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0, 2018

“복 있는 사람” (Blessed is the man)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1:1~3
Service Type:

“복 있는 사람”

(Blessed is the man)

6-10-18

본문말씀: 시편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the scornful)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 하리로다 (And 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서 론>

저는 “복있는 사람은” 이라고 시작되는 ‘시편 1편’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의 시간 갖기를 원합니다. 시편 1편은 다윗이 지은 시인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정확히는 알수 없습니다. 이 시편 1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시편 150장에 이르는 전체 시편의 내용을 잘 요약한 내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시편 전체의 서곡 (prelude) 이라고 불려 지기도 합니다. 아니,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요약 이라고도 할수 있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시편 1편 말씀은 ‘누가 과연 진정한 복된 자인지?’를 간단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복 있는 사람’ 이라고 말 속에 담긴 그 깊고 축복된 의미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 모두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너는 복 있는자’ 라고 인정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본 론>

오늘 <시편 1편>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매우 아름답고 시적인 말씀 입니다. ‘복 있는 사람’을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 즉 많은 과일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아름다운 묘사일 뿐 아니라, 짧은 문장 안에 <인간의 영원한 소망> 과 <하나님의 복주심> 이 정확하게 맞물려 드러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 인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영원히 그분의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자로 살아가는 자가 될수 있는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막연하게 시적이라든지 비현실적이라든지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요 구체적인 도전과 축복의 말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모두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아니, 우리 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행복해 지기를 원할 것 입니다. 그 누구도 불행해 지거나 불만족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과연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Who is the man to be happy?) 라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또한 그 대답을 주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복’ (happy) 라는 단어 대신에 ‘복 있는’ (blessed)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복된 좋은 운수, 혹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표준 국어 대사전) 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에 따라 매우 주관적이고 그 상태가 다를수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blessed) 이라고 표현된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인간의 행복> 입니다. ‘웨스트민스트 신학용어 사전’ 에는 [복된/ blessed] 이라는 단어의 뜻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수여 하시는 복>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행복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누가 복 있는 자일까요?” (Who is the man to be blessed?)

첫째, ‘악으로 부터 떠나는 자’ (a person who take apart himself from evil) 입니다: 오늘 시편말씀은 복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v. 1) 라고 시작 합니다. 성경은 복된 자를 먼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성경의 놀라운 점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확히 우리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선을 추구하고 의로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추구하고 악에 쉽게 물드는 존재라는 것 입니다. 성경은 결코 인간의 본성을 과대포장 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지난날 선을 비록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악으로 향하는 육에 속한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 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18)

무엇이 ‘악인의 꾀’ 입니까? 그것은 양심을 속여 불의의 이득을 벌수 있다는 유혹 아닙니까? 양심이니 정직이니 그런 미련한 소리 하지말고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도 변화하면 떼돈 벌수 있다는 유혹 아닙니까?그리고 ‘죄인의 길’ 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사도요한이 지적했드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요일. 2:16) 을 추구하는 삶 입니다. 특별히 육체의 정욕과 탐욕 가운데 이끌려 살아가는 삶을 성경은 대표적인 죄인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만한 자의 자리’ 는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리새인의 교만이 그 대표적인 것 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비유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눅. 18:9~14) 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세리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 한데 비해, 바리새인은 “ ~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라고 사실상 자기 자랑이 기도의 내용임을 볼수 있습니다. 바로 교만에 가득찬 것 입니다. 주님의 평가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 스스로 높아진 자를 강하게 경계하고 계십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복있는 자의 삶은 먼저 ‘하지 않는 것’ 에서 시작 된다고 선언 하시는 것 입니다. 바로 악으로 부터 떠나는 삶이 복된 삶의 시작 이라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악으로 부터 떠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자’ (a person who take the Word of God  to his heart) 입니다; 시편 1편이 먼저 1절에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을 복 있는 삶으로 정의한 것을 저는 <영적으로 비우는 작업> 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런 비우는 작업은 꼭 필요하지만, 성경은 비우는 것이 전부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비운 그 자리를 채우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아야 합니다. 바로 <시편 1편 2절> 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통하여 <영적으로 채우는 작업> 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저는 또한 표현하고자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v. 2)

성경은 먼저 인간의 죄를 사랑하고, 악으로 향하는 본성을 적나라하게 지적 (v. 1) 하지만, 그것만으론 결코 행복에 이를수 없음을 <2절>에서 보여 주는 것 입니다. 바로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 입니다. 바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인것 입니다. 제가 지난번 ‘신명기 6장’ 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명령하심에 대해 말씀을 전했을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할수 있을까?’ 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바로 그 다음절인 <신. 6:6> 의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핵심적인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을 제가 설명하면서 ‘마음에 새긴다’ 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 것인가를 오늘 <시편 1:2> 말씀으로 설명 드렸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언제나 묵상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그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기 소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사모하고 순종함을 통하여 점점 더 확장되어지고 충만하여 지는 것 입니다.

셋째, ‘물가에 심기운 자’ (a person who is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3절> 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 하리로다” (v.3) 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복된 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3번째 사실을 깨닫는 것 입니다. 사실, 첫번째 ‘내가 악으로 부터 떠날수 있는 삶’ 을 살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도, 두번째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수 있는 삶’ 을 살수 있을 것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고 오늘 말씀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1) 심기어 져야’ (To be planted by) 한다는 사실 입니다. 여기서 ‘심기어진다’ 는 것은 문장 구조에서 볼때 ‘수동태’ (passive) 입니다. 나무 스스로가 자신을 심을수 없드시, 우리는 영적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심기어져야 하는 나무’ 라는 사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 의해 심기어져야 하는 것 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지 않으시면 누구도 스스로 물가에 심은 풍성한 삶을 살수 없는 것 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으십니다. 그렇다면, ‘물가에 심기었다’ 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2)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을 누린다’ (To have a life through believing the Christ Jesus) 는 뜻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님은 명절 끝날에 서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요. 7:37,38) 고. 주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밝히신 것과 같이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요. 4:14) 되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이 분명히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나는 과연 물가에 심기운 나무인가? 아니면, 들판에 자라는 나무인가?” 하는 사실 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데로 “ ~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나무)” (사. 61.3)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풍성한 나무가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해 심기어진 의의 나무 입니까? 어떻게 심기어졌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음으로 내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생명의 강되신 그리스도께 심기어진 나무가 되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마지막 질문은 ‘여러분과 제가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심기어진 나무’라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나무의 삶, 바로 복된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사실 입니다.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에 의해 심기우지 못한 자’는 결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인간 스스로 노력하고 힘쓸지라도 남는 것은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교만한 자의 자리’ 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 종말은 ‘바람에 나는 겨’ (v. 4) 의 운명 입니다. 전혀 쓸모없고, 바람에 쓸려가고 흔적없이 사라질 겨와 같은 종말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심기운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심기운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의의 나무가 되어 생명의 강되신 그리스도 안에 심기어져 시절을 좇아 과일을 풍성하게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있는 사람의 삶을 살게 될것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더욱 이해하고 순종함으로 성령충만 가운데 이런 복된 삶을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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