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7, 2026

“하나님과 화평을” (Peace With God)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5:1~2
Service Type:

“하나님과 화평을”

(Peace With God)

6-7-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5:1~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through whom we have gained access by faith into this grace in which we now stand. And we boast in the hope of the glory of God.)

[설교 요약]

          우리는 이제 <로마서5장>의 새국면에 이르렀습니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사도는 <4장>에서 밝혔듯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누리게 된 ‘신분의 변화와 영적 특권’을 이어지는 5장에서 8장까지 본질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5장>을 시작하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라고.

그런데, 여기서 ‘한글번역본’ <개역한글>은 “~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b)라고 번역하지만, 헬라어 원어 성경에 더 가까운 <흠정역>에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We have peace with God) (KJV)라고 번역하고 있음을 저는 유의합니다.

이런 <흠정역>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 성도들’(4장의 결론)은 이미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과의 평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누릴 특권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도는 “~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흠정역)(v.1b)라고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롬. 8:15),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변화된 신분의 특권을 선언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어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 감을 얻었으며” (v.2a)라고 고백합니다. ‘히브리서기자’의 격려처럼 우리 주님의 의로우신 옷을 입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 갈 수 있는 것’ (히. 4:16)은 성도의 놀라운 영적 특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어두운 눈을 성령께서 열어 주시고, 점점 더 밝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게)” (v.2v) 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가운데 허덕이는 우리 모두를 진정한 쉼으로 초청하시는 우리 주님 안에서 (마. 11:28), 바라기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이제 <로마서>의 새국면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사도는 <5장>을 시작하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라고. 이 말의 의미는 지난 몇시간을 통해서 ‘4장’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처럼,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누리게 되었다>라고 사도는 선언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 성도가 누리는 특권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영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와 같은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게 될 영적 특권과 은혜를 이제 본격적으로 <5장>에서부터 밝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삶의 시작임과 동시에 그 중심에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평화 하십니까? 오늘 말씀 가운데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각자 겸손히 돌아보고, ‘하나님과 과연 어떻게 그 복된 평화의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지를 깨닫고, 또한 누려 나가는 이 시간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사도가 우리 성도를 향해 주장하는 첫 말씀의 의미를 묵상해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항은 ‘한글번역본’ 중에서 <개역한글성경>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Let us have peace)라고 번역하는 반면, <흠정역>에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We have peace with God) (KJV)라고 번역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얼핏 볼 때는 두 표현이 비슷해 보이기는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두 표현은 시제상으로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을 비교해 볼 때, 첫째 ‘개역개정’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Let us have peace)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화평, 곧 평화를 누린다’는 관점에서 볼 때, <미래>에 주어질 평화를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현재 지금 당장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힘써 노력하고 시도함으로써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의 관계를 누리자! 는 격려와 도전을 사도가 한다’라고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거기에 비해, 두번째 ‘흠정역’의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We have peace with God) (KJV/NIV)는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듯이 ‘이미 우리가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선 ‘개역개정’처럼 앞으로 누리자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한 시제로 볼 때, ‘현재진행’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누려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번역이 좀더 원어에 가까운 번역인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흠정역’의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지금 <5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향해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챤이 이미 ‘하나님과의 평화을 누리고 있다’고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모든 거듭난 성도들은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대신 갚아 주심으로 죄 용서하시고, 의롭다 불러 주심으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변화된 영적 신분’인데, 이런 우리의 영적 신분이 정확하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신분>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자격이 주어진 신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이제 <5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각자의 ‘믿음의 상태’ 즉 ‘영적으로 얼마나 성숙되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평화의 상태’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영적 신분’이 어떠한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해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자와 공주로서 우와하고 멋지게 살아가자!’고 사도가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로서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우리는 이해하는가?’하고 사도는 우리 존재를 깨닫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개정’의 번역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Let us have peace)라고 번역하는 것이 여전히 저와 여러분에게 강한 도전과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자신이 과연 하나님과 이런 평화의 관계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 자문해 볼 때 많은 아쉬움과 그렇지 못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씻음 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자녀의 신분’이 주어졌지만, 우리의 실제적인 <영적 상태>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무서워하거나, 서먹서먹 해 하고, 깊은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직히 말해서 우리 자신이 사도가 선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도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가 <5장>을 시작하며 선언하는 <1절>을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풀어 설명한다면,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영광된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이 선하신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의심스러워 해서는 안되고 자녀된 신분답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과 평화를 누려 나갑시다>라고 사도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언급했듯이, 사도는 이제 <5장>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 곧 ‘이신칭의’를 받은 자가 얻게 된 놀라운 ‘신분의 변화와 영적 특권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5장>에서 시작하여 <8장>에 이르기까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6~7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라는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기도 하지만, 큰 그림에서 볼 때 <5장>에서 <8장>까지가 ‘구원받은 자의 영적 신분과 누릴 특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신학자들이 로마서를 분석하드시 ‘1~4장’까지는 ‘구원’, 그리고 ‘5~8장’은 ‘성화’라는 식의 단편적인 분석은 사도가 로마서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펼치는 방식이 아님을 우리는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저는 사도가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무엇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누릴 특권인지?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는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v. 1)라고. 저는 앞에서 사도가 <5장>을 시작하면서 <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저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는 사도가 주장하는 뜻은 ‘우리의 의지나 결심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 성도의 영적 신분의 변화를 사도가 밝히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죄씻음 받고, 의롭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된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헬라어 원어에 가장 가까운 번역인 <흠정역>에서 보듯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We have peace with God)라고 번역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는 신분’이 되었다>고 사도는 영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신분의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뜻이요,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의 특권을 사도는 <8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라고.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증명)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16) (요일. “하나님을 무서워x)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우리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실제로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직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 거듭난 성도의 신분은 이처럼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영적 존재’인데, 문제는 ‘나는 실제로 그 신분에 걸맞게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슈는 ‘내 신분’과 ‘내 삶의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신분은 ‘왕자요, 공주’이지만, 행동은 ‘품격없고 어린 얘들보다 더 철없는 한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여러분과 돌아보기 원하는 것은 ‘나는 실제 하나님과 진정한 평화의 삶을 누리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이 저의 신앙생활에서도 언제나 ‘스스로를 성찰’하며 자문하는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하나님과 실제 삶 속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요?

