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3, 2022

“안식의 의미” (II) (The Meaning of Sabbath)

Preacher:
Series:
Passage: 사도행전 (Acts) 20:7
Service Type:

“안식의 의미” (II)

(The Meaning of Sabbath)

10-23-22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20:7

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we came together to break bread. Paul spoke to the people and, because he intended to leave the next day, kept on talking until midnight.)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창. 2:2-3>에서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안식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핵심은 ‘완성하셨다’, ‘만족하셨다’, 그리고 ‘축복하셨다’가 그 ‘안식하셨다’는 의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출. 20장>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심을 봅니다. 하나님은 자신만 안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을 또한 안식할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축복하시고자 하심입니다. 안식의 주인 (막. 2:28)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자녀들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어서 ‘왜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은 구약의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곧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으신지 3일만인 ‘안식후 첫날’ 곧 <주일> (=일요일)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마. 28:1-10). 이 주님의 부활하신 날은 그 어떤 날보다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념한 구원의 근거가 된 날이었습니다.

둘째, ‘성령강림사건’ (오순절)의 날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시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4) 명하시고, 몇 날이 못되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의 제자들이 불의 혀 같은 충만한 강림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행.2장) 이 오순절 날은 주일로서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요, 성도들이 기념한 날입니다.

셋째, ‘초대교회 시작부터' 주일에 모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비롯한 신약 서신서들을 보면 성도들이 ‘안식후 첫날’ 곧 오늘날 ‘주일’에 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20; 고전.16:2; 계. 1:10).

넷째, ‘신약시대 성도'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약시대의 성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마.11:28-29; 히.4:14-16). 더 이상 구약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안식일의 규례 뿐 아니라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진리의 자유와 안식을 누려 나가는 것입니다 (롬. 10:4; 골. 2:16-17; 요. 8:31-32).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고 말씀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일 하루 뿐 아니라, 언제나 주의 영 성령 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림으로 그분의 안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참된 안식을 날마다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성경에서 말씀하는 ‘안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창. 2:2-3>에서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만물을 모두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출. 20장>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택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고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만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도 안식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영적 교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영원히 지키라고 명령하신 ‘안식일’은 하나의 무거운 짐도 아니요, 까다롭고 이루기 힘든 의무사항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안식은 도리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요, 그의 자녀가 영원히 추구하여야 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화와 만족의 본질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광야에서 순종치 않고 자신을 시험하며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시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히. 4:5)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이나 형벌로 주신 것이 ‘안식’이 아니요, 축복과 은혜로 주신 것이 안식이기에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불신하는 자에게는 결코 그 ‘안식에 들어갈 기회’를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궁극적으로 안식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됨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히브리서>기자가 밝힌 것처럼 우리의 구원자 되실 뿐 아니라, 대제사장 되셔서 날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 4:14-16). 이것이 바로 주께서 그분께 나아오는 자를 무거운 짐을 벗게 하고 그분의 안식 안으로 들어오게 하실 것이라고 초청하시고 약속하시는 이유 (=영적 상태)인 것입니다 (마. 11:28). 이것이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시는 ‘안식’의 중심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구약의 ‘안식일’과 오늘날 우리 프로테스탄트 성도들이 지키는 ‘주일’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인 <마. 28장>을 보면, 두여인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시신이 있는 무덤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 28:1-2)라고 말입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안식일 전날 죽으시고 3일째 되는 날 곧, 안식일이 지나고 난 다음날 <안식 후 첫날>이라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날 새벽에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고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그 굴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굴려져 나가 있는가 하면, 그 무덤이 비어져 있고 주의 천사가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여인은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몰래 가져간 것이 아닌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 28:5,6)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셨듯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지 3일만인 안식 후 첫날, 곧 오늘날 ‘일요일’ (Sunday)에 해당하는 ‘주일’ (Lord’s day)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 이후에 여러 곳에서 주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안식 후 첫날’인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과 교제를 나누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기도교회의 첫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라고 불리는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사건이 공식적인 신약교회의 첫시작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행. 1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행. 1:4-5)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100여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성령강림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는 불의 혀같이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모인 100여명의 제자들 위에 임재 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갑자기 여러 지방의 방언을 말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놀라움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 사건은 바로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성령강림 사건>임을 정확히 깨우쳐 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주리라” (행. 2:17)고. 바로 이날 벌어진 이 놀라운 역사는 하나님께서 장차 모든 육체에 그의 영,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고 약속하신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심으로 성취하게 된 사건이 성령강림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성령강림이 이루어진 때입니다. 누가는 이것을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1)라고 사건발생의 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순절’은 한자로는 다섯 ‘오’ (五)와 열이라는 의미의 ‘순’ (旬)이 합쳐진 단어로 곧 <50>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약 레위기 (레. 23:16)에서 언급된 ‘50일’을 헬라어, <펜테코스테스>로 번역한 것이 영어로는 오늘날 불리어지는 “펜타코스트” (Pentecost)입니다. ‘오순절 날에 임한 성령강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유월절 행사로 첫 이삭 한 단을 요제로 드린 후 50일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칠칠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에 해당하는 ‘유월절’에서부터 시작하여 7주가 지난 다음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7주>를 계산하면 49일이요, 거기서 하루를 더하면 50번째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 다음날인 오늘날 ‘주일’ (Sunday)이 되는 것입니다.

