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1, 2017

“그리스도의 사랑” (The love of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3,14
Service Type: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3,14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If we are out of our mind, it is for the sake of God; if we are in our right mind, it is for you)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For Christ’s love compels us, because we are convince that one died for all, and therefore all died)

<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도바울의 열정적이고 그의 강력한 믿음의 비밀을 드러낸 고린도서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도전과 은혜의 시간 갖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사도바울은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휩싸여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이 감당할수 없었던 사도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끊을수 없는 사랑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닫아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론>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매우 강렬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14a) 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무엇이 ‘강권하다’ 는 뜻 입니까? 영어로는 ‘compel’ 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강요[강제] 하다; ~ 하게 만들다; (어떤 반응을) 자아내다[불러오다]> 라는 뜻으로 영어사전에 정의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성경번역에 있어서 현대인의 성경’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 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 잡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강권하다’ 는 헬라어 원어는 <순에코> 인데, 이것은 통제하다 (to control); 강력하게 이끌다 (to compel); 혹은 (군인들을) 흩어지지 않게 붙잡다 (to keep from dispersing)’ 등의 뜻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 의미는 강권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제자 (사도바울 뿐 아니라, 모든 그의 제자들) 을 강하게 밀어 붙이고 제한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사도바울의 그 놀라운 세계선교의 열정과 복음에 대한 비젼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도 중요한 지적임에는 틀림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단지 사도바울의 믿음을 부러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요, 나 또한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열망한다면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오늘 본문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 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내 믿음의 출발이 ‘내가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요’ ‘내가 영적 자질이 풍부해서도 아니요’ ‘내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서도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나를 휘어잡는  피할수 없는 사랑’ 이 내 믿음의 출발점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 자신뿐 아니라, 모든 주의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고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을 향해 도전하고 또한 격려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편지> 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바는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나셨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셨기)> (요일. 4:9) 때문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아들을 보내(신것)” (요일. 4:10) 입니다. 그리스도의 우리를 강권하시는 놀라운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가능한 사랑인 것 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화목제물 삼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사랑 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제 오늘 예배를 통해 최준명집사의 가정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송하기 원합니다. 한국에 가셔서 집사님과 가족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축복된 삶 살기를 소원 합니다. 저는 집사님과 가족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얼마나 강력하고 놀라운지를 깨닫기를 소원 합니다. 이것만이 최집사님과 그의 가정이, 아니 여기 남아 있는 우리 모든 한사람, 한사람이 믿음으로 승리하고, 참된 주님의 제자로 열매맺는 비밀임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온전히 깨닫고, 그 사랑을 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1 John 4:18) 고 사도요한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린이는 눈치보지 않고 늘 자신감에 넘치는 반면,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매사에 상대방 눈치를 살피고 불안해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받아 들여질수 있을까?’ 불안하고 두려운 것 입니다. 더 나아가, 나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때 영적 안정감을 누리지 못하고 늘 불안하고 두려워 하는 것 입니다. 왜 두려워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실까?’ 두렵고, ‘내가 벌 받지 않을까?’ 두려운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화목제물’ 로 대신 죽게 하심으로 나를 살리셨음을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기에 늘 불안하고 두려운 것 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 예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저항할수 없는 압도하는 사랑으로 나를 사로잡으셔서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이끌어 가고 계심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기에 주의 제자가 누리는 평화와 담대함이 없는 것 입니다.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하는 사랑이 여러분의 삶을 휘감고 이끌어 가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끊을수 없는 사랑이 여러분의 삶을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하도다” (요일. 4:11) 고 사도요한은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이 끊을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통해 우리를 휘감음으로서 여러분의 남은 평생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축복된 인생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