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1, 2018

“바벨론을 섬기라” (Serve the Babylonians)

Preacher:
Passage: 예레미야 (Jeremiah) 27:6,8
Service Type:

“바벨론을 섬기라”

(Serve the Babylonians)

10-21-18

본문말씀: 예레미야 (Jeremiah) 27:6,8

  1. 지금 나는 이 모든 나라를 나의 종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맡겼으며, 들짐승도 그에게 맡겨서, 그가 부리게 하였다
  2. 그러나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으며,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목에 메지 않는 민족이나 나라가 있으면, 나는 그 민족을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처벌해서라도, 그들을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멸망당하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설교요약]

<서 론>

저는 지난주 예레미야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인간은,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자녀로 살아간다고 하는 크리스챤들 조차도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영적 무지와 불신앙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를 좀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겸손히 나 자신을 말씀 가운데 살펴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명을 다해 추구하고 깨닫은 뜻에 순종하는 성숙된 주의 자녀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본 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원전 7세기 초에서 6세기 말까지 활약한 선지자 입니다. 흔히 ‘눈물의 선지자’ 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그의 자녀 이스라엘을 위한 눈물 흘리고 상한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말씀을 대언하는 참된 종이기에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2차로 공격받아 멸망당하기 얼마전 여호야김 왕때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포한 말씀 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포함된 예레미야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악 가운데 헤메며 심판 가운데 치닫는 그의 백성들을 향해 선포하시는 분명한 메세지는 무엇인지를 곰곰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섬기라’ 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 이 메세지가 수천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메세지가 될것으로 저는 확신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What is the God’s purpose to command the Israelites for serving the Babylonians);

첫째,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의 결과임’ (He purposes to recognize them about their sins and disobedience)을 깨닫게 하시고자 함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선언 하셨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19) 라고. 남유다 백성들이 이렇게 강대국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업신 여기고 저버린 죄와 불순종의 결과인 것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다른 신들을 좇고 악한 본성을 추구하며 살아갔던 것 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결코 원치않는 이방나라 바벨론의 섬김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라고 하나님은 말씀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바벨론은 무엇 입니까?

둘째, ‘하나님은 그 누구도 세울실수 있는 주권자임’ (He purposes to proclaim His Sovereignty to establish anybody through His will)을 선포하시고자 함니다: 이스라엘민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돌보심의 확신을 넘어서서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된 확신으로 마음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 만이 그분의 자녀>라는 ‘선민의식’ (the chosen people) 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육체적인 할례를 행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닐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섬겨라’ 는 명령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세상의 그 누구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기에 합당한 주권을 가지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나는 겸손과 진실함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세상과 우주 가운데 유일하신 주권자임을 인정합니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세우셨다는 것이 그가 저지런 죄악을 인정하고 못본척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유다를 향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느부갓네살이 행한 죄도 반드시 심판할 것을 선언 하셨습니다 (렘. 25:12~14). 성도 여러분은 이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고, 그 주권에 순종 합니까?

셋째,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지’ (He purposes to exam us whether we really pursue His will or not) 보시고자 함 입니다: 이제 제가 성도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기 원하는 한가지는 ‘왜 이스라엘 민족은 끝끝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것일까?’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 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깨닫고자 힘쓰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백성들 뿐 아니라 제사장과 예언자라고 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 (the burden of the Lord) (렘. 23:33)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뜻을 깨닫을수 있는지를 자상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 ~ ‘부담이 되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여호와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 ~” (렘. 23:35)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분이 무엇이라 대답 하셨는지’ 알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그 어떤 편견과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나에게 말씀하시고, 무엇이라 대답하시는지 깨닫기를 온마음과 힘을 다해 겸손과 신뢰 가운데 간구하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멸망의 심판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을 향해 ‘바벨론을 섬기라’ 고 분명한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이 메세지가 왜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 성도 여러분과 저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만약 하나님께서 세우신 바벨론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할때, 여러분과 저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민족과 같이 심각한 영적 침체와 재앙을 당할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바로 나에게 바벨론과 같이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에 대해 나는 깨닫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바벨론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있는지? 하는 것 입니다. 주의 생명 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내 인간적인 머리로는 거부할수 밖에 없는 나의 바벨론을 영으로 깨닫고 인내함으로 섬겨 나감으로서 마침내 아버지의 마음을 더욱 깨닫을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닫은 만큼 그 뜻에 순종함으로 충만한 구원의 열매을 맺어가는 그분의 철든 자녀들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설교전문]

