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5, 2017

“성령의 인치심” (The sealing of the Holy Spirit)

Preacher:
Series: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1:13,14
Service Type:

성령의 인치심”

(The sealing of the Holy Spirit)

11-5-17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1:13,14

13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이니 (In whom you also trusted, after that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in whom also after that you believed, you were sealed with that Holy Spirit of promise,)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Which is the earnest of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e purchased possession, unto the praise of His glory)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에베소 1장>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교회에서 함께 묵상해 나가는 ‘매일성경’ 큐티책자에서 이번 11월달부터 시작되는 성경본문도 ‘에베소서’ 입니다. 성령에 깊은 영감을 받고, 성경말씀에 깊이 깨닫은 수많은 성경학자들은 특별히 에베소서의 중요성을 잘 지적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복음중에 복음이라는 ‘로마서’가 믿음의 정의와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면, ‘에베소서’ 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확실하고 영광스러운 것’ 인지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잘 설명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단순히 믿을뿐 아니라, 약속의 성령님으로 부터 인치심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부르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성령의 보증으로 충만하게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의 삶’ 이 되시길 소원 합니다.

<론>

저는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우리 성도들이 누리게 될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상태를 함께 살펴 보기 원합니다. 왜 저는 오늘 ‘성령의 인치심’ 이라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오늘 ‘에베소 1:13,14’ 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 핵심은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우리 자신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의 영광스러움과 권세> 를 먼저 이해해야만 하고, 이해했다면 당연히 누려 나가야 한다’ 는 것 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과 권세를 삶으로 누려 나가지 못하다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아직까지 ‘자녀의 신분’ 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통해 허락하신 성령의 충만과 인치심을 깨닫지 못했다는 뜻일 것 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믿음을 저하시키거나 뜨러 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나가도록 격려하는 말씀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격려 했드시,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를 이해하고, 이제 그렇게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 원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집중적으로 살펴볼것은 본문에서 “ ~너희도 진리의 말씀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 (v.13)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어떻게 약속의 성령님을 통해 인치심을 받을까요?” (How are we sealed with the Holy Spirit of promise?): 그것은

첫째, ‘성령이 누구신지를 이해해 감으로서’ (We might be sealed with the Spirit by understanding about Him) 가능할 것 입니다; 저는 ‘성령의 인치심’ 이라는 중요한 성도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고자 하면서, 무엇보다 ‘성령은 누구신지?’ (Who the Holy Spirit is?) 을 다시한번 함께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며, 성령에 대한 어떤 우리의 신앙적 이해와 성령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성령이 누구신가?’ 라는, 즉 ‘성령에 대한 이해상태’가 그 결정적인 변화요인이 될것이기 때문 입니다. ‘성령충만’ 혹은 ‘성령의 인침’ ‘성령세례’ 등의 상태는 언제나 ‘내가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분께 반응하느냐?’ 는 결과이기 때문 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에 대한 옳바른 이해’가 진정한 성령의 인치심을, 그분의 충만을 받을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누구실까요?’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고전. 2:10) 즉, 성령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그 어떤 천사도, 피조물도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계획하심을 아시기에, 그 뜻을 알고자 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오직 성령을 통해 그것을 깨닫도록 도우신다는 것 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다는 것 입니다. 성령님은 천지가 처음 창조되어 질때 그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영’ (창. 1:2) 이십니다. 누구도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수 없는 것 입니다 (요. 3:5). 또한, 성령님은 주께서 약속하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요. 16:8),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 (요. 16:13) 입니다. 성령님은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요, 우리 거듭난 자가 처음 영적으로 출생하게 역사하실뿐 아니라 성도의 남은 평생의 삶을 통하여 진리 가운데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도우시는 분인 것 입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성령을 단순히 하나의 ‘능력’ 이나 ‘내 사역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세를 버리게 될것 입니다. 그럼으로 성령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순종 가운데서 자라나고자 하는 옳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지게 될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성령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자녀된 나의 신분을 이해해 감으로서’ (We might be sealed with the Spirit by understanding about our ‘sonship of God’) 가능할 것 입니다; 내가 어떤 신분인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진정한 크리스찬의 승리와 열매맺는 삶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고 저는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저는 지금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냐 아니냐?!’ 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내가 어떤 자녀의 영광된 신분을 누리게 된것인지를 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리고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의 영적 신분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승리와 열매 맺는 삶을 시작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기 때문 입니다. 제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에베소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삶이 얼마나 복된지를, 영광스러운지를 사도바울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 ~ 세상이 창조 (되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 (. 1:4) 가 된 존재라는 것 입니다; “ ~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 하나님 (아버지) 신비한 뜻을 (알수 있게된)” (9) 존재라는 것 입니다; “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 (10) 는 것 입니다; “ ~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그의 자녀)” (12) 가 되게 하시는 것 입니다; “ ~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온전히)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상속 (inheritance) 얼마나 풍성한지” (17,18) 를 깨닫고 누리게 되는 자녀인 것 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영접했다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으로 태어났다고 자동적으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통해 인격적으로, 의지적으로 알아 나가고자 결단 함으로서 얻게 되는 진리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자신의 신분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심과 결단이 있습니까?