둘째,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동안 살펴본 것처럼 <5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의롭게 된 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럼으로 지금 믿음으로 서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 안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 감을 얻었으며” (v.2a) 이와 같이 사도는 우리 거듭난 자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영적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 <첫번째> ‘성도의 특권’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실제적인 평화를 누릴 것인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이해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구원받은 성도가 변화된 신분에 걸맞는 ‘하나님과 참된 평화’의 관계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나의 노력과 의지’ 이전에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은혜의 영역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속성상 ‘누린다’고 표현하기보다는 ‘깨닫는다’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죄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로 회복되어지는 모든 과정’이 그분의 은혜가 없이는 그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과 저를 둘러싼 수많은 삶의 여건 속에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더 알아가고, 철든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열망과 하나님을 향한 추구함이 있는 것은 ‘우리가 영성이 뛰어나고,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누리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깊어지고, ‘성도의 교제’와 ‘복음을 증거’함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발버둥치는 것보다, 이미 내 삶을 에워싸고 충만히 부어주신 그분의 은혜를 우리의 어두운 영의 눈을 열어 깨닫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우리 각자가 성령님을 통하여 겸손하게 있는 모습 이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기자’가 우리를 격려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고 말입니다. 이처럼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었던 수많은 은혜의 제목들을 하나님은 깨닫고 발견하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바로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우리는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전. 15:10)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의 어두운 눈을 성령께서 열어 주시고, 점점 더 밝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여러분과 저는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뜻일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에서 ‘복음 안에서 드러난 광채/빛’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 마음에 비취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가게 된다고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4: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이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육신적 시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빛’ 곧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비취 주심으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선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내 삶을 감싸며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로 폭포수 같은 은혜를 부어 주시고 있는지를 깨닫아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점점 더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라고요? 이 영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 여러분과 함께 놓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구원> 뿐 아니라 <약속하신 모든 은혜와 자녀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그 모든 약속과 축복의 은혜는 단 한가지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주어지는 것은 없다 라고 저는 감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약속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도 (요. 4장), 유월절 명절 끝날 유대인들을 향해 외치셨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38)는 ‘성령충만’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은혜를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권세와 은혜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축복된 신분으로 변화된 우리 성도는, 또한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점점 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 성도의 ‘축복된 신분’이요, 이를 통해 누리게 될 ‘영적 권세와 은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세상의 지치고 무거운 삶의 짐가운데 허덕이는 우리 영혼들을 향해 이렇게 참된 안식과 평화의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11:28~29)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든 성도들이 누리는 진정한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 곧 ‘원수 되었던 관계를 끝내고, 서로 화목된 관계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화와 안식’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 질문에 정직히 대답하고, 그런 하나님과의 평화를 열망한다면,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초청을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초청을 여러분은 응하셨습니까? 그분께 나아가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분의 가벼운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우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날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 그분께 나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그분께 배움으로써, 선한 목자 되신 우리의 주께서 날마다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성령님을 통해 참된 안식과 하나님과 더 깊은 평화를 누려 나갈 수 있는 은혜 누릴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