<서 론>

저는 성도여러분과 함께 예레미야서 말씀을 통해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와 그 뜻에 순종할수 있는 옳바른 믿음의 삶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레미야서 오늘 본문 말씀은 요즘 우리가 함께 큐티로 묵상하는 말씀 입니다. 저는 지난주 예레미야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인간은,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자녀로 살아간다고 하는 크리스챤들 조차도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영적 무지와 불신앙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를 좀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그리고 분명히 드러난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불신앙과 불순종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겸손히 나 자신을 말씀 가운데 살펴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명을 다해 추구하고 깨닫은 뜻에 순종하는 성숙된 주의 자녀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본 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원전 7세기 초에서 6세기 말까지 활약한 선지자 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이사야선지자 보다 약 100년 정도 뒤에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인데, 그는 남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멸망 (BC 600년경) 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선지자 입니다. 흔히 ‘눈물의 선지자’ 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합니다. 왜 입니까?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렘. 9:1) 라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의 마음을 토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쟁과 심판을 통해 살육당하고 죽임당할 그의 딸,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상한 마음으로 눈물 흘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상한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말씀을 대언하는 참된 종이기에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살았던 당시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에서 볼때도 가장 암울하고 치욕적인 시기의 하나였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들은 그 당시 초강대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혹은 죽임을 당하고, 혹은 바벨론으로 끌려 가거나 왕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이 모두 살육당하고 됩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땅으로 볼모로 잡혀가는 나라 잃고 처참한 처지에 놓인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2차로 공격받아 멸망하기 얼마전 여호야김 왕때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포한 말씀 입니다. <렘.27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렘. 27: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얹는 행위’를 지시하시고, 그때 유다왕을 찾아온 사신들, 즉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왕의 사신’ 들에게도 그 줄과 멍에를 주어서 왕들에게 가져가게 하셨습니다 (v. 2~8) 왜일까요? ‘바벨론을 섬기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매우 분명하게 그의 뜻을 밝히셨음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라’는 것 (v.5~7) 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 입니다. 거짓 선지자나 복술가 꿈꾸는 자, 요술사는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v.9) 고 하며, “평강하다 평강하다” (렘. 6:14) 라고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는 것 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포함된 예레미야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악 가운데 헤메며 심판 가운데 치닫는 그이 백성들을 향해 선포하시는 분명한 메세지는 무엇인지를 곰곰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섬기라’ 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 이 메세지가 수천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메세지가 될것으로 저는 확신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What is the God’s purpose to command the Israelites for serving the Babylonians);

첫째,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의 결과임’ (He purposes to recognize them about their sins and disobedience)을 깨닫게 하시고자 함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왜 남유다 백성들이 이런 전쟁의 고통과 죽음의 재앙가운데 가로 놓이게 되었는지를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19) 죄악 가운데 앗시리아에 의해 망한 북이스라엘 뿐 아니라, 남유다 백성들 또한 그들이 이렇게 강대국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운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이방민족의 손에서 건져낼 힘이 없어서도 아니도 오직 그 백성 이스라엘의 악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업신 여기고 저버린 죄와 불순종의 결과인 것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복의 근원자 (창. 12:1,2) 로 삼으셨습니다. 그에게 하신 이 약속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졌고, 400년이 지난후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왕의 압제 아래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구원하여 주실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복이 그의 수많은 후손들을 통해 흘러 넘치도록 비로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주심으로 이스라엘민족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체결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세는 그의 마지막 설교, 신명기서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다시한번 밝히고 나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 (신. 7:11) 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명히 도전 했습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6~28) 고 말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유다백성들이 당하는 고통과 위기는 그들의 죄악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들이 불순종과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른 신들을 좇고 악한 본성을 추구하며 살아간 결과인 것 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결코 원치않는 이방나라 바벨론의 섬김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라고 하나님은 말씀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바벨론은 무엇 입니까?

