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4, 2023

“새 사람” (The New Man)

Preacher:
Series:
Passage: 갈라디아서 (Galatians) 2:20
Service Type:

“새 사람”

(The New Man)

12-24-23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Galatians)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목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now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설교 요약]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왔습니다. 제가 오늘 나눌 성탄절 메시지는 C.S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의 중심 주제인 ‘새 사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땅에 오셔서 ‘새 사람’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성탄절의 주인공 예수님은 누구시며, 그분이 행하신 미션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C.S 루이스는 “선하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잘못되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소주제의 핵심적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 ‘첫 인간부부의 타락사건’ (창세기 3장)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먼저 ‘창세 전에 계획하심’ (에베소서 1장)입니다: 하나님은 첫 인간부부의 타락을 아시면서도,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할 계획 (예정)을 이미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만드심’: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 (image)과 모양 (likeness)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1:26)
  2. ‘하나님은 반란군과 전쟁’을 계획: 루이스는 ‘하나님의 침공’ (The invasion of God)이란 part에서 인간을 타락시킴으로 세상을 점령한 ‘반란군’ (사단 마귀)과 전쟁하심. 즉 하나님의 ‘전능한 사령관’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전 나사렛에 적진 깊숙히 침투시킴
  3. ‘하나님의 완벽한 승리’: 하나님은 사단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승리하심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능한 사령관’되신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깨닫아야 할 점은? 그것은

첫째)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입니다: 루이스는 “첫째 나사렛 예수는 ‘정신병자’이거나, 둘째 ‘교활한 사기꾼’이거나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 중의 하나다” 라고 날카롭게 정의합니다. 그분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입니다

둘째)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코자 이 땅에 오셨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문제는 ‘물탄 기독교’ (Christianity-and-water)처럼 구원의 진정한 능력과 은혜를 놓치는 크리스챤이 너무도 많은 것.

셋째) <새 사람은 누구인가>입니다: ‘새사람’은 ‘영원한 생명’ (조에)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심. 또한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성도’ (갈. 2:20)가 새사람입니다.

우리를 구원코자 2천년전 베들레헴에 새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바라기는 주님을 따름으로 영적 승리와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복을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왔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내일이 성탄절 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예년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본문말씀 대신 2천년전 나사렛에 태어나신 성자 하나님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왜 이 땅에 오셨는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올해 저희 교회의 독서토론 모임에서 다시 한번 읽고 묵상했던 <순전한 기독교>를 통하여 저자 C.S. 루이스가 탁월하게 소개하는 나사렛 예수는 누구신지? 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며, 성탄절의 주인공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와 그분의 이 땅에서의 사역을 이해함으로써 크리스마스의 이유와 목적을 더 깊이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를 살리려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제가 오늘 성탄절 예배 메시지의 제목으로 ‘새사람’이라고 잡은 이유는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볼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그 핵심단어가 바로 ‘새 사람’이요, 동시에 이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본질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포함한 이 광활한 우주만물에 존재하는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을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책2부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이 세상은 ‘무신론’적 입장인 ‘우연에 의해 진화되었다’거나 ‘유신론’적 입장 가운데서도 ‘신은 인간과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선악의 구분 너머에 있는 존재’로 보는 ‘범신론’적 입장이 아님을 루이스는 그의 탁월한 논리로 주장합니다. 그리고나서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유신론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하나님이심을 믿는 세계관에서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를 펼쳐 놓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서 루이스는 이와 같은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잘못되었는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수 있겠지만, 사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세상에 만연된 죄악과 부조리와 죽음과 허무함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결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이토록 잘못되었는가?”는 본질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와 그분의 불완전에 기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결점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점을 생각해볼 때, 성경에 가장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 주는 말씀이 <창세기 3장>의 ‘첫 인간부부의 타락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기쁨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간교한 피조물인 뱀이 인간부부를 미혹케 해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 열매를 따먹음으로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첫 인간의 타락과 그로 말미암아 그들에게서 태어난 모든 후손들에게는 그 죄가 유전되었다는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죄와 죽음은 우리 모든 인간 위에 왕 노릇하고,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의와 죄악과 죽음의 악순환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창세기 3장의 인간의 타락사건을 알게 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나서 깨닫게 된 또 한가지의 엄청난 사실은 ‘현세상의 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타락>에 있어서 창세기 3장보다도 그 시간의 흐름상 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바로 <에베소서 1:4~5>말씀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창세 전에’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창세기 1장에서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6일째 되는 날 첫 인간부부를 지으시기도 전에, 아니 천지만물을 창조조차 하지 않고, 빛과 어두움을 만드시기도 전인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할 것을 계획 (=예정)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가 구원받은 첫 시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만큼 중요한 진리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성부 하나님은 천지만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택한 자를 구원하셔서 영광스런 그분의 자녀로 삼고자 하시는 <청사진/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 크리스챤은 우리의 구원이 결코 상황과 여건에 따라 취소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이 허락하신 축복된 구원을 누리고자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성경에서 밝힌 하나님의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한 계획하심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앞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이토록 잘못되었는가?”하는 그 이유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계획입니까? 그것은

