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3, 2017

“세월을 아끼라” (Redeeming the time)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Service Type:

세월을 아끼라”

(Redeeming the time)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론>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당신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저의 눈을 감으면서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 할것 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무엇이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인가요?” 라고 다시 묻는다면, 저는 “그것은 저의 인생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섰을때 주께서 ‘잘 하였도다’ 라고 인정해 주시는 삶 입니다” 라고 저는 대답 할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성도를 향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v.16) 고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무엇이 “세월을 아끼는 삶” 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섰을때 ‘네가 믿음으로 달려 왔고, 충성된 삶을 살았구나!!” 라고 주께서 칭찬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삶일 것 입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께 인정 받는 삶이 세월을 아끼는 삶이요, 후회없는 삶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육체의 나이가 몇살이냐에 관계없이 ‘진정 화살과 같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사도바울의 충심의 도전과 같이 진정으로 ‘세월을 아껴서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론>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분명히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수도 있고, 혹은 ‘어리석은 인생’을 살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자동적으로 지혜로와 지고 후회없는 인생을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 사도바울은 엄숙하게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격려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이 결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내가 크리스챤이라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어리석고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않는다는 보장이 결코 없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 삶이 어떠하냐?!> 에 따라서 여러분과 저는 ‘지혜로운 삶’ 을 살수도, 아니면 <어리석은 삶’ 을 살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 입니다. 사도바울의 때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이나 이 세상은 언제나 악하기 때문 입니다. 이 세상속에서 공중 권세 잡은자 사단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돌아다니며 믿는 자를 미혹케 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세월을 아끼라’ 고 강하게 그의 영적 자녀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도전하는 이유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질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삶인가?’ (What is the life for redeeming the time?) 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아 갈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 (It is the life to understand what the will of the Lord is) 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뜻, 우리를 그의 의로운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생명 살게 하신 뜻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될때 우리는 비로소 세월을 아낄수 있는 것 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엡. 5:15~17> 까지에서 사도바울이 설명해가고 있는 말씀의 논리 입니다; 바로 지혜없고 어리석은 같이 아무 생각없이 막살지 말고,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살아가라.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해한만큼 가능한 것이다고 바울은 주장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만큼 지혜로운 삶을 살아 갑니까?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오늘 말씀은 분명히 그 기준을 제시 합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내가 이해해 가고 있는가?’ 가 바로 ‘지혜로우냐? 아니면 어리석으냐?’ 의 분명한 기준인 것 입니다. 내 머리가 얼마나 스마트하냐? 내가 얼마나 좋은 학교,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얼마만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해해가고 있습니까? 아니, 내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우리를 그 지혜가운데로 인도하실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 이 있습니까? 누구도 주님의 뜻을 죽는 날까지 100%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과 소망 가운데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온힘을 다해 열심을 다해야 할것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만큼’ 여러분과 저는 세월을 아끼는 삶은 살아갈수 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는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저는 말씀 드리지 않을수 없을 것 입니다.

둘째,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 (It is the life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이 세월을 아끼는 삶일까요?’; 저의 대답은 첫번째 진술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 드린데로, 우리 크리스챤이 세월을 아끼는 삶이 ‘우리 주님의 뜻을 이해해 감으로서 가능’ 하다고 사실을 여러분과 제가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우리 주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다음 질문 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이라고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v.18).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한 영광스러운 몸을 보여 주심으로서 제자들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시기 앞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 1:4,5) 고. 주님 명령의 핵심은 ‘성령을 받으라. 성령충만을 받으라’ 는 것 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주의 일하고자 열심을 내기 이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는 것 입니다. 주님의 이 명령과 약속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바로 전에 주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실것’ 을 약속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영광을 나타내리니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 16:8,13,14) 고 주님은 분명히 성령님의 성도를 향한 절대적인 일하심과 영향력을 약속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해, 의해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짐을 뜻 합니다. 어떤 진리도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 깨닫을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우리 주님의 본질적인 설명 입니다. 사도바울은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우리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충만하신 통치하심과 은혜 아래에 있지 못할때, 여러분과 저는 세월을 낭비할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할때, 술취함과 같이 세상의 헛된 교훈과 육신의 소육에 지배되어 세월을 낭비하게 되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바울은 ‘술쉬한 상태’ 와 ‘성령충만한 상태’ 를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술취함과 성령충만의 <공통점>은 강한 영향력 (술이나 성령의) 아래 놓인다는 것이고, <차이점> 은 ‘술취함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강압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힘’ 이라면, ‘성령의 충만은 언제나 우리의 자발적인 성령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통한 그분의 충만한 통치아래 놓여진 상태’ 라고 정의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술 취함’ 이란 영적으로 볼때, 우리 인간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에 지배 받는 삶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은 반대로, 육신을 날마다 죽이는 삶이요, 육신을 거스리고 성령의 지배아래 살아가는 삶이요,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 입니다. 이런 성령충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사도바울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피차 복종" (. 5:19~21) 하는 것 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의 시작이 ’주님의 뜻을 이해해 나가는 삶’ 이라면,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시작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삶’ 이요, ‘성령님께 순종함 으로 그의 통치하심’ 에 들어가는 삶이 될것 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습니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사모하며, 그분의 의로우신 통치 안으로 들어가기를 열망하십니까?

