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6, 2018

“아직도 믿지 않는가?” (You do not believe your Lord, yet?)

Preacher:
Series:
Passage: 신명기 (Deuteronomy) 1:31~33
Service Type:

 

“아직도 믿지 않는가?”

(Do not believe your Lord yet?)

5-6-18

본문말씀: 신명기 (Deuteronomy) 1:31~33

31 또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당신들이 이 곳에 이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당신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광야에서 직접 보았소.

32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33 당신들이 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그리고 당신들이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서 론>

하나님은 애굽에서 신음하는 그의 자녀,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그의 자녀들을 자유케 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고 오늘 말씀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신명기 말씀을 통해 ‘아직도 나를 믿지 않는다’ 고 이스라엘을 향해 선언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수없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를 누리면서도 여전히 영적 무지와 철없음으로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의 어두운 눈이 밝히 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고 그를 참되게 믿는 믿음의 자녀들이 모두 되는 축복이 임하길 소원 합니다.

<본 론>

오늘의 설교는 다소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고, 구원받은 자녀의 삶을 누려 나가기 위해 오늘 설교는 또한 중요한 시간이 될것 입니다. 주의 성령의 은혜로 우리 각자의 영적 상태를 깨닫고,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으로 깊어지는 이 시간이 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약과 구약을 통털어 모든 성경의 중심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 이라고 요약할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바로 우리 인간을 <구원 하셔서 자녀 삼으신 사건> 속에서 가장 영광스럽고도 찬란하게 빛남을 성경의 모든 기자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통해 거듭나게 됨으로서 말 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하기 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은 어떻게 구원 받을수 있을까요?” 하는 것 입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방금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고 말했지 않습니까?” 라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음을 압니다. 맞습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여러분과 저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으로 이르게 할수 없음을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는 것은 그것보다 한단계 더 깊은 질문 입니다. 그것은 이런 것 입니다; “만약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나의 믿음은 어떻게 가능하게 된것일까?” 하는 것 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한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사도바울이 밝힌 구원관에서 알수 있드시

첫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the gift of God) 이라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만약 네가 나사렛 예수님이 너를 구원할 그리스도요 메세야로 믿고 영접했느냐? 그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한 것이 아니고, 너의 믿음은 하나의 구원을 가져오는 ‘도구’ (tool) 이다. 실제로 너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그 하나님의 은혜, 즉 그분의 선물을 통하여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선물’ 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심’ (God’s election) 일것 입니다. 기독교회 2천년의 역사 가운데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 그 가운데는 성 어거스틴이나 존 칼빈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비밀을 깨닫은 수없이 많은 자들이 ‘하나님의 택하심’ 은 언제나 거듭난 자의 구원의 조건임을 고백 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 이란 ‘내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자 결심한 것은, 먼저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예정 (=계획) 하심으로 인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는 뜻 입니다. 따라서, ‘내가 내 믿음으로 예수님을 선택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스스로 자랑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런 ‘나의 믿음의 선택과 의지조차도 하나님의 나를 먼저 택하신 은혜의 선물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될때, 나는 겸손할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단지,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를 택하신 그의 은혜요, 내가 감사할 것이 있다면 ‘나 같은 자를 먼저 택하신 그분의 한없는 사랑’ 일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 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고백하고, 성령님을 통하여 친히 나의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여 주시는 놀라운 자녀의 확신을 주시는 영적 축복이 우리들이 믿음이 좋아서나 영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우리를 먼저 택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도우시는 은혜로 가능하게 된 것 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까지 설명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 그분의 택하심 때문이라면,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된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불의함’을 뜻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의문을 제기할 분이 혹 있을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 에서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4,15)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불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김만이 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1~16> 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을 통한 택하심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이 스토리는 성도 여러분 대부분 잘 아시겠지만, 어떤 주인이 포도원 품꾼을 아침일찍 하루 일당 ‘한 데나리온’으로 약속하고 자기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거의 하루 일이 끝나갈 때 쯤에 장터에 나가 봤을때 어떤 사람들이 자기를 품군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어 놀고 있음을 주인이 보고 자기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이제 일이 끝났을때, 주인이 가장 늦게 온사람들 부터 일당을 쳐 주었는데 하루 일당 전부인 ‘한 데나리온’ 을 주는 것을 먼저 온자들이 보고, 자기들은 더 받을줄로 기대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고, 이것을 자기들은 먼저 와서 하루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디며 일했는데 나중온 자들과 자기들에게 동일한 일당을 준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인을 원망 했습니다. 그때 주인은 그들에게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다.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3,14) 고 말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주인의 이런 선한 행위를 도리어 불의하다고, 악하다고 말해선 안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하심’ 에 포함된 뜻 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의로움의 차원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하심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롬. 9장> 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수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오직 그의 선하심을 따라, 긍휼이 여길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만약, 여기까지 말하고 구원에 대해 마무리하면,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입니다. 그 이유는 ‘내 구원은 하나님이 나를 먼저 택해야 가능한 것이기에 결국 내 행위와 노력에 관계없이, 내가 택함 받았다면 나는 구원 받는다’ 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인 것 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극단적 칼빈론자’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운명론자’ 와 흡사하게 구원을 이해하는 것 입니다. 마치 운명론자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원해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지 않으면 나는 구원 받을수 없고, 반대로 내가 어떻게 내 마음데로 살아도 하나님이 택하시면 구원 받는다’ 는 식의 구원에 대한 극단적인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 입니다. 왜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택하심, 즉 ‘예정하심’ 의 은혜와 심오한 뜻을 외곡하고 극단으로 치우친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함께

