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5, 2021

“약속의 성령” (The Promised Holy Spirit)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1:13~14
Service Type:

“약속의 성령”

(The Promised Holy Spirit)

12-5-21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1:13~14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Having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 – to the praise of His glory.)

[설교 요약]

우리는 계속해서 <엡. 1:3>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위해 예정하신 ‘신령한 복’에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 전에 성부께서 계획’ 하셨고 (v.4~6), ‘성자께서 그 뜻을 따라 실행’ 하셨으며 (v.7~12), ‘성령께서 그 결과들이 성도의 삶에 적용’ (v.13~14)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행하신 사역, 즉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사도의 설명입니다.

먼저, ‘인치심’ (The sealing)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에서 1) ‘권위의 상징’으로, 2) ‘소유자의 표시’로, 그리고 3) ‘안전보장’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봅니다. 그리고, ‘보증’ (guarantee)의 뜻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책임지고, 틀림이 없음을 증명함’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치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무엇이 성령의 인치심이 아닌지? 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첫째, ‘거듭남’은 인치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중에는 성령에 의해 거듭나게 되는 것이 곧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고전. 12:13)라는 말씀을 근거로 거듭남과 인치심 (=성령세례)을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인치심이 아닙니다.

둘째, ‘성화’는 인치심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ERV>성경은 “그 안에서 또한 너희가 믿은 다음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느니라” (In whom also after that ye believed ye were sealed with that Holy Spirit of promise) (v. 13/ERV) 라고 번역합니다. 인치심은 성화와 같이 구원받은 순간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은사’는 인치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성령의 은사’와 ‘인치심’을 동일시합니다. 성령의 은사 곧 ‘방언, 예언, 병 고침, 능력 행함, 영적 분별’ (고전. 12:8~10) 받은 것을 인치심 받은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 이유는 교회를 섬겨 나가고 함께 세움을 입고자 (엡. 4:12) 주신 것입니다. 은사와 인치심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령의 인치심입니까?” (What is the meaning of the sealing of the Holy Spirit?) ‘성령의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행하심을 통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유업 (=신령한 복)을 성령의 보증으로써 확신시켜 주심’입니다. 이 인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고자 함입니다. 바라기는 약속의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그의 인쳐 주심을 통해 주님의 충만한 기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 가운데 가장 다양한 의견과 논란을 일으키는 이슈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에 관련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성령’에 관련된 이슈만큼 다양하게 이해되고 적용되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한다면, ‘성령’만큼 우리 성도의 삶에서 다양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도 없다는 말이 됨과 동시에, 또 한편에서 ‘성령’만큼 우리 크리스챤이 아직도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제가 만나 본 성도들 가운데는 특별히 성령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사역’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하나님’의 뜻보다는 ‘성령에 의한 다스림’ 곧 ‘성령충만’ 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성도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로 성령에 대한 매우 회의적이고 의심스런 신학관을 견지하는 지체도 꾀나 많았습니다. 물론, 성령님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성령충만’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뭔가 비성경적이고, 비인격적인 삶에 대한 거부감의 반로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어찌되었건 문제점은 성삼위의 제 3위격에 해당하는 성령님에 대한 인식과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데로 ‘지나친 성령충만파’가 있는가 하면 ‘성령 냉소파’가 있는 것입니다. 좌로든 우로든 치우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 인치심’이란 제목의 말씀을 통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은 누구시고, 그분의 사역은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성경관을 통해 건전한 영성으로 자라가는 우리 아포슬 공동체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엡. 1:3>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위해 예정하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모든 신령한 복은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 (=예정)’ 하셨고 (v.4~6),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뜻을 따라 실행’ 하셨으며 (v.7~12), ‘성령께서 그 결과들이 성도의 삶에 적용’ 하시는 것임을 우리는 먼저 요약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v.13~14). 그리고 지난 시간 ‘그 아들이 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곧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아 가는 철든 자녀가 되어가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하신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약의 제자들을 통해 복음의 진리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밝혀진 그 뜻의 비밀입니다. 다시 말해, 밝혀진 복음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 아들이 이루신 신령한 복을 어떻게 우리 성도의 삶 속에서 열매 맺을 것인가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행하신 사역’을 통해 우리 가운데 적용하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는 선언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v.13~14) 라고.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좀더 분명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약속의 성령은 누구신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는 그것을 우리에게 설명하면서 한마디로 ‘성령은 믿는 성도들을 인치신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는 ‘성령의 인치시는 사역’은 성도의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결과를 이루는 사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엇이 성령의 인치심인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듯이, 성령에 대한 매우 다양하고도 편향된 시각은 우리 성도가 성령님이 누구신지를 더욱 올바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살펴봄에 있어서 2단어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인침’과 ‘보증’입니다. 먼저, ‘인침’ (The sealing)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인침’ (the sealing)는 의미1) ‘권위’를 상징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돌무덤에 안치되셨을 때, 혹시 주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갈 것을 대비하여 “돌을 인봉 (sealing the stone)” (마.27:66)하고 경비병으로 굳세게 지키라고 빌라도가 명했습니다. 여기서 ‘돌을 인봉했다’는 뜻은 ‘로마제국의 권위로서 누구도 그 돌을 굴려 내지 못하게 법으로 막는다’는 뜻입니다. 2) ‘소유자’의 표시입니다. 마치 고대국가에서 주인이 그의 노예나 짐승에게 쇠를 달구어 몸에 불도장을 찍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했던 방식을 의미합니다. 또한 3) ‘안전보장’의 의미가 인치다는 뜻입니다. 