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8, 2018

“비젼의 사람” (A person of vision)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1:1
Service Type:

“비젼의 사람”

(A person of vision)

11-18-18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설교 요약]

인도선교의 아버지이자, 근대 선교의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 (William Carey) 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 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드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 합니다. 오늘말씀에 대해서 메튜헨리는 이렇게 그 뜻을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육체의 눈으로 식별할수 없는 것들의 실체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다” 라고.

이 ‘비젼’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알듯이 영어단어에서 온 말 입니다. 먼저 ‘비젼’ (vision) 을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첫째) ‘볼수 있는 능력’ 이라고 정의하고, (둘째) ‘종교적 혹은 초자연적 경험의 일부로서 보거나 꿈꾸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서 알수 있드시 ‘비젼은 볼수 있는 능력’인데, 오늘 본문 <히. 11:1>은 이런 볼수 있는 능력이 바로 ‘믿음’ 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믿음을 가졌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살펴볼것은 이것 입니다. 과연 누가 비젼의 사람일까요?” (Who are persons of vision?): 그는 무엇보다

첫째, ‘믿음을 소유한 사람’ (They are persons who have the faith of God) 입니다: 누가 비젼의 사람 입니까? 비젼의 사람은 본질적으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비젼의 사람’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믿음의 눈’을 통해 ‘영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인 것 입니다. 이런 영의 눈으로 볼수 있는 자가 비젼의 사람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통해 볼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것을 3가지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v.3)과, 둘째) ‘~  (믿음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신다)’ (v.6)는 사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은 능히 죽은자도 살리신다’ (v.19)는 사실 입니다. 이 세가지 믿음의 특성은 간단히 말하면 바로 ‘거듭난 자’ 즉 영적으로 태어난 자가 당연히 가지는 믿음일 것 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를 믿는 믿음의 눈으로 말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하셨습니까?

둘째,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 (They are persons who fell scales from their eyes) 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도행전 (행. 9장) 에서 보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바로 직후 눈이 멀어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볼수없는 맹인의 상태로 며칠을 보내게 되었는데, 주께서 그의 제자 아나니아에 명하셔서 바울의 눈을 안수 했을때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행. 9:18)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했던 사건일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이것이 영적인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영접 했다면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 비늘은 바로 ‘영적 각성’ (spiritual awaking) 을 뜻 합니다. 성령을 더욱 의지하고 그의 능력을 사모할때,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눈뜬 장님과 같은 영적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영광을 점점 더 밝히 보게 될 것 입니다.

셋째,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 (They are persons who obey Jesus Christ) 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를 통해 소중한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영적 체험’ 을 했다면, 그것을 온 힘을 다해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삼으실때 이렇게 말씀 입니다. “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라고. 나의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자아를 날마다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주님과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가는 비결인 것 입니다. 저는 지난주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은것은 그가 행한 초인간적인 선교사역의 결과물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그가 50여년의 중국선교사역 가운데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엄청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점점 더 그에게 충만했던 평화와 기쁨의 삶 이었습니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그의 제자, 허드슨 테일러를 온전히 지켜주셨던 것 입니다. 이것은 비단 허드슨 테일러 뿐이 아닐것 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분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그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약속의 열매일 것 입니다. 바로 비젼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넘치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서 이런 평화와 기쁨을 날마다 누려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비젼의 사람 입니까? 여러분은 육신의 눈으로는 분별할수 없는 영적 실체를 영의 눈을 열어 바라볼수 있는 비젼의 사람 입니까? 날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주께 순종함으로 그의 약속하신 성령의 열매를 날마다 누리나가는 성도 여러분의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설교 전문]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비젼의 사람’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비젼이고, 누가 참된 비젼의 사람일까요?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 모두 무엇이 비젼이며, 누가 비젼의 사람인지를 더욱 옳바로 이해함으로서 주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비젼의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인도선교의 아버지이자, 근대 선교의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 (William Carey) 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 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라고. 18세기 영국의 한 작은 마을의 구두수선공이었던 윌리암 캐리는 그가 외친대로 삶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그의 40년 인도선교를 통해 넉넉히 행할수 있는 은혜를 누릴수 있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되게 위대한 일을 후회없이 시도 할수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드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 합니다. 이 믿음장은 오늘 본문 (v.1)으로 시작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오늘말씀에 대해서 메튜헨리는 이렇게 그 뜻을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육체의 눈으로 식별할수 없는 것들의 실체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다” 라고. 또한,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믿음은 희망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신뢰이고, 보지 못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독일어로 번역 했습니다.우리말 성경의 ‘실상’ (the substance) 을 마르틴 루터는 ‘분명한 신뢰’라고, 또 ‘증거’ (the evidence) 를 그는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한 것 입니다.

