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서 있는” (Standing By Faith)
“믿음으로 서 있는”
(Standing By Faith)
6-14-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5:1~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 <로마서 5장>을 시작하며, <1~2절>에서 ‘하나님과 화평’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도는 5장을 시작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한 차원 높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자>는 도전을 하기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누리게 된 우리 거듭난 성도의 변화된 놀라운 신분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2절>에서 사도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v. 2)는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이 역사하는 성도의 삶은 어떤 것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의 놀라운 신분의 변화에 대해 먼저 제가 언급하기 원하는 것은, <복음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거듭난 성도의 변화된 신분>의 영광스러움이 너무도 크기에 대다수 유대인들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여전히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롬. 8:15).
이제 그렇다면 <2절>에서 사도가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했을 때, “무엇이 <믿음으로 서 있는>이라는 뜻인지?” 를 중심으로 믿음으로 역사하는 성도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v.1) 우리 성도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둘째, “믿음의 열쇠만이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v. 2a)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뿐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 (히.10:19~20)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혜로 나아가는 자녀의 특권은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v. 2b)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특권은 영원합니다 (롬.8:33~39; 빌. 1:6). 이것이 ‘성도가 믿음으로 서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존재의 영광스러움과 취소 될수 없는 우리 신분의 은혜를 더욱 확신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 <로마서 5장>을 시작하며, ‘하나님과 화평’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본질적으로 선언하는 요지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한 차원 높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자>는 격려와 도전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누리게 된 우리 거듭난 성도의 변화된 놀라운 신분은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변화된 신분은 무엇입니까? 그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받음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이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평화를 누리게 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신분’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신분’>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지난 시간 결론적으로 묵상한 것처럼, 사도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 성도의 이런 놀랍고 영광스런 신분의 변화를 우리 자신이 이해했다면, ‘과연 우리는 그런 은혜와 특권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나누었습니다. 그럼으로 저는 우리 성도의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녀의 신분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일 뿐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요, 또한 ‘그분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영의 눈’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2절>에서 사도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v. 2)는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이 역사하는 성도의 삶의 축복된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함께 이해하고, 삶에서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먼저 사도는 <5장>을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된 우리 성도의 신분의 변화’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v.1)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크리스챤의 변화된 신분에 대해 우리 자신들은 그동안은 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찌라도, 이런 사도의 선언을 통해 우리 성도들 대부분은 교리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영적으로 각성이 있는 만큼, 이런 우리의 복된 신분에 대해 기쁨과 감사와 확신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유대인 대다수의 영적 상태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지금 사도가 로마서에서 선언하는 것이 바로 ‘예수 믿고 거듭난 주의 제자’ 곧 ‘크리스챤’의 변화된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도의 선언을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로우시고, 언제나 불꽃과 같은 정의로써 죄인된 우리 인간이 결코 가까이할 수 없는 ‘소멸하는 불’과 같은 존재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거룩한 산 시내산에서 불꽃과 우레와 자욱한 연기 가운데 나타나실 때, 이 산에 오르는 것을 엄히 금하셨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살아 남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출. 19장). 이에 대해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모세에게 말하길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9)고 두려움에 가득차서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이와 같은 두려움은 구약을 통하여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그들의 일관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넘어선 두려움과 공포가 바로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 불리는 ‘로마서’의 진리를 이들이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엄청난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구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씻음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 성도의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깨닫는데 힘들어하고, 받아들이는데 크게 거리껴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의 영에서 벗어나, 양자의 영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음(롬. 8:15)을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두려워하고 강하게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불꽃가운데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공의롭고 불꽃 같은 눈으로 죄인을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감히 될 수 있다고 그들은 상상하는 것 자체가 심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성도의 특권이 유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매우 두렵고, 심히 혁명적인 존재의 변화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인 우리 성도의 신분의 변화가 바로 ‘우리 성도의 변화된 존재’임을 사도는 로마서에서 힘주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할찐데 우리는 이런 자녀의 영광과 권세를 깨닫고 누리고 있습니까?