셋째, ‘서로 사랑하는 ’ (It is the life to love one another) 입니다: 신약에 보면 주님께서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으로 가르치셨지만 ”명령한다. 새롭게 계명을 준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저는 기억 합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13:34) 는 것 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는 것 입니다. 이 ‘서로 사랑하라’ 는 명하심이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의 제자, 즉 ‘크리스챤이냐 아니냐?’ 의 기준을 우리 주님은 ‘얼만큼 성경말씀을 잘 아느냐? 얼만큼 예배를 잘 드리느냐?’ 보다도 ‘우리 예수님을 머리로 모인 교회 공동체가 서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느냐?’ 로 나의 크리스챤의 정체성이 결정난다는 것 입니다. 바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제자인줄 알리라” (. 13:35) 고 주님은 분명히 선언 하십니다. 이 주님의 선언은 모든 사람들 뿐 아니라, 사랑을 명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말로만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행할때 비로소 ‘그래, 너희는 진실로 나의 제자가 맞다!’ 라고 인정해 주시겠다는 심감한 선언인 것 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서로 사랑할까요? 그것을 잘 가르쳐주는 말씀이 5장 시작의 말씀 입니다. 그 첫 걸음은 ‘내 스스로 사랑 하겠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받은 그 사랑을 따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엡. 5:1) 그 다음 걸음은 더 구체적이고 확실 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압니다. 그런만큼 그분을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유대인과 같이 우리 인간의 영적 어리석음과 죄에 대한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히면서, 사실은 나 자신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힌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의를 쌓고자 열심을 내는 것 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빠져 있기 때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5 2> 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 자기 몸을 주신것 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2) 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이 세월을 아껴 살아갈수 있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 하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라는 뜻은 그분의 사랑을 의지한다는 뜻 입니다. 내가 할수 있는 모든 사랑의 원천은 모두 고스란히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 입니다. 어느만큼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그 살이 찢기고 그 피를 남김없이 쏫음으로 드려지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 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고 사도바울은 우리를 도전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 측량할수 없는 사랑이 모두 녹아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가 실천해 갈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언급한 것이 <5 3~20> 까지의 내용임을 볼수 있습니다.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크리스챤의 삶은 언제나 '서로 사랑하라' 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요, 이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 밖에 달리 왕도가 없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장 온전히 깨닫아가는 자요, 주의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자 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진실로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세월을 아끼는 자 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입니까?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세월을 낭비하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길 원치 않느다면, 오늘 사도바울이 여러분과 저를 향한 도전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바로 ‘세월을 아끼라’ 는 것 입니다. 어떻게 세월을 아낄까요? 그것은 ‘주님의 뜻을 잘 살펴 나감으로서 이해’ 하는 것 입니다. 결코 막 살아서는 않됩니다. 말씀을 매일 보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그 뜻에 순종하고자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 을 통해서만 가능 합니다. 내 머리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지혜의 성령님을 제쳐놓고 내 힘으로 하고자 할때 나는 실패할수 밖에 없고 세월을 낭비할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 여러분이 스스로 세월을 아끼는지 어떤지를 가장 분명히 확인하고 싶다면, 이렇게 물어 보십시요.; ‘지금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는가?’ 를 점검해 보십시요. 이 사랑의 실천이 바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좇아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를 스스로 점검하는 최종적인 기준이 될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 합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분께 순종하심으로 사랑의 풍성한 열매를 날마다 거둠으로 세월을 아끼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때 ‘시간을 값을 주고 사는’ (redeeming the time) 지혜로운 인생을 마감함으로서 ‘잘 하였도다, 충성되도다’ 라고 인정함 받는 성도 모두 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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