둘째, ‘구원은 <우리 인간의 책임>’ (our responsibility) 을 분명히 묻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성경을 열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살펴 본다면, 신구약성경 모든 곳에서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 에 밀접히 달려 있음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신명기와 대부분의 구약성경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서 얻게 되는 구원’ 이라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언약’을 기초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것 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드러내는 신약의 복음의 말씀도 역시 그 말씀을 듣는 우리의 반응과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그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선포한 <요한복음 3:16> 은 무엇이라 말씀 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무슨 말 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속에 있던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셔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 주셔서 우리를 살리신다는 것 입니다. 바로 그의 아들을 믿음으로서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축복을 허락 하셨다는 것 입니다. 이 놀랍고 축복된 말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선포한 목적은 무엇 입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했다면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는 것 입니다. 바로 지금 그분께 내 인생을 모두 드리고, 진정한 나의 주님으로 믿으라는 것 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으면, 네 마음데로 살더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돌이겨서 하나님 믿게 할것이다. 그러니, 심각하게 신앙생활 하지말고 너하고 싶은데로 편하게 살아라. 하나님이 택하셨으면 너는 반드시 구원 받을 것이다’ 라고 성경은 그 어느곳에서도 말하는 곳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벌어졌을때 감옥을 지키던 간수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줄 알고 자결하려 합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그에게 큰소리로 자신들이 모두 있음을 알립니다. 간수는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고 달려와서 엎드리면서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v.30) 라고 묻습니다. 그때 바울은 “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v.31) 라고 대답 합니다. 그리고 나서, 더욱 구체적으로 주의 복음의 말씀을 그에게 그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고, 그날 밤에 그 간수는 그의 집에 속한 모든 자들과 함께 지체하지 않고 침례를 받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v.32~34) 제가 지금 성도 여러분에게 힘써 전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은 우리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는 우리 인간의 반응’ 을 언제나 요구한다는 것 입니다. 언제나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복음을 들었을때 마음을 강팍케 하지말고, 성격을 거칠게 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인 것 입니다. 그가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각자의 믿음으로 반응하는 책임> 을 묻고 계시다는 것 입니다. 어느 누구도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 하는 책임을 지지 않고서, 구원 받았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킬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성경은 ‘나의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기를 요구’ 하신다는 것 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로만 넘기고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핑계를 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 입니다; “만약 성경에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통해서 가능하며 동시에 구원은 우리 인간의 믿음으로 반응하는 책임을 요구한다면, 이 두가지 사실이 어떻게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될수 있을것인가? 다시말해,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심’ 과 ‘인간의 책임 (=자유의지)’ 은 조화를 이룰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저의 대답은 ‘알수 없다’ 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더 이상을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을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한 어떤 신학자나 영적 거장도 이것을 온전히 설명할수 없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그의 자녀를 구원하시는 비밀이요, 우리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그분의 구원의 지혜인 것 입니다. 이 비밀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인 것 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과 은혜를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입니다 ~ 이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된 일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리석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1)  성도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데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직도 부족 합니까? 바라기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눈을 더욱 밝혀 주셔서 여러분의 삶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믿음과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점점 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음으로 “항상 (주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빌. 2:12)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간구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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