둘째, ‘하나님은 그 누구도 세울실수 있는 주권자임’ (He purposes to proclaim His Sovereignty to establish anybody through His will)을 선포하시고자 함니다: 수천년이 넘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통해 인도함을 받아왔던 이스라엘민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돌보심의 확신을 넘어서서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된 확신으로 마음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자신들 만이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 입니다. 소위 말하는 ‘선민의식’ (the chosen people) 이라는 것이 이들의 마음을 스스로 높여서 다른 민족을 멸시하는 잘못된 영적 상태로 빠진 것 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아닙니다. 유대인 스스로 착각한 것 입니다. 이런 영적 착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롬. 3:29)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육체적인 할례를 행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 입니다.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그는 도전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섬겨라’ 는 명령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한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세상의 그 누구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기에 합당한 주권을 가지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내가 결코 ‘이 친구는 곤란해요!? 이 나라, 이 민족은 자격이 없어요!?’ 라고 말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그누구도 택하시고 세우실수 있는 권능과 주권자라는 것 입니다. 이것을 내가 이해하고 믿느냐는 것 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침례요한이 이 사실을 이렇게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8~9) 고 말입니다. 나는 겸손과 진실함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세상과 우주 가운데 유일하신 주권자임을 인정합니까? 그분만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심으로 그 선하신 뜻데로 세우시기도, 폐하시기도 하실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주권자 하나님임을 믿으십니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세우셨다는 것이 그가 저지런 죄악을 인정하고 못본척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행한 죄도 반드시 심판할 것을 선언 하셨습니다 (렘. 25:12~14). 느부갓네살왕을 ‘나의 종’ 이라고 부르신 것은 자신의 도구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뜻 입니다. 바로 그분의 깊이를 알수없는 지혜와 주권을 통해서 말 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이스라엘이 이해했다면 그들은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 (렘. 4:14) 는 권면의 말씀을 따라 악한 죄를 회개하고, 주께서 세우신 바벨론을 섬김으로 구원을 얻었을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고, 그 주권에 순종 합니까?

셋째,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지’ (He purposes to exam us whether we really pursue His will or not) 보시고자 함 입니다: 예레미야선지자를 우리가 눈물의 선지자로 부르는 이유는 이스라엘민족이 끝끝내 그들의 죄를 회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끝까지 그들의 굳고 회개치 않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우상숭배와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악한 행실을 행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는 2차례에 걸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왕과 백성들이 학살당하고 바벨론 땅에 대부분 포로로 잡혀가는 심판과 치욕의 현장을 겪었기 때문 입니다. 만약 그가 외친 예언의 메세지를 듣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는 ‘헤피 엔딩’ 의 사실이 존재했다면, 우리는 예레미야선지자를 더 이상 ‘눈물의 선지자’ 라고 부르지 않고 ‘행복한 선지자’라 불러야 할 것 입니다. 이제 제가 성도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기 원하는 한가지는 이것 입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은 끝끝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것일까?’하는 것 입니다. 물론 그들이 깨닫지 못한 이유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드시, 이스라엘민족은 이런 재앙이 ‘그들의 죄와 불순종 때문’ 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못한 때문’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죄와 불순종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을 추구하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수 있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온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힘쓰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케 하는 말씀을 선포했을때 그 백성이나 예언자나 제사장들이 이 말씀을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 (the burden of the Lord) (렘. 23:33) 이라고 말한 것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다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은 내 양심에 꺼리김을 주고, 거짓 예언자의 말처럼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며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위로요 거짓 평화인 것을 그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 ‘부담이 되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여호와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 ~” (렘. 23:35) 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자상하고도 구체적으로 그분의 뜻을 이해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부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분이 무엇이라 대답 하셨는지’ 알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마음과 온 뜻을 다해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영의 눈을 열어 깨닫고 순종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장벽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편견과 영적 오만함은 아니었을까요!? ‘다른 민족은 몰라도 바벨론은 같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민족은 우리를 다스릴수 없어!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실수 없어!’ 라는 편견과 잘못된 확신 말 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그 어떤 편견과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고, 무엇이라 대답하시는지 깨닫기를 온마음과 힘을 다해 겸손과 신뢰 가운데 간구하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멸망의 심판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을 향해 ‘바벨론을 섬기라’ 고 분명한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주는 교훈은 안타깝게도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거부함으로서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죽음과 재앙의 겪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왜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 성도 여러분과 저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만약 하나님께서 세우신 바벨론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할때, 여러분과 저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민족과 같이 심각한 영적 침체와 재앙을 당할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바로 나에게 바벨론과 같이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에 대해 나는 깨닫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바벨론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있는지 하는 것 입니다. 나의 바벨론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내 죄로 인한 내가 겪는 파괴된 관계성, 불순종의 고통스런 결과들, 그리고 내속에 존재하는 상처와 육체적인 고통과 그 모든 것 입니다. 그 바벨론은 나의 죄와 허물 때문이요, 그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이를 통해서 겸손함과 회개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시고자 함임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이스라엘이 겪게 될 심판뒤에 구원과 소망을 이렇게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 말 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 입니다. 주의 생명 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내 인간적인 머리로는 거부할수 밖에 없는 나의 바벨론을 영으로 깨닫고 인내함으로 섬겨 나감으로서 마침내 아버지의 마음을 더욱 깨닫을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닫은 만큼 그 뜻에 순종함으로 구원의 열매을 맺어가는 그분의 철든 자녀들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