공교로운 것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받은 날이 오순절 날이요, 이날은 신약의 개념에서 생각해 본다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서 50일째되는 날인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동안 여러 주의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신 다음 주님의 약속대로 ‘몇 날이 못되어 충만한 성령세례’를 받게 날 (행. 1:13-15)이 바로 오늘날 일요일에 해당하는 ‘주께서 부활하신 날’ 곧 ‘주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주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모인 사례가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데, 오늘 본문말씀이 또한 그 한 예입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 20:7)라고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포함된 <행. 20장>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도 바울이 빌립보 지방에서 닷새만에 드로아 지방으로 가서 그곳 성도들과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에 함께 떡을 떼고 말씀을 밤이 새도록 나누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삼층 윗다락 창의 난간에 걸터 앉아서 바울의 말씀 강론하는 것을 듣다가 그만 졸음이 와 난간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게 된 불상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 ‘유두고’의 뜻이 무엇인지 압니까? ‘행운’ (lucky)라는 겁니다. 하여튼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설교자인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졸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 청년을 다시 살려 냄으로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듯이,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은 안식 후 첫날, 주일에 고정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한편 바울은 고린도 성도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를 마감하면서 그들의 ‘선교후원금’ (=연보)을 모금하는 것에 있어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전. 16:2)고. 이 또한 드로아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이미 매주일에 모여 주의 만찬을 나누며 (11장)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약성경의 곳곳에서 이미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모여 예배 드린 것을 일상화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중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일에 모여 구약의 유대인들이 지켰던 안식일처럼 지켰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아직도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유효한 것은 아닐까? 하고 궁금해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지난 주에 이어서 다시 한번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 2:28). 다시 말해, 우리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뿐 아니라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의 마침 (=완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거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선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한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마. 5:17). 이것이 정확히 우리가 더 이상 ‘안식일’을 포함한 구약의 율법제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 결코 ‘율법폐기론’을 주장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더 이상 구약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에게 주어졌던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온전한 율법을 그분의 영 성령을 통해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이상 신약의 성도들이 안식일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성경적 근거인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골로새서 2장>인데 바울은 골로새 교회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골. 2:16-17/ 새번역) 여기서 사도는 분명히 그 누구도 ‘안식일 문제’로 골로새 성도들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안식일을 포함한 율법의 모든 음식이나 날짜에 대한 규정으로 얽매이고 서로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림자요, 그것은 실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우리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먼저 안식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십계명이지만 이것은 더 이상 우리 신약시대 성도에게 적용되는 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의 정신은 결코 폐기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원토록 거룩히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출. 20:8). 어떻게요? 안식일의 주인이시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안식 안으로 들어 감으로서 말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 곧 ‘주일’을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그리고 ‘그날 성령강림의 은혜’를 되새기며 함께 모여 구약의 안식일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함께 떡을 떼는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으로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의 주일이 본질적으로 안식일과 다른 점은 우리 성도의 ‘안식’의 개념은 더 이상 어떤 한 날에 고정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주일’이 앞서 살펴본 대로 뜻깊고 소중하지만, 우리의 예배와 안식은 주일 하루에 국한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요일과 날짜에 얽매이는 안식이 아니라, 내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하시면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께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여인이 주님께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이 산 곧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고,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데, 과연 어디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1,24)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어느 지역에만 국한되어 예배 받으시는 하나님도 아니시요, 또한 어느 한 날에만 한정되어 경배 받으시는 하나님도 아니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그의 자녀가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기쁨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안식을 누려 나가고 있습니까? 어떤 장소의 문제도 아니요, 어떤 날짜의 문제도 아니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진정한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림으로 그 분의 복된 안식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이 안식은 이제 ‘주일’ 하루만이 아니라 일주 7일, 하루 24시간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은혜 중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이런 안식의 은혜로 날마다 충만한 성도 여러분의 복된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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