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 2018

“여호와를 경외하라” (The fear of the Lord)

Preacher:
Passage: 잠언 (Proverbs) 9:10
Service Type:

“여호와를 경외하라”

(The fear of the Lord)

12-2-18

본문말씀: 잠언 (Proverbs) 9:10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설교 요약]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성경의 선언은 그 어떤 다른것보다 우선적이고 근본적임을 저는 말씀을 검토해 보고 묵상해 볼수록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그의 자녀들에 대한 모든 명령이 이 ‘하나님을 경외하라’ 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일 것 입니다.

먼저 ‘무엇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뜻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신학사전’ 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다는 뜻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로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깨우침으로서 그분에 대한 ‘놀라움’ (awe) 과 ‘공경/숭배’ (reverence)]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수 있을까요?” (How do we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첫째,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loving Him with all our hearts): 우리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는 그분을 향한 우리의 경외함은 ‘그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선하신 아버지는 나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나의 조건을 보시기 않으시고 내 동기를 살피시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 입니다. 사랑은 곧 전부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받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셔서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 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growing in the knowledge of Him):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더 깊고 넓은 그분을 향한 풍성한 경외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자신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게 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 (호. 4:6) 라고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과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지 못한 잘못된 열심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헛된 삶을 살았다고 고백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obeying Him): ‘무엇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날마다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날마다 따르는 삶일까요?’ 그것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 (요. 14장) 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되었던  나의 왕좌를 기꺼이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날동안 이렇게 신실하게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경외의 삶을 살아 가시길 간절히 소망 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 하십니까? 여러분은 ‘여호와를 경외함의 중요성과 그것이 가져오는 진정한 축복을 이해하십니까?’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들의 삶이 오늘부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경외함의 삶을 점점 더 온전히 실천해 나감으로 약속하신 복된 삶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사실 저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설교함에 있어서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그 진리를 충분히 밝히고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통감 할때가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진리 등이 그것 입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제목인 ‘여호와를 경외하라’가 또한 그러합니다. 그 진리가 깊고 중요할수록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하면, 그 핵심을 어떻게 잡아 내고 또한 적용해야 할지가 결코 쉽지 않음을 저는 통감 하는 것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성경의 선언은 그 어떤 다른것보다 우선적이고 근본적임을 저는 말씀을 검토해 보고 묵상해 볼수록 깨닫게 됩니다. 말하자면, ‘율법 (=말씀)을 지키라’든가, ‘악과 싸우고 선에 속하라’든가, 혹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으라’는 말씀등은 모두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우리 주님의 본질적인 명령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라’ 는 그의 명령하심은 앞서 말씀 드렸던 명령뿐 아니라 모든 다른 명령을 다 포함하는 명령이라 저는 이해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그의 자녀들에 대한 모든 명령이 이 ‘하나님을 경외하라’ 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뜻일까요?’ ‘경외’ (敬畏) 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공경하면서 두려워 함]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사전’ 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다는 뜻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로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깨우침으로서 그분에 대한 ‘놀라움’ (awe) 과 ‘공경/숭배’ (reverence)]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외함의 대표적인 성경본문의 하나로서 오늘 설교본문인 잠언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인정하시겠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그 깊고도 포괄적인 영적 상태를 몇마디의 말로서 온전히 다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치만, 저는 이제 이 경외함을 통한 성도의 복과 은혜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경외’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누군가가 이렇게 ‘경외’를 짧게 정의한 것을 읽으면서, 제 개인적으로 무척 공감 했습니다. 그것은 “To fear the Lord Almighty is to be free from all other fears” 라고. ‘경외’가 영어로는 ‘fear’ 로서 ‘두려움’이라고 번역하게 되는데, 따라서 이 문장을 번역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것은 곧 모든 다른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다” 라고 말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영어단어 ‘fear’를 (‘경외’와 함께) ‘두려움’이라고 표현한다면,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온 정신을 집중하고 관심가지고 그것이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것이 무언가?!’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두려운 것인가?’, 혹은 ‘내 스스로 정해 놓은 계획과 목표를 성취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세상 가치와 명예와 물질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내 뜻대로 소유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인가?’ 라고 우리는 그 ‘두려움’이라는 뜻을 재해석할수 있습니다. 내가 실제 내 삶에서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놓칠까봐 두려워하면서 추구하는 대상이 누군가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인가? 아니면 남의 평가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쾌락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하는 것 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 한분에 대한 경건한 (=신적) 두려움이 있다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있다는 것 입니다. 마치 C. S. 루이스가 쓴 소설 ‘나니아 연대기’ 에 나오는 ‘사자’ (The Lion)에 대한 느끼는 ‘자상하고 부드럽지만, 결코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수 없는 신적 두려움’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두려움, 즉 경외심을 가질때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케 된다는 것 입니다.

