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4, 2018

“세월을 아끼라”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Service Type:

“세월을 아끼라”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10-14-18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설교요약]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세월을 아끼라’ 는 설교제목으로 은혜와 도전의 시간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성도들을 향해 ‘세월을 아끼라’고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이 악한 세상 환경속에서 어떻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갈수 있을 것인지요?

<본 론>

킹제임스버젼 (KJV) 에서 보면, ‘세월을 아끼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redeeming the time’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시간을 구속하라’ 혹은 ‘시간을 값을 치루고 사라’ 고 번역할수 있을 것 입니다. 무슨 뜻 입니까? 그것은 ‘시간을 값을 치루고 사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값진 시간은 오직 ‘값을 치루고 그 시간을 사는 자에게 주어진다’ 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값지고 가치있는 시간을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과 제가 진정 ‘시간을 아끼는 자’로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니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 귀 기울여 들어 보아야 할것 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도전하는 세월을 아끼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What is the life of ‘redeeming the time’?):

첫째,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는 삶’ (It is the life to consider ourselves to be very careful how we live) 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행할것을 주의하여 살펴보고,그리고 생각하는 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v.15,16a) 우리는 어떻게 행할것을 주의해서 살필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펴볼때 가능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눈으로 말씀을 통해 나를 날마다 나를 비쳐보지 못하면 나는 스스로 나를 속인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겸손하게 스스로 섰다고 여기지 않고, 어떻게 행할것을 말씀 가운데 살펴봄으로 지혜롭게 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확신과 내 열심에 만족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삶’ (It is the life to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나를 살펴본 결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라’고 도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v.17) 왜 주의 뜻을 이해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요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밝히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내가 비록 다 이해가 되지 않을찌라도 오직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순종함으로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행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 각자가 언제나 잊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은 이것 입니다; “나는 지금 주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아니면 내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요즘 깨닫은 주님의 뜻은 무엇 입니까?

셋째,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 (It is the life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입니다: 사도바울은 <v.17>절에서 “오직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지혜롭고 세월을 아끼는 자라고 밝히고 나서 곧바로 <v.18>에서“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18) 고 선언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의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깨닫는 진정한 길은 자신의 지적인 능력이나 열심이나 노력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도움’으로만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그 깊으신 마음과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만 주의 선하신 뜻을 날마다 점점 더 이해할수 있을뿐 아니라, 순종함으로 열매맺는 삶을 살수 있기 때문 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은 남은 날을 후회하지 않토록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십시요! 이렇게 주의해서 살펴봄으로서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해 나갈수 있기를 힘쓰십시요!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을때 가능함을 명심하고 성령충만을 사모 하십시요. 이로 말미암아 언제가 주님 앞에 섰을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 하였다!’고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지혜로운 자가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전문]

<서 론>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그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게 했다고 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줄 알았어” 라고. 너무도 빠르게 지나는 시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살아 있는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세월을 아끼라’ 는 설교제목으로 은혜와 도전의 시간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성도들을 향해 ‘세월을 아끼라’고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오늘날 뿐 아니라, 2,000년 전에도 세상은 악했고 앞으로는 더욱 악해질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세월을 아낄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이 악한 세상 환경속에서 어떻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갈수 있을 것인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 모두 이 악한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날 진리를 추구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고민중에서 하나는 ‘종교적이냐 신앙적이냐!?’ 혹은 ‘가식적이냐 진실하냐!?’ 하는 이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때가 묻어서 “진리고 진실이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해!? 잘먹고 잘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하고 말하며, 양심과 신앙의 순결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자들로 변하는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여러분과 제가 이 악한 세상의 가치관과 그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살아간다 할찌라도 언제나 그 영적 순결과 진리를 추구하는 <영원한 청년들>로서 살아갈수는 없는 것일까요?! 모든 성경말씀은 성별과 나이와 인종을 초월해서 적용되고 우리를 가르치고 때로는 책망하고 의로 교육하고 바르게 하지만, 특별히 오늘 말씀은 청년의 때를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에게 큰 도전과 격려의 말씀이 될것을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청년의 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전은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 즉 ‘시간을 아끼는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심지어 주님을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의 경우에서도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으로 여긴다는 사실 입니다. 그 이유는 시간을 현명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결국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고 그들도 믿기 때문일 것 입니다. 시간은 돈으로 살수도 없고, 한번 지나간 시간은 두번 다시 되돌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일 것 입니다. 단지, 그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기준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입니다. 어찌됐건 정리해서 말해보자면,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있어서 모두 인정하는 중요한 덕목은 ‘시간(세월)을 아끼라’ 는 것이고, 그 반면 서로의 차이점은 ‘시간을 아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에 대한 가치관’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 입니다.

