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0, 2019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Continue in what learned and convinced of)

Preacher:
Series:
Passage: 디모데후서 (2 Timothy) 3:14,15
Service Type: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ㅅ(Continue in what learned and convinced of)

2-10-19

본문말씀: 디모데후서 (2 Timothy) 3:14,15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But as for you, continue in what you have learned and have become convinced of, because you know those from whom you learned it,)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설교 요약]

저는 이번주부터 3주에 걸쳐서 주께서 그의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중요한 ‘3가지 방법’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배움’(learning)을 통해서, 둘째 ‘꿈꾸기’(dreaming)을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함’(loving)을 통해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강하게 훈련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그 첫째주로 <배움>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제자이자, 주님의 양무리를 책임진 목회자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해 나갈수 있을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V.14) 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이 배우고 확신한 일일까요?’ 그것은 디모데가 어려서 부터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배웠던 (1:5)것과, 그리고 바울자신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배웠던 것이 ‘배우고 확신한 일’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배울수 있을까요?’ (How are our Christians able to learn from it?)

첫째, ‘성경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genuine faith of the Scriptures):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의 확신 가운데 거하라고 격려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v.16,17)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되게 따르기 원하고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 말씀을 내가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눈을 감을때까지,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하루 온종일 말씀을 즐거워 하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둘째, ‘늘 배워야되는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understanding of our imperfection):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지적 합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1,2)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 ‘말씀을 모두 깨닫았다’는 뜻이 아님을 이해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는지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할것 입니다.

셋째, ‘실패를 통해 배움’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failures): 베드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하던 그 실패의 밤이 없었다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믿음의 승리는 불가능 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선언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라고. 여기서 ‘모든 것’ 안에는 ‘성공의 순간’뿐 아니라, ‘실패의 순간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이 훈련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주의 제자들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부터 3주에 걸쳐서 주께서 그의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중요한 ‘3가지 방법’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배움’(learning)을 통해서, 둘째 ‘꿈꾸기’(dreaming)을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함’(loving)을 통해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강하게 훈련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그 첫째주로 <배움>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제 성도여러분 모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라고 넉두리만 할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 복된 훈련을 잘 감당함으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고 주의 장성한 제자로 날마다 성장해 가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디모데후서 3:14,15>는 우리가 잘아는데로 사도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딤후. 1:2) 즉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결론 부분에 해당 합니다. 이 ‘디모데 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데, 그가 임박한 순교 (AD 67년)을 앞두고 AD 66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말씀이 포함된 <딤후. 3장>에는 마지막 때를 맞아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악해지는지를 (V.2~8)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V.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핍박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고 ‘성도와 핍박 (=고난) 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난과 핍박을 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맞서 싸우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 자신이 주님을 따르는 한명의 제자이자, 주님의 여러 양무리를 책임진 목회자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해 나갈수 있을것인지를 결론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V.14) 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이 배우고 확신한 일일까요?’ 그것은 디모데가 어려서 부터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배웠던 (1:5)것과, 그리고 바울자신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배웠던 것이 ‘배우고 확신한 일’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 입니다. 영적 아비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하는 일, 바로 진리되신 말씀과 복음의 일에 거하라’고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볼것은 이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배울수 있을까요?’ (How are our Christians able to learn from it?) 하는 것 입니다.

첫째, ‘성경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genuine faith of the Scriptures):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14) 고 간곡히 권면하고 나서, 그 일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확신하며 그 안에 거하는 일임을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왜 우리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실제의 삶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v.16,17) 고.

우리 모든 크리스챤의 모든 배움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있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어떤가요? 우리 자신은 한명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통해 배워 나가고 있습니까? 저는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하고 있는가?’하고 여러분에게 묻고 있는 것 입니다.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되게 따르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끝없는 은혜의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 말씀을 내가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눈을 감을때까지, 아니 꿈에서도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하루 온종일 말씀을 즐거워 하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 고 고백했던 시편기자와 같이, 성도 여러분의 삶은 온종일 여호와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말씀에 의해 지배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가치관에 지배받고 이 세상을 본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늘 배워야되는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understanding of our imperfection):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든 인간은 악을 저지를수 밖에 없는 죄인이요,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수 없는 존재임을 정확한 논리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롬. 3장).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지혜자나 야만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그는 특별히 유대인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그동안 누렸던 특권이 얼마나 많은지를 지적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 는 것 입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1,2)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그들의 그 모든 하나님께 받았던 영적 특권과 유익들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 바울이 주장하는 바 입니다. 이방인 뿐 아니라 유대인도 예외없이 죄를 범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자라는 것 입니다 (롬. 3:23).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에서 제외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크리스챤들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배울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의 하나는 ‘내가 <말씀을 맡았다/ committing the oracles of God>는 것이 말씀을 모두 깨닫았다는 뜻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4복음서>를 읽을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엉청난 비난과 적개심을 나타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대제사장등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맡았다고 자부했던 유대종교지도자들인 것 입니다. (예/ 마. 11:18,19) 바리새인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맡았다고 자부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최대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시지만, 그 말씀을 맡은 인간은 완전할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 입니다. 내가 매일 말씀 묵상을 하고, 열심으로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수 없는 것 입니다. 그들은 관습으로 굳어버린 자신의 <유대종교주의>라는 잣대로 예수님을 평가했고, 비판했고, 마침내 주님을 못박아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을 거부한 것 입니다.

우리는 단지 오늘하루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만큼 깨닫음의 은혜를 누릴 따름 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의 진리 앞에서 겸손하게 나를 날마다 교정해 나가야 할것 입니다. 또한 내가 얼마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는지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할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나의 지혜없음과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 합니까? 여러분은 말씀 뿐 아니라 나의 공부와 직업 그리고 인간관계의 모든 삶속에서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주님 앞에서 날마다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실패를 통해 배움’으로서 (We may learn through our failures): 사실 제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제가 행했던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들을 기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그저 겸손한 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어쩌면 이런 실패를 통해 가장 큰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됨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것 입니다. 지난 시간에 잠시 살펴 봤드시,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했던 제자 베드로는 바로 그의 실패를 통해서 가장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로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 3번씩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했던 실패의 순간 말 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그 부끄러운 실패의 순간이 없었더라면, 초대교회를 영적 지도자로서 기둥같이 충성스럽게 섬겼던 삶도 불가능 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더 나아가 그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향한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불가능 했으리라 저는 믿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실패가 단지 실패와 죄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것을 사용하셔서 승리하는 믿음의 비옥한 거름으로 사용하심’을 믿습니다. 그분의 탁월하신 방법으로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로마서 8장>에서 선언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라고. 이 선언은 성령의 충만하신 능력을 통해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의 삶에서 이루어질 아름답고 파워풀한 역사를 묘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녀들, 즉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 안에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공의 순간’뿐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많은 부끄럽고 피하고 싶은 ‘실패의 순간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 입니다. 우리 선하신 주님은 그 어느것 한가지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의 완벽하신 능력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아름답게 다듬어 가시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실패를 통해 배워 나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한가하고 안일한 삶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의 순간을 지난다 할찌라도 성숙된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바로 <영적 훈련>을 통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 하듯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함’으로서 말 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말씀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도록 나를 내어 드릴뿐 아니라, 말씀을 배우는 만큼 더욱 겸손히 나의 무지와 편견을 고백하며, 실패를 통해 배워 나가고자 할때 우리 주께서 허락하신 영적 훈련은 아름답게 열매맺을 것 입니다. 우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이 훈련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주의 제자들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 성도 여러분 모두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정금과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의 제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