<첫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비록 첫 인간부부를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했지만, 그들이 범죄할 것을 아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범죄할 수 있는가?’라고 여러분이 질문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부부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임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 (our image)을 따라 우리의 모양 (our likeness)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창. 1:26)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그 무엇보다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과 악’을 지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자유의지를 소유한 창조물이요, 이런 창조물은 오직 우리 인간과 하늘의 천사들 뿐 입니다.

이 ‘자유의지’는 이만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하는 엄청난 능력이지만, 또 한편 이것을 잘못 사용했을 때는 ‘타락’이라는 비참한 결과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아니 이미 ‘타락’될 것을 아시면서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가 없이는 하나님과 진정한 인격적인 교제와 참된 사랑을 누릴수 있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론은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타락될 것을 아셨지만, 그 고통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 역시!!)의 ‘대가지불’을 해서라도 우리를 하나님 자신을 닮은 존재로 만드셨고, 그 이후에 모든 힘든 과정을 감내하신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이 시간도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온전하신 통치로 들어가기 위한 과도기의 기간, 곧 ‘댓가지불’을 감내하는 시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저는 여기서부터 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부분이라 판단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아셨기에 그 이후로 대비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침공>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침공’ (invasion)이라는 표현속에는 ‘원래 하나님의 통치하셨던 영토가 반역자 사단 마귀에 의해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치밀하고 완벽하게 탈환 작전을 세우시고 적진 깊숙히 자신의 <전능한 사령관>을 침투시겼다’는 사실 모두를 받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하나님과 반란군인 악한 영과의 전쟁은 어쩌다가 보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닮아 자유의지를 행할 수 있는 사랑스런 자녀가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빠지게 될 위험성을 이미 아시고, 그것을 미리 완전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필연적인 전 우주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이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사령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탈환전쟁’은 완벽하게 성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막강한 능력과 교활한 꾀를 자랑했던 사단 조차도 하나님의 완벽한 전투비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사도 바울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18,21)라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제 그의 보혈의 능력으로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려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예수의 피로 죄사하시고, 구원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영생을 잃어버리고, 죄와 죽음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내어 주셔서 구원의 은혜와 그의 자녀의 영광을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날, 그 긴 잘못된 이 세상의 시대는 끝이 나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의도 (계획)하셨던 완전하고 영원한 그분의 통치하시는 나라는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이 큰 그림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을 향한 완전하신 계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시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서 성탄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2천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나사렛동네’에서 목수로 삼을 사셨던 ‘나사렛 예수님’을 ‘순전한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예수님에 대한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나사렛 예수”는 누구십니까?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십니까? 이부분에 있어서 C.S 루이스는 흥미롭고도 매우 날까롭게 ‘나사렛 예수’라는 존재가 성립 가능한 가능성을 말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요. 14:6) 밝히시고, 하나님만 주실수 있는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5)라는 ‘죄사함’의 권세를 감히 선포하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 (요. 14:9)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격화하는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이런 충격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나사렛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루이스는 이렇게 세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 같은 <정신병자>이거나, 둘째 자신은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간교하게 사람을 속이는 지옥의 악마와 같은 <교활한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루이스는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라고. 성도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이 심각한 정신병자이거나, 교활한 사기꾼이라 여겨집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고 믿으십니까?!