우리가 <안경점> 앞을 지나다보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단어가 바로 <비젼/ vision> 입니다. 이 ‘비젼’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알듯이 영어단어에서 온 말 입니다. 먼저 ‘vision/비젼’ 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째) ‘볼수 있는 능력’ (the ability to see) 라고 정의하고, 둘째) ‘종교적 혹은 초자연적 경험의 일부로서 보거나 꿈꾸는 것’ (something that you see or dream especially as part of a religious or supernatural experience)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서 알수 있드시 ‘비젼은 볼수 있는 능력’인데, 오늘 본문 <히. 11:1>은 이런 볼수 있는 능력이 바로 ‘믿음’ 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육체적으로 볼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영적으로 볼수 있는 능력>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렇게 성도 여러분에게 질문하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믿음을 가졌습니까? 육신의 눈으로는 볼수없는 것들을 볼수있는 영적인 눈인 믿음을 가졌습니까?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그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영원한 생명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을 심히 사랑하심으로 더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살펴볼것은 이것 입니다. 과연 누가 비젼의 사람일까요?” (Who are persons of vision?): 그는 무엇보다

첫째, ‘믿음을 소유한 사람’ (They are persons who have the faith of God) 입니다: 누가 비젼의 사람 입니까? 물론 사도바울, 윌리암 케리, 허드슨 테일러와 같이 기독교 역사에서 괄목할 만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행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비젼의 사람은 본질적으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비젼의 사람’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믿음의 눈’을 통해 ‘영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인 것 입니다. 이런 영의 눈으로 볼수 있는 자가 비젼의 사람 입니다. 이런 사람중에는 우리가 이름도 성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비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졌던 아니던 관계없이 <영적으로 볼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모두 비젼의 사람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통해 볼수 있고, 의심하지 않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것을 3가지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v.3)는 사실입니다. 둘째) ‘~  (믿음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신다)’ (v.6)는 사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은 능히 죽은자도 살리신다’ (v.19)는 사실 입니다. 이 세가지 믿음의 특성은 간단히 말하면 바로 ‘거듭난 자’ 즉 영적으로 태어난 자가 당연히 가지는 믿음일 것 입니다. 내가 믿는 믿음 가운데 그 어떤것 하나라도 빠져 있어서는 않됩니다. 내가 비젼의 사람이기를 원한다면, 오늘 히브리서에서 밝히고 있드시 믿음을 통해서 내 육신의 눈으로 볼수 없는 것들을 영의 눈으로 볼수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를 믿는 믿음의 눈으로 말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하셨습니까?

