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6, 2017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here is no condemnation)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1~4
Service Type: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here is no condemnation)

7-16-17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론>

                저는 지난 시간 ‘생명의 성령의 법’ 이라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눴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지난 시간 성령의 법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것, 특별히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는 뜻이 무엇인지를 함께 이해함을 통해서 우리 크리스챤의 신분과 그 놀라운 존재를 확인해 나가길 원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 가운데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 크리스챤의 축복된 신분을 우리 모두 확실히 깨닫고, 따라서 정죄함 받지 않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점점 더 풍성히 맺어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론>

                사실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첫 출발에 해당한다고 지난 시간에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결코 매우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상태나 성도의 최종적인 성화의 높은 경지가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는 의미가 아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 해야 합니다.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 누리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신분이자, 은혜인 것 입니다. <로마서 8:1,2> 에서 사도바울이 선언한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고’ (v.1),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v.2) 사람은 높은 수준의 성화된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 입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영적으로 갓 태어난 아이’ 와 같은 성도를 포함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 입니다.

저는 먼저 ‘어떤 사람에게 정죄함이 임하는지?’ 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그다음, <로마서 7장> 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v. 24) 고 ‘탄식하는 사람은 어떤 상태의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죄함을 받지 않음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에게 정죄함이 임할까요?’:그리스도 안에 속하지 않는자 에게 정죄함이 임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죄함을 받는다’ 는 것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데로 법적 용어 입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죄가 있다’ 고 ‘유죄판결을 받는 것’ 이 바로 ‘정죄함을 받는다’ 는 원어의 뜻 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우리 모든 인간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율법을 가진자나 가지지 않은자 관계없이 모두 ‘정죄함’ 곧 ‘유죄판결’ 을 받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 (. 1:18)
  • 인간은 율법을 가진 (유대인) 가지지 않은 (이방인) 모두 죄를 범함’ (. 3:9)
  •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함’ (. 3:10, 20, 23) 고로, 모든 인간은 정죄함을 받음

왜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상태가 소중하고 놀라운가 하면, 우리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정죄함을 피할수 있는 자’ 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벗어나고 정죄함에서 벗어날수 있게 된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 (. 3:23,24)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이방민족은 말할것도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의롭게 살아간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유대인들도 모두 정죄아래 있다고 사도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8:34,36) 고 자신만이 죄로 부터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율법은 유대인들을 죄로 부터 자유롭게 할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 율법은 그 본질상 율법의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 (. 3:10)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하였음이라” (. 3:10) 이 율법의 온갖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 명령데로 모두 행할수 있는 자는 불행히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정죄함을 받지 않고,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통해 허락하신 것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으심으로 내가 더 이상 죄인이라고 인정함 받지 않고, 정죄함 받지 않고, 대신 그분의 의로움으로 옷 입음으로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것 입니다.

둘째, ‘로마서 7장의 탄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가장 신비하기도 하고, 가장 신학적인 논란을 일으키는 성경본문의 하나가 <로마서 7:24> 말씀 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 7:23) 성도 여러분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라고 절규하며 탄식하는 이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 하십니까? 사실 <롬. 7:23> 의 탄식하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7장 전체를 살펴봐야만 합니다. 아니, 6장부터 봐야 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좀더 깊이 묵상하고 이해해야만 할만큼 중요한 본문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요점만을 집어 보고 넘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롬 7장> 끝에서 탄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크게 3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번째>이 사람은  ‘불신자’ 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모든 구원받은 자의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 ~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탄식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두번째> 로 어떤 신학자는 이 사람은 바로 ‘이 로마서를 쓸 당시의 사도바울 자신 이었다는 것’ 입니다. 이 사람은 단순히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일뿐, 아니라 깊은 영적 성숙으로 성화의 높은 단계에 이른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 입니다. <셋째> 로 ‘진리의 빛을 통해 율법의 선함을 시인하지만, 아직 그리스도 안에 속하지 못한 > 입니다. 지금 까지도 이 사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그의 치밀하면서도 영에 충만한 논리구조를 통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문맥의 전후구조를 면밀히 검토해 볼때 내리게 되는 결론은 <셋째 해석> 가장 이치적임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 을 마무리 하면서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5:20,21)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6 & 7장> 에서 ‘어떻게 믿는 자가 죄가 왕노릇 하는 영역에서 완전히 옮겨져서, 은혜가 왕노릇 하는 영역에 이르게 되었는지?’ 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가고 있는 것 입니다.

바울은 <6>에서 바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 (롬. 6:3~11) 의로움과 은혜가 통치하는 삶을 살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 합니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함께 장사 지낸바 되고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의미요, ‘죄가 왕노릇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은혜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옮겨졌다’  는 의미 입니다. 그리고, <7> 에서는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율법과 우리 성도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하나의 상황을 설정’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율법과 인간의 관계를 결혼관계’ 로 비유하고, 남편이 죽으면 더 이상 두사람의 법적 관계가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 합니다. 따라서, 내가 율법에 대해 죽는다면, 율법은 나에 대해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미칠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의 ‘존재이유’ (=기능) 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은 ‘죄를 깨닫게 하고자’ (롬. 7:7) 함인 것 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자손’ 바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있은것’ (갈. 3:19) 이라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정확히 지적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우리를 지도하던 가정교사 (갈. 3:24,25) 인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지배아래, 그분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것 입니다. 율법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 법적 효력을 행사할수 없는 것 입니다.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내가 율법에 대해 죽는다는 뜻 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이 예수 안에 있는 나를 가둘수 없는 것 입니다. <7>장은 결국, 우리를 <8장 1,2절> 로 인도 합니다. 이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2) 는 것 입니다.

