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4, 2018

“화가 나셨나요” (Are you angry?)

Preacher:
Series:
Passage: 잠언 (Proverbs) 22:24,25
Service Type:

“화가 나셨나요”

(Are you angry?)

11-4-18

본문말씀: 잠언 22:24,25

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Do not make friends with a hot-tempered man, do not associate with one easily angered,)

25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or you may learn his ways and get yourself ensnared.)

 

[설교요약]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정신적인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동기와 이유에서건 내 마음상태가 어그러지고 평화롭지 못할때 나타나는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현상이 짜증내고 화내는 것 입니다. 먼저,‘화’ (anger) 는 [몹시  못마땅 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질 (性質)]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화내는 것과 신앙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화냄’ 혹은 ‘분노’는 우리의 인격과 관계성에 치명적인 해로움을 가져올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까지도 강력하게 나쁜 영향을 끼침을 저는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화를 잘내는 사람 입니까?” (Are you angry person?) 라고. 이 질문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반응하는 <몹시 화내고 못마땅하거나 언짢아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 있는가?” 를 묻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크리스챤은 ‘화 (=분노)’ 에 대해 심각하게 고쳐나가야 하겠다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화냄은’ (첫째) 인간관계성을 파괴하고, (둘째) 내 인격을 파괴하고, (셋째) 내 신앙을 파괴하기 때문 입니다. 화내는 것은 단순히 성격문제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과 신앙의 기초를 무너트릴수 있다는데 대해서 우리는 영적 이해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화를 다스릴수 있을까요?”;

첫째,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By controlling our tempers)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잠언 16장>에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고 말 입니다. 솔직히 우리 자신은 나이가 먹어 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고 통제되지 않는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아프게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내가 화를 다스릴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가?에 그 승패가 달려있다고 성경은 지적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립니까? 그로말미암아 노하기를 더디 합니까?

둘째, ‘화내는 자와 사귀지 않음으로써’ (By not making friend with a hot-tempered man): 사실 문제가 마음인줄은 알겠는데,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v.24,25) 는 것 입니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관계성으로 인해서 강한 영향을 받을수 있는가를 잘 설명하는 말씀 입니다. 어쩌면 이 점이 특별히 결혼을 앞두고 이성교제를 하는 청년들에게 주는 지혜로운 말씀이 될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화내고 악한 영향을 주는 자를 멀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화를 주고 받으며 불행한 관계를 계속하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By helping of the Holy Spirit): 이미 가족관계 (부모자식 & 부부) 로 맺어진 경우나 오랫동안 맺어진 친구관계에서는 이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속에서 서로를 헐뜯고 상처주는 관계에서 벗어 날수 있고, 더 본질적으로 내 자신을 점점 더 다스려 나가는 바람직한 영적 성숙의 삶을 살아갈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하나님은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할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스스로는 지킬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신 법을 지킬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 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고 사도바울은 선언 합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성령에 속한 평화와 기쁨과 인내의 아름다운 열매를 더욱 더 풍성해 맺어가는 아름다운 삶 모두 사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전문]

<서 론>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정신적인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동기와 이유에서건 내 마음상태가 어그러지고 평화롭지 못할때 나타나는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현상이 짜증내고 화내는 것 입니다.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지혜의 말씀이라 일컬어지는 잠언서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볼수 있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이를 통해 내 육신과 감정에 지배받는 안타까운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의 삶을 말로만이 아니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예/ 얼마전 한국 PC방 살인사건 & 땅콩사건먼) 먼저 ‘화’ (anger) 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국어사전’에는 화를 내는 것은 [몹시 노하여 화증 (火症)을 내다; 몹시 못마땅 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질 (性質)]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Webster 영어사전’은 ‘화’ (anger)를 [a strong feeling of displeasure and usually of antagonism] 이라고 비교적 더 정확하게 개념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번역하자면, 화를 낸다는 것은 “대체로 불쾌함이나 적대감으로 인한 매우 강한 느낌” 이라는 것 입니다.

