성격에 따라서 매우 상이함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저마다 서로 다른 진리를, 서로 다른 구원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와 철학과 사상을 통해서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깨닫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앞 시간에서 우리가 살펴 본대로, 세상의 그 어떤 훌륭한 철학자나 사상가나 도덕군자도 자신의 지혜와 명철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도는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기 원해서는 먼저 ‘지혜와 계시의 정신’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이 주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 입니까?’ 여기서 ‘정신’은 가장 헬라어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흠정역’ (KJV)에서는 ‘영’ (The Spirit)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성령’ (The Holy Spirit)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강조하지만, 이것이 ‘왜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밝히는 2가지 사역 때문입니다. 그 첫째는 <지혜>(wisdom) 이고, 다음은 <계시>(revelation) 입니다.

먼저, 무엇이 <지혜>입니까? 우리는 그동안 몇번의 설교를 통해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혜는 세상사람들이 가진 지혜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잠언서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시. 14:1)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성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라고.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고전. 1:27)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진리의 주인되신 성령님만이 이 지혜를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계시>입니까? 우리는 2주전에 ‘그 뜻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엡. 1:7~10>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는 그 선하신 뜻의 비밀’을 그의 택한 자녀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로 감추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복음 안에 <감춰진 비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드러난 비밀>이요, <계시된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그 밝혀진 계시가 무엇입니까? 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여러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 (구원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 용서 하신다는 것이요, 방금 살펴 본대로 성경을 통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신다는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진실인 줄 아십니까? 거듭나지 않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함께 하나로 연결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이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 드러난 비밀이 전혀 감동스럽지도 않고, 관심조차 없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빠트릴 수 없는 <계시>의 의미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아 아는 것’을 넘어서서 ‘거룩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굽’과 ‘광야의 훈련’이라는 미션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서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8) 라고 엄청난 주장을 감히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당돌하기까지 한 모세의 요구에 진노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를 바위에 숨기시고 손으로 그를 덮으시면서도,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출. 33:21~23). 왜냐하면, 모세가 원한 것은 그 어떤 단순한 호기심이나 부귀나 영광이나 세상적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한 사람 뿐 아니라,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하신 그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통해 얼마나 더욱 자신을 계시하기 원하실까요?

또 한가지 예로써 ‘브라더 로렌스’라고 불리는 16세기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생활했던 형제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전쟁에 나가서 심한 부상으로 평생을 장애자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그는 50살이 넘어갈때 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동기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로렌스 형제는 정규 수도사 교육을 받지 못했음으로 수도원에서 식당의 음식을 만든다든지, 설거지나 신발 수선과 같은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0년가량의 수도원생활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를 누려 나갔던 것입니다. 그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식사했던 그릇을 씻으면서도 하나님과의 하나되는 깊은 임재의 은혜를 누렸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영적 경험을 토대로 훗날 <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란 놀라운 영적 유산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책에서 한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게 있어 일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주방에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서로 무언가를 요구하며 목청을 높이는 동안에도 나는 성찬식 빵을 받기 위해 무릎 꿇고 있는 순간처럼 더 없는 평온함 속에 하나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번잡한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하게 성례전의 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허락하신 계시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경험하는 계시의 은혜는 결코 초대교회에만 주어진 은혜가 아닙니다. 이 충만한 은혜는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세상이 악해지면 질수록, 악한 영의 영적 공격과 전투가 치열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더욱 충만하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계시의 영을 가졌으며, 또한 누리고 있습니까?

저는 이것이 바로 제가 오늘 설교제목으로 잡은 사도가 성도들을 향해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린 내용이라 믿습니다. 바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알아 나가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나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각에 뛰어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충만한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 자신을 더욱 알아가고 그분과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는 뜻이요, ‘성도의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어두운 마음의 눈이 빛 가운데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의 생명과 진리의 빛을 우리 마음 가운데 비쳐 주실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성령의 밝은 비춤’을 경험했다면,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주어질 것인가를 사도는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v.18~19)고 말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졌을 때 찾아오게 되는 3가지 영적 축복입니다. 바로  ‘성령의 밝은 빛가운데 비춤을 받았을 때, 우리는 ‘부르심의 소망’ (비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며 (v.18a),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광스러운 풍성한 유업(=유산)’을 이해하며 (18b),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v.10). 사도는 지금 이와 같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광스런 영적 상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이런 성령의 은혜를 통해 마음의 눈을 밝히고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소망하기는 이 놀라우신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성령님을 더욱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참된 빛을 통하여 주께서 여러분을 왜 부르셨는지를 소망가운데 깨달아 나가고,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