<로마서 5장> 끝 (v. 20,21) 에서 선언한 ‘죄가 왕노릇하는 나라에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나라’ 로 옮겨진 존재가 우리 크리스챤이라는 선언을 6장과 7장에서 삽입적인 보충설명을 거쳐서, 8장을 시작하면서 다시 연결하는 것 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노릇 하는 나라에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나라로 생명의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옮기셨다는 것 입니다. 7장 끝의 ‘곤고한 사람’ 은 따라서 8장 시작의 예수 안에 있는 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율법이 선한지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의 통치를 받지 못함으로 어쩔수 없이 죄의 법 아래로 끌려가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 입니다. 심히 참담하고 곤고한 심령의 사람 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절망적인 영적 상태를 깨닫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음으로 해서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인 것 입니다.

셋째, ‘내가 정죄함을 받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지?’: 함께 마지막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리스도 안에 속하지 않은 자’ 는 모두 ‘죄가 있다’ 고 정죄함을 받는 상태에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7:24> 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는 것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 절규하는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더 나아가 로마서를 쓸 당시의 깊은 영적 성숙을 가졌던 사도바울 자신을 뜻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많은 크리스챤들이 ‘맞아, 예수 믿고 구원 받아도, 의롭다고 칭함 받아도, 심지어 사도바울과 같이 이런 깊은 영적 성숙의 상태에 있어도 때에 따라서 힘들고 지치면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라’ 라고 탄식하는게 당연 하다’ 고 치부해 버리게 된다는 점 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우리 존재에 대한 이해’ 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여러분과 저는 여전히 정죄함 아래 있고,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다스림으로 사망의 몸 가운데 고통하고 탄식하는 삶을 산다 라고 우리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여전히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피로서 이미 죄 씻음바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의롭다고 칭함받은 자들은 결코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라’ 는 이런 절망적인 고백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고, 사망의 몸 가운데 절망하고 탄식하는 영역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생명의 성령님의 능력이 통치하시는 영역 아래로 옮겨졌기 때문 입니다.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 드렸드시, ‘정죄함을 받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 의 상태는 몇몇 신앙좋고 영적으로 성숙한 크리스챤에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정죄함을 받지 않는 사람’ 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고 칭함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 상태인 것 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갓 태어난 성도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분’ 을 뜻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과 저를 해방하였기 때문 입니다. 만약 이렇게 결론 내릴때, 여러분 속에서 “그러면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아무리 잘못을 해도 정죄함을 받지 않은거내!? 이제 적당히 죄를 좀 지어볼까!?’ 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도바울의 그 끈질긴 강조점으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 입니까?;그런즉 우리가 무슨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가운데 살리요” (. 6:1,2) 라는 말씀으로 되돌아 가야만 합니다. 6장과 7장을 다시 살펴봄으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완전히 죽었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율법이 아니라 의를 통하여 은혜가 통치하는 나라로 옮겨진 존재라고 것을 확인하고 이 진리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왕노릇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결코 죄 지을수 없는 것 입니다. 왜요?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다시 살아나서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 (롬. 6:3~7) 을 살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이미 죄 가운데 죽었기 때문’ (롬. 6:8~11) 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의 핵심입니다. 결코 그렇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죄에 거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 입니다.

<론>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루터는 로마서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 1:17) 는 말씀을 통해 복음의 진리에 대해 눈뜨게 되었습니다. 어떤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게 되는 진리를 깨닫게 된것 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때까지 그의 수도원시절,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고해성사와 고행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보다는 그분의 엄중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에 휩싸였던 삶에서 부터 그는 비로소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비로소 진리의 복음 안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참소하는 사단 마귀의 정죄함으로부터 자유하게 된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더 이상 정죄함을 받지 않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거듭난 성도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는 모든 성도들의 출발점이지만, 이러한 자기인식이 중요한 것은 ‘정죄함으로 부터 자유함’ 을 누리지 못할때 ‘영적 성숙과 깊은 성화’ 로 나아가는 축복된 삶은 기대할수 없기 때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칭의) 받는 것과 ‘정죄함으로 부터의 자유’ 그리고 ‘더 깊은 성화의 삶’ 은 한단계 한단계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시작되고 함께 깊어져 나가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구원의 첫단계에서 ‘물과 성령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성령님 자신이 또한 우리를 정죄함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셔서, 생명을 가져오는 통치로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시기 때문 입니다. 구원과 칭의와 정죄함으로 부터의 자유와 성화의 은혜가 동일한 성령 안에서 행해지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 ‘정죄함에서의 해방’ 을 깨닫지 못할때, 그 안에서 누리게 되는 내 존재의 자유와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 그분을 통해 함께 소유하게 되는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유업도 기대하기 어렵고, 누려 나가기 불가능한 것 입니다. 바라건대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함으로 참소하는 사단을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 이기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통치하심을 통해 날마다 약속하신 풍성한 열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두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