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3, 2018

“넉넉히 이기느니라” (We are more than conquerors)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35~37
Service Type:

“넉넉히 이기느니라”

(We are more than conquerors)

6-3-18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35~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아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i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As it is written: “For you sake we face death all day long; we a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서 론>

성도 여러분은 내 스스로 어찌할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자신의 무력감과 연약함을 실감해 본적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승리자의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여러분과 저는 ‘넉넉히 이길수 있는 것일까요?’ 누구를 이길수 있고, 어떻게 이길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우리 믿는 자를 끊임없이 공격히고 넘어트리려 합니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 이미 깊은 패배의식과 무기력함 속에서 죄와 세상의 가치관에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아니라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성도 여러분의 승리하는 삶 사시길 기대 합니다.

<본 론>

<로마서 8장> 을 읽어나가다 보면, “예수 믿고 거듭난 자의 삶에 어떤 구체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에 대해 이해할수 있습니다. 첫번째, 성도들에게 ‘고난/핍박’ 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물론, 이런 사실은 그렇게 반갑지 않은 사실 입니다. 고난은 고통스럽고, 우리의 육체가 본능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8:17) (bad news!) 그러나 두번째, 성도들은 그 ‘고난’을 이겨낼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8:25~28,31~39) (good news!). 단순히 참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 입니다. 영어를 직역하면 <정복자보다 더 강한자가 되는 것> ( ~ more than conquerors) 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 의 요지 입니다.

오늘 이 사간은 ‘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반드시 ‘고난과 핍박’ 은 찾아오는 것인지? 이것은 피할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성도들에게 고난이 찾아올때, 우리는 결코 세상사람들 처럼 행동해서는 않된다’ 는 것 입니다. 세상사람들은 ‘고난’이 찾아올때 이 고난은 불행이요, 실패요, 뭔가 지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이 고난을 맞이하는 가장 우선적인 자세는 이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임을 확신하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주님의 참된 제자의 삶이 정식으로 시작 되었기 때문 입니다. 우리 주께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 5:11) 고 말씀하신 이유가 정확히 그것 입니다. 고난은 이제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싸인이라고 할수 있기 때문 입니다.

과연 성도들이 경험하는 고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받게 되는 핍박과 굶주림과 칼에 의한 죽음의 위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매우 심각하고 혹독한 핍박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어떤 핍박과 고난을 당한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것 입니까?

제가 오늘 성도 여러분과 이 시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는가요?> 하는 것 입니다:

첫째, ‘내가 택함 받았다는 사실’ 을 이해 함으로: (롬. 8:29,30)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영성이 뛰어나거나 믿음이 남들보다 좋아서 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그분의 은혜를 인하여 믿게 되었다’고 구원의 비밀을 밝혀 주시고 있는 것 입니다. 내 믿음을 포함한 어떠한 나에게서 출발하는 행위로 된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믿음을, 나의 구원을 자랑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우리 인간이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구원받기 위한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100% 하나님의 선물’라고 사도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선언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 이라는 사실이 ‘행위와 관계없이 구원받았으니,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 는 엉뚱한 결론을 내려도 좋다는 뜻이 결코 될수 없음을 사도바울은 거듭 거듭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1) 고 그는 반문 합니다. “그럴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2)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여러가지 고난 가운데, 세상의 유혹 가운데서 넉넉히 이길수 있는 첫걸음은 ‘내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 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예수님을 믿게되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엡. 1:4,5) 는 것 입니다. 주님도 “ ~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수 없으니 ~” (요. 6:44) 라고 하나님의 택하심의 절대성을 밝히신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운이 좋아서나, 내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여러분을 택하신 은혜 이심을 이해 하십니까? 그분의 선물임을 이해 합니까? 이것을 이해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더욱 더 넉넉히 세상을 이겨나가게 될것 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심’을 깨닫음으로: (롬. 31~39) 오늘 본문의 논리가 직접적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몇절 앞에 있는 <v.31> 에서부터 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라고 사도 바울은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God is for us) 는 사실 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조건문 “만약 (if)”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할수도 있고 않을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욱 강조하기 위한 용법 입니다. 무엇을 강조하는 것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는 사실 입니다. ‘우리 편이라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논리를 계속해서 <39절>까지 발전시키고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감히 대적 하겠는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 하겠느냐? “ ~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 (v.38,39) 는 것 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 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의 논리의 중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신다’ 는 것 입니다. 세상 철학자나 어떤 신학자가 말하드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기는 했지만, 인간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그분을 인간이 이해할수도 깨닫을수도 없는 저 멀리서 인간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 입니다. 소위 말하는 ‘불가지론적 하나님’ (God of ‘agnosticism’) 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하나님을 그런 존재로 묘사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할수 없는 사랑과 은혜로 그 창조하신 인간을 만나주실 뿐 아니라, ‘미리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의롭다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함으로 그가 보내신 독생자의 형상을 본받게’ (v.29,30) 하시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v.29) 는 뜻 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공중 권세잡은 악한 영 사단마귀와 세상의 거대한 공격을 맞서 싸워 이길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편 입니다.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해 싸우시고,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 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셋째, ‘성령의 증거’ 를 통한 확신으로서: (롬. 8:15~17) 혹시 성도 여러분 중에 ‘나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녀라는 사실도 믿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도 이해하겠는데, 여전히 내가 세상을 넉넉히 이길수 있을찌는 자신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그 중심에는 여러분이 아직까지 ‘성령의 증거하심’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성령충만하심’ 에 대해서 살펴본데로 사도바울은 <롬. 8:15~17> 에서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성령의 역할을 매우 분명하면서도 확고하게 밝힌것을 기억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를 더 이상 두려워하는 대상으로가 아니라 ‘양자의 영’을 주심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실 뿐 아니라 (15), “ ~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는)” (16) 것 입니다. 저는 그동안 ‘예수 믿고 구원받고 거듭났다고 해서 모두 똑 같은 영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여러번 강조 했습니다. 비록 예수믿고 영적으로는 태어났지만 수년째 아니 평생을 예수 믿음에도 여전히 영적으로는 갓난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누구신지도, 성령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 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성령을 소멸시키고 있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적으로 태어날뿐 아니라 성령을 더욱 이해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성령충만한 자들이 있는 것 입니다. 바로 영적으로 장성하게 성숙해 가는 성도들인것 입니다. 이렇듯 구원받은 자 안에서도 성령의 임하심은 ‘하늘과 땅’차이 만큼 다양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녀임과, 그분께서 나를 위해 일하심도 이해는 하는데 여전히 그 사실이 나를 넉넉히 이길수 있는 능력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성령의 충만하신 증거’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도달할수 있는 가장 영광스럽고 영적 능력에 충만한 상태를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내가 아직까지 세상의 어떤 고난 가운데서 넉넉히 이길수 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세례’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는 고백이 여러분과 저에게는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 고 자신있게 선언한 이유는 자신이 남과 달리 실천력이 강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넉넉히 이길수 있음’ 을 고백한 이유는 오직 ‘그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도 강하고 세상 그 무엇도 그 사랑에서 끊을수 없음을 깨닫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 누구도 끊을수 없음을 성령의 풍성하신 은혜로 깨닫았기 때문 입니다. 이 깨닫음은 IQ가 좋다고, 실천력이 좋고 의지가 강하다고, 종교심이 크고 선행을 많이 행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겸손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 순종함으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일 것 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