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 2017

“그리스도를 위하여” (For the sake of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1:24~26
Service Type:

그리스도를 위하여”

(For the sake of Christ)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By faith Moses, when he had grown up, refused to be known as the son of Pharaohs daughter)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고 (He chose to be mistreated along with the people of God rather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hort time)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론>

                저는 오늘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은혜와 도전의 시간 갖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특별히 <믿음장> 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성경의 기라성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우리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삶은 ‘오직 믿음을 통해’ 살아가는 삶이고, 그 믿음을 통해 살아가는 삶은 결국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함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하는 것은 실로 다양할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 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성경말씀을 통해 묵상해 가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축복된지를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충성된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론>

                    저는 사실 그동안 믿음생활 하면서, <히브리서 11장> 에서 믿음을 통해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을 여러번 묵상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한번 이 믿음장을 묵상하면서 “이런 말씀이 있었네?!” 하며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 11:26> 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랬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 이라고 표현된 부분입니다. 그 전에도 수차례 읽으면서도 별의식하지 않고 지나 갔는데, 이번에 다시 읽을때, ‘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라는 스스로 물어보면서, ‘그는 바로 ‘모세가 아닌가!?’ 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저의 질문은 “그렇다면,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 (=모욕) 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라는 것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모세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제자이거나, 시대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난 뒤에 살았던 성도라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그분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당연하고 조금도 이상스럽지 않겠지만, 모세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1,500년전에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았다는 말인지?’ 궁금할뿐 아니라, 이 본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임을 이해하는 좋은 예가 될것이라고 저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주석과 도움글을 통해서 본문 <24~26절> 의 뜻을 보다 세밀하게 찾아 보았습니다. 이 부분을 ‘메튜헨리’ 는 먼저 <24,25절>이렇게 주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였다"(25절). 모세는 비록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였으며 잠시 뿐이요  후에는 영원한 파멸만이 있는 바로 궁전에서의 관능적이고 죄된 즐거움을 즐기기보다는  백성들과 함께 장차 있을 유업을 받고자 하였다. 이같이 모세는 신앙에 따라 행동하였을  아니라 합리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는 세상적인 권력에의 유혹을 극복하였듯이 또한 세상적 쾌락에의 유혹도 극복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죄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크나큰 죄보다도 차라리 고난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크나큰 고통보다 최소한의 죄의 결과가 무서운 법이다.” 라고.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의 왕궁에서 보내는 어떤 풍요로움과 세상이 주는 화려함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참된 특권을 이해했기에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았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히브리서 기자는 육체와 지적으로만 장성한 상태일뿐 아니라, 더욱이 영적으로도 성숙한 성도의 행동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권력과 온갖 쾌락의 유혹을 물리치고, 차라리 고난을 택하였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하는 가장 큰 고틍보다 최소한의 죄의 결과가 비교할수 없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옴을 영으로 이해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재물로 여겼으니” (v. 26) 라고 히브리기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의 질문은 모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는가?’ 하는 점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 나와 있는 중요한 말씀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렇게 예언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신. 18:15) 모세는 성령의 충만한 인도하심 가운데, 그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전하면서 ‘언젠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희)를 위하여 일으키실 것이다’ 고 예언 했습니다.

둘째, 사도바울은 ‘모세뿐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민족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성 반석에서 흘러 넘치는 물을 마시는 사건> 통해 설명’ 했습니다; 같은 신령한 (=영적)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반석은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 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을 하나의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형 (샘플) 로 설정하면서, <고전. 10장> 을 시작합니다. 먼저 ‘1,2절’ 에서는 그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가는 사건을 ‘바다 가운데 온민족이 침례 받는 사건’ 으로 해석했고, ‘3,4절’ 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고, 광야의 바위에서 쏫아 오르는 물을 마시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 (. 6:32~35 ) 이 되시고, 영원한 반석’ (. 20:17,18)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먹고 마시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까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이에 그들은 오실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떡과 영생하는 물을 마시는 ‘교회 공동체의 모델’ 로 영적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는 뜻은?” (What is the meaning of the Moses’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v. 26)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역사속에서 구원의 주인이 되심> (It means that Christ is the Lord of our salvation throughout the whole human history) 을 이해하게 합니다: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그의 아들을 육신의 몸을 입고 오게 하시기 이미 전부터 그의 택한 자녀들의 모든 고난과 구원사역에 동참케 하셨음을 이렇게 선언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 63:8,9) 라고 말 입니다. 모세는 그의 민족인 이스라엘과 함께 고난과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시키시는 메세야,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이요, 고난이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모세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잠시 누리는 죄악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교회 공동체’ 와 함께 고난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모욕) 을 받는자라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역사를 꿰뚫고 구원을 이루시는 주인공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행하시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 입니다.