어떻게 보면, ‘화내는 것과 신앙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는것 아닌가?’ 하고 가볍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을 포함해서 이 ‘화냄’ 혹은 ‘분노’는 우리의 인격과 관계성에 치명적인 해로움을 가져올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까지도 강력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악한 습관의 하나라고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들이 ‘버럭 버럭 화를 내거나, 조금만 일에도 참지 못하고 성질 부리는 크리스챤을 알고 있다면, 그에게 결코 [성숙된 그리스도인] 이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것일 것 입니다. 이 화내고 분내는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영적으로도 신앙성장을 가로막는 매우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하게 됨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사실 ‘화내다’ (혹은 분노하다) 는 감정표현은 성경에서 볼때 항상 부정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의로운 화냄/분노’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장사하는 자들에게 노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21:12~13, 눅. 19:45~48). 또한 주님은 바리세인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마. 12:34) 라고 거침없이 그들의 위선적이고 간교한 죄악에 진노하심으로 고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진노하신 것은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언제나 중심 주제입니다. 복음서 중에 복음서라고 인정받는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사랑과 기쁜 소식은 ‘우리를 죄에서 용서 하셨다’ ‘우리의 죄를 없는 것으로 여기셨다’ 고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은 바로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시작’ 된다고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8) 라고 말 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격이 급하거나,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결코 죄를 못본척 넘어갈수 없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셔야 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일관되게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고 진노하시는 이유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여러분과 제가 화내는 것을 정당화 할수 없음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화내고 분노하는 이유가 죄에 대한 분노나 의로운 동기로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 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화를 잘내는 사람 입니까?” (Are you angry person?) 라고. 물론 저는 잘 압니다. 우리 크리스챤들 중에서도 기질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대체로 성격이 차분하고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도 있다는 사실 입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기 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기질과 성격을 가졌는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격은 베드로와 같이 다혈질적이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사도 바울과 같이 매우 치밀하고 성격이 좀처럼 감정에 사로잡히는 점액질의 사람 중에서 어느 타입이 더 훌륭하고 더 좋다라고 말하는 적이 없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양한 성격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시고 그들을 받아 들이십니다. 하나님이 관심 가지는 것은 우리의 믿음일 것 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함과 같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저는 다시한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화를 잘 내는 사람 입니까?” 이 질문은 성격이 급하냐? 혹은 성격이 느긋하냐? 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외향적이냐 혹은 내성적이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밖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속으로 여전히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반응하는 “몹시 화내고 못마땅하거나 언짢아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 있는가?” 를 묻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크리스챤은 ‘화 (=분노)’ 에 대해 심각하게 고쳐나가야 하겠다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화냄은’ (첫째) 인간관계성을 파괴하고, (둘째) 내 인격을 파괴하고, (셋째) 내 신앙을 파괴하기 때문 입니다. 화내는 것은 단순히 성격문제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과 신앙의 기초를 무너트릴수 있다는데 대해서 우리는 영적 이해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화가 날때 일어나는 특징?’ 은 어떤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1) 내가 일단 화 (=분노)를 내면 그 화가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는 사실 입니다. 일단 입 밖으로 드러낸 불쾌하고 언잖은 감정이 점점 더 상승효과로 작용해서 나를 분노의 포로로 만드는 것 입니다. 분노가 나를 컨트롤 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2) 처음 화내기는 어려울수는 어려울수 있지만 일단 한번 화내고 나면 그 다음 2번, 3번… 화내는 것은 갈수록 쉬워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속담에 ‘참을 인자 (忍字) 3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는 말도 있지만 (=참음의 중요성), 이것이 (3) 단순히 ‘화를 억누른다’는 것으로 그칠때, 그 화는 결국 없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순간 ‘밀폐된 공간에서 점점 더 뜨거워진 공기가 결국 폭파’ 하듯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올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매우 가공할 파괴력으로 나 자신을 포함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할수 있다는 것이 화가 가져오는 심각한 나쁜 영향력 일것 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화와 분노를 더디하고 더나아가 화와 결별하는 평화와 기쁨의 복된 성도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화를 다스릴수 있을까요?” (How do we able to control our hot-tempered?);

첫째,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By controlling our tempers)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잠언서에서는 특별히 우리 인간이 얼마나 쉽게 화를 잘 내고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지!? 를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잠언서 기자는 여러번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 14:29)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 (잠. 15:18) 라고. 여기서 강조한 ‘화 (노하기)를 더디한다’ (slow to anger)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잠언 16장>에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고 말 입니다.

