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 2020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4:11~13
Service Type: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3-22-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4:11~13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빌립보 강해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에게 약속하신 모든 권세와 은혜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로 빌립보서를 통해 거듭해서 사도가 강조한 ‘기쁨의 삶’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1) 바울은 ‘복음의 진보’를 누렸기 (1장) 때문이고, 2) 그는 ‘그리스도를 소유’ 했기 (3장) 때문이며, 3) 사도는 ‘자족하는 법을 배웠’기 (4장) 때문입니다.

이제 빌립보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바울은 만족하는 법을 배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영적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육체의 가시를 없애 주시기를 3번씩 간구했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가 족하다” (고후. 12:9) 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이 약할 때 도리어 강하여 지는 역전의 삶을 경험으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도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약속의 성령께 순종함으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아 나가는 법을 날마다 배워 나가고, 그분과의 교제의 풍성함을 배워 나갔던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본을 통해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겸손과 순종의 삶 (빌. 2:6~8)을 본받아 바울은 그분의 마음을 품었고, 또한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크리스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여러분은 기쁨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감으로 만족과 감사를 통해 넘쳐나는 기쁨의 삶을 누리길 원합니까? 이런 기쁨의 주의 제자들이 모두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v.13)는 제목으로 빌립보서 강해 마지막시간에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심히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빌립보서를 마무리하면서 사도가 고백했던 그 확신과 승리에 찬 선언의 의미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도데체 사도 바울이 힘있게 외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제한된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고 사도는 자신 있게 선언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 모두가 바울 사도가 누렸던 그 풍성한 영적 지혜와 능력을 날마다 공급받고 누려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함께 집중해서 살펴보기 원하는 것은 오늘 말씀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의 선언입니다. 무엇이 과연 사도로 하여금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놀라운 선언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사도는 그가 선언하듯이 모든 것을 다 행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믿습니다.

먼저, 사도가 선언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흔히 말해서 직설적으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해서 그 말의 뜻이 인간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신적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이적들,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이신 이적, 그리고 나면서부터 눈먼 자나 앉은 뱅이 심지어 죽은 지 3일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들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 즉 그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모든 특권과 은혜를 누려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것들일까요?’ 이것이 바울 사도가 빌립보서를 통해서 계속 밝혀온 점이라 저는 믿습니다. 바로 기쁨의 삶입니다. 상황과 형편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저는 빌립보 말씀을 처음 시작하면서 1장에서 ‘왜 사도는 성도들을 향해 기뻐하라고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3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복음의 진보’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조차 그리스도의 복음을 왕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그가 경험했기에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둘째 그는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했다는 것은 자기가 마음데로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컨트롤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진정한 영향력을 받고 그분께 속한, 바로 그리스도의 소유된 그의 제자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된다” (빌. 3:8~9)는 뜻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고상한지 그는 다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셋째로 사도는 ‘자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4장에서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의미는 지난시간 자세히 살펴 보았듯시, 단순히 ‘나는 가난하게 살더라도 불만하지 않고 만족하여 살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in whatever the circumstances) 그는 영적 유연성을 가지고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물질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물론 가난하고 물질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쉽고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있겠지만, 도리어 많이 가지고 풍족한 사람이 도리어 더 가지지 못해 불만과 불평을 헤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더 무섭다는 것 아닙니까? 부하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고난과 핍박이 극심하든 평안하든 상관없이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만족하는 법을 바울 사도는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사도가 오늘 말씀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v.13) 고 선언한 이유인 것입니다. 언젠가 옥한흠 목사는 오늘 본문말씀을 설교하면서 ‘만약 내가 가난할 때 만족하지 못한다면 부자가 되어도 만족할 수 없고, 부유했을 때 만족하지 못한다면 가난할 때도 만족하지 못한다’라고 우리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지를 잘 지적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데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내가 초자연적으로 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모든 충만한 은혜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 복음의 진보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더욱 더 자족하는 법을 배워 나감으로 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사도가 그토록 자신이 경험하고 누리는 이 기쁨의 삶의 이유를 숨김없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드러낸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12절>에서 그는 “내가 ~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나는 ~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표준 새번역) 고 말합니다. 여기서 ‘배웠다’는 것은 영어로는 ‘I have learned’ 로서, 그 헬라어 원어의 의미가 ‘현재완료’로서 ‘내가 계속해서 배워 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번 잠시 배워서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배워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만족하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로이드 존스는 그의 빌립보 강해설교에서 이것을 이렇게 영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그는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거둬 가시길 주께 3번씩이나 간절히 기도드렸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가 족하다” (고후. 12:9)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약할 때 도리어 강하여지는’ 놀라운 역전의 삶을 경험으로 허락하여 주심으로 사도는 배웠던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고 우리를 평화와 안식의 삶으로 초대하셨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요. 7:37~38) 고 그를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도는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약속의 성령께 순종함으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아 나가는 법을 날마다 배워 나가고, 그분과의 교제의 풍성함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셋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본을 통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겸손과 순종의 삶, 근본 하나님과 본체 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종의 모양으로 사람과 같이 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심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빌. 2:6~8). 그러므로 그는 점점 더 깨닫은 만큼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에 품었고, 또한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의 고백이 충만한 능력임과 동시에 겸손의 고백인 것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v. 13a),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이 빌립보 설교를 한번 들었다고 모두 사도 바울과 같은 영적 성숙에 이른다고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이 그와 같은 환경을 넘어선 기쁨의 삶을 간절히 구하고 소망하는 자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넘쳐나는 만족과 감사의 삶을 우리 주님은 반드시 주실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쁨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감으로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수 없이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누렸던 만족과 감사를 통해 넘쳐났던 기쁨의 삶을 정말로 누리길 원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 기쁨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길 간절히 원하며, 날마다 성령을 통해 만족함을 겸손히 배워 나갈 때 주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기쁨을, 바로 주님의 충만하신 기쁨을 허락하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기쁨의 주의 제자들이 모두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