셋째, ‘성령의 인치심을 성경적으로 이해함으로’ (We might be sealed with the Spirit by the biblical understanding of ‘the sealing’) 가능할 것 입니다; 먼저 “성령의 인치심” (the sealing of the Holy Spirit) 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로이드존스 목사는 이것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후사라는 확신을 주는 >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치, 누구와 계약을 맺을때 말로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 종이에다가 계약조건을 모두 쓴 다음에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는 것’ 과 같습니다. 그 도장은 <이것이 사실이며, 어떤 법적 책임도 반드시 지겠다>는 것 입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도장 찍어 주심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것 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말씀, <엡. 1:13> 의 우리말이나 영어번역에서는 쉽게 확인되지 않지만, 그 원어적인 의미는 이렇게 성경학자들에 의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찰스 핫지’ (Charles Hodge)는 오늘 본문 <13절> 을 이렇게 번역 합니다; “너희가 믿었고, 다음에 너희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having believed, ye were sealed with that Holy Spirit of promise) 라고. 우리 말에는 과거 행동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없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는 과거행동의 시제가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13절’ 은 “에베소교인들이 믿었을 뿐 아니라, 그 다음에 더 나아가서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라고 사도가 설명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로버트 할데인’ 은 ‘로마서 8:16’ 과 ‘엡. 1:13’ 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면서 ‘신자의 영에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언과 위로를 주심이 그의 첫번째 사역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중생케 하시는 사역 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믿음을 주시고 그런 다음에 인치신다’ 라고 성령의 인치심이 믿음 다음에 주어지는 것 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사하시는 방법을 말씀을 통해 연구한 많은 성경학자들은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어 믿게 된 상태>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된 상태> 는 동시에 있어나지 않고 믿음 이후에 인치심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첫째) 이 사실을 이해할때, ‘구원받았다고 모두 성도가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는 영적 상태를 이해하게 됩니다. 다시말해, 구원받는 순간 자동적으로 성령의 인치심 (=성령세례) 를 받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오해는 사도행전에서 오순절날 성도들이 이 둘을 동시에 받은 것과 고넬로의 가정에 또 동시에 구원과 성령세례가 임한 것으로 인해 오해되는 것. 이것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살펴볼때 매우 예외적인 것임); 둘째) 성령의 인침을 받지 않고도 받은 것인양 오해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이것을 오해 했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성령의 인치심/세례’ 를 ‘비체험적인 것’ 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받지 못했지만, 신학적으로 받았다고 잘못 이해 했기 때문 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언제나 체험적으로, 언제나 나 자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알수 있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임하시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인치심으로 충만하게 임하시는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성령의 인치심을 이미 경험했는지 혹은 아닌지를 이해하십니까?

넷째, ‘성령을 사모함으로서’ (We might be sealed with the Spirit by longing for Him) 가능할 것 입니다; 저는 이미 우리 거듭난 성도가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 첫걸음으로서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 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성령님의 절대적인 인격과 온전하신 신성을 말 입니다. 제가 ‘성령의 인치심’ 을 위한 마지막 4번째 사항으로 ‘성령을 사모해야 함’ 을 따로 때어 말씀 드리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성령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자세에 오해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개념’ 안에 잘못 자리잡고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령을 내 마음대로 취하겠다’ 는 식의 성령님을 ‘단순한 파워’ 정도로 취급하는 잘못된 이해와 성령께 대한 어리석은 자세를 저는 여러차례 지적한바 있습니다. 성령은 결코 내 믿음으로 취하고 얻는 어떤 결과물이 아닙니다. 시편기자가 표현했드시 (. 42),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게  찾드시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간절히 찾고 사모하는 삶 (시. 42:1) 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화를 통해 설명하셨드시 ‘성령은 내가 믿음으로 취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자녀가 아빠에게 구함으로서 받게 되는 것’ (누가복음 11:5~13) 입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11:13) 는 것 입니다. 이 모든 교훈의 핵심은 성령을 간구하며 기다리는 것 입니다. 결코 내 마음데로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결코 막연하고 절망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이치라면,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인치심을, 그의 충만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 입니다. 반드시 주신다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인내함과 믿음으로 구하고 사모하라는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게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성령님 자신인 것 입니다. 바로 성령님의 절대적인 주권 (주도권) 이 그분 안에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따라 그분의 때에 그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인쳐주시고 충만케 하시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 입니다.여러분은 이 성령의 충만을, 그분의 인쳐주심을 사모함으로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4:30) 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령님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면 갈수록, 내가 어떤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된 신분을 점점 더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불신자처럼 세상의 가치관과 유혹에 이끌려서 육신과 죄 아래 놓인 옛 습관을 따라 살아가면서 별 문제성도 느끼지 못하고 성령을 근심케 할뿐 아니라, 성령을 소멸하는 철없는 자녀의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 삶을 미련없이 버리게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성령의 인치시는 은혜와 도우심 때문 입니다. 이제, 성령님을 더욱 이해하고, 내 신분을 더욱 이해함으로, 성령을 사모하는 가운데 그분의 인치심을 경험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과 딸로서 세상을 이기고, 성령으로 승리하며 풍성한 열매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