나폴레옹은 “세계를 정복하려면 먼저 너 자신을 정복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가요?! 그가 정말 스스로는 자신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았는지는 알수 없으나,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클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나이가 먹어 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고 통제되지 않는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아프게 고백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내가 내 스스로의 결정을 따라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속의 자아와 수없는 요구와 감정의 충동에 지배되어 살아 간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것은 내가 원하는 좋은 것은 행치 못하고 내가 원치 않는 좋지 못한 것들을 계속적으로 행한다는 사실 입니다. 바로 ‘나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내 육신에 속한 자아와 나쁜 기질에 이끌려 살아가기 때문 입니다. 내가 화를 다스릴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가?에 그 승패가 달려있다고 성경은 지적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립니까? 그로말미암아 노하기를 더디 합니까?

둘째, ‘화내는 자와 사귀지 않음으로써’ (By not making friend with a hot-tempered man): 사실 여러분과 제가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는 실제적인 이유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됨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수는 없을것 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지식적으로는 이미 우리의 모든 감정적인 문제는 마음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알지만 여전히 ‘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 는 실제적인 문제 입니다. 문제가 마음인줄은 알겠는데,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릴수 있을까?” 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v.24,25) 는 것 입니다. 무슨 말 입니까? 친구를 매우 조심해서 사귀라는 것 입니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관계성으로 인해서 강한 영향을 받을수 있는가를 잘 설명하는 말씀 입니다.

어쩌면 이 점이 특별히 결혼을 앞두고 이성교제를 하는 청년들에게 주는 지혜로운 말씀이 될것 입니다. 요즘 청년들은 이성교제 할때 얼마나 외모나 실력, 경제력을 많이 보고 관심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예쁘고 잘 생기면 평생 사랑하고 잘 살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치 않다고 우리에게 도전 합니다. 화를 품고 성질 급한자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 외모와 외적인 조건에 반해서 지금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신경질적이고 화 잘내는 성격을 모두 맞쳐주고 그를 변화 시킬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내가 그 상대방의 행위를 본받아서 내 자신 조차도 나를 파괴시키는 덫에 걸리게 되는 될 것이다> 고 성경은 무서운 진리를 선언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화내고 자를 멀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화를 주고 받으며 불행한 관계를 계속하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By helping of the Holy Spirit): 화를 더디낼수 있는 것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있고, 그 시작이 ‘나에게 화를 전염시킬수 있는 악한 자들을 멀리 하는 것’임을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관계를 이렇게 해결할수는 없기 때문일 것 입니다. 예를 든다면, 친구가 아니라 부모가족이나 이미 부부가 된 관계는 서로 갈라질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는 서로 갈라지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관계를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 입니다. 이 경우에서 중요한 사실은 ‘논쟁과 말싸움에 휘말리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입니다. 솔직히 저의 경험상 이점이 매우 어렵다는 점은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나도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나는 아이들이나 아내와의 대화 가운데 점점 더 논쟁과 감정적인 말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 입니다.

이런 가장 가까운 관계속에서 서로를 헐뜯고 상처주는 관계에서 벗어 날수 있고, 더 본질적으로 내 자신을 점점 더 다스려 나가는 바람직한 영적 성숙의 삶을 살아갈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것을 분명히 약속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할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것 입니다. 지난주 묵상한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 주셔서 더이상 종이나 돌에 율법을 새기지 않고 우리의 ‘마음판’에 직접 그 선하신 율법을 새기시겠다고. “ ~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렘. 31:33) 화내는 것과 성령충만이 무슨 상관이냐구요? 그것은 절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때,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나 스스로는 내 자아를, 내 마음을, 내 통제되지 않고 다스려지지 않는 육신에 속한 기질을 다스려 나갈수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누구도 약속하신 “ ~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 의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수 없기 때문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해 나가는 가운데 맺어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화를 다스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화를 잘 내는 사람 입니까?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잘못된 기질에 사로잡혀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의 인격과 신앙까지 점점 더 파괴시키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기를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반대로, 무엇보다 내 마음을 다스림으로서 내 급하고 분노하는 성격을 다스리는 시작임을 깨닫고 그런 악한 영향을 주는 자들과와의 관계를 지혜롭게 정리하기를 기뻐하심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 내 의지와 노력을 통해서도 어쩔수 없는 내 육신에 속한 강력한 기질과 성질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스려 나갈수 있도록 은혜 주실것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성령에 속한 평화와 기쁨과 인내와 절제의 아름다운 열매를 더욱 더 풍성해 맺어가는 아름다운 삶 모두 사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