둘째,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해 댓가지불 하는 > (It means that the genuine faith ought to pay the cost for our Lord Christ) 임을 이해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그 유명한 ‘산상수훈 설교’에서 이렇게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이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 인 것을 이렇게 분명히 도전 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5:11,12) 라고. 이 말씀속에서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자들이 분명히 명심해야 하는 진리는 ‘세상은 결코 우리 주님의 제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입니다. 아니 미워하고 욕하고 핍박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망대건축’ 과 ‘전쟁을 준비하는 왕’ 의 비유를 통해 도전하신 점 입니다. 기분데로, 덤벙데로 결정하지 말고, 따져보고, 정말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름에서 오는 모든 모욕과 핍박을 각오하고 그 댓가를 치를 준비가 되었다면 따르라는 것 입니다. 왜 주님의 제자들은 이런 고난과 핍박을 겪지 않을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세상이 나를 미워하기 전에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 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 하느니라” (. 15:18,19) 라고. 고통과 핍박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참된 길이라면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단하고 댓가를 지불하며 가는 것 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오시기전, 천년이 훨씬 전에 살았던 모세라 할찌라도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그 댓가를 지불했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위한 댓가지불의 삶이다> 라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 입니다. 저는 이점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황당하게 들렸던 선언을 하신 사건과 동일한 이유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볼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 하였느니라” (. 8:56) 고 말씀 하셨습니다. 언제 모세 보다도 더 조상되는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가 믿음으로 댓가를 지불하며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그의 100세 되어 낳은 이삭을 순종함으로 바치는 사건을 통해,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숫양을 예비하셔서 이삭을 대신하여 희생제물로 바치게 하신 사건을 통해 (창. 22장), 그리고 그가 이삭을 죽게 드릴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죽은 가운데 도로 받을줄로 믿은’ 부활의 믿음 (히. 11:17~19) 으로 나아감을 통해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기뻐 하였던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은 믿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고 욕먹는 댓가지불의 삶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 댓가지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 않고, 자랑으로 자부심으로 누리는 주의 제자로 살아갑니까?!

셋째,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인생에게는 <반드시 선한 상이 있음> (It means that believers, living for Christ, will be rewarded by Him) 을 이해하게 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과 고난을 더 가치 있는 재산으로 생각한 것은 ‘상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 (v.26) 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몇번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를 여러분과 나눈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복’ 혹은 ‘상급’ 을 얘기하면 뭔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고, 하나님의 때에 주시는 진정한 복’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질의 축복, 건강이나 자녀나, 세상 권세나 그 어떤 눈에 보이는 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들도 함께 그의 자녀들에게 일용할 양식의 필요와 그 상황에 따라 나눠 주시기도 하지만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선하신 상을 사모해야 합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유치한 것이다. 구원받은 자녀에게 무슨 상이 더 필요하냐?!’ 고 말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아버지의 은혜에 대해 아직 눈뜨지 못한 섣부른 판단 입니다. 깊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성도의 성숙된 삶의 모범을 보인 사도바울이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이렇게 고백함을 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고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그 마지막날 우리의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사모 하십니까? 이것은 사도바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믿음의 성도들을 위한 면류관 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광된 면류관을 사모 합니까?

 

<론>

                우리 교회는 특별히 젊은 학생 청년들을 섬기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자 하는 비젼 가운데 세워진 교회 입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 청년의 시절, 피가 끓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청년의 시절에 주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그만큼 청년의 때에 주님을 만나고, 평생을 통해 그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축복중의 축복인지도 잘 압니다. 모세는 장성한 성년이 되어 자신이 어떻게 살것인가를 이성적으로, 그리고 믿음을 통해 결정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여 모욕받고 고난 받는 삶을 잠시 죄악 가운데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아포슬성도 여러분, 잠시 세상 가운데 우리를 유혹하는 쾌락과 물질에 파묻혀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분명히 댓가를 지불하는 충성된 주의 제자가 됩시다. 잠시후면, 우리는 의로운 재판장되신 주님 앞에 설것 입니다. 그날에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을 쓰며 생명 가운데 영원한 유업을 누릴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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