이제 그렇다면, 오늘 분문 <2절>에서 사도가 선언하듯이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해 가기를 원합니다. 과연 “무엇이 <믿음으로 서 있는>이라는 뜻일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첫째,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v.1)라고 사도는 우리 성도의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변화된 자녀의 신분을 선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은 ‘그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가 어느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느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집 없는 아이었던 그가 그 나라 왕이 그의 죽은 왕자와 꼭 닮았다는 이유로 어느 날 그를 왕자로 입양했을 때, 그 궁전은 그날부터 자기 집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처럼 내가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분의 아들과 딸로 입양될 때,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모든 영역이 나의 궁전이 되며, 그분이 다스리시는 모든 영역, 곧 ‘은혜의 영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토록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했던 가히 혁명적인 우리 크리스챤의 변화를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과 저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음’으로 의롭게 하심을 받게 된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처럼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도 않고, 의심없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놀랍고 축복된 신분의 변화를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한가지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과 저는 이런 자녀의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가고자 힘쓰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만약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되돌아서서, 좀더 깊이 자녀의 신분이 어떠하며, 자녀가 누릴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배우고 실제로 누려 나가지 못한다면’, 솔직히 자녀의 신분을 거부하는 유대인들과 우리와 과연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것이 <2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째, “믿음의 열쇠만이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지난 시간에 “~ 은혜 안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했을 때, “들어간다” (access)는 의미를 제가 비유로 설명 드렸습니다. 우리가 정부기관이나 보안이 요구되는 장소를 들어갈 때는 반드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은혜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 앞에서 ‘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곳을 통과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믿음>이다’라고 사도는 영적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v.2a)라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믿음’과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지난 주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과 평화하는 신분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 성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칭의’ (구원)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자녀에게 허락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존재’가 되었는데, 이제 사도는 믿음의 역할은 계속된다고 밝히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된 자녀의 관계’로 변화될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여기서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라고 말할 때, ‘믿음으로 서 있다’는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은 본질적으로 <1절>에서 사도가 밝힌 우리 성도들의 ‘하나님과의 평화’ (peace with God)를 의미한다고 주석합니다. 이처럼, 먼저 내 자신이 ‘하나님과 평화’된 존재가 되었을 때, 그 다음 찾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평화’ (peace of God)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먼저 ‘하나님과 적대적인 원수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제거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 짐’으로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된 신분이 되고, 이런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곧 <하나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염려하고, 평화하지 못한 내 내면의 갈등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분의 평화를 통해 극복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특권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졌음을 상징하는 놀라운 한 사건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벌어졌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완전히 갈라졌던 것입니다 (마. 27:51). 이 사건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은 지불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그분의 의로우신 옷을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 10:19~20)고 정확하게 영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스리시는 은혜의 왕국에서 모든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것이 우리 성도에게 허락된 특권이라고 사도는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셋째, “은혜로 나아가는 자녀의 특권은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v. 2b)라고. 여기서 사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의 느낌이나 감정에 기초한 소망과 기쁨이 아닙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서의 주제’가 되는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 같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 되어 죽으신 <십자가사건>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부활사건>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나, 어떤 철학적 사조나 논리에 대한 논증이 아닌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성취된 진실된 사건에 기초한 우리 성도가 누리는 소망이요, 영광입니다.
이제 제가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강조하기 원하는 것은 <우리 성도의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 자녀의 권세와 특권은 취소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보배로운 피로써 우리의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언제나 ‘서 있는 것’입니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히브리서 기자가 영적으로 우리 성도의 자세를 이렇게 도전하고 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 고침을 받게 하라” (히. 12:12~13)고 말입니다.
한편, ‘믿음으로 서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의심과 불신과 염려와 절망과 싸운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이 믿음을 통하여 주님 만나는 날까지 세상의 헛된 것과 불신과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 찾아올 ‘죽음’과 ‘주님의 최후심판’을 향해 나아가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3~14)라고 사도 요한은 영생을 받은 성도의 담대함을 촉구합니다. 심지어, 내가 허물 가운데 죄를 범하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찌라도, 결코 절망하고 자포자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뻔뻔함이나 율법폐지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회개로 나아오는 자녀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라고 말입니다.
만약 아직도 여러분 중에 구원받았지만, 어떻게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을 수 있는지 불안해 하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저는 이 말씀을 끝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렇게 <로마서8장>을 마무리하며 놀랍게 선포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3~39)라고 말입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심지어 하늘의 천사라 할찌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곧 그분의 ‘구원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는 <빌립보 교회>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우리를 한번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날까지 지속될 것을 이렇게 영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구원을 완성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누려 나가는 자녀이기에, 점점 가까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성령 안에서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만약 오늘 저녁 숨을 거두고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천국 갈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까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성도 여러분이 아직도 여러분의 구원을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부터 ‘하나님과 평화하게 된 이 자녀의 축복된 신분’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이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담대히 나아감으로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맺어 나가고, 주와 함께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복된 그분의 자녀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