이제 저는 만약 여러분과 제가 오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선포하시고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한다면, 어떻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약속하신 참된 지혜와 하늘에 속한 유업을 누릴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수 있을까요? (How do we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첫째,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loving Him with all our hearts): 우리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는 그분을 향한 우리의 경외함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 일까요? 어디서 부터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처음에는 서툴고, 부족하고, 깊지는 못할찌라도 거짓없는 순수한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 그분을 향한 경외함의 시작이 아닐까요? 우리 주님은 자신을 3번씩 저주하고 부인한 제자 베드로에게 찾아 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6,17) 라고 묻으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백할수 있었던 말은 더 이상 “제가 주님을 위해 죽겠습니다”는 멋진 맹세가 아니라,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 21:15,16,17) 는 고백이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듣기 원하신 것은 어떤 강한 맹세도, 실수하지 않는 행동도 아니요, 그의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기 원하시나요?” 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 받으니까!” “경외하는 삶은 지혜와 명철을 가져 온다니까…” 물론 이런 대답들도 나름 일리가 있음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를 경외하는 삶을 시작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를 향한 사랑이 여러분의 동기가 되기 원합니다. 비록 베드로와 같이 여러분과 제가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말 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본다고 선언하고 계시다는 것 입니다. 나의 행위를 보시기 이전에 나의 동기를 먼저 살피신다는 것 입니다. 우리 선하신 하나님께서 진실로 관심 가지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갖기 원하신다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사랑이 바로 우리의 중심이요, 전부이기 때문일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받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셔서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함으로 경외하기를 시작 하셨습니까?

둘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growing in the knowledge of Him): 저는 앞에서 ‘경외’의 뜻을 정의하면서 ‘Westminster Dictionary’ 에서 오늘 설교본문, <잠. 9:10>의 말씀을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본문의 하나로 인용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잠. 9:10b>에 보면 “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앞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 (잠. 9:10a) 라는 진술에 대한 강조요,더 구체적인 표현임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정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기초)인데, 이런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삶은 바로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만큼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드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그분을 경외함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이라면,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더 깊고 넓은 풍성한 경외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점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제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의 자녀가 자신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자신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게 된 이스라엘을 향해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학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고 나서 사도바울이 고백했드시, 하나님을 아는 진정한 지식에서 자라지 못할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음을 보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날때 우리는 청년 사울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고, 다메섹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바울과 같이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음의 진리로 충만하여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충만한 은혜로 깊어지는 삶을 살게 될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함으로” (We are able to walk in the fear of the Lord by obeying Him): 주님은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분명히 도전 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우리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이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우리 인간도 좀더 가까이 서로 사귀어 보면 상대방이 말만 많은 자인지? 아니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실한 자인지? 알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함으로 경외하기 시작하고, 그 거룩한 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그 경외의 삶이 점점 더 깊어지고 풍성해지고 있다면, 그 지식은 반드시 ‘순종’으로 열매 맺을수 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지킬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사랑은 결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부모는 말로 그 자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돌봄과 희생으로 그것을 드러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은 말로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의 유익과 기쁨을 위해 내 마음과 시간을 바치기를 결코 아까워하지 않는 것 입니다. 사랑하기 때문 입니다. 이제 저는 구체적으로 순종에 대한 한가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그를 날마다 따르는 것 입니다.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날마다 따르는 제자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가장 핵심적인 모습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날마다 따르는 삶일까요?’ 그것은 <성령께 순종하는 삶>이라고 저는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진리의 성령님이 오실것을 분명히 약속 하셨습니다 (요. 14~16장). 그가 오셔서 우리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 (요. 14:16) 과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과 성령님 안에서 주님의 평화를 누릴 것임 (요. 14:26,27)을 약속 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약속하신 성령, 이미 우리 가운데 오신 성령을 신뢰하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약속하신 풍성한 열매를 거둘수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말로만이 아니라, 성령님께 대한 전적 신뢰와 순종을 통해 신실한 주의 제자로,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자녀로 그분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한다” (잠. 14:26,27) 라고. 성도 여러분은 돈을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 질것으로 여겨집니까? 세상 권력과 쾌락을 더 많이 누려야 기쁨이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 합니까? 잠언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진실로 생명의 샘을 얻고, 그의 자녀들 까지도 죽음의 그물과 재앙에서 피난처를 얻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되었던  나의 왕좌를 기꺼이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오직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평생의 남은 날동안 이렇게 신실하게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경외의 삶을 사시길 간절히 소망 합니다.