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5, 2021

“교회란” (What The Church Is)

Preacher:
Series: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4:12~13
Service Type:

“교회란”

(What The Church Is)

7-25-21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4:12~13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설교 요약]

            성도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크리스챤의 모습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희망하고 이루어지길 꿈꾸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기를)” (v. 13) 축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엡. 4장>에서 바울은 이런 성도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교회의 연합/하나됨> (the unity of Church)으로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고 <엡. 4장>을 시작하며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힘주어 강조하는 ‘성도의 하나됨’ 곧 ‘교회의 연합’은 이단교회에서 보는 것처럼 외형적인 ‘획일화’ (uniformity)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양성’ (diversity)을 통하여 성취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v.7)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 선물’ 즉 ‘성령의 은사’ (the gift of the Spirit)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다양성 가운데의 통일성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을 기초로 하여 하나로 연결되는 공동체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요?” (What is the Church?)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공동체, 교회는 무엇일까요? 교회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입니다 (She is the body of Christ):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에서 강조되어지는 2가지 요점이 있는데, 그것은 <첫번째>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 되신다”는 것이요, <두번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매는 줄로 함께 연결된 것이 교회입니다.

둘째, ‘서로 사랑으로 연결된 가족’ 입니다 (She is the family for loving each other):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제자된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것은 ‘내 소신껏’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즉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 (요. 15:9)해야 하는 공동체가 교회임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공동체’ 입니다 (She is the community for growing the knowledge of God): 본문말씀 <엡. 4:13>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라고 바울은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하나가 될 때,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성숙된 믿음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표요, 존재이유 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매는 줄로 하나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함께 성장해가는 그리스도의 몸된 주님의 교회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크리스챤의 모습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희망하고 이루어지길 꿈꾸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기를)” (v. 13) 축복하고 있습니다. 2,000여년 전 초대교회 때나, 오늘날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교회나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따르는 그분의 제자라면 우리는 시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충성되게 따르는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믿음의 공동체로 함께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이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약속하신 열매들을 함께 맺어가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엡. 4장>에서 바울은 이런 성도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교회의 연합/하나됨> (the unity of Church)으로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고 <엡. 4장>을 시작하며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것은 “성령의 매는 줄로(써)”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힘주어 강조하는 ‘성도의 하나됨’ 곧 ‘교회의 연합’은 이단교회에서 보는 것처럼 외형적인 ‘획일화’ (uniformity)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또한 그는 분명히 지적함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반대로 (도리어) 다양성 (diversity)을 통하여 성취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v.7)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눠 주시고자 뜻하시는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로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물’은 곧 ‘영적 은사’ (the spiritual gift) 혹은 ‘달란트’ (talent)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교회를 섬기고 하나되게 함에 쓰임 받게 하고자 이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구체적으로 ‘성령의 은사’ (the gift of the Spirit)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11절>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v.11)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영적 선물을 주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교회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일구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쓰임 받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성령의 은사’이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가 하나로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 즉 ‘성령의 은사’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교회는 획일화되고 다양성이 말살되는 <괴상한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무엇보다 이와 같이 다양성을 기초로 하여 하나로 연결되는 영적 공동체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포슬 교회가 각자의 다양한 영적 은사 위에서 하나되는 교회를 꿈꾸며,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요?” (What is the Church?)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입니다 (She is the body of Christ): 성경에서 ‘교회’와 관련된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교회는 신부요 그리스도는 신랑’이라는 비유, 또한 ‘교회는 가지요 그리스도는 참 포도나무’ 그리고 ‘교회는 성전이요 그리스도는 머릿돌’이라는 상징적인 비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비유는 모두 구약성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유는 구약에 나오지 않는 전혀 새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을 머리로 하여 서로 연결된 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고전. 12:27)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에서 강조되어지는 2가지 요점이 있는데, 그것은 <첫번째>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 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우리 몸의 중심이요, 모든 기관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의로우신 권능으로 교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에서 강조되는 <두번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속한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함께 연결된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그 말의 핵심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바울은 성도들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v.3)고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성령께서 우리 각 성도에게 허락하신 선물, 즉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여 우리는 교회에서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 찬양대원, 예배진행자 (파워포인트 운영등) 그리고 식사준비로 봉사하는 자가 되어 다양하게 우리 아포슬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도 각각에게 허락된 다양한 성령의 은사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12절>말씀의 요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포슬 한인교회>에 속한 교인들이라면, 우리는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에 이르기까지 함께 연결되고, 함께 세워져 가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결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관심가지고 섬기고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둘째, ‘서로 사랑으로 연결된 가족’ 입니다 (She is the family for loving each other):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소위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 (마. 28:16~20)과 함께 가장 분명하게 도전하시고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명령’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고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쓰실 수 있는 가장 심각하고 강한 명령어라 할수 있는 “계명” (commandmen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계명’이지만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랑이 새 계명일까요? 사실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님께서 한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의 모든 말씀, 곧 모든 율법의 핵심이 <사랑하라>는 것임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서 가르쳐 주신 바 있습니다 (막. 12:29~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는 계명이 ‘옛 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이라고 주께서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세를 통하여 처음으로 율법을 주시는 시작에서부터 이스라엘민족에게 ‘사랑을 명령’ (신. 6:4~5 & 레. 19:17~18)하셨지만, 안타깝게도 그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민족들은 이 사랑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죄악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더 큰 이유는 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사랑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사랑을 새 계명으로 주신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 사랑을 온전히 행하지 못했기에 주님은 다시 ‘새 계명’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뿐 아니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고. 이것은 주님의 제자된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열쇠의 말씀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한 느낌이나 충동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지요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진정한 사랑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여러분과 제 안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내 안에 거하라” (요. 15:4)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고 분명히 밝히신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각자가 먼저 주님 안에서 그의 사랑 안에 거함을 통해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더 주의 사랑에 힘입어 주의 몸된 지체요, 그분의 제자된 서로를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께서 명하신 ‘서로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영적 가족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공동체’ 입니다 (She is the community for growing the knowledge of God): 오늘 본문말씀 <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매튜헨리, 확인요!???) 이 말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일까요? 이것을 사도 바울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순전하게 믿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라고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귀한 신앙고백을 했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고 도마는 주께 고백했습니다. 주를 향한 귀한 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사렛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날마다 알아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날마다 알아 나갈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더욱 묵상하고 공부해 나가며, 기도로 간구해 나가고, 성령의 충만하심을 통해 우리의 영적 눈을 더욱 밝게 열어 주심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을 뿐 아니라, 성실하게 그분의 말씀에서 자라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란다’고 설명한 것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포함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요한복음 12장>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2:44~45)라고.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역설적으로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자란다는 것은 결국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자란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남으로 선하신 아버지를 더욱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온전한 사람” 이라고 말했을 때의 <온전한>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텔레이온’으로써 ‘완전한’ (perfect)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숙된’ (mature)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감으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점점 더 성숙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아 나가는 지식에서 자라나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크리스챤이 되기를 소망합니까? 그리고 우리 아포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교회는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영적 가족’이요, ‘주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함께 자라가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함께 자라가는 주의 몸된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