두번째 관점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부분을 우리는 대부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앞서도 살펴봤듯이 ‘나사렛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잘 압니다. 그런데 루이스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설명하면서 ‘물탄 기독교’ (Christianity-and-water) 라는 상당히 도전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무엇이 ‘물탄 기독교’일까요? 물탄 기독교란 “하늘에 선한 하나님이 계시니 만사형통”이요, “죄니 지옥이니 악마니 구속이니 하는 어렵고 무서운 교리들은 전부 제쳐 놓자”는 입장입니다. 신앙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화해서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믿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단순화하는 것은 신앙의 핵심을 분명히 깨닫고자 할 때는 필요하지만,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큰 약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세상은 마치 욥의 친구들과 같이 단순한 논리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신 것일까요? 제는 예수님을 <적진 깊숙히 침투한 전능한 사령관>이라는 루이스의 흥미로운 묘사를 앞에서 언급한바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기독교는 <합법적인 왕>이 이를 테면 변장을 한채 어떻게 이 (세상이라는) 지역에 상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몇몇 동네나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전쟁’입니다. 곧 첫 반역자 사단 마귀에 속한 악한 영들과 세상과 상대하며, 하나님께 속한 사령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속한 성도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3년의 이 땅에서의 길지 않은 삶을 사셨으나 세상이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구원의 비밀된 방법으로 혹독한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심으로 완벽하게 하나님의 부여하신 미션을 이루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그 미션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께서 완벽하게 이루신 승리의 권세와 영광을 우리는 어떻게 실제로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회개’라고 루이스는 말합니다. ‘회개’는 ‘손에 든 무기를 내려 놓고, 반역에서 항복’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반란군에 속한 저주스런 삶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 죄의 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사령관 되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를 빛된 제자로 부르신 주님을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그분의 용맹한 군사가 되어 이미 승리가 보장된 이 전쟁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고자 하는 세번째 관점입니다. 그것은,

세번째, ‘새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오늘 설교 제목인 ‘새 사람’은 ‘순전한 기독교’의 핵심단어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영적으로 표현한 단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목 박혔고, 이제는 오직 자신 안에 사는 존재는 과거의 자신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바울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이요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내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분을 영접함으로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조에)를 소유하게 됨으로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새 사람’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셨고, 영원전부터 성부와 성령과 함께 동거하셨던 성삼위일체의 완전한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을 수 있고,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그분을 영접함으로 이제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뜻이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이후로 유전 받았던 아담에 속한 죄와 죽음의 DNA를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깨끗이 씻음 받고 그분의 영원한 생명 곧 ‘조에’로서 우리가 또한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것이 성탄절의 의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전에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이유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맞이하는 성탄절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바라기는 의미없이 맞이하는 또 한번의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런 새사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영생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진정한 생명이 여러분을 죄와 육신과 악한 영들에게서 자유케하고, 싸워 승리케 합니까? 여러분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었습니까?’ (엡. 4:22-24) 바라기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심으로 우리를 ‘새 사람’으로 지으신 그 신분에 걸맞게 의와 진리 가운데서 기쁨과 만족과 평화가 충만하 새사람의 은혜를 누려가시길 축원합니다. 약 2천전 크리스마스날 오신 예수님이 역사의 그리스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여러분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인생의 주인되어 이끌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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