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1, 2018

“하나님을 추구하라” (The pursuit of God)

Preacher:
Passage: 호세아 (Hosea) 6:1~3
Service Type:

“하나님을 추구하라”

(The pursuit of God)

11-11-18

본문말씀: 호세아 (Hosea)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설교요약]

오늘 호세아서 말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지 각자 깨닫고 그를 날마다 추구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호세아서의 전체 주제는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백성을 향한 끊을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 호세아를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깨닫게하고 도전하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신다’ (호. 4:6~9,10:9~15) 는 것과, 둘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의 자녀를 끝까지 붙드신다’ (호. 11:8,9) 는 것 입니다.

여기서 제가 질문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추구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한 대답의 하나가 <신명기 6:4,5> 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성도가 ‘왜 하나님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요, 따라서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이룰때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뒤쫓아 가며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뜻임을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추구할수 있을까?” (How do we pursue God?);

첫째,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living spiritually) 가능 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죽은 자는 감각할수 없고 느낄수도 없기 때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9) 는 도전적인 말씀은 궁극적으로 영적인 생명이 있는지를 묻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내가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가능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살아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음으로 영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둘째, ‘인격적 결단이 있어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making decision personally) 가능 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거듭난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의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는 것’ (딛. 2:14) 이라고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으로 살아 있다면 그 삶의 이유를 깨닫은 만큼 인격적으로 결단할수 있는 것 입니다. 의무감이나 맹목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쁨과 감사 가운데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함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인격적 결단을 하며 하나님을 찾도록 찾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growing the knowledge of God) 가능 합니다: 호세아는 범죄한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v.1) 라고 도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할때 그 결과는 끔직한 것 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 (호. 4:6) 라고 하나님은 그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게 된 그의 백성을 향해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그의 자녀가 아버지께로 돌아올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겸손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보다 나를 아는 것을 원한다” (호. 6:6) 라고 말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어떤 수천마리의 수양이나 강물같은 올리브 기름의 제사보다도 하나님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이런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하신 자녀의 장성한 분량까지 날마다 자라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설교 전문]

<서 론>

저는 ‘하나님을 추구하라’ 라는 설교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말씀의 은혜와 도전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만약 오늘밤 주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거둬가신다면,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되었습니까?’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묻는 것 입니다. 과연 오늘밤 주께서 여러분과 저의 생명을 거둬가심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하실때,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을 것이라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동시에 근본적으로 ‘나는 어떤 영적 상태에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파악할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 될것 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인정할수 밖에 없는 것은 이것 입니다. ‘만약 내가 지금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지 각자 깨닫는 시간되길 기대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함’이 어떻게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심히 중요한 구원의 확신과 영적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는지를 깨닫고 그를 날마다 추구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우리가 그동안 몇번에 걸쳐 호세아서 말씀을 나눌때 살펴 보았드시 호세아서의 전체 주제는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호세아서의 시작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 ~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호. 1:2) 고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심으로 말씀이 시작됨을 보게 됨을 보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이해하기 힘든 결혼을 호세아에게 명령 하시는 것 일까요? 하나님은 이런 음란한 여인과 결혼한 호세아의 삶을 통하여 영적으로 간음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런 상징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깨닫게 하고 도전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신다’ (호. 4:6~9,10:9~15) 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까다롭거나 무서운 분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은 죄와 함께 하실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죄는 그의 자녀를 멸망으로 인도함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그 징계의 고통과 아픔이 클지라도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심으로 그의 자녀의 <영적 암>을 도려 내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둘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의 자녀를 끝까지 붙드신다’ (호. 11:8,9) 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구원 받을만큼 잘나고 의로와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악한 길로 걷고 있는 그의 자녀 에브라임,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포기할수 없는 그분의 불붙는 듯한 긍휼과 사랑으로 인해 그들을 구원 하신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제가 질문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추구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대답의 하나가 <신명기 6:4,5>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말 입니다. ‘왜 하나님을 추구해야 하는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명령 안에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추구하다’ 는 사전적 의미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쫓아 구하다>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요, 따라서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이룰때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뒤쫓아 가며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뜻임을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추구해야할 그 이유와 중요성을 이해 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추구할수 있을까?” (How do we pursue God?); 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living spiritually) 가능 합니다: 과연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일까요?그것은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죽은 자는 감각할수 없고 느낄수도 없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한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를 향해 ‘나를 사랑하라, 나를 추구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가 결코 하나님을 이해할수도 없고 더욱이 추구할수는 없기 때문 입니다. 그의 택한 자에게 하나님은 명령 하시는 것 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9) 는 도전적인 말씀은 궁극적으로 영적인 생명이 있는지를 묻는 말씀이 될것 입니다. 내가 종교적인 열심이 있다고, 심지어 성경말씀을 잘 안다고 ‘들을 귀’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가진 자만이 생명을 말씀을 들을수 있다는 매우 역설적인 말씀으로 우리 주님은 그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도전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내가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가능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살아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음으로 영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둘째, ‘인격적 결단이 있어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making decision personally):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 거듭난 자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 입니다” (디도서 2:14) 라고. 사도 바울은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때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남겨 두셨나?’ 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우리 거듭난 성도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 이라는 것 입니다. 물론 이것이 성도 여러분이 실제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전하는 것은 현재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저는 잘 알수 없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사도바울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 입니다.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주님의 백성의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의 목적이라면 그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 선한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마. 6:33) 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사랑’ (막. 12:30) 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를 향한 자발적인 관심과 추구함이 일어날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사랑의 법칙에 의해서, 내가 진실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를 찾고 만나고자 인격적인 결심을 한다는 것 입니다.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라고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그를 만날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도록 찾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의 삶의 미션을 깨닫고, 그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합니까? 그로 말미암아 인격적 결단을 하며 하나님을 찾도록 찾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We can pursue Him through by growing the knowledge of God): 호세아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범죄한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v.1) 라고 도전하고 격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일으키실수 있기 때문 입니다 (v.2) 그렇다면, 어떻게 여호와께로 돌아갈수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죄악 가운데 헤메는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의 비유로 하자면 ‘집나간 탕자’와 같은 상태인 것 입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 아버지의 유산을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게 다 탕진해 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비참한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집나간 탕자의 삶이 감사하게도 ‘헤피엔딩’로 끝나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비록 비참한 상황일찌라도 자포자기 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고 용기를 내고 그의 품으로 되돌아 올수 있었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아버지께로 돌아갈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점점 더 깨닫는 철든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가능한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할때 그 결과는 끔직한 것 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 (호. 4:6) 라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게 된 그의 백성을 향해 공의의 심판을 선포하심과 동시에 애타는 심정으로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그에게 나아오기를 촉구 하시는 것 입니다. 그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올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만이 그를 추구함을 통해 진정한 자녀의 성숙과 특권을 누릴수 있는 길일 것 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겸손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보다 나를 아는 것을 원한다” (호. 6:6) 라고 말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어떤 수천마리의 수양이나 강물같은 올리브 기름의 제사보다도 하나님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옳은 일을 행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보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원한다” (미가 6:8) 고 선지자 미가를 통해 선언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것 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하신 자녀의 장성한 분량까지 날마다 자라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