가끔씩 보면, 편지를 붙일 때, 편지봉투를 풀로 붙이고 그 중간에 촛물을 녹여 도장을 찍어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심되는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인 편지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읽혀지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편지가 안전하게 전달되게 하고자 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우리 성도가 그의 소유이며, 그의 아들을 통해 허락하신 신령한 복, 곧 하늘의 유업을 결코 빼앗기지 않고 누릴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도장 찍어 주시고 인봉하여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두번째 단어 ‘보증’ (guarantee)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보증’이라는 사전적의미“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책임지고, 틀림이 없음을 증명함” (국립표준 국어사전) 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집이 마음에 들어서 사고자 할 때, 그 집 주인과 계약서류에 서명을 하고 나서, 얼마의 ‘계약금’ (Earnest/ Down payment)을 걸어 놓게 되는데 그 이유는 만약 내가 이 계약을 어기게 되면 ‘계약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계약서의 효력을 확실히 보증하기 위해 계약금을 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영,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을 반드시 주실 것을 도장찍어 주심으로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햇갈려 하지 않토록 말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치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저는 그것을 파악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로 무엇이 성령의 인치심이 아닌지?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거듭남’은 인치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밤중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말씀하심을 봅니다. 니고데모가 ‘사람이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 이미 늙었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어머니 태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라고 주께 묻었을 때, 주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고 답하셨습니다. 바로 인간이 구원받게 되는 핵심적인 사건,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 곧 ‘성령의 역사’임을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중에서 인간이 성령에 의해 거듭나게 되는 것이 곧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성령님에 의해 거듭나게 될 때, 또한 인치심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씀의 하나로써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성령세례’와 ‘성령의 인치심’을 동일한 의미로 보는 것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지만,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통해 거듭나게 되는 사건은, 곧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로 연결되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비록 그것을 의식 (=경험)하지는 못할지라도 주를 믿을 때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오늘 사도가 말하는 ‘성령의 인침’이라면 ‘예수님을 참되게 믿었지만, 구원에 대해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치심이 우리가 받게 될 하나님의 기업을 보증 (=확증)’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는 순간 모두 인치심을 받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직까지 구원받은 성도의 여러 영적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발로임을 우리는 알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성화’는 인치심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는 것과 성도가 성화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사람이 거듭나게 되는 순간과 거룩하게 되는 순간은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지 않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거듭나는 순간부터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순간이 곧 성화가 시작되어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을 <ERV>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또한 너희가 믿은 다음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느니라” (In whom also after that ye believed ye were sealed with that Holy Spirit of promise) (v. 13/ERV) 여기서 인치심은 성화와 같이 구원받은 순간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믿고 구원받은 후’에 인침을 개별적으로 각각 다른 시기에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과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하여 신실한 많은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과 성령의 인침은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셋째, ‘은사’는 인치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소위 ‘성령파’라고 자칭하는 성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성령의 인치심’을 잘못 이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성령의 은사’와 ‘인치심’을 동일시 하는 점을 볼 수 있는데, 성령의 은사 곧 ‘방언, 예언, 병 고침, 능력 행함, 영적 분별’ (고전. 12:8~10) 등이 성령의 인치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인치심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왜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영적 은사’ 곧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엡. 4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을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그렇습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여 서로 봉사하고 섬기게 하며, 이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세우심을 입게 하려고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는 ‘성령파’라는 사람들은 그 은사가 곧 ‘성령의 인치심’ 혹은 ‘기름부음 받음’이라는 식의 다양한 용어로 스스로가 뭔가 남들과 다른 영적 능력 (=권위/ 파우워)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성령의 은사와 그분의 인치심을 동일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무엇이 성령의 인치심입니까?” (What is the meaning of the sealing of the Holy Spirit?) ‘성령의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행하심을 통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유업 (=기업/신령한 복)을 성령의 보증 (=담보)로써 확증시켜 주심’입니다. 여기서 왜 성령의 인치심이 주어져는 지를 우리는 깨닫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성도의 믿음의 시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통해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놀라운 자녀의 신분을 주셨고, 그분에 속한 모든 하늘의 유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사실을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인치심으로 말입니다. 그 인치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치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진 이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더욱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이유’ (롬. 8:15)요, 더 나아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라고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놀라운 방법으로 증명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성도를 인쳐 주실까요?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얻게 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확신케 하고자 하심 입니다. 주께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11)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바라기는 진리의 성령, 약속의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그의 인쳐 주시는 은혜를 통해 어떠한 형편과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충만한 평화와 기쁨을 누려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