둘째,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 (They are persons who fell scales from their eyes) 입니다: 아마 기독교교회 역사를 통해 가장 뛰어난 비젼의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사람의 한명이 사도바울일 것 입니다. 그가 자타가 공인하는 비젼의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었던 그 모멘트는 언제였을까요?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도행전 (행. 9장) 에서 보듯이 매우 극적인 변화의 삶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핍박하는 자에서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따르는 제자로 말 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극적인 변화 (=반전)을 가질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는 확인할수 있습니다. 바로 다메섹 언덕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만났기 때문 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그를 찾아 오셨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바로 직후 눈이 멀어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볼수없는 맹인의 상태로 며칠을 보내게 되었는데, 주께서 그의 제자 아나니아에 명하셔서 바울의 눈을 안수 했을때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는 사실 입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행. 9:18)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했던 사건일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들이 예수 믿고 나서 바울처럼 실제로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인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영접 했다면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영접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우리 믿는 자의 ‘영적 각성’ (spiritual awaking) 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성령을 더욱 의지하고 그의 능력을 사모할때,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눈뜬 장님과 같은 영적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영광을 점점 더 밝히 보게 될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눈에서는 이 영적 비늘이 벗겨졌습니까? 이제 깊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뜸으로서 나면서 소경되었다가 주님의 은혜로 시력을 되찾은 사람 (요. 9:1~12) 처럼 육신의 눈으로는 볼수 없는 영에 속한 것들을 점점 더 분명히 밝혀 보고 있습니까?

셋째,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 (They are persons who obey Jesus Christ) 입니다: 나의 영적 각성을 통해 내 영적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수 없는 축복이자 기쁨일 것 입니다. 그러나, 제가 ‘누가 비젼의 사람인가?’에 대해 여러분과 말씀의 진리를 나누면서, 우리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이 비젼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메세지를 마무리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이나 교회의 역사를 볼때 한때 영의 충만을 통해 왕성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성도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은 영적 침체를 겪게 되는 많은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 원인과 현상을 지금 다 나눌수는 없지만 성도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이것 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를 통해 소중한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영적 체험’ 을 했다면, 그것을 온 힘을 다해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중국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에 대해 여러분은 아실것 입니다. 그는 수만명의 중국인들에게 예수님을 영접케 하고, 6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중국을 위해 헌신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허드슨 테일러가 젊은 시절,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선교사역에 힘쓰고 노력했지만, 사역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해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런 내적 갈증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이것을 두고 주께 기도하던 중, 그의 한 동역자로 부터 ‘우리 성도와 주님과의 참된 영적 관계’ 에 대한 영적 조언을 듣고 깊은 깨닫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라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요. 15:5). 가지는 스스로 잎사귀와 포도열매를 맺고자 힘쓰는 존재가 아니라, 포도나무 원둥치로 부터 진액을 공급 받음으로 자연적으로 열매맺게 되는 존재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에 대한 전적 신뢰와 순종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테일러는 이런 체험을 경험하고 나서 그의 누나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경험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하는 가운데 안식을 누리는 것 입니다. 이것을 깨닫은 이상 이제 저는 어떤 일에도 염려 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을 알며, 주의 뜻이 곧 저의 뜻이기 때문 입니다 ~”.

이런 주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을 가장 핵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삼으실때 하신 말씀 입니다. “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라고. 나의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자아를 날마다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주님과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가는 비결인 것 입니다. 저는 지난주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은것은 그가 행한 초인간적인 선교사역의 결과물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그가 50여년의 중국선교사역 가운데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엄청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점점 더 그에게 충만했던 평화와 기쁨의 삶 이었습니다. 그를 가까이에서 잠시라도 만나고 삶을 나눈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흘러 넘치는 영적 평화와 기쁨을 놓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그의 제자, 허드슨 테일러를 온전히 지켜주셨던 것 입니다.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세상이 결코 줄수 없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그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비단 허드슨 테일러 뿐이 아닐것 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분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그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약속의 열매일 것 입니다. 바로 비젼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넘치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평화와 기쁨을 날마다 누려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비젼의 사람 입니까? 여러분은 육신의 눈으로는 분별할수 없는 영적 실체를 영의 눈을 열어 바라볼수 있는 비젼의 사람 입니까? 날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주님을 순종함으로 따르는 그의 제자 입니까? 이런 아름답고 축복된 비젼의 사람, 즉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감으로 그의 약속하신 성령의 열매를 날마다 누리나가는 성도 여러분의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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