킹제임스버젼 (KJV) 에서 보면, ‘세월을 아끼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redeeming the time’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시간을 구속하라’ 혹은 ‘시간을 값을 치루고 사라’ 고 번역할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한 <NIV 영문번역>에서는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라고 되어있고, 우리말로는 ‘모든 주어진 기회를 사용하라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직역할수 있는데 의미는 충분히 서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원문에 좀더 가까운 킹제임스성경에서 ‘시간을 구속하라/ 값을 치루고 사라’ 는 사도바울의 에베소성도를 향한 도전과 격려는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것으로 저는 이해 됩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시간을 값을 치루고 사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여기서 이해할수 있는 것은 아무에게나 가치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값진 시간은 오직 ‘값을 치루고 그 시간을 사는 자에게 주어진다’ 는 것 입니다. 그 이유를 사도바울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 이라는 것 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값지고 가치있는 시간을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값을 치르고 사야 한다는 것 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엄청난 고통과 댓가지불을 요구할찌라도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값을 치르고 시간을 사는 것’은 언제나 진정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산다’ 는 것은 ‘기회를 잡는다’ 는 뜻이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선물속에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 입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과 제가 진정 ‘시간을 아끼는 자’로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니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 귀 기울여 들어 보아야 할것 입니다. 먼저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 <에베소서 5:3~14> 에서 ‘누가 시간을 낭비하고, 헛된 삶을 사는 자’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에 빠진 자들이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어두움 가운데 헤매는 자들이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그 가운데 임한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v.15,16) 고.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가운데 거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가운데 빠져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어두움의 삶을 살기 원치않는다면, 세월을 아끼라!’는 것 입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값을 주고 시간을 사야한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사도바울이 도전하는 세월을 아끼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What is the life of ‘redeeming the time’?):

첫째,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는 삶’ (It is the life to consider ourselves to be very careful how we live) 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로운 삶의 출발을 ‘어떻게 행할것을 주의하여 살펴보라,그리고 생각해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닥치는데로 생각 나는데로 행하려 드는 것이나 내 기준과 내 계획으로 열심을 내는 것과는 그 출발에서 부터 다르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v.15,16a) 우리가 시간을 아끼고 세월을 낭비하지 않을수 있는 그 출발점을 바울은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라’고 도전 합니다. 사도바울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저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될수 있는지를 동일한 의미에서 충고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요한도 믿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 (요이. 1:8) 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모든 남은 날동안 계속해서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라는 것 입니다. 스스로를 살피고, 주의해서 생각하라는 것 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그 이유를 잠언기자는 이렇게 밝힙니다; “사람의 모든 길이 그의 눈에는 옳게 보여도 주께서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 (잠. 21:2) 고. 무슨 뜻 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눈으로 말씀을 통해 나를 날마다 나를 비쳐보지 못하면 나는 스스로 나를 속인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보지 않으면 나 자신 조차도 나를 발견할수 없고, 내가 나를 속인다는 것이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인 것 입니다. 한순간이라도 말씀을 떠나게 될때, 나는 섰다고 착각하고, 이루었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 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을 겸손하고 정직히 돌아보고,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할때 사도바울과 같이 우리 자신도 이렇게 고백할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3) 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 갑니까? 겸손하고 진실하게 스스로 섰다고 여기지 않고,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행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살피지 않고 스스로 세운 내 확신과 내 열심에 만족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삶’ (It is the life to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혜로운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결코 애메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지혜로운 자 입니까? 바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자’ 입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라’고 도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입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자기 나름의 기준과 철학을 가지고 사색하고 자신을 살폈는데 결과는 신앙과 동떨어진 삶이 되었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결과라고 바울은 지적하는 것 입니다. 자신을 살피고 주의해서 어떻게 행할것인가를 생각했다면, 결론은 ‘우리 주님의 뜻을 이해’함으로 열매 맺어야만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v.17)

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지헤로운 인생이요, 지혜자의 핵심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인정하드시 우리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요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밝히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내가 비록 다 이해가 되지 않을찌라도 오직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순종함으로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행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의 모든 열심과 노력이 주안에서 열매 맺기를 소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 주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아니면 내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로말미암아 날마다 순간마다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을 분별해 나가며, 그 뜻을 깨닫은 만큼 순종함으로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될것 입니다. 이것이 ‘산제사 (living sacrifice)의 삶’이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삶’임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요즘 깨닫은 주님의 뜻은 무엇 입니까? 그리고 그 깨닫은 뜻을 어떻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셋째,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 (It is the life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입니다: 사도바울은 <v.17>절에서 “오직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지혜롭고 세월을 아끼는 자라고 밝히고 나서, <v.18>에서“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18) 고 갑자기 ‘술 취하지 말라’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치 않습니다. 바울은 매우 논리적이고 치밀한 성령의 사람 입니다. 그는 지금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라’고 격려하고 나서 ‘술 취하지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도전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도들의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깨닫는 진정한 길은 나의 지적인 능력이나 열심이나 노력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도움’으로만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이렇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0) 라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그 깊으신 마음과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수 (있다는 것)” (고전. 2:12)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남은 날을 후회하지 않토록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생각하십시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날마다 이해해 나갈수 있기를 힘쓰십시요!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을때 가능함을 명심하고 성령충만을 사모 하십시요. 이로 말미암아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설때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줄 알았어’ 라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자야, 수고 하였다!’고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지혜로운 자가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성령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그의 충만하신 은혜로 시간을 아끼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